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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용산역 0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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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정연 Aug 26. 2024

용산역

5

끌고 오더라도 물건이라도 들고 오게 해주지. 끌려오는 바람에 아까 산 소주와 과자가 그대로 역에 버려졌다. 어떤 놈인지 오늘 재수 봉 잡았다. 아까 그냥 다 먹을 걸 하는 생각이 들어 아쉬웠다. 자리 잡고 나서 먹고 자려고 했는데 괜한 놈 때문에 한 병밖에 못 마신 걸 생각하니까 입안이 바짝 말랐다. 불을 붙여도 일어나지 않는 놈은 처음이었다.

  구석에 자리를 잡고 웅크리고 앉았다. 옆에 있던 놈이 인상을 쓰더니 코를 싸잡고 자리를 옮겼다. 팔을 들어 냄새를 맡아봤다. 별 냄새도 안 나는데 유난을 떨었다. 앉아 있다가 졸려서 옆으로 누워 잠이 들었다.

  뭐가 머리를 쿡쿡 찔러서 잠에서 깨었다. 아직 쫓아낼 시간이 되려면 멀었는데 벌써부터 어떤 놈인지 지랄을 했다. 손을 휘저어 치우려니까 머리맡에서 소리를 빽 질러댔다.

  “야! 일어나! 여기가 여관인 줄 알아! 빨리 안 일어나!”

  어떤 놈이 발까지 툭툭 차대었다.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자 쇠창살이 보였다. 그제야 유치장에 들어온 기억이 났다. 발치에 선 경찰이 경찰봉으로 머리를 쿡쿡 찌르면서 발로 차고 있었다. 수갑을 채우고는 유치장 밖으로 끌어냈다.

  “따라와.”

  경찰관을 따라가서 책상 앞에 앉았다. 경찰이 컴퓨터를 보며 물었다.

  “이름.”

  이름이 뭐였더라. 이름을 말해본 지가 까마득했다.

  “김… 장… 순… 데요.”

  “나이.”

  귀찮게 계속 물어볼 거 같아서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경찰은 몇 번 ‘나이’하고 소리를 지르더니 컴퓨터 너머로 쏘아봤다. 한참을 뒤지자 주머니에서 주민등록증이 나왔다. 경찰에게 주민등록증을 줬다. 주민등록증을 받아 든 경찰이 흘겨보더니 컴퓨터를 두드렸다.

  “죽은 사람은 언제 발견했어?”

  “누… 가… 죽어… 요.”

  경찰이 짜증스런 눈으로 쳐다봤다.

  “아까 네가 불붙인 사람 말이야. 죽은 사람에게 불은 왜 붙이나. 언제 발견했어?”

  “아까… 들어… 가서… 요.”

  “아까 언제.”

  “아… 까… 가게… 에서… 나… 와서… 바로….”

  “가게에서 나온 시간은.”

  “몰… 라요.”

  “불은 왜 붙였어?”

  “자리… 내자… 리… 를… 뺏고… 있… 어서.”

  “자리 뺏겼다고 불붙이냐?”

  “그… 냥… 겁만… 주려… 고… 했… 는데.”

  “하여간 방화에다가 사체 훼손이니까 그렇게 알아. 여기 밑에 이름 써.”

  경찰은 한심하게 쳐다보면서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글씨가 빼곡히 찍혀있는데 뭐가 뭔지 보이지 않았다. 경찰이 손가락으로 찌르는 부분에 이름을 썼다. 손이 떨려서 글자가 삐뚤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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