도둑맞은 나의 체력과 루틴의 중요성

by Taylogue

나이가 들면 체력을 비롯한 전반적인 신체능력이 떨어진다는 게 상식일 텐데,

나는 여태껏 살면서 단 한 번도 내 체력이 좋다고 느껴본 적이 없다.


미취학 아동일 때도, 10대 때도, 20대 때도, 나는 늘 부족한 내 체력을 원망했고

8시간 이상 수면을 취하지 못한 날이면 하루종일 피로나 졸음 따위와 싸워야만 했다.

(물론 또래의 친구들은 그렇지 않았다)


꾸준히 운동을 하고, 보통 사람들보다 과하게 관리를 해서 어떻게든 보통의 인간처럼 살아냈지만

조금이라도 관리의 끈을 놓으면 60대 부모님의 체력에도 따라가지 못하는 스스로를, 나만은 언제나 알고 있었다.


문제는 내가 그런 형편없는 하드웨어에 비해 지나치게 탐욕스러운 소프트웨어(하...)를 가지고 있었다는 건데,


세상에 신기한 건 왜 이리 많고 재미있어 보이는 건 또 왜 이리 많은 지

이것도 저것도 고것도 요것도 다 해보고 싶은 욕심 때문에

내 인생은 언제나 HP가 고갈된 것도 무시하고 망아지마냥 이리저리 뛰어다니다가 탈진하는 일의 반복인 것이다.


다행인 건 나에게 학습능력 + 망아지의 삶이 가져다준 '과거의 경험'이라는 자원이 있다는 건데,


30대 중반에 완전히 접어든 작년, 개복치 같은 나의 체력에 야 니가 이러고도 청년이냐 이대로는 정말 못살겠다 새삼스레 한탄하다가

한 가지 (나에게)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다.



내가 가진 자원(체력/시간/돈 등)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관심 있고 하고 싶은 일이 정말 매우 몹시 많지만 그 모든 것을 당장 다 해볼 수는 없다.

더구나 내가 그 일에 얼마나 관심을 두고 있느냐와 별개로,

그 각각의 일이 내게 가져다줄 수 있는 가치는 상당히 다르다.


관심 가는 일들을 선별할 필요가 있다. 지금 당장 내게 필요한, 가장 중요한 일에 집중해야 한다.

그러려면, 가장 중요한 일을 제외한 <나머지> 일에 들어가는 자원을 최소화해야 한다.


그렇다면 나에게는 루틴이 필요하다.

체력이 부족하고, 욕심이 많으니 더더욱.



몇 년 전에 가수 박진영 씨의 인터뷰 영상을 우연히 접할 일이 있었다.

영상에서 그는,


무슨 옷을 입을지, 어떤 신발을 신을지, 뭘 할지를 고민하는 시간이 너무 아깝고

심지어는 스니커즈를 신을 때 말려 들어가는 신발혀를 다시 꺼내려고 허리를 숙이는 시간조차도 아까워서

늘 정해진 옷을 입고 정해진 신발을 신을 뿐만 아니라 신발혀가 말려 들어갈 일 자체를 없애기 위해

아예 신발혀를 신발에 고정시켜 꿰매버렸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이야기를 너무나 행복한 얼굴로 웃으며 했다. 더 이상 쓸데없는 고민이 없다고. 너무 편하다고.



'저렇게까지...?'라는 생각을 안 했다면 거짓말이다.

유난 떤다고 비난하려는 건 아니었지만, 그냥 저렇게까지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살려면 참 힘들겠다.

나도 열심히 살고 싶긴 하지만 이번 생에 저 경지까지는 못 갈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몇 년이 흘러 얼마 전, 출근 준비를 하던 중

무슨 옷을 입어야 하나 고민을 하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옷 하나 찾겠다고 매일 5분, 10분을 투자하는 게 맞나?

패션이 중요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이 일의 TPO에 안 맞는 옷이란 건 애초에 내 옷장에 없고

패션에 대단한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닌데(최애 아이템:맨투맨+조거팬츠)

그냥 아무거나 주워 입고 나가도 상관없을 걸 나는 왜 여기다 시간을 쓰고 있지?


이 시간에 할 수 있는 게 얼마나 많은데.



그 많은 사람들이 다 단지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살기 위해

패션과 운동과 식단과 일과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 행위가 그들에게 결과적으로 '부지런하고 성실하다'는 이미지를 가져다주긴 했겠지만

그게 루틴을 만들고 지키는 근본적인 이유는 아니었던 거다.




매월 말, 나는 프로틴바를 4박스(박스당 8개), 고단백 식단을 6만 원어치 주문한다.

(구입처, 구입 품목은 물론 모두 정해져 있다)

그리고 평소 먹는 음식의 80% 이상을 이것들로 해결한다.


12시-1시에 한 끼

6-7시에 프로틴바

11시에 다시 한 끼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음식을 먹는다.

직장인 최대의 고민거리인 <오늘 뭐 먹지>도 나에게는 더 이상 필요 없는 고민이 된 지 오래다.



나는 하루를 [기상-출근 전], [근무시간], [퇴근-취침 전]의 세 토막으로 나누고,

해야 할 일을 성격에 따라 나누어 배치한다.


첫 번째 구간에는 주로 운동과 고정수입원과 관계된 일을 하고,

퇴근 이후에는 좀 더 창의적인 일이나 공부를 한다.


주 1회 1:1 언어교환을 하고,

주말에는 약속을 잡지 않고 오롯이 스스로를 위한 시간을 보낸다.


구상 중인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거나,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는 시간을 제외한 일상적인 일들을 하나 둘 찾아

계속해서 루틴화시킨다.


어떤 화장품을 바를지, 생필품은 어떤 제품을 쓰고 언제 구입해야 할지, 산책은 언제 가고, 커피는 몇 시쯤 마셔야 할지.

사소한 것일수록 더 열심히.




그렇게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일들]이 루틴 속으로 조용히 들어가 자리를 잡아주고 나니,

분명 이전과 같은 양의 일들을 해내고 있는데 시간과 체력이 남는다.

계속 바쁘게 살아도 바쁘기만 바쁘고 생산성은 되려 떨어진다고 느꼈는데, 이제 오히려 여유가 생겼다.


그렇게 남는 시간에 내가 지금 해야 하는,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게 저질 체력과 비대한 욕심을 한 몸에 가진 내가

최대 생산성을 향해 달리고 있는 (거의 유일한) 길이다.


이제 나는 아무런 강제 없이도 알아서 루틴을 만들고 지키며 산다.

부지런하거나 성실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갓생을 살고 싶어서도 아니라,


그렇게 아낀 내 자원을

지금 나에게 가장 중요한 일에 폭발적으로 쏟아 붓기 위해서 그렇게 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내 글 내놔 :100일 글쓰기 챌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