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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채 Aug 26. 2022

바위 뜯으러 갈까, 관악산

관악산 육봉 우중산행

소갈비든, 돼지갈비든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갈비를 먹으러 식당에 갈 때 '뜯으러 간다'라고 한다. 산에서 바위를 뜯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처음 듣는 사람들은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가 어렵다. 나도 산꾼들이 하는 얘기를 어깨너머로 들었을 때 뭔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릿지(Ridge, 바위를 걸어 올라가는 산행) 교육을 몇 차례 참가하고 나서야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가 있었다. 어쩌면 갈비를 뜯는다는 것보다는 풀을 뜯는다는 것이 더 어울리는 표현이다. 왜냐하면 풀을 뜯기 위해서는 손가락에 온 힘을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바위를 손가락으로 꽉 움켜줘야 하는 것이 마치 풀을 뜯을 때 힘을 주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때로는 손가락의 힘으로 온몸의 체중을 지탱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등산동호회 게시판에 관악산 육봉 능선에 바위 뜯으러 간다는 공지가 올라왔다. 서울대 방면이 관악산의 앞면이라면, 육봉 능선은 관악산의 뒷면이다. 등산객들이 주로 이용하는 코스는 앞면이지만 나는 최근에 과천 방면에서 오르는 뒤편 능선에 재미를 느끼고 있던 터라 큰 부담 없이 참석버튼을 꾹 눌렀다. 보통은 산행 공지마다 많은 참가자들이 신청을 하는데 이번 코스는 중급 대상이다 보니 등반대장을 포함해서 총 5명이 함께했다. 산행 당일날 아침 일찍 집을 나서 지하철역까지 도보로 이동 중에 약간의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아뿔싸!  일기예보를 확인하지 않았었다. 급하게 일기예보를 보니 오늘의 비올 확률은 30% 정도였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 우비와 우산을 챙겨 올까, 말까, 하다가 그냥 편의점에서 2천 원짜리 일회용 우의를 구입했다.


상수리나무 잎을 때리는 빗소리는 따닥따닥  


'과천 종합청사역' 8번 출구에서 모여 등산로의 초입까지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20여분을 걸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비 줄기가 굵어졌다가 얇아졌다가를 반복했다. 산행을 시작하자 배낭의 레인커버를 꺼내 씌우고 가늘게 내리는 비를 온몸으로 맞았다. 산에서 맞는 비는 항상 나를 정화시켜주고 기분을 상쾌하게 해 준다. 상수리나무 잎을 때리는 빗소리는 따닥따닥 소리를 내며 감성을 자극했다. 산행을 시작한 지 한 30여분을 오르니 문원 폭포가 나타났다. 한 십여 차례 이상을 이곳 코스를 올랐지만 이렇게 물이 많이 고여있는 것은 처음이었다. 조심조심 바위를 올라 폭포수 밑에서 멋진 포즈로 사진을 찍고 바로 본격적으로 육봉 바위능선을 올랐다. 다행히 1봉은 일행의 바위 오름을 허락해 주었다.


점점 빗줄기가 두꺼워지면서 바위들이 미끄럽기 시작해서 안전을 위해 2봉과 3봉은 바위를 피해 우회를 했다. 원래  우회길은 더 쉽고 편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4봉은 '피아노 봉' 이라고도 불린다. 멀리서 보면 그랜드 피아노가 연상된다. 그냥 우회하기가 아쉬워 봉우리의 끝자락까지 올랐다가 다시 내려와 우회했다. 5봉은 난이도가 낮아서 쉽게 오르고 마지막 6봉인 국기봉까지 육봉 능선을 모두 올랐다. 아직까지도 빗줄기가 줄어들지를 않아서 빗줄기를 비해 점심식사할 곳을 매의 눈으로 찾았다. 결국 비를 피할 수 있는 계단 밑으로 기어 들어갔다. 다행히 5명이 겨우 쭈그리고 앉을 수 있는 공간이 나왔다. 갑자기 옛날 다큐멘터리에서 동네 거지들이 다리 밑에 모여서 밥을 먹는 영상이 떠올랐다. 희한하게도 꼬락서니는 동네 거지였지만 감성은 이미 부자였다.

꼬락서니는 동네 거지였지만 감성은 이미 부자였다.


식사 후에 다시 능선을 따라 서울대 방면을 날머리로 잡고 산행을 계속했다. 빗줄기는 어느덧 줄어들었다. 능선 길에 그 유명한 관악산의 촛대바위를 만나 육봉에서 못 뜯은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위로를 받고자 몇몇 회원이 촛대 끝까지 기어올랐다. 비가 내린 후라서 그런지 시야가 너무 맑았다. 서쪽 편으로 삼성산과 호암산을 넘어 저 멀리 인천까지 보였다. 하산길에 시원하게 흐르는 계곡물에 나의 뜨거워진 발과 무릎을 담그고 잠시 피로를 풀었다. 하루 종일 무거운 나의 몸을 버텨내 준 등산화도 살짝 물에 담가 쓰다듬어 주니 기분이 한결 가벼워졌다. 오늘은 약 8km에 6시간 정도를 산행했다. 어찌하다 보니 전날 산행에 이어 이틀 연속 산행으로 호암산~삼성산~관악산을 총 17km로 마무리했다. 이젠 담주부터 시작할 나의 제주 올레길이 기대된다. 가즈아! 제주 올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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