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개인주의자가 되면 좋겠어

by 하늘아래
* 개인주의 : (철학) 사회나 국가 따위의 집단보다 개인이 존재에 있어서도 먼저이고, 가치에 있어서도 상위라고 생각하는 사상


어렸을 때 홍길동전을 읽고 '율도국'에 완전히 매료되었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래, 바로 이거야! 내가 생각하던 게 바로 이거였어!' 상상일 뿐이지만 그것만으로도 흥분된 마음을 누를 수가 없었다.


그런데 상상의 세계를 조금 더 넓히자 마음이 점점 불편해졌다.


율도국 밖에도 사람이 있다는 사실, 그것이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나쁜 사람도 사람이라는 것이, 그리고 나는 율도국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내 안에 미묘한 선악의 대립을 인지한 순간부터 이 문제가 늘 불편하게 나를 따라다녔다.


사람은 악하기도 하고 선하기도 한 존재이지만, 과연 마지막 순간에 남는 것은 선이 될 것인가, 악이 될 것인가.



나는 슬픔 말고도 악함을 잘 인지하기도 한다.


단순히 나쁜 사람을 알아보는 눈이 좋다는 뜻이 아니라, 행동이나 말속에 녹아있는 악의, 즉 인간 본연의 이기심이 잘 감지된다는 말이다.


그건 내 안에서 수없이 많이 해보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게 깔려있는 악랄함이 얼마나 더 무서운 건지 잘 알고 있다.


타인의 슬픔을 이용하는 악랄함은 여타 동물들과 차별되는 인간이 가진 폭력성의 잔인한 측면이라고 생각한다.


고백하자면 나는 잔인해 본 적이 있고, 그 대상은 여동생이었다.


30년 전의 일이지만 동생에게도 내게도 기억 속에 정확히 각인되어 있는 사건이다.


동생의 약점을 교묘히 자극했고, 비겁하게도 2:1의 구도였다.


동생은 분노에 휩싸여 물건을 던졌고 큰 창문에 금이 갔다.


그건 동생이 아니라 내가, 나의 악랄함이 남긴 것이었다.


그 사건 후 나는 내 안에 숨겨진 엄청난 힘을 두려워하게 되었고, 마치 엘사처럼 그로부터 모두를 보호하고자 항상 자신을 감시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내 안에 악의가 감지될 때면 고개를 세차게 흔들어 털어내보려 한다.


취약함을 먼저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도 좋은 방법인데 그도 힘들 땐 차라리 입을 다무는 편이 낫다.


악의는 악의를 낳고 다시 내게 돌아온다.


그리고 그것은 사람을 외롭게 만든다.


혼자인 것을 즐기지만 함께 있음에도 외로운 것은 많이 힘들다.


그것이 가까운 이들에게서 여러 농도의 이기주의를 심심찮게 목도함에도 인간의 선함을 믿고 싶은 이유다.


보이지 않는 것을 굳건히 잘 믿기 위해서는 그게 있음을 자주 확인하는 일이 필요하다.


내가 희망을 잃지 않기 위해 다른 이의 희망이 되는 것이 필요하다.


서로를 믿지 않고서는 나아갈 수 없다.




인간은 온갖 악행을 저질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전을 거듭해 가며 살아남았다.


거기에 나는 반드시 인간의 선함과 정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그것을 지향한다는 것을 믿는다.


그 발전 속에는 반드시 연대가 있다.


공동체의 일은 연대 없이 이룰 수 있는 일은 없다.


연대가 없는 사람은 개인으로서 잘 살아갈 수도 있겠지만, 그가 딛고 생활하는 이 세상이 다른 이들의 연대로 일군 세상임을, 그저 자신으로서만 살아가는 일조차도 다른 이들에게 빚진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인류가 결국 멸망하게 될 거라고 점치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그 멸망의 원인은 결국 인간의 이기심 때문일 것이라는 것.


역사책 속에서만 존재하는 줄 알았던 전쟁이 나와 동시대를 공유하는 사람들에게 벌어지는 것을 보면 입을 다물 수 없다.


소수의 인간은 타고난 악랄함을 강하게 가지고 있으며, 악의 연대가 강력해지면 인류를 멸망으로 몰아넣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몇몇은 인간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을까를 심각하게 고민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이것은 일단 차치해 두고 일상에 스며있는 다소 보편적인 작은 악을 마주할 때 당혹스러움은 더 커진다.


연휴가 지난 후 아파트 쓰레기장 앞에서 망연자실한 청소부들의 눈동자 위로 곧 들이닥칠 재앙 같은 것이 느껴져 뒷골이 서늘해진 적이 있었다.


인간은 정말 스스로를 궤멸시킬 것인가.


누군가처럼 나도 아이들에게 결혼은 하지 말길, 하더라도 아이는 절대 낳지 말길 일찌감치 단단히 일러두는 편이 나을까.


하지만 나는 결국 이 생각에 정착하지 못한 채 불편하게 서성대다가 늘 처음으로 돌아간다.


'인간의 보편성'이 선함과 정의를 지향한다는 것을 믿게 해주는 작은 증거와 단서들을 조각조각 모아 본다.


앞서 이미 그 증거를 눈덩이처럼 키운 이들을 발견할 때의 안도감과 감사함은 약간의 조급함과 초조함을 느끼게 할지언정 불편하지 않다.


눈덩이에 한 줌의 작은 눈을 덧붙이듯 주저하지 않고 곧바로 그 조각들 위에 나를 덧붙여본다.


그러면 비로소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살았다'라는 것에 실낱같은 의미를 하나 갖게 된 것 같아 한숨을 내쉰다.


내가 누군가와 연결되는 순간 나는 본래의 나보다 훨씬 큰 존재가 된다.


연대의 힘은 단순 개인 합의 총량을 넘어선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 경험은 놀이이기도 했고, 일이기도 했으며, 정치적인 행위이기도 했고, 나 자신을 찾아가는 길에 만난 여러 이들의 메시지를 발견하는 일이기도 했다.


특히 후자의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남녀노소, 인종, 문화, 성정체성을 뛰어넘어 인간이 창출할 수 있는 모든 형태의 무언과 유언의 창작물들로 내게 연결되었고 힘을 불어넣어 주었다.




사람이 자기에게 집중하고 진정 자기 자신이 될 때 이기적이 될 것인가 묻는다면, 나는 개인주의적이 된다고 말하고 싶다.


개인주의는 자기 자신으로서 살아가며 최고의 자신이 되어보는 경험, 진정한 자유에 다가가는 것, 그것의 소중함을 마음 깊이 아는 것이다.


그래서 개인주의는 역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진정으로 존중하는 '공동선주의'가 될 것이다.


나는 초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집단주의'에 알러지 반응이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점이 바로 내가 본능적으로 교단에 서는 것이 싫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집단주의는 타고난 인간의 마음, 즉 자유를 추구하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의지를 부정함으로써 역으로 끔찍한 이기주의를 낳는다.


각자가 외로운 이기주의 뒤에 숨지 말고, 행복하고 자유로운 개인주의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개인주의자들이 모두를 느슨하지만 강력하게 묶어주는 보이지 않는 단단한 그물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가 큰 연대 속에 충만하고 안전하게 함께 살아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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