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자신을 보는 유일한 방법.
내 모습은 돌이키면 정말 최악이다. 어느 것 하나 특출난 재능은 없고, 뭘 하면 늘 작심3일이고 핸드폰이나 컴퓨터를 몇 시간째 보고도 시간을 낭비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친구들에게는 선 넘는 발언을 하기 일쑤고 늘 뭘 하든 만만하게 보인다. 청소 해야지, 운동 해야지, 하면서 늘 노래만 듣고, 게임만 한다. 몸도 딱히 좋은 편도, 외모도 이쁜 편도 아니다. 한마디로 누가 날 팔면 정말 아무도 안 쓸 것 같은 사람이란 말이다.
자화상, 절망한 남자는 사실주의 화가인 구스타프 쿠르베가 자신의 절망하는 모습을 담은 그림입니다. 1843년에서 1845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으로, 그림속에서 자신, 그러니까 한 남자가 절망하고 있는 모습을 직접 그린 작품입니다. 구스타프 쿠르베는 이처럼 자신의 자화상을 많이 그리고는 했는데요. 하지만 그는 다른 사람들도 주로 그린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대표적인 작품이 [오르낭의 장레식]으로, 한 시골 마을의 장례식을 나타낸 그림으로, 구스타프의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입니다. 이런 일상의 순간들도 자화상 못지않게 잘 해냈다는 것을 이 그림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삶에서 어떤 순간에 자신에게 실망을 느끼시나요? 내가 좀 못나 보인다 싶을 때, 내가 정말 예상치도 못한 나쁜 행동을 했을 때, 다양한 순간들에서 우리는 자신에게 실망을 느낍니다. 그 실망은 곧 '그러지 말았어야 하는데.'라는 후회로 이어지고는 합니다. 자책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죠. 어쨌든 자신에게 실망하는 것은 나에게는 결국 걷지 말아야 할 부정적인 감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끔씩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는 생각보다 다양한 내가 존재합니다. 사람이 언제까지나 같을 수는 없고, 하나의 가치관을 태어날 때부터 계속 들고 갈 수는 없습니다. 잊혀지는 나도 있을 것이고, 새로 생기는 나도 있을 것이고, 정말 다양한 나 자신이 존재할 겁니다. 그런 자신들을 하나하나 다 볼 수는 없지만, 내가 알고 있던 나와 다른 자신을 알 수 있는 방법도 있습니다. 바로 감정을 느끼는 것입니다.
기쁠 때는 웃고, 슬플 때는 울고, 화낼 때는 화내는 게 당연한 사람이라서, 이미 감정으로는 나 자신을 모두 찾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건 세상에 모든 일을 도전했다고 말하는 것과 같이 사실상 터무니없는 소리입니다. 개인의 경험, 문화,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죽을 때까지 세상에 있는 모든 감정들을 느낄 수 있는사람들은 아마 없을 겁니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그 다양한 감정들로 날 알 수 있다는 뜻입니다.
절망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큰 절망으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나라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고, 그로 인해 전과는 다른 삶을 살 수도 있습니다. 나 자신에게 실망을 느끼면, 전과는 다른 단점을 발견할 수 있고, 새로운 나 자신을 찾을 수 있습니다. 어쩌면 사람이 발전하는 것은 이런 과정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기쁨을 느끼면서, 절망을 느끼면서, 행복을 느끼다가도 슬퍼지고, 금방 화가 나면서 사람이 좀 더 성숙해지는 방향으로도 충분히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분명 소중한 존재일 것입니다. 나 자신을 하나도 버리고, 압박하지 않아도 되는 소중한 사람일 것입니다. 감정이 덮쳐왔을 때도, 이 순간을 어떻게 만들것인가 집중했으면 좋겠습니다. 시간을 버리기에는 당신이 진짜 너무 아까운 사람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