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에서 <진짜 멋진 할머니가 되어버렸지 뭐야>라는 책 소개 글을 읽었다. 아주 오래전 소녀였고, 아가씨이기도 했으며 아줌마의 시간을 지나 이젠 할머니가 된 저자는 아들이 결혼하고 새 살림을 차릴 즈음 “나의 의무는 여기까지” 하며 단호히 캐리어를 끌고 세상구경을 나섰다고 한다. 어려서 책 속에서 보았던 동화 속 나라를 나이 일흔에 직접 보려고 떠나 시니어 세대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쓴 책이었다.
나는 곰곰 생각해 보았다. ‘진짜 멋진 할머니는 어떤 걸까?’ 그 책의 저자처럼 나이 70세에 지팡이대신 캐리어를 끌고, 책에서 보고 상상만 하던 저 먼 나라들, 꿈의 장소에 가는 것은 진짜 멋진 일일 것이다. 어쩌면 늙는다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는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모습일 수도 있다.
나에게는 멋진 노인에 대한 세 개의 이미지가 있다. 하나는, 오래전 안동여행에서 본 노인들이다. 하회마을과 병산서원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한 식당에서 외국인 20여 명이 식사를 끝내고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보았다. 거의 대부분이 머리가 하얀 노인들이었다. 안동이 지금처럼 유명관광지가 되기 전이었다. 영국 엘리자베스여왕이 다녀간 뒤로 외국인들이 꼭 가보아야 되는 세계문화유산이 되었지만 그때는 동양의 알려지지 않은 작은 도시였을 때였다. 그들은 몇 년째 세계를 돌아다니고 있다고 했다. 세계 곳곳의 문화와 자연유산을 찾아서.
둘은 미국에 사는 딸네 집에서 몇 달간 머무르는 동안 미국 중부 도시 세인트루이스에서 경험한 것이다. 세인트루이스에는 미국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오케스트라가 있고 아주 멋진 심포니 홀이 있다. 그 오케스트라의 정기연주회를 관람하기 위해 심포니 홀에 갔다. 입장하고 보니 1층 좌석에 앉은 관객의 대부분이 노인들이었다. 그들의 대부분이 정기회원들이라 했다. 한 도시의 오케스트라를 후원하고 심포니홀의 운영을 도우면서 수준 높은 음악을 일상의 생활로 누리고 있는 노인들을 보고 놀랐던 경험이 있다. 어쩌면 안동에서, 세인트루이스에서 본 두 부류의 노인들은 경제적 여유가 있는 노인들일 것이다.
세 번째 가장 다정한 모습으로 다가오는 한 할머니의 모습이 있다. “물 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김종삼의 '묵화') 시인이 쓴 시에서 나온 할머니이니 허구의 인물 아니냐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거친 손을 소 목덜미에 대고 수고했다고 말하는 할머니를 알고 있다. 우리 할머니들이다. 부지런하고 따뜻하셨던 할머니. 삶이 무르익고 깊어져 남을 생각할 줄 아는, 세월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인 그 기품을 가진 할머니다.
“나의 의무는 여기까지”라며 당당히 말하고 캐리어를 끄는 할머니가 멋지긴 한데, 집집마다 사정은 달라서 나는 아직도 딸네 아이들을 돌봐주고 있다.
어느 날, 초등학교 3학년 손자가 나에게 진지하게 질문을 했다. “할머니는 소원이 뭐예요?” 이 아이는 네 살 때 “할머니는 커서 뭐가 되고 싶어요?”하고 물어서 나를 웃게 만들었다. 그때는 커서 뭐가 되는가 하는 것이 관심사였다면 지금은 소원이 관심사인 모양이다. 그 아이의 질문에 나도 진지하게 그 수준에 맞게 대답했다. “네가 중학교 가면 배우는 국어교과서에 할머니 글이 실려 그 글을 가지고 네가 공부하면 좋겠다.” 글 쓰는 사람이라면 다 마찬가지가 아닐까. 좋은 글을 쓰는 것. 시간이 지나도 남을 수 있는 작품을 쓰는 것이 소원 아닐까.
며칠 전 딸이 말했다. “엄마, 요즘 얘가 밥 먹기 전 기도를 너무 오래 해요. 그래서 무슨 기도를 그렇게 하냐고 물었더니 할머니 글이 국어교과서에 실리게 해 달라고 기도했대요.” 나는 충격을 받았다. 기도에 맞게 나도 뭔가를 해야겠다.
나의 노년에는 신간소개란의 저자처럼 책 속의 장소를 찾아가지는 못해도, 나를 잠 못 이루게 하고, 가슴 설레게 하고, 한숨 쉬게 했던 책의 필자를 만나고 싶다. 2000년 전에 살았던 베르길리우스와 오비디우스부터 단테와 괴테를 만나고 장 그르니에, 카뮈, 소로우를, 마르탱 뒤 가르, 카프카, 최인훈을 만나자. 나 혼자 만의 방에서 델러웨이 부인을 만나고, 리어왕과 고리오노인의 어리석음을 생각하며 노년의 지혜도 배우자. 멋진 일이 시작된 것 같다. 노년을 위하여.
다행히 나는 눈이 좋다. 초등학생 때부터 근시였고, 몇 년 전에는 망막수술까지 받았다. 그런데 지금은 글을 읽을 때 돋보기를 끼지 않아도 된다. 안경만 벗으면 가까운 것이 잘 보이기 때문이다. 책을 많이 읽어도 눈이 아프지 않으니 이보다 더 큰 복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