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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채 Sep 14. 2022

제주 올레길이 만만한가

제주올레길 12코스(무릉 외갓집 ~ 용수 포구)

제주 올레길은 21개 코스로 이루어져 있지만 섬 코스 3개와 알파코스(내륙 코스) 2개를 합치면 총 26개 코스이다. 대략 400km이며 평균 코스당 15km 정도이다. 몇 년 전에 블랙야크에서 주최하는 '백대 명산 프로그램'에서 전국의 100대 명산을 등산할 때 보통 평균적으로  6~10km를 3~5시간 만에 등산을 했다. 시속으로 따지면 평균 2km/시간 정도이다. 물론 오르막과 내리막, 쉬는 시간 등을 포함한 시간이다. 올레길에 오름이 있기는 하지만 그다지 높은 것은 아니라서 평균 3km/시간 정도면 무난하고, 15km라면 5시간 정도면 충분할 것으로 생각하고 만만하게 생각하고 한 달 동안 1일 1코스를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매일매일 피로가 누적되다 보니 올레길은 만만한 프로젝트가 아니었다. 다만 요령이 생겼다면 중간 식사 때나 커피타임에는 신발까지 벗고 확실하게 리프레시(Refresh) 하고 중간 쉬는 횟수를 줄이고 일찍 귀가해서 수면을 일찍 취하는 것이다.

올레길은 만만한 프로젝트가 아니었다.


올레길이 만만하지 않은 이유는 또 하나가 있다. 그건 가보지 않는 길을 간다는 것이다. 물론 올레길 안내 표식이 여기저기에 있고, 알기 쉽게 되어 있다. 제주 한 달 걷기를 준비하는 동안 책자를 보니 절대로 길을 잃어버릴 수 없도록 되어 있다고 쓰여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15일을 다니다 보니 매번 제 길에서 벗어난다. 초반기에는 엄청 당황하고 쩔쩔맸지만 이제는 당황하지 않는다. 오늘도 살짝 코스에서 벗어났다. 그걸 인지하는 것은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계속해서 표식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때는 바로 네이버 지도 찾기 어플을 열어서 현재의 위치와 코스의 경로를 확인해서 되돌아갈지 아니면 다른 길을 통해 우회할지를 결정한다. 길을 잃는 경우는 지인들과 통화나 카톡 또는 다른 생각들로 집중력이 떨어질 때 발생한다. 그래서 길을 걸을때는 모든 신경을 집중하고 앞뒤 좌우를 살핀다. 앞만 보고 살아온 나에게 좌우를 살피고 때로는 뒤도 돌아본다는 것은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


올레길 12코스는 서귀포시(대정읍)에서 제주시(한경면)로 넘어가는 구간에 있다. 15일 차 만에  제주도의 아래쪽 반 바퀴를 지나고 있는 것이다. 오늘 코스는 대정읍 무릉리에서 출발해서 신도 포구, 수월봉, 차귀도 포구, 당산봉을 지나 제주시 한경면 용수리에서 끝난다. 어제는 하루 종일 비가 내려온 몸이 젖은 상태에서 길을 걷고 발목까지 차는 웅덩이를 첨벙첨벙 걸어가야 했다. 다행히 오늘 날씨는 화창해서 걷기에는 어려움이 없었으나 밤새 마르지 않은 축축한 등산화로 인해서 출발 컨디션이 썩 좋지는 않았다. 하지만 수월봉에 쓰여있던 문구를 보는 순간 기분이 좀 풀렸다. "여행이, 삶이, 사랑이 수월해지는 여기는 수월봉입니다!"  수월봉에서 바라보는 바다 위에 떠있는 굴곡 있는 차귀도의 모양이 장관이었다. 하지만  수월봉의 진짜 멋짐은 봉 아래 해안길에서 바라보는 수월봉의 해안절벽이다.  유네스코 세계 지질공원으로 선정된 이유가 있어 보였다.

 "여행이, 삶이, 사랑이 수월해지는 여기는 수월봉입니다!"


수월봉 해안도로를 걷다 보니 갱도 진지가 보인다. 태평안 전쟁 당시 일본군은 수월봉뿐만 아리나 제주도 전역에 수많은 군사시설을 만들었다. 제주도내 370여 개 오름 중에 120여 곳에 군사시설을 만들었다. 수월봉 해안은 미군을 공격할 일본군 자살 특공용 보트와 탄약이 보관되어 있던 곳이다. 이틀 전 걸었던 10코스의 송악산 진지동굴이나 일본군이 만들었던 알뜨르(제주어로 '아래쪽 넓은 들판'이라는 뜻) 비행장 지하벙커와 마찬가지로 '다크 투어리즘 (Dark Tourism, 전쟁, 학살 등 비극적 역사의 현장이나 엄청난 재난과 재해가 일어났던 곳을 돌아보며 교훈을 얻기 위해 떠나는 여행)'의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인 것이다. 가까운 거 같은데도 먼 나라 일본, 그들은 언제나 우리를 힘들게 한다.

'다크 투어리즘 (Dark Tourism)'의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인 것이다.


12코스의 끝자락에 김대건 신부 제주 표착 기념관(용수성지)을 마주했다. 김대건 신부는 우리나라 최초의 천주교 성직자이다. 1845년 여름, 중국 상하이에서 한국인 최초로 사제 서품(신부가 되는 것을 말함)을 받고 귀국하던 길에 서해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표류하다가 제주도 '용수리'에 가까스로 기착하게 된다. 그리고 이곳에 내린 후 고국땅에서 첫 미사를 봉헌한다. '용수리'는 본의 아니게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가 우리나라 땅에서 최초의 미사를 올린 곳이 되었다. 지금은 천주교 역사엔 의미가 커서 용수리 포구 일대가 천주교 성지로 조성돼 있다. 이곳에 김대건 신부 제주 표착기념관과 기념 성당이 들어서 있다. 성당에 들어가 간단하게 기도를 올리고 야외에 전시된 '라파엘'호에도 직접 올라가서 그 당시의 인물로 빙의해 보는 시간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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