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트가 있고 요트 멀리 잔잔한 수면 위로 돌집의 그림자들이 드리워진다. 작가 레마르크작품, 소설 <개선문>의 주인공 라비끄가 늘 마시던 칼바도스와 신선한 해물이 있는 자그마한 식당들이 옛 항구 한 면을 감싸듯 일렬로 이어져 더욱 정겨운 풍경이다. 인상주의 화가들을 매료시킨 전형적인 프랑스의 항구이며 천재적인 상징주의 시인 보들레르와 작곡가 에릭 사티의 고향이기도 한 옹플뢰르엔 늘 일상의 진지함과 예술의 향기가 절절이 배어있다.
파리는 며칠째 계속 겨울비가 내리고 있었다. 은회색 하늘 아래 흙빛 나뭇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던 날, 대서양의 노르망디로 향했다. 늦가을 들판이라고 하기에는 무색하리만큼 초록빛으로 채워진 길을 달려 닿은 옹플뢰르엔 햇살 가득하다. 어느새 햇살이 돌집을 타고 넘실거리다 항구 쪽으로 길게 꼬리를 늘어뜨린 오후, 이곳을 찾은 외지인들이 구항을 메우고 있었다. 그들은 햇살을 밟으며 항구 풍경을 화폭에 담고 있는 화가들의 캔버스에 눈길을 두고 있다. 캔버스 속의 마을, 오랜 세월 그 모습 그대로 서 있었을 집과 건물들의 퇴색한 빛이 오히려 아름다웠다.
옹플뢰르 구항, 물 위에 그림자로 어리는 풍경
옹플뢰르는 작게는 칼바도스 지역에, 넓게는 노르망디 지방에 속해 있다. 제2차 대전의 참화 속에서도 전형적인 노르망디의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옹플뢰르는 현대적인 도시 모습과 전원적인 시골 풍경을 함께 맛볼 수 있는 특별한 곳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이 지방에서 나는 사과는 독특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발효시켜 만든 능금주(시드르)와 사과 증류주 칼바도스는 이 고장의 명물이다.
가게 진열장을 장식한 칼바도스와 시드르
옹플뢰르라는 이름은 항구 도시로 이어지지만, 전혀 투박하지 않고, 아늑한 느낌을 준다. 세느 강 하구 대서양과 맞닿은 곳에 위치한 이곳의 역사는 14세기 중엽 백년전쟁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정학적으로 중요했기 때문에 백년전쟁 중에 영국으로부터 프랑스를 지키고자 샤를르 5세가 요새를 지은 것이 계기가 되어 이후로 세느 강 하안의 항구로서의 명성과 그 역할을 계속해 왔다. 이곳에서 프랑스 인들은 배를 타고 캐나다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중세 요새의 분위기와 당시 모든 배들의 입출항을 통제하던 그때를 연상시켜 주기에 충분할 만큼 묵직하게 자리 잡은 리이유뜨낭스, 16세기에 다시 다듬어진 건축물 윗부분엔 성모 마리아가 마을을 인자로운 미소로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어 더 평화로운 느낌이다. 오늘따라 그곳에 붙은 작은 현판이 눈에 들어온다. 1608년에 지금의 캐나다 퀘벡을 만들기 위해 옹플뢰르를 떠났던 샹플랭을 기념하는 글귀다. 4백여 년 전에 배를 타고 미지의 세계를 향해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항해했을 그의 마음을 그려 본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사람들의 온기를 뒤로하고 옹플뢰르에서 가장 높은 지역인 몽 졸리(Mont Joli)에 있는 산책로(La Côte de Grâce)로 걸어 올라간다. 오르는 길엔 마을 사람들 한 둘 가끔 눈에 들어올 뿐 정적만이 감돌고 내 안의 숨소리만이 세상을 채우는 듯하다. 언덕에 서서 내려다보니 나무들 사이로 밤색의 벤치 두 개가 동그마니 놓여 있고, 저 너머로는 멀리 전통적인 콜롱바쥬 기법인 목골에 회반죽으로 만든 벽에 모자를 깊숙이 눌러쓴 듯 밀짚 지붕으로 덮인 농가와 단아한 구항의 전경이 들어온다. 한없이 소박한 풍경과 지극히 고요한 정적이 일상에 젖어있던 온갖 상념의 자투리들을 사라지게 한다. 제법 코끝을 아리게 하는 바람은 육신을 시리게 하지만, 그물코처럼 얽힌 세상과 수많은 사람들과의 꺽쇠 같은 고리가 스르르 풀려 나가 그 모든 것들과는 아무런 연이 없는 상태처럼 새 깃털 마냥 가볍고 자유로워지는 순간이다.
비 내린 후 찬란하게 떠오른 무지개
위에서 내려다본 옹플뢰르 구항
한참 동안 망루에서 세상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하늘 우러르며 걷는 길에 만난 <은총의 성모 마리아> 성당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11세기에 노르망디 공작 리처드 2세가 세웠던 성당을 17세기에 마담 몽팡시에가 주도해서 현재의 모습으로 다듬은 이곳은 성지순례지로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마음의 평화를 얻고자 하는 사람들이 조용히 찾곤 하는 곳이다.
그런 이들 중에는 루이 13세와 보나파르트 나폴레옹 1세, 리지외의 성녀 소화 데레사가 있다. 이곳이 특히 내게 더 살갑게 다가오는 것은 오래전 몹시도 마음 산란했던 날, 파리로부터 밤새 자동차로 달려와 신비로운 여명 번져 오르기 시작하던 새벽녘에 만난 곳이기 때문이다. '한 여름밤의 꿈'처럼 나른하게 온몸으로 퍼져오던 피로감과 생의 무게가 바로 그 성당 앞에서 따스한 기운에 싸락눈 녹듯이 사르르 사라지며 차 안에서 깊은 잠에 빠져 들었던 기억이 오롯이 떠오른다. 성당 주위에 무성했던 아름드리나무의 푸른 잎들은 이미 낙엽 되어 땅 위를 포근하게 덮고 있고 잎들과 이별하며 제 온몸을 처절하게 드러낸 채 서 있는 나무들이 새삼 장엄하게까지 느껴진다.
탄력 있는 낙엽 길을 따라 시가지 쪽으로 내려오다 만나게 되는 십자가상이 있는 곳에서 바라본 대서양도 장관이다. 연륜 있는 나무들로 채워진 숲 한 켠으로 나있는 전망대에선 2차 대전 때 상륙작전이 펼쳐졌던 해안, 그리고 바다 건너편으론 르 아브르 항구와 노르망디 대교가 한눈에 들어온다. 하늘을 가로지르며 허공에 걸쳐 있는 노르망디 대교는 건축 공법은 물론 외양의 수려한 아름다움 덕분에 개통된 지 세월이 꽤 흘렀는데도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옹플뢰르와 르 아브르를 잇는 노르망디 대교. 가을과 겨울에 더욱 짙어지는 풀빛.
망중한에 젖은 채 걷고 또 걷다가 보들레르의 생가 앞에 선다. 상징주의의 대시인인 그가 유년기를 보냈을 집 문 앞에서 잠시 눈인사를 나눈 후 다시 걷는다. 몇 시간 동안 자연 속에 침묵하다가 만나는 골목골목의 풍경이 고향처럼 정겹다. 어쩌면 이 골목에 이어진 집들의 문과 창엔 이렇게 아기자기한 것들로 꾸며 놓았을까? 반들거리는 집들은 물론 그리 넉넉해 보이지 않는 작은 집에도 갖가지 화분을 놓아두고, 문 앞과 창틀엔 여러 문양의 장식을 하거나 앙증스러운 등을 달아 놓아 그것을 보는 사람들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얼굴도 알지 못하는 집주인들 정성이 올망졸망한 소품들에 묻어나 골목길에 따스하게 퍼져나간다.
콜롱바쥬 기법으로 지은 벽에 독특한 장식물과 붉은 제라늄.(여름에 찾았을 때 담은 사진)
꼴롱바쥬 기법이 가미된 소담한 옹플뢰르 가옥 돌담과 창틀 (여름에 찾았을 때 담은 사진)
인상주의 작곡가 에릭 사티는 1866년 이 집에서 태어났다.
시간의 흐름을 타고 천천히 내려오다 시가지 중앙에 자리 잡고 있는 생뜨 꺄뜨린느 성당과 종탑, 백년전쟁 때 파괴되었으나 15세기에 목조로 재건축된 성당 내부는 견고하면서도 깔끔한 인상을 준다. 사람들 저마다 원을 세우며 켜 놓은 촛불의 빛이 어둔 내부를 환하게 밝히고 있다. 이 성당이 마을 사람들로부터 그 어느 곳보다 사랑받는 이유는 성당과 분리되어 있는 연륜 있는 종탑 앞마당에서 주말이면 동네장이 서기 때문이다. 프랑스 전역에는 모든 도시나 시골에 부촌이나 빈촌이나 할 것 없이 일주일에 두 세 차례 재래장이 선다.
소박한 마을장이 선 날 이곳을 찾은 때가 있었다. 조용하기만 한 성당 주변과 좁은 골목에도 토박이 동네 사람들로 가득했다. 스쳐가는 사람들 표정이 정겹고 그들 입가에 머무는 미소가 내게도 전해지는 것 같아 만나는 사람들과 자연스레 인사를 나누곤 했다. 오늘 이 평온하리만큼 조용한 광장이 며칠 후면 다시 훈훈한 열기로 차오를 것을 생각하며 떡갈나무와 밤나무로 만들어진 종탑을 올려다보다가 이내 발길을 옮긴다.
유난히 뛰어난 예술가들을 탄생시킨 항구 마을, 옹플뢰르엔 미술관과 기념관이 많다. <옹플뢰르 박물관>, <해양 박물관>, <민속 박물관>, <으젠 부댕 미술관> 등과 옹플뢰르 출신이면서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들의 이름을 동판화 해 놓은 기념관 등이다. 미술관으로 가는 길에 만나는 진귀한 골동품 상점과 화랑들, 소품들을 진열해 놓은 올망졸망한 가게들도 기쁨을 선사해 준다. 엽서 몇 장과 옹플뢰르의 상징 옛 항구와 종탑이 그려진 작은 종을 산 후 잠시 인상주의 선두에 섰으며 옹플뢰르 출신인 <으젠 부댕> 미술관에 들어선다.
독특한 방식으로 진열해 놓은 전시관의 여러 작품들 중에서 에트르타 바다의 절경인 단애를 그렸던 인상주의 화가 끌로드 모네가 바로 조금 전 만났던 생트 카트린느 성당 종탑을 강조해 그린 작품을 감상하며 작가의 재능에 새삼 감탄한다. 당시로서는 빛에 의해 색감을 읽어내는 일이 새로운 기법의 시도였다. 이 시대를 사는 나는 왜 새로운 것에 늘 두려움을 갖고 사는 걸까? 자신을 곱씹어 보면서 19세기를 풍미하던 작가들을 한 사람씩 떠올려 본다.
인상파 화가들에게 무한한 영감을 고취시킨 화가 으젠 부댕 미술관
미술관 밖엔 어느새 저녁노을이 고즈넉하게 세상 속으로 스며들고 있다. 구항 주위에서 그림을 그리던 작가들도 자취를 감추고 사람들도 찬 기운을 뒤로하고 노천카페나 실내로 하나둘씩 들어가는 모습이 눈에 띈다. 냉기 감도는 노천카페에 앉아 뜨거운 차와 포도주를 마시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일몰이 될 무렵 옹플뢰르는 다시 깨어난다. 오렌지와 모과 빛 조명이 어우러져 어둠은 더 이상 밟히지 않는다. 그 빛은 현란함이 아니라 조용하면서도 절제된 미를 지니고 있다. 그림 속의 마을 옹플뢰르는 그렇듯 천 년의 시간 동안 굴곡의 긴 이야기를 품고 바다를 향해 묵묵히 닻을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