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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채 May 06. 2022

얼음위의 단잠, 빙박

경북 안동

빙박 백패킹을 신청했다. 3년 차 백패킹에 접어들다 보니 이제는 추운 겨울산 정상에서의 텐트를 꺼린다. 하지만 빙박은 해보고 싶은 도전이었다. 밤에 얼어붙은 강 위에서 잠을 자다 보면 쩍쩍하고 얼음의 울음소리가 난다고 한다. 그러다가 얼음이 깨져서 잠든 사이에 영원히 잠드는 것은 아닌지 하는 걱정도 든다. 쫄깃쫄깃 해지는 심장의 긴장감을 느끼기 위한 나의 도전은 무모한 것인지도 모른다. 새벽에 무사히 깨어날 수 있을 거 같은 자신감을 갖고 며칠 전부터 배낭을 꾸린다. 빙박을 대비해서 겨울용 우모복 바지와 냉기차단용 은박 시트도 구매했다.


퇴근 후에 인근 마트에서 어묵과 사케를 구매했다. 추운 겨울날 야외에서의 저녁식사는 뜨근한 국물이 최고이다. 따뜻하게 먹을 수 있는 글루 와인을 사려 했으나 없어서 간바레 오또짱으로 대신했다. 겨울 백패킹을 몇 번 해보니 가능하면 백패킹 식사할 때 손이 덜 가게 미리 준비해야 함을 경험했다. 어묵은 먹기 좋게 잘랐다. 대파는 잎과 뿌리를 어슷썰기하고 청양고추 썬 것을 함께 섞었다. 조그마한 만두 7개와 냉동새우 7개도 따로 비닐봉지에 담았다. 겨울철 제철 채소인 무도 송송 썰었다. 추가로 표고버섯, 쥐포, 커피땅콩, 미니 꿀호떡, 수프, 송이버섯죽도 챙겼다.


오늘의 목적지는 경상북도 안동시 대사리이다. 목적지 근처 안동 맛집을 검색해서 최종 집결지에 12시까지 모이기로 했다. 이동은 승용차로 수원팀, 서울팀 나눠서 이동했다. 서울팀은 강남역에서 8시에 동행자 2명을 픽업했다. 전에는 서울 북쪽의 한탄강이 빙박으로 핫 플레이스였다. 하지만 최근 지차체에서 빙박을 금지하다 보니 백패커들은 새로운 곳을 물색하고 찾은 곳이 안동 한절골이다. 11시경, 안동에 좀 이른 시간에 도착해서 가볍게 인근 명소인 월영교를 후다닥 들렀다가 '김영숙 길안 골부리' 식당에서 다슬기 국으로 속을 든든히 했다.


한낮의 외부 온도는 영하 2도, 불안했다. 과연 강의 얼음이 단단히 얼어 있을까. 목적지를 2km 남겨두고 강에는 강물이 흐르고 있었다. 이런 젠장, 빙박을 기대하고 왔는데 다시 박배낭 메고 산으로 올라가야 하는 것인가. 멀리 빙벽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도착하니 웬일인지 강물은 꽁꽁 얼어있었다. 다행히도 얼음의 두께가 약 50cm 이상은 되어 보였다. 모두 안도의 한숨과 함께 환호를 외치며 생각보다 넓은 박지 위에 거리 두기를 염두에 두고 듬성듬성 텐트와 셸터를 세웠다. 셸터는 공용으로 식사를 할 수 있는 바닥이 뚫린 커다란 텐트를 말한다.


얼음 위에서 한 시간가량 미끌미끌 중심을 잡아가며 진지를 구축하다 보니 뜨끈한 국물 생각이 간절했다. 이웃 텐트들과 주변 경관을 순찰하고 나서 바로 이른 저녁식사를 시작했다. 모임 리더님의 골뱅이 탕을 시작으로 매운 소시지 당면 볶음, 오삼불고기가 연이어 요리되고 옥수수 찰밥과 파김치가 2개의 테이블을 꽉 채웠다. 각자의 취향에 맞춰 다양한 음료수도 테이블 위로 올라왔다. 리액터(소형 난로)로 셸터 안 공기를 덮였다. 하지만 등산화 밑은 바로 얼음이다 보니 계속해서 한기는 올라왔다. 밑에서 솟구치는 한기는 셸터 안의 열기와 뒤죽박죽되면서 밤은 깊어갔다.


자리를 정리하고 깊은 밤 텐트의 조명들이 모두 켜져 장관을 이루었다. 까만 하늘 위에는 별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밤늦게까지 텐트 밖에서 들려오는 젊은 청춘 남녀들의 웃음소리가 잠자리를 방해했지만 그렇게 싫지는 않았다. 잠결에 멀리서 들려오는 얼음 깨지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쩌억 쩌억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소리라고 들었는데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하지만 이른 새벽에 소리는 점점 크게 그리고 빈번하게 들렸다. 그것도 쩌억쩌억이 아니다. 쿵 꽝 쿵쾅 들리고 급기야 바로 머리 밑 까지 도달했다. 이러다 물에 빠져 죽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다행히 아침에 눈을 떴다. 겨울 침낭과 핫팩 덕분에 포근하게 단잠을 잤다. 물병의 물은 얼었지만 몸은 얼지 않았다. 텐트 속에 입김은 나왔지만 얼굴에 외투를 덮어쓰고 자서 그런지 얼굴도 시리지 않았다. 수맥이 흐르는 잠자리는 건강에 좋지 않다고들 하는데 의외로 몸이 가뿐하고 머리가 맑아져 있다. 기분도 너무 좋다. 아침식사로 구수한 누룽지와 모닝커피로 빙박을 마무리하고 서둘러 서울로 출발했다. 주위에서 내게 말한다. 뭐 하러 따뜻한 집 놔두고 산에서 자냐고. 얼음 위에서 자는 게 말이 되냐고. 미친 거 아니냐고 말이다. 내가 생각해도 조금 미친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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