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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채 Nov 29. 2022

김치 맛집, 처갓집

100일 글쓰기(62일 차)

바야흐로 '김장의 시즌'이 다가왔다. 지난 주말에 김장 담그러 부모님댁에 간다는 친구의 말에 우리 집은 '본가'나 '처가' 모두 사 먹는다고 했는데, 갑자기 장모님이 김장을 담그신다고 '인력지원'의 호출 전화가 왔다. 물론 나말고 아내를 부르는 호출이었다. 그런데 어찌하다보니 1+1이 되었다. 나는 장모님이 담그신  '경기도 식 김장김치'를 좋아한다. 어린 시절부터 먹어온 김치는 '경상도식 김치'이다. 외할머니의 고향은 바닷가가 접한 경상도 영덕이다 보니 모친도 외할머니에게 배운 김치 레시피를 전수받으셨다. 그러다 보니 젓갈을 많이 쓰셨다. 장모님이 담그시는 김장김치에는 새우젓 외에는 다른 젓갈은 거의 사용하지 않으신다. 그러다 보니 좀 더 담백하면서 시원한 맛이 난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장모님 김장을 체험하고 싶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장모님 김장을 배우고 싶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월요일 아침 일찍 장모님에게서 전화를 받은 아내가 내게 의향을 물어본다. "엄마가 김장김치 담그신다는데 같이 갈래요?"  평소 같으면 혼자 다녀오라고 했을텐데 왠지 가보고싶은 마음이 살짝 들었다. 오늘이 아니면 언제 장모님 김장 김치를 배워 볼까 하는 생각에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그럽시다. 30분만 있다가 출발합시다." 처가댁에 도착해보니 커다란 양파와 채소 몇 가지가 아파트 현관문 앞에 배달되어 있었다. 가지고 간 츄리닝과 헐렁한 티셔츠로 갈아입고 작업에 투입되었다. 이미 장인어른은 쪽파를 다듬고 계셔서 쪼그리고 앉아서 함께 쪽파 머리 부분의 흙과 껍데기를 제거했다. 쪽파 작업을 끝내고 커다란 겨울무를 8 등분해서 채칼과 함께 나의 온전한 작업으로 배당이 되어 신나게 무채를 대야 가득 생산했다.


장모님은 부엌에서 따로 김장 속을 재료를 준비했다. 사과, 배, 양파 등을 갈고 다진 마늘을 넣고 새우젓, 고춧가루, 소금을 넣은 새빨간 양념 덩어리를 버물려서 무채가 담긴 커다란 대야에 통째로 부었다. 꽉 맞는 고무장갑을 겨우 끼고 양념과 무채가 잘 섞이도록 팔에 힘이 떨어질때 까지 휘저었다. 진득한 액체에서 수영을 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어느 정도 버무려졌을 때 다시 한번 갓과 쪽파를 썰어 놓은 한 무더기를 쏟아붓고 다시 한번 버물여 김치에 넣을 양념속 준비를 마쳤다. 이제부터는 최종라운드인 절인 배추에 양념속을 집어넣는 것이 남았다.  작업공간은 거실에서 식탁으로 옮겨지고 절인 배추를 낱장 하나하나씩 아래에서부터 양념을 문지르면서 채우고 반을 접고 맨 겉의 배춧잎으로 직각방향으로 감싸, 배추와 속이 흩어지지 않게 잘 오무려서 통에 담았다.


김장김치 초보자인 나에게 장인어른은 훈수를 두신다. 양념 속을 충분히 넣어야 김치 맛이 살아난다는 것이다. 내가 너무 속을 적게 넣는다고 타박을 하시면서 손수 시범을 보이신다. 그런데 양념 속을 넣고 배추를 오므리는데 워낙 배추 속들이 많이 들어가 마무리가 잘 되지는 않는다.  그래도 장인어른은 계속해서 다른 배추에도 양념 속을 많이 넣으신다. 나도 따라서 듬뿍듬뿍 넣는다. 잠깐 생굴 다러 마트에 다녀오신 총감독님인 장모님이 돌아오시고서야 '듬뿍 모드'에서 '적당 모드'로 바꿨다. 급하게 추가적인 양념 속을 만들어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남은 절인 배추에 비해서 양념 속이 턱없이 부족했지만 남은 양념 속을 모두 소진할 때까지 배추에 속을 채웠다. 장모님은 하얀 절인 배춧잎에 생굴과 양념 속을 말아서 내입에 쏙 넣어 주셨다. 기가 막힌 맛이다.  

장모님은 하얀 절인 배춧잎에 생굴과 양념 속을 말아서
내입에 쏙 넣어 주셨다.


올해는 그동안 인터넷에서 주문해 드시던 김치 브랜드가 갑자기 공급을 중단하면서 급하게 김장을 담그게 되었다고 하신다. 하다 보니 생각보다 많은 배추를 주문하시고 결국 평소보다도 많은 양의 김장김치를 담그셨다. 다행히 신입 봉사자로 인해서 빨리 마무리를 할 수 있었다는 장모님의 마지막 평가가 있었다.  덕분에 나도 그렇게 맛나게 담그신 김장김치를 옆에서 보고 배우고 담그기를 같이 했다. 내년 김장김치는 나보고 해보라고 하면 그 맛을 내지는 못 할 것이다. 물론 올해처럼 옆에서 보조는 할 수 있을 거 같다. 아니 더 잘할 수 있을 거 같다. 혹시라도 내년에 또 김장을 담근다고 하시면 꼭 다시 참석할 것이다. 내년에는 식재료부터 조리순서까지 꼼꼼하게 레시피 메모해서 장모님의 경기도 김치 맛 전수받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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