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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민정 Dec 17. 2023

겨울 저녁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지하철을 타고 우리 동네에 내려 밖으로 나왔을 때  어느새 지상에는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지하에 있은 시간이 채 한 시간도 안 되었는데, 바깥은 빛의 세상에서 어둠의 세상으로 경계를 넘어온 것이다.   

  

  한기가 칼날 같았다. 영하 10도가 넘는 찬 공기는 정신을 번쩍 들게 했고 순간 머릿속이 저릿저릿했다. 바람 한  점 없는데도 쨍 소리가 날 것 같은 날카로움을 느꼈다. 낯설었다. 날마다 만나는 저녁인데 마치 처음 만난 저녁 같았다. 어둠이 내려와 있는 지상과는 달리 하늘은 짙푸른 청색이었다. 차고 단단하고 쓸쓸하게 보였다.


  아파트 정문을 들어섰다. 어린이놀이터 옆을 지날 때다. 평소에는 그냥 지나치는 놀이터인데 오늘 같이 추운 날이면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미끄럼틀 가까이 다가가 본다. 아무도 없다. 이렇게 춥고 어두운 시각에 당연한 일인데도 순간 ‘다행이다.’라며 안도했다.


  ‘이 미끄럼틀과 같은 모양이었을까?’ 몇 년 전 오늘처럼 추운 날, 이웃 아파트 어린이놀이터에서 밤새 한 아이가 동사한 사건이 있었다. 미끄럼틀 밑  작은 공간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한다. 가출한 아이였다. 따뜻한 방에서 잘 자고 난 다음 날 나는 그 슬픈 소식을 들었다. 오랫동안 잊히지 않았다.   한동안 잊고 있던, 그 아이의 바들바들 떨고 있는 모습이 내 속에서 다시 살아났다.


  ‘참혹한 지상, 빛나는 천상’이라는 어떤 시인의 글이 떠올랐다. ‘하늘나라를 이 땅에.’ 이것이 보통 사람들의 소망인데 지상에는 참혹한 일이 너무 많아 우리를 슬프게 한다.


  돌아가 쉴 집이 없는 사람들이 생각나는 추운 겨울 저녁이었다.   

  

  저 앞에 우리 집이 보인다. 창에 불빛이 밝은 걸 보니 먼저 들어온 식구가 있는가 보다. 돌아가 쉴 집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복인가. 그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인생이 끝나는 날 돌아가 쉴 곳이 있는가에 생각이 미친다. 그 집은 잠시 살다가는 이 세상 집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영원한 집이라는데.


  어릴 때 동무들과 골목에서 재미있게 놀다가도 “저녁 먹어라.” 하는 엄마 소리에 놀던 것 다 팽개치고 집으로 뛰어 들어갔던 것처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하던 시인처럼 그렇게 즐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갈 수 있을까?


   겨울 저녁, 빛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어둠이 지배하는 세상으로 경계를 넘어가듯 우리 삶도 그렇게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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