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하는 일

가르칠 수 있는 용기

by 하늘아래



본의 아니게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이 되었다.

사람이 애를 쓰면 세상의 무슨 일이든 '어느 정도는' 해낼 수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그랬다.

교직을 유난히 힘들어하는 내게 사람들은 '정도껏'하라고 일러주었다.

너무 열심히 하지 말고 '적당히' 하라는 뜻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적당히 하는 법을 잘 모른다.

내가 그랬다.

그렇다고 내가 모든 일에 요령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나도 일머리가 나쁘지 않은 편이라, 일 년 정도 맡아본 업무는 나름 정도껏 잘 처리할 수 있다.

하지만 잘 모르는 일은 적당히 하는 법을 모르기 마련이다.

적당히 할 수 있으려면 그 일을 어느 정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그 '어느 정도'의 경지에 올라야만 '적당히, 정도껏'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교직 6년, 육아휴직 7년, 다시 교직 3년, 총 16년을 아이들을 가르치고 키우는 일을 하고 있지만 아직도 나는 그 경지에 오르지 못했다.

사람을 키우는 일에, 더군다나 어린아이를 성장시키는 일에 '적당히'는 도대체 어느 정도인지 감을 잡을 수가 없다.

내게 이건 '요령'이라기보다 '용기'의 문제이다.


하지만 나는 가르치는 일이 늘 두렵다.

내가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두렵다.

내가 알지 못한다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것을 아이들이 알까 봐 두렵다.

아이들에게는 안전한 보호자와 현명하고 지혜로운 안내자가 필요하다.

그것은 아이들의 마땅한 권리이자 건강한 어른으로 자라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하지만 나는 가르칠 수 있는 용기가 없다.

사람은 결국 자기 자신을 가르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누구보다 불안정하고 고뇌하는 사람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교단에 서는 일은 항상 두렵다.

사실은 내가 겉만 어른인, 실은 자라지 못한 어린아이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아이들의 투명한 영혼은 내게서 그 어린아이를 꿰뚫어 본다.

아이들에게는 숨길 수가 없다.

약점을 정확히 잡아내는 아이들의 순수한 영악함에 나는 늘 당황한다.

12살 내가 그랬듯이.

진짜 어른이 되기 전까지 나는 절대 아이들을 가르칠 수 없을 것이다.

적어도 '적당히'는 가르칠 수 없을 것이다.

내 안에서 확신으로 솟아나는 것, 그리고 삶을 통해 그것을 스스로 증명한 후에야 가르칠 마음이 조금은 생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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