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생활 13일 차만에 루틴 한 올레길 패턴에서 살짝 벗어나 가파도 캠핑장에서 외박을 했다. 평소에 밤 10시면 잠잘 준비를 하는데 어제는 훨씬 일찍 텐트 안 침낭 속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캠핑장에 사람이 1명도 없기도 했고 저녁식사를 대신해서 인근 식당에서 공수해온 해물파전을 안주삼아 제주 맥주와 한라산 소주로 소맥을 만들어 귀를 멍멍하게 하는 철석이는 파도소리에 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감성에 젖다 보니 취기가 빨리 찾아왔다. 한참을 자다 보니 '뚜두둑' 텐트 지붕을 때리는 빗소리에 잠이 깼다. 캠핑장 주인의 말대로 밤새 비가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시계를 보니 새벽 1시가 조금 넘었다. 이미 각오는 했지만 빗소리는 점점 커지면서 2가지가 걱정이 되었다. 하나는 내일 배를 타고 다시 제주도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하는 것과 다른 하나는 젖은 텐트를 배낭에 어찌 넣을까 하는 것이었다.
내일 배를 타고 다시 제주도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하지만 걱정한다고 풀릴 문제는 아닌 듯해서 그냥 빗소리를 자장가 삼아 다시 잠을 청했다. 어찌 보면 텐트를 때리는 저 빗방울의 맑은 울림들은 내 안의 묵은 찌꺼기들을 씻겨 내려가게 해주는 힐링의 연주처럼 들렸다. 다행히 잠결에 어느 정도 빗소리가 줄어드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었다. 새벽 5시쯤에 다시 눈이 떠져서 텐트 밖으로 나와 비에 맞은 텐트 점검부터 했는데 다행히 그리 심하게 젖어있지는 않았다. 워낙 바닷바람이 강해서 그새 어느 정도 말라 버린 거 같았다. 다시 텐트 안으로 들어와 텐트를 반쯤 개방하고 한동안 검은 바다를 멍 때리고 보다가, 누웠다가를 반복하다가 일출을 보고 후다닥 밖으로 나왔다. 구름이 끼여 있기는 했지만 붉게 물든 구름을 배경으로 텐풍 사진을 몇 장을 찍고 배낭을 꾸려놓고 어제 예약해둔 근처 식당으로 달려가서 멍게 비빔밥으로 조식을 해결했다.
무사히 가파도를 탈출해서 운진항(모슬포항)으로 돌아오기는 했지만 그때부터 문제가 발생했다. 박 배낭 때문에 아직까지 정확한 일정을 결정하지 못한 것이다. 원래는 10코스를 진행해야 하지만 먼저 박 배낭을 해결해야 했기 때문이다. 도저히 20kg짜리 배낭을 메고 15km를 걸을 자신이 없었다. 결국 오늘부터 숙박을 시작할 3번째 베이스캠프로 예약해둔 협재해수욕장 근처의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두고 다시 운진항 쪽으로 내려와서 10코스를 시작하기로 했다. 그런데 운진항에서 협재 해수욕장까지 버스가 한 번에 가는 게 없어서 갈아타면서 1시간 반이 걸려서 올라갔다가 짐을 맡기고 다시 1시간 반이 걸려서 내려왔다. 물론 10코스를 끝내고 다시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가는데 1시간 반이 걸렸다. 총 4시간 반을 버스 갈아타기를 하다 보니 오늘은 걷는 시간보다 버스 타고 다닌시간이 더 많았다. 버스 여행인지, 도보여행인지 헷갈렸다. 이런 날도 있다.
버스 여행인지, 도보여행인지 헷갈렸다.
덕분에 제주도에서 버스 타는 법은 확실하게 익힌 거 같다. 제주도에는 3가지 색깔의 버스가 있다. 빨간색은 급행버스, 파란색은 간선버스, 녹색은 지선버스이다. 올레길에 주로 사용하는 버스는 파란색 간선버스이다. 간선버스는 도심내부와 외곽지역 간 장거리 운행을 하며 제주도 오른쪽 해안 구간은 201번, 왼쪽 해안구간은 202번이 유용하다. 간선버스의 운행간격은 10분에서 많으면 30분 내외임으로 조금만 참고 기다리면 버스 이용하는데 문제가 없다. 하지만 문제는 간선버스가 다니지 않는 녹색의 지선버스 구간이다. 올레길 시작점에 따라서는 이런 구간이 몇 군데 있다. 다행히 시간이 맞으면 괜찮지만 운행시간이 보통 1시간에서 2시간 되는 곳도 있다. 정류소에 도착했는데 막 떠나버린 후라면 차라리 택시를 활용하는 편이 낫다.
올레코스 구간의 많은 버스 정류소에는 도착 예정시간을 알려주는 전자 알림판이 있어서 몇 분 후에 해당 버스가 도착하는지를 알려준다. 그렇지 않은 곳은 배차 시간표를 활용해서 몇 분 간격 인지를 확인하면 된다. 버스를 활용하기 위해서 반드시 알아두어야 할 것은 스마트폰으로 길 찾기 기능을 익히는 것이다. 숙소에서 올레길 코스의 시작점을 찾아가기 위한 버스의 노선을 확인하고 정류장에서 도보로 목적지까지 가는 지도까지 알려준다. 여러 가지 어플 중에서 나는 '네이버 지도' 길 찾기를 활용했다. 추가적으로 한 가지 더 덧붙인다면 택시를 활용하기 위해서 '카카오 T 택시' 어플은 사용하는 방법을 익혀서 현지에서 적절하게 활용하면 좋을 듯하다. 물론 제주 올레길은 도보여행이기는 하지만 장기간 올레길을 하기 위해서는 숙소와 올레길 간의 이동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필살기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