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꿈은 좋은 '나' 어른이 되는 것

(feat. 다크나이트)

by 하늘아래


인생 영화 리스트에 2008년 개봉작 ‘다크나이트’가 있다. 나는 스릴러, 액션, 공포 장르를 극도로 싫어하는데, 내 기준에서 이 영화는 세 장르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영화 ‘다크나이트’는 내가 가장 싫어하는 방식 그러니까 ‘공포’로서 그전까지 내 안에 모호하게 자리 잡고 있던 욕구들을 확실하고 강렬하게 직면하게 해 주었다.


그즈음 삶과 나 자신의 다양한 모순들에 대해 깊이 몰두하고 있었는데, 선악과 옳고 그름, 호불호 같은 이분법적인 내 세계가 많이 흔들리고 있던 시기였다. 영화 후반부, 배에 나누어 탄 시민들과 범죄자들의 대치씬에서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말로 설명할 수 없이 뭔가가 북받쳐 올라왔는데, 다들 그 씬이 그런 격한 슬픔을 일으켰는지 지금도 궁금하다. 그리고 그 격한 감정에 대한 이유를 시간이 지남에 따라 천천히 하나씩 알 수 있었다.


나는 간절히 성선설을 ‘믿고 싶은’ 사람이었다.


많은 이들이 그랬겠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조커는 극도의 공포감을 불러일으켰고 동시에 완전히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내 안 어딘가에 조커가 있었다. 그는 연민이 없었지만, 나는 그런 그에게서 연민을 느꼈다. 이미 되돌리기엔 늦어버렸지만.


고백하자면, 나는 이 일, 그러니까 초등학교 교사를 하면서 조커의 어린 시절을 되돌리지 못한 채 그저 지켜보기만 하는 무력감과 두려움을 갖고 있다. 나의 왜곡된 불안에 따른 확대해석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누구도 어린 시절을 보내지 않고 어른이 될 수는 없으며 어린아이는 보호자가 필요하다. 보호받지 못한 채 어린 시절을 보낸 이는 내면에 분노가 쌓이고, 그것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과해지면 인간으로서의 연민을 잃기 쉽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인간이 연민을 잃게 되면 가장 끔찍해진다. 나는 슬픔과 불행에 매우 예민한 사람이라 이런 견해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나의 이런 견해는 아이들의 보호자로서 2차 책임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교사’라는 일에 대해 무거운 책임감과 두려움을 갖게 만드는 이유다.


나는 조커에게서 크지 못한 내면 아이를 본다. 그 아이는 누구에게도 한 번도 온기를 느껴본 적이 없을 것이다. 조커가 연민을 잃게 된 데에 나는 모종의 동질감과 연민, 그리고 책임감을 함께 느낀다. 나는 어린 시절 분노를 쌓아보았고, 다행히 누군가의 온기를 느껴보았으며, 그래서 나도 온기를 갖기 위해 애썼다. 보호받지 못하고 자란 내면아이를 그대로 지닌 채 어른이 된 사람이 저지르는 악행에 대해 사회는 관대한 연민의 손을 내밀 수 없다. 그는 불행히도 제때 받아야 마땅했던 사랑을 받지 못해 그보다 수백 배는 많은 사랑을 받아야 회복할 수 있는 연민과 내면의 선(善)에 끝내 접촉하지 못한 채 죽을 때까지 쓸쓸했다.


이 영화는 연민을 완전히 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최악의 복수는 어떤 형태인지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사람들의 공포를 자극함으로써 서로에게 연민을 거두고 연대를 허물게 하는 방식으로. 그리고 가장 잔인하게 그것을 모두 가 눈앞에서 확인하도록 치밀하게 계획했다. 인간의 선함은 그저 허울 좋은 껍데기일 뿐이고, 그것을 걷어내면 흉측한 속내가 드러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결국 인간은 악하고, 그것이 마지막 순간에 이긴다. 너희들이 믿는 정의나 희망은 너희(인간)에 대한 과대평가다. 그것을 서로 확인하라.’


영화는 결국 ‘집단의 인간’이 선함을 택하는 것으로 끝이 나고, 그것이 나를 울게 만들었다. 성선설을 간절히 믿고 싶었던 이유는 그만큼 내 안에 있는 악함과 타인에게서 발견하는 악함이 시시때때로 나를 의심하도록 위협하기 때문이다. 힘든 길 대신 쉬운 길을 택하라고, 상처받는 길 대신 상처 주는 길을 택하라고 끊임없이 나를 유혹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누군가도 그렇게 하고 있으니 너만 바보 되는 거라고, 니가 아직 순진해서 세상을 모르는 거라고.


나는 바보가 되고 싶지도 않고, 순진하게 세상을 모르는 어린아이로 살고 싶지 않다. 나를 자주 협박하는 이들은 오히려 나를 아끼는 가까운 이들이기에 난 늘 속아 넘어갈 위기를 가까스로 넘겨야 한다.




자유롭고, 단단하고, 따뜻한 어른이 되고 싶다.


나의 꿈은 그런 어른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아직 나는 너무 자주 흔들리고 자신을 의심하며, 쉽게 울고 상처받기 때문에 아이들을 가르치기엔 멀었다. 좋은 어른이 되어주려면 먼저 좋은 내가 되어야 하는 것이 맞다. 그러려면 많이 늦은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내가 나답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곳에 나를 더 자주 데려다 놓는 것 말곤 방법이 없다.






* 세상에 아이들이 없다면, 굳이 좋은 '어른'이 되어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냥 좋은 '나'가 되는 것으로 족할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있는 한, 좋은 어른이 '되어 줄' 책임을 조금은 져야 한다. 어린 내가 그랬듯이, 어떤 아이들에게는 그게 참 절실하기도 하다. 그게 삶을 살아갈 희망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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