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 미역 냉국(명동밥집)
한낮의 온도가 30도를 육박한다. 아직 한여름도 아닌데 벌써부터 푹푹 찐다. 하루 종일 화구 옆에서 조리를 하고 있으면 등줄기에 땀이 또로록 흘러내리고 속옷이 흠뻑 젖어버린다. 이런 날, 국통위에 동동 떠있는 얼음이 나를 더위로부터 해방시킨다. 대형 냉장고에서 며칠 동안 차갑게 보관했던 18리터짜리 생수통 3개씩을 콸콸콸 국통에 붓는다.
냉기가 국통 주위로 퍼져나가 마치 차가운 에어커튼으로 마사지하는 기분이다. 미리 비벼놓은 오이냉국 식재료들과 잘 섞이도록 큰 국자로 휘휘 저어준다. 3개의 국통 중에 제일 먼저 배식할 국통을 배식대에 옮겨놓고 얼음팩을 뜯어 얼음을 쏟아붓는다. 우르르르 얼음 덩어리들이 냉국 속으로 미끄러지듯이 잠기고 국통 표면에는 찬물방울들이 알알이 맺힌다.
냉국은 차갑게 만들거나 식힌 국물에 재료를 담가 시원하는 먹는 국요리로서 고려시대 문신 이규보의 시문에 나오는 걸로 봐서 역사가 깊다. 대개 냉국은 여름에 먹으며 얼음과 식초가 들어가 시원하고 새콤한 맛이 특징이다. 주로 여름철에 먹는 이유는 여름에는 더위로 인해 사람들이 입맛을 잃어서 식욕이 떨어지고, 땀을 많이 흘리기 때문에 수분 보충을 해줘야 하기때문이다.
식욕을 올리고 수분을 보충해 주는 가장 좋은 식재료는 '식초'와 '오이'다. 그러다 보니 오이를 못 먹는 사람들은 냉국을 기피하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여름에 냉국을 찾는다. 냉국의 주재료로 오이 말고도 미역, 가지, 콩나물이 사용되며 흔하지는 않지만 다시마, 더덕, 머위, 북어, 톳, 파, 굴, 김, 토란, 감자, 배추, 토마토 등도 사용된다. 영양측면에서는 열을 가하지 않기 때문에 식재료 본연의 맛과 질감, 영양소를 많이 살릴 수 있다.
며칠 전에 후원받은 오이 한 박스는 고스란히 냉장고에 보관하다가 냉국의 주재료가 되었다. 실하게 자란 오이는 흐르는 물에 씻을 때 보니 어른 손아귀에 한 움큼 잡힐 정도로 두툼하다. 오이 양쪽 끝을 칼로 자르고 채칼에 대고 세우듯이 문지른다. 오 센티미터 정도의 크기로 오이채가 수북이 쌓인다.
건미역(1 kgx2 봉지)은 사각바트에 쏟아붓고 물을 채워 불린다. 미역의 부피가 급속도로 팽창한다. 도마를 준비해서 미역을 잘게 썰고 다시 3개의 바트에 나눠 담는다. 양파는 국거리용 보다는 세밀하게 썰고 물에 담가 매운맛을 순화시키고 당근채(2kg)는 배송된 상태를 그대로 사용한다.
주방에서 국통을 놓고 오이, 미역, 당근, 양파, 청양고추를 차례로 섞는다. 거기에 육수가루, 식초, 설탕, 간장, 까나리액, 소금으로 평소보다 진하게 간을 맞추고 야외천막식당으로 옮긴다. 그곳에서 생수와 얼음을 붓고 참깨로 마무리를 한다. 시원한 냉국이 천명의 더위를 식혀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