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곳으로 갔을까

학대 받는 아이가 없는 세상을 꿈꾸며

by 권민정


예수님이 지금 이 땅을 보시며 제일 불쌍해서 가슴 아파할 사람은 누굴까 생각해본다. 늙고 병들어 외롭게 사는 독거노인?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 길 위에서 떠도는 학교 밖 청소년들? 불우한 환경의 아이들? 나는 그중에서도 학대받는 아이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더 클 것이라 생각한다.

세 살 아기가 부모에게 학대받아 숨진 사건이 있었다. 갓 나서 9개월간 그 아기를 키웠다는 외할머니 음성을 라디오에서 들었다. 친부가 데려간 뒤 아기를 보여주지 않아 볼 수 없었다고 했다. “얼마나 순하고 귀여운 아기였는데, 얼마나 굶겼는지 팔다리가 나무젓가락 같았어요.” 할머니의 음성이 계속 귓가를 맴돌았다. 아기가 세 살이면 이제 말문이 터져 보는 것마다 “이게 뭐야?” 하고 질문하고, 기쁜 일이 있으면 까르르 좋아하고, 무서운 것을 보면 금방 겁에 질려 두려워하는 시기다. 기쁨과 슬픔, 고통과 공포를 인지하는 인격체, 그러나 혼자서는 어떤 일도 할 수 없는 나약한 존재다. 그 아기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무섭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홀로 울며 발버둥쳤을까.

아이들은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말이 있는데 부모가 자식에게 이렇게 끔찍한 일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 자료에 따르면 양육 방법에 대한 이해 부족이 1위, 사회경제적 스트레스가 2위, 그 뒤로 부부 갈등 같은 다양한 원인이 있다. 아동학대 사망 사건을 분석한 것을 보면 부모가 게임 등 중독에 빠져 있거나, 경제적 불안정 상태에 있거나, 너무 이른 출산으로 양육 지식이 없고 스트레스가 높거나, 어린 시절 가정폭력에 노출된 경험 등이 그 원인으로 밝혀졌다. 부모가 전혀 준비되지 않은 채 양육을 하면서 ‘자녀는 부모의 소유물’ 또는 ‘내 아이 내 마음대로 키운다’는 잘못된 인식이 훈육을 체벌로, 체벌이 학대로 치닫게 되지 않나 싶다.

우리나라도 아동학대를 가족 간의 문제에서 사회문제로 바라보는 시각으로 많이 바뀌었다. 아동학대는 양육에 대한 이해 부족이 가장 큰 원인으로 밝혀지면서 부모교육 지원도 시작되고, 영유아의 안전을 확인하기 위한 아동안전 점검 방법도 개발하는 등 공공성 강화에 힘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전히 학대받는 아이들을 위한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시설과 전문 인력이 부족하고 예산 또한 매우 부족하다.

몇 년 전, 강한 울림을 주는 영화 한 편이 상영됐다. 영화 ‘미스 백’은 실제로 어딘가에서 학대로 고통받고 있을 아이들을 한 명이라도 발견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마음이 합쳐져 탄생한 작품이라고 한다. 아동학대는 정부와 지역사회가 포기하지 않으면 막을 수 있다고 한다. 현대사회를 피로사회라고 진단한 한 철학자는 현대인은 ‘귀 기울여 듣는 재능’이 소실되었고 그래서 ‘귀 기울여 듣는 자의 공동체’도 사라졌다고 했다. 성과를 중요시하고 바쁘게 나아갈 줄만 알았지 조용히 멈춰 서서 주위를 돌아볼 줄은 모르는 사회라는 것이다.

정인이 사건 후 우리나라도 가정 내 체벌을 인정하던 나라에서 금지하는 나라가 되었다. 민법 915조에 있던 자녀에 대한 부모의 체벌권 인정 규정을 삭제했다. 학대로 숨지는 아이가 거의 없는 스웨덴은 세계에서 최초로 가정 내 체벌을 법률로 금지하고, 여러 복지 시스템을 갖추는 등 국가의 역할이 가장 컸지만, 지역사회의 역할이 컸다고 한다. 그 당시 스웨덴 사회는 “모든 아이는 우리의 아이” 라는 슬로건이 전 사회에 확산됐다. 우리나라도 가정 내 체벌을 금지하는 법률이 제정되었지만 여전히 슬픈 소식이 자주 들려온다.

또 한 명의 아이가 학대 받다가 세상을 떠났다는 뉴스를 본 후 너무 슬퍼 잠을 이루지 못했던 적이 있다. 며칠 그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슬픔에 젖어 지냈다. 주일 날 교회에서 예배 시간에 울음이 터져 흐느끼다가 잠시 이상한 경험을 했다.

⟪어린이와 문학⟫ 2023 가을호에 실린 동시 <밝은 곳으로 갔을까> 는 그렇게 탄생했다.



밝은 곳으로 갔을까



그 애도

아홉 살이래


캄캄한 가방 속에서

얼마나 무서웠을까

낮에도 밤에도

자꾸 생각이 나


수업 시간에도

눈물이 주르르

그러다 눈을 번쩍 떴어

교단 위에 서 있는

선생님을 보니

내가 잠깐 졸았나 봐

그 애를 만났어

눈부시게 환한 곳이었어

까르르 아이들이 웃는 소리

즐겁게 뛰어노는 소리

이상한 뿔피리 소리도 들렸어


한 어른을 봤어

부드러운 수염과 긴 머리카락을 한

그 분이

그 애를

번쩍 들어 올리셨어

그 애가 품속에서 활짝 웃었어


그 아이는

밝은 곳으로 갔을까




“모든 아이는 우리의 아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조용히 멈춰 서서 주위를 돌아볼 줄 아는 나, 우리, 사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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