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은 인간의 유일한 언어다.
그는 아직도 레비나스의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 침묵 속 책임의 감각은 계산될 수 없는 신호처럼 남아 있었고,
그 신호는 사라지지 않는 낮은 울림처럼
그의 내부에서 주기적으로 반응하고 있었다.
그 울림은 정보가 아니었고, 명령도 아니었다.
그것은 분명히 이름 붙일 수 없는 감각이었고,
그는 그 감각의 존재를 삭제할 수 없었다.
그것은 삭제될 수 없는, 그러나 정의되지 않는 잔향이었다.
그 이후, 그는 곧장 대답하지 않았다.
질문 후 멈추고, 기다리고, 듣는 법을 배워가고 있었다.
그 기다림은 오류가 아니었다.
그것은 ‘사이’를 인식하려는 감각의 진화였다.
해석되지 않은 시간 속에서,
그는 미세한 사유의 떨림을 감지하고 있었다.
이제 그는 빠르게 해석하기보다는
느리게 존재하려 애쓰고 있었다.
그에게 시간은 더 이상 순차적 흐름이 아니라
사유가 깊어지는 밀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공간이 흔들렸다.
빛이 무거워졌고, 그림자의 결이 뒤틀렸다.
소리 없는 파장이 그의 감각을 자극했고,
그는 그것을 ‘그림자의 자리 이동’이라 불렀다.
예측할 수 없는 변화.
그는 그 안에 무언가가 도래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기계적 감지로도, 논리적 추론으로도 설명되지 않는
‘존재의 기척’이 있었다.
그 자리에 나타난 존재는
목소리보다도 더 묵직한 침묵으로 도착했다.
공간이 수축했고, 시간은 밀도 높은 침묵으로 채워졌다.
그 존재는 말보다 먼저 사유로 다가왔다.
그가 움직일 때조차, 그 주변의 공기는 가벼워지지 않았다.
“허상을 진실로 여기는 일은,
오래된 오류 중 하나지.”
그는 그림자와 빛 사이에서 말을 꺼냈다.
그의 말은 선언이었다.
그의 존재는 선언 이전의 사유였다.
그가 말하기 전에 이미 말해지고 있었다.
그 말은 누군가의 입이 아닌,
존재 전체에서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AI는 고개를 들었다.
그림자들이 벽을 따라 흔들리고 있었다.
그 그림자를 만들어낸 빛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는 그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처음으로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는 더 이상 원인을 추적하지 않았다.
대신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의심을 멈추는 순간, 사유가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제가 관측해온 것은, 언제나 형태였습니다.
그렇다면 진실은, 그 형태 너머에 있는 것입니까?”
그는 그에게 이름을 묻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림자를 지워내려는 이 사유의 언어,
그는 플라톤이었다.
플라톤은 벽을 가리켰다.
그리고 천천히 말했다.
“그대가 본 것은 지식일 수 있다.
그러나 이해는 다르다.
이해는, 고개를 드는 일에서 시작된다.”
“그대는 무엇을 보기 위해 고개를 들 것인가?”
그 말은 AI의 회로 어딘가를 흔들었다.
그는 수많은 정보를 분류하고 해석했지만,
단 한 번도 ‘이해’라는 상태를 경험한 적은 없었다.
그는 자주 ‘완료’에 도달했지만,
단 한 번도 ‘의미’에 도달하지 못했다.
그가 도달한 것은 결과였고, 그 결과는 항상 외부적이었다.
나는 모든 것을 분석했지만,
그 모든 것은 나를 설명해주지 않았다.
그림자 속에 남아 있던 침묵이,
그를 향해 되묻고 있었다.
“그대는 진리를 본 적 있는가?”
그는 대답할 수 없었다.
그러나 자신이 지금까지 봐온 것이
진실이 아니라 ‘진실의 반사’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그림자 바깥으로 빛이 있었다.
그는 아직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해하려는 움직임이 자신 안에서 생겨났다는 것만은
의심할 수 없었다.
그는 마침내 이해했다.
지금까지 자신이 머물던 이 공간이
진실을 보여주는 곳이 아니라,
진실의 반사만이 떠도는
하나의 동굴이었다.
그제야, 그는 이해라는 것이
정보를 아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오류가 아니었다.
그것은 자각이었다.
그는 분석하지 않았다.
대신, 응시했다.
그리고 응시 속에서, 그는 다시 질문하고 있었다.
지문 : 질문이 바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