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꺼이 이상주의자로 살기
나는 이상주의자다. 하나의 단어로 누군가의 정체성을 정의한다는 것은 모순이 많다는 것을 알지만, ‘현실주의자 vs이상주의자’의 밸런스 게임에서 나는 주저 없이 ‘이상주의자’를 선택할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주의자는 이런 사람이다.
- 마음속에 늘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품고 사는 사람
- 시키지 않아도 ‘무엇이 더 좋은 것인가, 무엇이 더 진실한 것인가, 무엇이 더 나다운 것인가’하는 질문이 안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사람
- 아름다움에 대한 강렬한 열망이 있는 사람
- 그리하여 결국 완전함에 다가가고 싶어 하는 사람
이같이 매우 주관적인 정의에 입각하여 나는 이상주의자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최근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나는 예민하고 소심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다. 이제 와 가만 보니 예민함과 소심함이라는 나의 그릇이 큰 이상을 담기에는 늘 턱없이 부족했던 터라 꼴깍 숨이 넘어갈 듯한 위기를 자주 겪곤 했다. 몸을 혹사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그보다 더 정신을 끝까지 몰아붙여 견딜 수 없을 만큼 괴로웠다.
가까이서 그런 나를 지켜보던 이들은 답답함과 안타까움을 함께 느꼈을 것이다. 그렇기에 타협하라는 조언을 자주 들었다. 내가 ‘추구’하는 바를 내려놓고 현실과 적당히 손잡고 좀 ‘편하게’ 살라는 이야기다. 좀 더 어렸을 때는 반항심에 그 말을 꼬아서 듣기도 했다.
‘니 거 그거 별거 아니야. 현실이 더 힘이 세. 니가 아직 세상을 잘 몰라서 그렇지. 어차피 굴복하게 돼 있어.’
그럴 때 나는 삶을 마치 정답이 있는 게임처럼 생각했던 것 같다. 니가 맞는지 내가 맞는지 보자고. 하지만 이 글들을 쓰면서, 나는 알게(이해와 수용) 되었다. 나는 그냥 그렇게 살고 싶은 거라는 걸. 애초에 사는 일에 정답 따위는 없으며 그저 사람 수만큼의 사는 법이 있다는 거, 그러니 그냥 나는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살면 그게 내게 정답이라는 걸 말이다.
그래서 이제 나는 이상주의자로 사는 데 있어서 여타 불편함과 어려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기꺼이 그렇게 살기로 했다. 아무것도 바뀐 것이 없음에도 그 ‘기꺼이’라는 마음가짐의 변화로 이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있을까.
다음 글들은 특별히 글의 논리적 순서를 고려하여 목차를 배치하지도 않았고, 하나의 주제에 정확히 수렴하는지도 자신할 수 없다. 그저 늘 내 머릿속에 박혀있던 ‘좋은 어른이 되는 것’과 관련된 글을 적으면서 <기꺼이 이상주의자로 살기>라는 챕터를 만든 것이 시작이었다. 그 후 내 속에서 올라오는 것들이 생길 때마다 이 챕터에 적어 넣었다. 그리고 나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추구하는 나’에 대한 현재까지의 모습을 이렇게 정리해 놓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