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한 달 걷기를 내려오기 몇 주 전에 스마트폰벨소리를 바꿨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 최백호의 '가파도'를 다운로드하여서 벨소리로 교체했다. 우리나라 섬의 개수는 3,348개로 세계 4위이다. 그처럼 섬이 무지 많다. 하지만 노랫말에 나오는 섬은 흔하지 않다. 그래서인지 이번 제주 올레코스 중에 가파도는 나의 희망 방문지 1순위였다. 서귀포에 위치해 있던 나의 2번째 베이스캠프인 ' 제주올레센터'에서 5박을 하고 아침 일찍 짐을 챙겼다. 다음 베이스캠프인 '한림항' 쪽으로 가기 전에 가파도에서 텐트로 1박을 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가수 최백호 씨의 '가파도' 노랫말에 보면 제일 처음에 이런 가사가 나온다. "가파도 가봤어? 못 가봤어~" 그 노랫말과 음정이 너무 정겨워서 반복해선 듣곤 했다. 이제는 나는 말할 수 있다. " 가봤어~"라고 말이다.
가파도는 나의 희망 방문지 1순위였다.
가파도 들어가는 배는 운진항에서 11시에 출발하는 배편을 전화로 예매해두었다. 하지만 중간에 변수를 고려하여 숙소에서 조식도 먹지 않고 7시 반 정도에 출발을 했다. 전체 이동시간은 한 시간 반이었지만 여유 있게 출발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버스 환승을 위해 첫 번째 버스에서 내려 시간표를 보니 두 번째 운진항까지 가는 버스는 1시간에 한 번씩 운행하는 것이었다. 아뿔싸, 변수가 생길 뻔했지만 다행히 여유 있게 출발해서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여객터미널에 도착해서 티켓팅을 해보니 10시 배편도 가능해서 좀 일찍 섬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여객선은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다. 연휴라서 그런 건지 아니면 원래 많은 관광객들이 가파도를 찾는지는 모르겠지만 297명 정원의 배에 사람들을 꽉 채워져서 출발했다. 하지만 박 배낭을 멘 백패커들은 보이지를 않았다.
가파도 북쪽의 상동포구에 도착해서 코스 시작점의 스탬프를 찍고 종점인 남쪽의 가파치 치안센터까지 논스톱으로 20kg짜리 박 배낭을 메고 걸었다. 여태까지 올레코스를 걷던 것 과는 다른 차원의 하중 감이었지만 전체 코스가 4.2km로 크게 부담은 되지 않았다. 이번 10-1코스는 중간 코스가 없기 때문에 2개의 스탬프를 찍고 나서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우선 사전에 전화상으로 예약해 두었던 '태봉 왓 캠핑장'을 찾았다. 원래 계획으로는 아무 곳이나 텐트를 피칭할 작정이었지만 아무래도 시설이 구비된 곳에서 캠핑을 하는 것이 지역주민에게나 백패킹을 즐기는 백패커에게나 모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캠핑장을 찾은 것이다. 내가 찾던 곳은 남쪽 끝자락에 있었으며 멀리 마라도가 보이는 기가 막힌 위치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데 캠핑장 입구에 '태봉 왓'이라는 푯말은 있지만 주인장이 보이 지를 않고 저 멀리 소형 포클레인 작업만 진행되고 있었다. 나는 평소 백배 커의 본능으로 데크를 찾았고 그곳에 바로 텐트를 피칭하기 시작했다. 데크 바로 지척으로 바다가 보이는 명당 중에 명당이었다. 텐트를 피칭하는 중에도 땀은 흘러내렸지만 왠지 기분이 업(up) 돼서 흥분된 상태를 자제하기 힘들었다. 백패커 용어에 '전세박'이라는 것이 있다. 캠핑장에 아무도 없이 나만 있다는 뜻이다. 오늘 가파도 '태봉 왓'에는 내가 '전세박'을 했다. 캠핑장 전체를 15,000원에 통째로 빌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사실 원래 1박 비용은 20,000원인데 비가 올지 모른다고 깎아 주신 것이다. 나는 캠핑장을 이용할 때마다 이런 주인장들의 파이오니어 정신을 존경한다. 별로 남는 것도 없을 텐데 그냥 좋아서 캠핑장을 운영하는 분들이 많다. 덕분에 나도 즐거운 캠핑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가파도 '태봉 왓'에는 내가 '전세박'을 했다.
점심식사 때를 놓쳐 텐트를 피칭하고 다시 식당을 찾았다. 이 식당은 내가 인터넷을 통해서 가파도 백패킹을 검색하던 중에 서칭(Serching)된 식당이다. 정식이 17,000원으로 한 명인 경우에는 20,000원을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정식을 시키고 특별히 '가파도 청보리 막걸리'도 함께 주문했다.
막걸리는 그렇게 톡 하니 쏘는 맛은 없었지만 나름 무난한 맛이었다. 특이한 것은 제조공장이 충정도 청주로 되어 있었다. 허긴 제주도 막걸리라고 꼭 제주도에서 만들 필요는 없는 것이지만 뭔지 약간은 아쉬운 감이 있었다. 식사는 예상했던 것보다 푸짐하게 제공되었다. 특히,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해초류들과 소라, 조개 등이 반찬으로 제공되고 미역국도 내 입맛에 맞아서 반찬을 거의 남기지 않고 싹쓸이를 했다.
소화도 시킬 겸 천천히 가파도를 음미하면서 시계 방향으로 한 바퀴를 크게 돌면서 내일 나갈 배편도 확인하고 저녁식사 거리도 준비를 했다. 원래는 캠핑을 하면 요리를 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이번 올레길은 워낙 길기도 해서 요리 관련 짐들은 과감히 빼고 커피 정도만 끓여 먹을 수 있을 정도의 장비만 챙겼다. 대신 캠핑 식사는 주변 식당에서 사 먹고 캠핑 안주는 포장해서 준비하는 것으로 했다. 캠핑장 인근에 있는 식당에서 해물파전을 포장하고 편의점에서는 한라산 소주와 제주 에일 맥주를 준비했다. 파도 소리가 계속 내 귓가를 때리고 내 눈 앞에는 끝없는 수평선 너머로 파도들이 일렁인다. 그냥 내 맘은 평안하고 기분이 좋다. 몇 달 전에 겪었던 사회에서의 스트레스나 고충, 어려움, 힘듦 같은 단어는 생각이 나지를 않는다. 이래서 사람들은 올레길을 찾고 여행을 나서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