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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니랑 Jun 17. 2024

나는 커피를 내리는 사람입니다.

  나는 매일 아침 교실에서 원두커피를 내린다. 그라인더에 향이 좋은 원두를 넣고 커피를 간다. 정수기에서 물을 받고 커피머신에 물을 채워 넣는다. 갈린 원두를 종이필터에 붓는다. 전원을 켜고 커피를 내린다. 커피머신의 커피 내리는 소리와 함께 교실에는 커피 향이 가득 채워진다. 향이 좋은 원두커피로 교실에 들어오는 학생들을 맞이한다. 우리 교실을 지나가던 학생들도 커피 향이 너무 좋다고 말한다. 지나가던 학생들에게 커피를 담은 종이컵을 손에 쥐어준다. 매일 아침에 원두커피를 내리는 일이 나를 가슴 뛰게 만든다. 커피 내리는 작은 일이라도 매일 반복하면 삶을 창조할 힘이 생긴다.


  주는 것이 받는 것이다. 커피 한잔을 주는 삶을 통해 나의 에너지를 발견한다. 매일 내리는 커피라도 계절에 따라 날씨에 따라 기분에 따라 맛과 향이 다르다. 외롭고 힘들어하는 학생에게는 여러 말보다 따뜻한 커피가 더 큰 위로가 된다.


  10년 전 내가 학생부장일 때 학교폭력 사안 처리로 많이 힘들어했다. 학교에 출근하고 싶지 않았다. 아침이 되면 억지로 눈을 뜨고 사형장에 나가는 죄수처럼 학교에 끌려 나갔다. 


  그날도 학교를 겨우 출근했다. 무표정한 얼굴로 교무실 책상에 앉으려는 데 예쁜 잔에 따뜻한 원두커피가 놓여 있었다. 옆에 앉은 선생님이 커피잔을 보더니 교장선생님이 제일 아끼는 잔이라고 말해 주었다. 믹스커피만 마시던 나는 처음으로 원두커피의 맛과 향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커피 한잔으로 지친 몸과 마음에 위로를 받았다. 깨끗하게 커피잔을 씻고 교장선생님께 커피잔을 갖다 드렸다.


  “이 부장, 요즘 힘들지 고생이 많아. 언제든 커피 마시고 싶으면 교장실로 와.”라고 교장선생님이 말씀하시며, 처진 어깨를 두드려 주셨다. 인사를 드리고 교장실 문을 닫는데 두 눈에 눈물이 맺혔다. 


  그때 교장선생님의 커피 한잔으로 위로받았던 내가 6년째 학생에게 원두커피를 내려주고 있다. 학생들은 나를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알고 있다. 삶은 순간의 연속이다. 커피를 내리면서 평화로운 일상을 위해 기도한다. 보름달이 뜨면 우물물을 떠서 정화수를 받아놓고 기도하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커피를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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