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녕에서 시작해 하도까지 이어지는 제주 올레 20코스를 걷다가 고태문로에 들어섰다. 고태문로는 구좌읍 한동리 2.4㎞ 해안도로인데, 이곳 출신의 고태문 대위를 기리기 위해 그의 이름을 딴 도로명이다. 추모비를 읽다가 그가 1952년, 나이 23세에 고성군 351 고지 전투에서 전사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6·25 전쟁 당시 가장 치열했던 전투로 기록된 351 고지는 1951년 7월부터 1953년 7월까지 2년 동안 수십 차례 국군과 북한군이 뺏고 뺏기기를 반복, 치열한 백병전에 수많은 젊은이가 한 뼘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곳이다.
겨우 23년을 살다 이 세상을 떠난 고태문 대위, 또 수많은 젊은이가 20년도 채 살지 못하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 낙동강 전선 등 수많은 전투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들보다 수십 년을 더 살면서 그동안 빚을 졌다는 생각을 못한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들이 있어 자유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데.
구한말 패망해 가는 나라를 구하려고 목숨을 걸었던 의병 이야기를 다룬 TV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을 재미있게 보던 중 주인공 유진과 신애의 대사가 내 마음에 와 꽂혔다
“수나 놓으며 꽃으로만 살아도 될 텐데. 내 기억 속 사대부 여인들은 다들 그리 살던데.” “나도 그렇소. 나도 꽃으로 살고 있소. 다만 나는 불꽃이오. 우리는 얼굴도 이름도 없이 오직 의병이오. 할아버지께는 잔인하나 그렇게 환하게 뜨거웠다가 지려 하오. 불꽃으로. 죽는 것은 두려우나 난 그리 선택했소.”
드라마를 보기 전까지 의병은 다만 역사 속의 인물이었는데 그분들의 삶이 내 마음에 다가왔다. 우리가 독립된 국가의 국민으로 떳떳이 살 수 있기까지 저 멀리는 임진왜란 때부터 병자호란, 구한말, 일제 강점기까지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마다 불꽃처럼 일어나 목숨을 바친 의병들이 있었다.
6월은 1일이 의병의 날, 6일은 현충일이 있는 달이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분들을 추모하며 그분들께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