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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채 May 06. 2022

벚꽃에 취하다, 지리산

경남 구례 지리산 (형제봉)

토요일 새벽, 사당역에는 수많은 관광버스가 길가에 늘어서 있다. 코로나 시기 이전에는 익숙한 모습이지만 최근 들어서는 오랜만에 보는 광경이다. 산행의 목적지는 지리산 남쪽능선이다. 1차 집결지는 수원 지지대 고개 주차에서 7시에 모이기로 했다. 수도권 팀은 차량 두 대에 나눠 타고 2차 집결지인 지리산 대박터에 있는 '고매사(고맙고, 매우 감사)' 식당에서 대전팀과 만나기로 했다. 하지만 예상보다 지체되었다. 마지막팀은 당초 계획인 11시에서 4시간이나 늦은 오후 2시쯤이나 식당에 도착했다. 화개 장터 벚꽃 구경 차량 행렬의 교통정체에 갇혀 본의 아니게 벚꽃향에 취해버렸기 때문이다.



늦은 점심식사로 지리산 산나물로 만든 비빔밥을 후다닥 먹고 차량 3대는 들머리인 청학사로 이동했다. 박배낭을 모두 '청학사' 주차장에 내려놓고 2대는 날머리인 '형제봉 주막' 인근에 이동시켜 두고 긴장되는 마음으로 20킬로짜리 박배낭을 들쳐 맸다. 첫째 날의 목표는 3km라고 해서 큰 부담이 없었지만 바로 나의 착각임을 절실히 깨달았다. 정상인 형제봉은 천 고지가 넘는 절벽과 같은 코스였다. 어깨를 짓누르는 박배낭의 무게는 거친 호흡, 시큰거리는 오른쪽 무릎의 통증과 함께 허벅지의 근육이 터질듯한 체력의 한계치를 느끼게 했다. 오후 3시에 출발해서 이미 해가 떨어진 오후 7시에나 겨우 박지에 도착했다


밤늦게 도착한 헬리포트에는 이미 먼저 와있는 쏠박 텐트가 있어서 조금 떨어진 곳에 헤드랜턴을 켜고 부랴부랴 셸터와 텐트를 세웠다. 생각보다 힘든 거리와 높이로 인해서 온 기력을 다 쏟은 후다 보니 금세 허기가 찾아왔다. 가져온 음식들과 음료를 준비한 시간은 오후 8시이다. 보통 백패킹 식사는 1.5인분 정도를 준비한다. 고추장 볶음밥, 로제소스 리조또, 어묵탕으로 요기를 채우고 표고버섯 숙회, 소고기 살치살, 주꾸미 볶음, 크림소스 새우가 안주거리로 나오고 생강 효소가 첨가된 수제 뱅쇼로 마무리를 했다. 정상까지 온 힘을 쓴 이유도 있겠지만 역시 달빛 아래 쏟아지는 별들을 온몸으로 느끼는 곳에서의 저녁 만찬은 모든 음식이 산해진미인 것이다.


오후 11시쯤 자리를 정리하고 다음날을 위해 잠자리에 들었다. 희한하게 박지는 거의 천 미터 위치임에도 불구하고 발아래 평사리 마을의 불빛들은 아주 가깝게 느껴졌다. 다음날 새벽 6시가 조금 넘어서 누군가 "해 뜬다"라는 소리에 모두 일어나 반대편 산등성이 너머 쏟아 오르는 뜨거운 일출을 바라본다. 4월 초이긴 하지만 야간의 온도는 영하의 날씨이다 보니 떠오른 해는 금세 박지 주변의 공기 온도를 덥혀준다. 가볍게 아침식사를 마치고 따뜻한 햇살이 비치고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는 철쭉제단 옆에 캠핑의자를 쪼르륵 줄지어 않아서 멍 때리는 여유의 시간도 가져본다.



텐트를 걷고 9시에 출발해서 세 시간 정도 걸려서 하덕마을에 위치한 '형제봉 주막'을 날머리로 12시경에 하산을 완료했다. 토지의 배경이 된 '최 참판 댁 거리'에 있는 '최 참판 댁 순두부집'으로 이동해서 누룩으로 만든 찹싸름한 '악양 막걸리'에 짭조름한 '깻잎 장아찌'로 지역 맛집을 체험했다. 통영출신의 박경리 작가 말에 따르면 소설에 나오는 곳은 가상의 마을이었다. 하지만 어떤 연유에서건 평사리 '최 참판 댁'은 토지의 배경이 되었고 지금은 '쌍계사 십 리 벚꽃길'과 더불어 관광명소가 되었다. 지리산 백패킹과 함께한 벚꽃, 최 참판 댁은 기억 속에 오래 남을 추억의 시간이 될 듯하다.



백패커는 LNT(Leave No Trace, 흔적을 남기지 않기)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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