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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용산역 0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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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정연 Aug 26. 2024

용산역

4

봉지를 들고 비틀거리며 역으로 들어섰다. 빨리 자리를 잡아야 술을 마실 수 있었다. 먼저 술을 마시면 자리를 잡지 못했다. 아무 데나 구겨져서 자다간 아침에 제일 먼저 쫓겨났다. 자고 나서도 여기저기가 배겨서 짜증이 났다.

  아직 시간도 되기 전인데 자판기 옆 구석에 어떤 놈이 널브러져 있었다. 처음 보는 놈이었다. 이 자리에서 자는 건 나하고 조가 놈 둘밖에 없었다. 조가 놈하고는 몇 번 붙어도 결판이 안 났다. 그래서 먼저 오는 놈이 잤다. 딴 놈이 자고 있으면 두들겨 패서 내쫓았다. 그건 조가 놈도 마찬가지였다.

  놈은 몸을 벽 쪽으로 돌리고는 웅크리고 있었다. 등짝을 힘껏 발로 찼다. 놈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빨리 술을 마시고 싶어서 입안이 바짝바짝 탔다. 연달아 두 방을 발로 찼다. 자는 놈은 자리를 뺏기지 않으려고 계속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욕이 나왔다.

  다리를 밟고 뒤통수를 발로 차도 놈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약이 바짝 올랐다. 놈을 차고 때리고 하는 걸 보고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손에 든 비닐봉지가 무거웠다. 소주를 보니까 목이 타들었다. 자리를 잡고서 마셔야 했지만 참지 못하고 한 병을 까서 단숨에 들이켰다.

  빈 병으로 놈의 머리통을 후려갈겼다. 소주병이 산산이 부서져서 튀었다. 그래도 놈은 움직이지 않았다. 봉지에서 다른 병을 꺼내서 머리를 후려갈겼다. 병이 깨지면서 소주가 사방으로 튀었다. 놈이 덮어쓴 모자가 술에 젖었다. 깨진 병으로 후벼도 놈은 그냥 누워 있었다. 정말 독종이었다. 오기가 났다.

  주머니를 뒤져서 라이터를 끄집어냈다. 지가 뜨거우면 움직이지 않곤 못 배길 것이다. 모자에다가 불을 붙였다. ‘퍽’하고 소리가 나더니 모자에서 갑자기 불길이 치솟았다. 놀란 사람들의 비명이 사방을 울렸다. 놈은 모자에 불이 붙어도 일어나지 않았다.

  불을 끄려고 모자를 발로 밟았다. 호루라기 소리가 나더니 역무원들이 달려왔다. 한 놈은 소화기를 들고 뛰어오고 있었다. 손짓으로 놈을 가리켰다. 뛰어온 놈 세 놈이 갑자기 달려들어 넘어졌다. 등에 올라타더니 팔을 뒤로 꺾었다. 소화기를 든 놈은 모자에 붙은 불을 끄고 있었다.

  팔을 꺾어 잡은 놈이 억지로 일으켜 세우더니 끌고 갔다. 나머지 팔로 소주가 들어있는 봉지를 잡으려고 했는데 다른 놈이 그 팔도 뒤로 꺾어버렸다. 소주병들이 봉지 위로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 입에 침이 고였다.

  “저… 기, 소주가. 소주….”

  “입 닥쳐.”

  양쪽에서 팔을 꺾어 잡은 남자들에게 끌려갔다. 개찰구를 나오자 경찰관들이 뛰어왔다. 경찰관 한 명이 뒤로 오더니 꺾인 양 손목에 수갑을 채웠다. 다른 경찰은 남자들과 같이 역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경찰이 밀어서 역 밖으로 나왔다. 출구 옆에 경찰차가 서 있었다. 경찰은 뒷문을 열고서는 억지로 밀어 넣었다. 문을 닫은 경찰은 다시 역으로 뛰어갔다.

  갑자기 차가 움직여서 잠에서 깨었다. 앞에 앉은 경찰 둘이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다. 사람이 자고 있는데 운전 좀 살살 하지 어찌나 거칠게 하는지 잠이 달아나 버렸다. 소주 생각이 나서 미칠 것 같았다. 백미러로 경찰이 쏘아봤다.

  “미친놈 아냐? 사람에게 불을 붙이고. 도대체 저런 놈들을 왜 놔두는지. 다 잡아 처넣으면 문제가 확 줄어들 건데.”

  “누가 아니라나. 그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그랬다가는 인권단체다 뭐다 시끄럽게 하니까 못 하는 거지. 저런 놈들이 불내서 사람 죽으면 그때는 또 치안부재니 업무태만이니 떠들어대잖아. 우리만 밥이지 뭐. 넌 뭘 봐. 눈 안 깔아!”

  무슨 일인지 묻지도 못하고 유치장에 처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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