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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채 Sep 13. 2022

정난주, 이재수 그리고 김달삼

제주올레길 11코스(하모 체육공원 ~ 무릉 외갓집)

조선 500년 동안 제주에 귀양 온 이들은 200여 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들이 과연 제주도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쳤을까. 아님 그들과는 상관없이 제주도 사람들 만의 철학과 문화를  만들고 유지했을까. 올레길 11코스가 지나는 서귀포시 대정읍에는  제주도 속에서 기억될  역사적인 인물들의 발자취가 있다.


정난주, 1801년 신유 박해로 한국 천주교 최초로 대대적인 박해사건이 발생하여 교인 100여 명이 처형되고 400여 명이 유배되었다. 이때 천주교를 신봉했던 다산 정약용의 집안이 풍비박산되었다. 큰형(정약전)은 흑산도로 유배되고 둘째형(정약종)은 처형되었고 정약용은 강진으로 유배되었다. 이복 맏형인 정약현의 사위인 황사영은 능지처참되었고 그의 아내인 정난주는 제주도로 유배되었다. 다산 정약용의 조카딸인 정난주는 단지 천주교를 믿었다는 이유 하나로 29세에 남편을 잃고 2살 베기 아들과 함께 관노의 신분으로 추락되어 제주도의 유배생활을 시작된 것이다. 피붙이 아들을 노비의 신분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육지에서 제주도로 배를 타고 가던 중에 추자도에서 갓난쟁이 아들을 해변에 버려둘 수밖에 없었던 어미의 애틋한 사연이 있었다. 그녀의 상징성은 제주도에 유배 온 최초의 천주교 신자였으며 그녀의 묘역이 11코스 중간인 대정읍에 있다.

제주도에 유배 온 최초의 천주교 신자



이재수, 1901년 신축 민란 이라고도 불리는 '이재수의 난' 이 일어났다. 임진왜란(1592년) 이후 근 300여 년 간 백성들의 삶이 피폐해져서 민란은 끊임없이 일어났다. 그러던 중에 제주 민란 역사상 가장 무창했던 사건이 일어났다. 단순히 가진자(양반)와 못 가진자(평민) 만의 대립이 아니라 여기에 종교(천주교)가 개입 되었다. 정난주 마리아가 신유박해로 제주에 유배 온 지 정확하게 100년을 넘긴 해였다. 당시 천주교 신부들의 비호 아래 일부 천주교 신자들은 새로운 특권 집단으로 형성되고 있었다. 관에서는 이를 이용 해서 세금을 부과하고 받아 내는 일까지 특권 집단에 맡기게 됨으로써  백성들과 천주교 간의 마찰은 극에 달하게 되었다. 20대의 이재수는 장두가 되어 목숨을 걸고 수백 명의 천주교인들을 학살하는 선봉에 선다. 이재수가 살던 고향 집터는 대정읍 인성리 보성초등학교 옆 골목에 있다.

수백 명의 천주교인들을 학살하는 선봉에 선다.

('이재수의 난' 영화 포스터, 인터넷 제공)


김달삼, 1948년 4.3 사건을 주도한 인물이다. 그는 5개월 만에 이덕구에게 무장대 총사령관직을 넘겨주고 월북하여 북한 정권 수립에 참여한다. 1년 후 다시 남파되어 태백산맥 일대에서 유격대 300명을 이끌다가 토벌대와의 교전에서 사망한다. 김달삼의 본명은 이승진으로 일본 육군 예비사관을 졸업하고 고향에서 중학교 교사를 하던 중에 지역 유지였던 강문석의 눈에 들어 사위가 되었고, 강문석이 항일 운동을 할 때 사용하던 '김달삼'이라는 가명을 이승진이 4.3 사건 직전부터 사용하게 된다. 강문석의 증조할아버지는 강도순으로 추가 김정희 선생이 유배 당시 기거했던 집의 주인이었으며 추사 김정희 선생을 극진히 모시고 그의 사상과 철학을 배웠던 인물로 후에 북한 정권에서 노동당 상무위원 등 고위직을 거쳤다. 당시 추사 김정희가 머물던 그 집터가 현재 대정읍 안성리에 있다.

4.3 사건을 주도한 인물이다.

(김달삼 사진, 인터넷 제공)


조선시대 전라도 사람 이세번은 마흔 직전에 제주로 유배 왔다. 젊은 나이에 다시 육지로 돌아가지 못하고 6년 후에 제주도에 묻혔다. 하지만 그의 후손은 제주도에 정착해서 뿌리를 내렸다.  12대손이 '이재수'이며 14대손이 '김달삼(이승진)'이다.  제주 근현대사에 커다란 파란을 일으킨 두 번의 민란의 주역이 수백 년 전 이 섬에 유배 온 한 선비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사실이 우연일까?. 올레길 11코스내내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무릉외갓집' 이라는 카페에서 올레 종점 스탬프를 찍었다. 카페에서 따뜻한 감귤차를 마시며 역사속에 사라져가는 3인이 살아온 제주도를 다시한번 생각해 본다. 제주에서 태어나고 성장해서 제주도에 커다란 영향을 준 그들의 발자취 보다는 잠시 유배생활을 했던 추사 김정희의 기념관이 더 화려하고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이다.

※ 참고서적: 제주올레 인문여행(이영철 지음,2021년, 해지원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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