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의 굴레

feat. 영화 <가여운 것들>

by 하늘아래


나는 인간의 모순에 관심이 많았다. 사람들을 관찰하고, 나 자신을 관찰하는 방식으로. 모순은 혼란스럽고 불안을 불러일으키지만, 동시에 그래서 헤어 나올 수 없는 매력이기도 한 것 같다.


자기 안의 모순을 잘 인지하고 있는 사람은 관대하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모든 것을 품고 있는 하늘 같은 사람. 나는 슬픔 말고도 인간의 선악을 감지하는 데 있어서도 유별난 점이 있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뭔지 모를 불편감으로, 중학생이 되면서부터는 본격적으로 내 안에서 끊임없이 대치하는 선악과 부모님에게서 느낀 미묘한 선의와 악의의 공존에 대해 어지러운 마음으로 고뇌했다.


나는 인간의 이기심에 내재된 폭력성이 두려웠고, 그래서 내 안에 악의가 감지되면 차라리 스스로를 벌하는 식으로 철저히 짓밟아버리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자신을 관찰하는 경향이 있었기에 때때로 내 안에서 자라나는 악의를 직면할 때마다 늘 불안했다. 두려움과 불안은 모르는 상태에서 더 커 보이는 경향이 있으므로 나는 충분히 그것에 대해 공부해야 했다. 나를 포함한 인간의 어두움에 대해서 더 자주 더 많이 직면했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나의 오류는 종종 혼자 생각함에 따라, 그것을 나누지 않은 데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크다. 아주 오랫동안 나는 인간이 '악한 동시에 선한 존재'라는 것을 정말로, 마음 깊이,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 같다. 당연한 명제를 받아들이지 않음으로써 필요 없이 더 괴롭고 혼란스러운 시간만 오랫동안 이어졌다.


그 불필요한 번뇌에는 사실 '인간의 악함이 선함을 이길까 봐' 하는 조바심에서 나온 것이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주변에는 언제나 교묘하게 숨겨진 악의와 하찮고 볼품없는 이기심들이 도처에 널려있었다. 그것이 선의를 찾기보다 더 쉬웠다. ​​




​​그런 점에서 영화 <가여운 것들>은 나의 '인간 본성에 대한 믿음' 즉 '인간은 선하고자 한다'라는 것을 한 번 더 확신하게 해 주어 고마운 영화였다.


주인공 벨라는 갓윈(괴짜 과학자이자 천재 해부학 의사)에 의해 임신을 한 채 자살한 엄마의 몸에 태아의 뇌를 이식한 존재로 '창조'되었다. 이것은 몰인간성의 금기된 실험이자, 동시에 진정한 인권 존중의 정신이 반영된 숭고한 의술이기도 했다.


많은 매혹적인 것은 대체로 모순된 지점에서 나오는 법이다.


완전히 옳거나 완전히 틀린 것이 없다는 것.

아름다움과 추함의 기준이 무엇인가, 선악의 기준이 무엇인가 우리는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다.

'윤리적이라는 것'은 누가 판단할 수 있는 문제인가.


자살을 한 여자는 자신의 의지로 생을 끝내기 위해 물속에 몸을 던졌다. 하지만 태아는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죽음의 기로에 섰고, 갓윈은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의사이자 호기심 넘치는 과학자였다. 그는 자살한 여자와 태아의 인권을 존중하는 선에서 자신의 위대한 실험을 위한 새로운 존재를 창조한다.


선악과 옳고 그름, 윤리와 도덕 등을 배우지 않은 채, 태어남과 동시에 어른의 몸을 갖게 된 벨라는 세상과 사람들을 몸소 경험하며 성장해 나간다. 추한 것과 아름다운 것에 대한 세상의 기준을 배운 적 없기에 여러 실험들로 인해 괴물처럼 일그러진 박사의 얼굴에 전혀 거부감을 느끼지 못하고, 시체들을 헤집고 새로운 동물을 만들어 내는 일에도 거리낌이 없다. 처음 그녀는 얼마간 비어있는 존재처럼 솟구치는 호기심을 채우며 살아간다. 성적 쾌락을 알게 되고, 그것을 거리낌 없이 즐긴다. "이봐요. 내가 정말 좋은 걸 발견했어요. 당신도 해봐요. 정말 좋아요."

그것은 미성숙한 인간(아이)에게 발현되는 최초의 선인 것 같다.


아이들은 자기가 좋으면 다른 사람도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해주려고 한다. 그리고 타인의 기쁨을 보며 자신도 좋아한다.
그것은 아이들이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중에도 이타심이 있다는 '증거'이다.

원초적인 욕구에만 심취하던 그녀는 점점 새로운 것을 탐험하고 싶어진다. 자신이 모르는 더 큰 세계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된 후로는 바깥세상으로 나가기 위해 갓윈에게 반항하며 발악을 한다.

진실을 추구하는 인간의 특성일까. 그것은 '인간의 성장 욕구'에 대한 발로가 아닌가 생각했다.

사람은 누구나 성장하고 싶은 내적 욕구가 있다고 믿는다.​


더 나은 자신이 되고 싶은 욕구.



그것은 현재의 자신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채워지지 않은 것을 느끼기 때문이 아닐까.

이것은 인간이 '완전함'을 추구하게 됨으로써 '아름다움'을 이루고자 하는 것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


아름다운 것에 대한 욕망.

완전한 것은 아름답다.


아름다운 자신, 완전한 자기 자신이 되는 것.

그리고 그것은 타인이 갖는 '완전함에 대한 욕구'를 깊이 이해함으로써 '더 큰 선'(이타심이 이기심을 넘어서는 것)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신체의 나이와 정신의 나이가 점점 일치해 가는 도중 벨라에게 중요한 사건이 일어난다. 바로 염세주의자 헤리와의 만남이다. 그는 일부러 순진하고 세상을 밝게만 보는 벨라에게 끔찍한 현실을 보여주게 되고, 그로 인해 벨라의 의식은 커다란 지각 변동을 겪게 된다.
그전까지 벨라는 자기만을 위해서 살았다. 자신의 호기심과 쾌락, 그것이 원초적인 것에서 철학적인 것으로 넘어갔을지언정 그것은 모두 '자기 자신'을 향한 것이었다. (이기심의 충족)
하지만 화려하고 풍족한 유람선 안의 삶과 인간성이 말살된 빈민가의 삶을 동시에 바라보며 벨라는 '타인'과 '사회'에 관심을 돌리게 되고, 그 바탕에는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통증을 느끼며 오열하던 '연민'이 있었다. (연민을 바탕으로 한 한 차원 더 높은 이타심의 발현)


그 후 벨라는 불합리한 세상을 점점 더 알아가고, 그 속에서 사회의 규범과 합의에 도전하며 '진정한 자기 자신'을 완성해 나간다. 벨라는 '자기 의지'로 세상의 불합리함과 불가해함에 저항하고 '진정한 자유'를 배워나간다.

영화 속 인물들은 그 누가 되었건 예외 없이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과 연결되었을 때 순수하게 '선'했다.

사람이 사랑 없이 살아서는 안 되는 이유다.


사랑하는 것과 연결이 끊어진 인간은 가장 먼저 '연민'을 잃는다.

반대로 '연민'이 없는 인간은 사랑할 능력을 '상실'한 존재이다.​
그리고 그 사랑은 가장 먼저 자신에게로 향해야 하며, 진정한 자기애는 '자유'로, 그리고 타인에 대한 '연민'과 흔들리지 않는 '이타심'으로 이어진다.

자기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자기 안에 있는 보편적이고 한계를 갖는 인간성 (선악의 공존)을 끌어안고, 개별적이며 무한한 인간성 (개인의 인격)을 동시에 받아들이는 '자유'의 상태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유롭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자유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만들어가는 것이다.


'자기 자신이 되고자 하는 의지'를 따라가는 것이 자유로워지는 길이다.​

우리는 누구나 생에서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내적 욕구를 따라 살아가지만, 누군가는 죽을 때까지 그 자유에 닿아보지 못한 채 끝난다. 자기 자신에게 깊이 닿아보는 일은 많은 고통과 번민을 동반하는 일이라 차라리 그것을 어느 정도 자진 반납하고, 타의에 의해 살아가는 것이 쉽기 때문이다.
영화 제목 '가여운 것들'은 이런 인간의 한계를 연민의 시선으로 표현한 말이 아닌가 한다.

벗어날 수 없는 선악의 공존 속에서 진정한 자유를 추구하고자 하는 인간은 성장을 위해 필연적으로 고통받을 수밖에 없으므로, 인간은 모두 가여운 존재이다.




*번외로 영화 마지막 장면 속 벨라의 전 남편에 대한 영화 속 처치(?)가 매우 인상 깊었다.
그는 단지 재미를 위해, 또는 자신의 이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타인을 수단으로 사용한다. 그리고 거기엔 일말의 연민도 없다. 벨라는 자신의 성기를 절제하려는 남편을 결국 죽이지 않고 살렸지만, 단 그를 염소와 교배하여 '염소 인간'으로 만들었다.
이것으로서 스스로 다른 종들과 분명하게 차별된 '인간성'에 대해 정의를 내린 것이 아닌가 한다.​​


인간은 '연민'과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종이다. 따라서 그것을 완전히 상실한 상태는 인간으로 보기 어렵다.


요즘 심심찮게 인간성을 상실한 인간답지 않은 인간을 보며 혼란스럽던 차에 내 불편한 마음에 정당한 근거를 부여해 주어 감사하다.

단, 그가 후천적 연민 상실인가 선천적 연민 상실인가는 따져봐야겠지만..

아무튼 끝까지 이것을 고민하고 있는 나도 참 가여운 존재인 것은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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