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 태국대사관 취업기
너무 오래전 일이라 정확한 날짜는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
1992년 10월쯤 한국외국어대학교 태국어과 4학년 재학시절에 내년 졸업을 앞두고 학과 사무실로 들어온 취업이 있었다.
“태국대사관 무관실 비서”
당시 4학년이었던 나는 태국어도 그리 잘하지 못했고 취업을 지원할 생각도 못하고 있다가 같은 과 친구의 권유로 조심스럽게 지원을 하게 되었다. 물론 공부를 아주 못하지는 않았으나(3학년 때 성적 장학금을 받은 적은 있었다.) 막상 태국인을 대면하면 프리토킹으로 아주 태국어를 잘하는 수준은 아니었다. 하지만 3학년 때 방학을 이용해 태국으로 어학연수를 다녀온 후로 회화도 많이 늘고 성적도 많이 향상되어 해 볼 만한 지원이라 생각했고 당시 엄마의 취업에 대한 압박 때문에 지원을 하게 되었다.
지금 기억으로 당시 나를 뽑아준 위라판 대령님(당시 육군 무관님)은 후에 말씀하시길 지원자는 총 4명의 여학생이었고 (한국외대 2명, 부산외대 2명) 면접과 타이핑(당시엔 컴퓨터가 대중화되지 않아서 타자기로 문서를 작성했었다.)으로 비서를 뽑는 방식이었다.
나는 아주 운이 좋게도 그 4명 중에서 최종으로 비서로 뽑혔다.
당시 면접 때에도 무관님의 태국어 질문에 영어 반, 태국어 반으로 대답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타이핑도 어떤 보기로 된 A4용지에 적힌 영문 문서를 똑같이 타이핑하는 시험이었다.
당시에 난 자판도 매우 느리고 영문자판은 한글보다 더 늦은 수준이었고 시험전날 집에 있는 오빠 컴퓨터로 자판을 외우고 한컴타자연습을 했었다.
아무튼 정말 너무나 운 좋게 들어간 무관실에서의 내 직장생활은 그때부터가 고통의 시작이었다.
군인들은 원래 말이 빠른 데다가 그것도 모자라 태국어로 업무를 지시하다 보니 나는 더더욱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매번 한 번에 무관님의 지시사항을 못 알아듣고 매번 2-3번씩 물어보기가 일쑤였다. 내 근무지는 당시 이태원 캐피탈 호텔 옆에 있던 UN Compound라는 미군부대 소속의 작은 부대 안의 barracks(철제로 만들어진 깡통사무소)였다. 지금 회상해 보면 근 6개월을 내 책상에서 대학생 때 공부했던 태국어 문법책을 열심히 봤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그때 공부했던 실력과 현장에서의 회화능력으로 태국 방콕에 와 살면서 통역사로서 지금까지 일하게 될 수 있었던 밑거름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당시 무관이셨던 위라판 대령님은 내게 여러 가지를 주문하고 시키셨다.
예를 들면 114에 전화를 걸어 통계청 전화번호를 물어 한국의 각종 통계자료등의 수치를 물어보시고 무관님께 보고하라는 방식이었다. 당시 내 주 업무는 다른 나라 무관들의 생일 축하 서신(영문)을 작성하고 발송하거나 미군부대 내에 있는 전화를 영어로 받고 대답하는 전화업무가 많았다. 가끔씩 국방부 무관실을 방문하는 일도 있었다.
태국은 6.25 참전국으로 당시 내가 근무했던 부대는(UN Compound: 현재 그 부대는 없어졌다. 작년에 한국을 방문하여 이태원을 갈 기회가 있었는데) 아쉽게도 사라졌다. 그래서 난 그곳에서 가끔 카투사를 볼 수도 있었고 부대 업무협조상 공수부대 통역장교도 만난 적이 있었다.
다시 말해서 일반인들이 경험하지 못하는 일들을 많이 경험할 수 있었고 어느 정도 업무가 익숙해져 갔을 때 판문점 및 제 3 땅굴에도 갈 기회가 생겨 직접 무관님을 모시고 방문하기도 했었다.
당시 태국대사관에서 가장 큰 행사는 12월 5일인 King’s Birthday인 아버지날 행사였다. 항상 신라호텔 그랜드 볼룸에서 행사를 하는데 그때는 대사님, 공사님, 참사관, 태국관광청, 육군, 공군, 해군 무관 등 한국에 거주하는 태국에 관련된 고위급 인사들이 모두 참석하는 행사였다.
당시에 나는 대사 비서언니, 태국관광청에 근무하는 부산외대출신 언니 및 당시 대사관 공보담당이던 현재 시누이인 미스 전을 처음 만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