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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채 Jul 23. 2022

부엌의 추억

광교역 더 부억(The Bueok)

경기도 안양시 안양동 897번지. 나의 본적 주소이다. 남대문 시장 안에 있는 병원에서 출생했는데 왜, 안양이 나의 본적인지 의아해했었다. 나이가 들어서 본적은 아버지의 고향임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줄곧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명절 때가 되면 모친 손에 이끌려 버스를 몇 번 갈아타고 안양으로 향했던 기억이 남아있다. 서울에서 온 꼬맹이에게는 집안 밖이 놀이터였다. 할머니는 동네에서 억세고 엄하기로 소문난 호랑이 할머니였지만 첫 친손주인 나를 애지중지하셨다. 하지만 장손인 나에게 부엌 출입은 금지시키셨다. 밥을 먹을 때도 나는 삼촌들과 함께 먹었고 고모들과 숙모들은 따로 드셨다. 그래서인지 어릴 때 남자는 부엌에 들어가면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자랐다.


7월의 어느 더운 여름날, 수원에 사는 친구와 퇴근 후에 광교역 근처 '더 부억'이라는 요리주점에서 맥주 한잔하기로 했다. 그 집의 시그니처 메뉴는 '통오징어 떡볶이'였다. 현대의 직장인들에게 퇴근 후에 '치맥(치킨과 맥주)'는 상식으로 통한다. 하지만 나는 채식을 시작한 후 치킨을 끊었다. 그래서 항상 맥주에는 '먹태' (명태를 건조시간이 짧고 촉촉하게 말린 것)를 시킨다. 하지만 친구의 추천으로 시그니처 메뉴를 주문했고 친구의 주문이 진리였던 것을 바로 깨달았다. 매콤하면서도 달짝지근한 맛이, 싱싱한 오징어의 식감과 쫄깃한 떡의 어울림이 술안주를 명품 요리로 바꿔주었다.


친구는 감귤과 자몽 향이 느껴지는 최고급 수제 맥주인 ' 페일에일', 나는 보드카에 토닉을 섞은 진저에일의 '부억폭탄주' 두 잔을 연거푸 마시고 마지막은 달달한 꿀이 들어간 '꿀 맥주'로 입가심을 했다. 주인의 말처럼 부억폭탄주가 처음에는 별거 아닌듯하다가 갑자기 '훅~' 갈 수 있다는 경고의 말이 무슨 말인지 두 잔을 마시고 나서 이해할 수 있었다. 두 번째 안주로 과일안주를 주문했다. 온갖 종류의 과일이 그 식당에서 제일 큰 접시에 담겨 제공되었다. 키위, 수박, 망고, 멜론, 사과, 파인애플, 포도 그리고 방울토마토 한가득이었다. 배는 불러도 왠지 건강해지는 느낌이었다.


밤늦은 시간 맥주집에서 나와 술도 깨고 소화도 시킬 겸 대리운전을 부르기 전에 잠깐이라도 산책을 하고 싶었다. 친구는 식당에서 멀리 않은 곳을 안내해 주었다. 불과 걸어서 얼마 지나지 않아 도심의 혼잡함을 벗어나 자연의 향을 느낄 수 있는 잘 꾸며진 산책길로 접어들었다. 고속화 도로와 높은 방음벽으로 분리된 광교산을 향하는 하천길 이었다. 며칠 전 내린 비로 힘차게 흐르는 물소리가 청량하게 들리고 산 쪽에서 불어오는 얼굴에 스치는 바람은 약간은 차갑게 느껴지기도 했다. 갑자기 어린 시절 호랑이 할머니가 내게 해주던 말씀이 갑자기 떠올라 나도 모르게 웃음이 올라왔다. " 남자는 부엌 근처에 얼씬하면 고추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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