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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채 Oct 26. 2022

6학년 3반 부반장

100일 글쓰기(29일 차)_12세의 자화상

마흔이 넘어 어렵게 연락이 되어 초등학교 동창회 모임에 갔다. 한때 인터넷에서 동창모임인 ‘아이 러브 스쿨(I love school)’이 유행했을 때 참석해 보고 거의 10년 만에 모이는 것이었다. 장소는 서울시 중구 회현동에 있는 식당이다. 초등학교 동창 중에 한 명이 운영하는 식당이다. 아주 오래전에 그 식당은 ‘일식 횟집’이었고 그 친구의 아버지가 운영하시던 것을 물려받아 ‘전집’으로 변경하여 운영하고 있었다. 식당 2층을 통째로 동창회를 위해 비워 두었다고 한다. 한 명, 두 명  오더니 한 삼십 명 정도 모였다. 낯익은 얼굴들도 보이고 낯선 얼굴들도 있었지만  술이 한잔 두 잔 들어가자 긴장도 풀어지고 옛 시절의 추억들도 새록새록 생각나서 꼬맹이 시절 소년, 소녀의 마음으로 돌아갔다. 

옛 시절의 추억들도 새록새록 생각나서
꼬맹이 시절 소년, 소녀의 마음으로 돌아갔다. 


공부를 잘했던, 찌질 하게 굴었던, 싸움을 잘하던 것들은 이제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친했던 친구들, 늘 같이 어울렸던 친구들, 짝사랑했던 이성들은 누구에게나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있다. 사실 나도 내심 마음에 담아 두었던 그 친구가 참석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동창회에 참석했다. 하지만 그 아이는 참석하지를 않았다. 대신 그녀와 연이 닿을 거 같은 다른 친구들에게 어떻게 살고 있는지 조심스럽게 물어 보고서야 존재 여부를 확인할 수 있었다. 결혼해서 자녀를 둘 낳고 대학교에서 영문과 교수로 근무를 하고 있다는 정보에 만족스러운 듯이 고개를 끄덕이던 나 자신이 조금은 이해가 안 되었다. 첫사랑도 아니고 짝사랑이었는데 말이다.


1980년, 서울 명동 건너편 팔레스 호텔 골목길 위쪽에 문방구 두 곳을 지나면 남산 국민학교 정문이 나온다. 학교에서 제일 상급 학년인 6학년이 되어서 새 공책과 연필을 사기 위해 아래 문방구에서 학용품을 구입했다. 굳이 아래 문방구에서 구입을 한 이유가 있다. 우리 반, 6학년 3반 반장 여자아이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문방구집 이기 때문이다. 나는 같은 반 부반장이다. 여자가 반장, 남자가 부반장이라서 좀 모양이 빠지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 아이는 전교 1등, 나는 그보다는 조금 아래였다. 만사가 똑 부러지는 그 아이의 말에 나는 늘 ‘미녀와 야수’가 되었다. 아니 그보다는 ‘조련사와 야수’ 였던 거 같다. 그녀의 부탁이라면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학교에서 뿐만 아니라 수업이 끝난 후에도 나는 그 아이가 공부하던 학원까지 같이 다니면서 친해졌다. 학원 수업 전에 길거리에서 떡볶이를 함께 먹기도 하고 수업 끝나고 옆자리에 남아서 함께 공부도 했다. 그러다가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각자 여학교, 남학교를 다니고 한동안 소식이 끊겼다가 아는 친구들을 통해 그 아이의 소식을 들었다. 그 아이는 중학교, 고등학교에도 계속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고  대학도 서울 유명대학 영문과에 입학했다는 것이다. 나는 서울에 있는 중위권 대학에  진학을 한 상황이었다. 수소문 끝에 용기 내서 그녀의 학교 앞 ‘독수리 다방’에서 그녀를 만났다. 그리고 커피를 마셨다. 그냥 커피만 마셨다. 그게 너무 아쉬워서 오십이 넘은 아직까지 동창회를 기웃거린다. 

 그리고 커피를 마셨다. 그냥 커피만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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