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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해인 Oct 15. 2024

12. 사람은 설마가 잡는다.

설마는 설마가 잡고

 #홍준영 - 과거 회상 중

 이수광을 배웅한 홍준영은 차분해진 마음으로 계획을 정리해본다.


 덩달아 영감님과 지냈던 세월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교도소 생활을 시작한지 막 한 달이 넘어가던 때였다.


 “펭귄 새끼마냥 왜 자꾸 따라다니는 거여?”


 뒷짐을 지고 운동장을 유유자적 걷던 이수광이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 우뚝 서서 물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저는 홍준영이라고 합니다.”


 “내 대학교 후배야?”


 “아! 아마 그건 아닐 겁니다.”


 대선배의 출신 대학교까지는 알지 못했던 홍준영이 조심스레 물었다.


 “죄송하지만, 어디 대학교 나오셨습니까?”


 “난 중졸인데.”


 “아……, 죄송합니다.”


 대선배의 가방끈이 이 정도로 짧을 줄은 몰랐던 홍준영은 저도 모르게 사과부터 내뱉었다.


 “돈 없다고 학교 안 보내준 건 우리 아버진데, 왜 생뚱맞게 젊은 양반이 사과를 하나?”


 “죄, 죄송합니다!”


 사과를 연발하는 홍준영이 재밌는지 이수광이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래서 나는 왜 그리 쫓아다닌 거야? 나는 여자가 좋은데.”


 “……예? 저, 저도 여자 좋아합니다!”


 홍준영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운이 나쁘게도 취향이 겹치네. 자네랑은 같이 놀면 안 되겠다.”


 “예? 암만 그래도 선배님이랑 저랑 동년배도 아니고…….”


 “그래서, 우리 업계 후배님이시라고?”


 이수광이 돌연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아, 예! 존경하고 있었습니다, 선배님!”


 “뭐로 들어왔어?”


 “저 단순 절도…….”


 “몇 년 받았는데?”


 “2년 6월 받았습니다. 이제 막 한 달 넘었습니다.”


 “그래? 나랑 비슷한 시기에 나가겠네.”


 “어? 제가 알기로는 아직 3년은 넘게 남으신 걸로…….”


 “이감 말한 거야. 나는 유독 이감이 잦더라고? 툭하면 이감시키고 난리야. 잠자리 자주 바뀌면 몸에 안 좋은데 말이야.”


 “그러시구나.”


 홍준영은 자기가 대신 아플 방법만 있다면 기꺼이 그러겠다는 얼굴로 대꾸했다.


 “그러고 보니, 책에서는 여태 흔한 잔병치례 한 번 없었다고 하셨잖아요.”


 “……책?”


 이수광은 설마, 하는 어투로 물었다.


 “설마 내 책을 읽은 건 아니지?”


 “설마요! 읽기만 한 게 아니라, 책에 적혀있는 것들 전부 따라서 해봤습니다!”


 “……에이, 설마!”


 분명 이수광은 잘 들었지만 본인에게 노인 난청 증세가 조금 일찍 찾아왔나 싶었다.


 “사람은 설마가 잡고, 설마는 설마가 잡는다. 고로, 설마, 하는 생각이 가장 위험하다.”


 홍준영이 대뜸 그렇게 말하자, 이수광의 흐리멍덩한 눈이 번뜩였다.


 “아니, 그걸 왜 외우고 다니고 그러나!?”


 “제가 제일 감명 깊게 읽은 책이니까요!”


 이수광은 눈앞에 있는 젊은 후배가 심상치 않은 인물이거나 또라이 중 또라이임을 직감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러니까 자네 말은 「이수광의 이럴수광」을 읽은 것도 모자라서, 거기 있는 모든 사례들을 직접 시도해 봤다는 거지?”


 “글쎄, 그렇다니까요.”


 “자네 혹시 정신이 좀 이상한 편에 속하나? 아니면 지능이 조금 부족한 편이라던가.”


 이수광이 무례한 질문을 공손한 어조에 담아 말했다.


 “정신도 멀쩡하고 지능도 안 부족해요. 오히려 머리는 좋은 편인데요.”


 “그런 사람이 왜 내 책 같은 걸 읽고 그래.”


 “읽으면 안 되는 건가요?”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전국에 딱 100권만 있는 책을 무슨 수로 입수했을까 그게 더 궁금하네. 그것도 가장 이상적인 수치야. 누군가는 진작에 땔감으로 썼을지도 모르니까.”


 이수광은 그렇게 말하면서 부끄러운 듯 얼굴을 살짝 붉혔다.


 과거의 잔재가 이런 식으로 모습을 드러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저는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그 일에 대해 차분히 공부해보는 습관이 있어요. 그리고 저는 자기 객관화 능력이 아주 뛰어난 사람이에요.”


 홍준영은 본인을 그렇게 소개했다.


 “자기 입으로 할 말은 아닌 거 같은데?”


 “그런 와중에 저는 도둑질에 소질이 있다는 걸 알게 됐죠.”


 “그건 교도소에 갇혀있는 사람이 할 말은 아닌 거 같고.”


 홍준영은 대선배의 끼어들기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런 경위로 중고 서점에 가서 도둑에 관해 공부할 만한 책이 없을까, 찾아봤죠.”


 “그러던 중에 내가 쓴 책을 발견하고 그 책으로 공부했다?”


 이수광은 그동안은 본 적 없는 미친놈을 상종하듯 기가 찬다는 얼굴로 말했다.


 “네, 작가 소개란에 이력이 화려하시던데요?”


 “다른 사람들은 다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던데? 작가 소개부터 본문 내용까지 전부 소설로 생각하더군.”


 “소설이라뇨! 재미난 사례집이나 일기에 가깝죠.”


 “그래, 뭐……, 내 독자라고 하니 매몰차게 굴지도 못하겠군.”


 이수광의 표정이 한결 가벼워졌다. 수긍보다 포기에 가까운 얼굴이었다.


 “평소 즐겨보던 책의 작가를 같은 교도소에서 만나다니 무지하게 반가웠겠어.”


 “반갑다 뿐이겠습니까? 선배님, 경외하고 경탄했습니다!”


 “내가 자네의 팬심을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혹시 내 책에서 어느 대목이 특히 마음에 들었는지 들어볼 수 있을까?”


 “그럼요!”


 그 말을 시작으로 홍준영은 체육활동 시간이 끝날 때까지 한순간도 쉬지 않고 「이수광의 이럴수광」에 나오는 내용을 줄줄이 읊었다.


 그러면서도 본인이 실제로 실행에 옮겨본 기술과 개선을 위한 보완점 등 실로 분석적인 태도로 다양한 의견을 줄줄이 늘어놓았다.


 까마득한 후배 도둑의 말이 이어감에 따라 이수광의 표정은 서서히 변해갔고, 모든 이야기가 끝났을 때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안광이 빛나고 있었다.  


 그날 밤, 이수광은 생애 두 번째 제자를 들이게 되었다.


 그런 결정을 하기까지의 명확한 사고 과정은 본인조차 해석할 수 없는 영역에 속하는 것이었다.


 그에겐 그저 당연한 흐름처럼 느껴졌다.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 그저 ‘맛있다’, ‘또 먹고 싶다’ 단순한 소감을 중얼거리는 것으로 그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재료와 요리법을 활용했는지 탐구하고 파악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도 있는 것처럼 이수광은 홍준영이라는 사람이 궁금했다.


 두 번째 제자는 첫 번째 제자와 달리 몸이 약하고 지나치게 생각이 많은 경향이 있지만, 그만큼 머리 회전이 빠르고 조심성이 많았다.


 “……흐음.”


 이수광은 키보드에게 드라이클리닝을 가르쳐야 하는 사람처럼 끙끙 앓는 소리를 냈다.


 재빠르고 유연하게 기능하는 두뇌에 대비되듯 다소 저조한 신체능력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짐작을 한다고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는 얼굴이었다.


 “영감님! 됐죠! 이거 보세요. 다 된 거죠?”


 펄펄 끓어오르고 있는 물에 기어이 직접 손을 대보고 뜨겁다는 사실을 알아챈 사람처럼 굴고 있는 제자를 굽어보던 이수광은 키보드의 어깨에 손을 대고 말했다.


 “제자야, 그건 다 된 게 아니라 된 게 하나도 없는 거란다.”


 “하핫! 그런가요? 다시 해보겠습니다!”


 홍준영이 기억하기로 살아있는 동안에 그토록 따뜻한 관심을 받아본 적은 없었다.


 세 번 이상 잘해준 사람은 처음이었다.


 그때야 비로소 그는 깨달았다.


 꼭 혼자일 필요는 없다고.

 혼자라는 건 자유롭고, 자유로운 건 멋지고, 멋진 건 그 자체로 너무나도 멋진 것이지만, 늘 그럴 필요는 없다고.


 “어이, 그렇게 멀뚱하게 있지 말고, 우리도 얼른 가자고.”


 진강석의 말에 홍준영은 회상에서 빠져나온다. 서둘러 조수석에 오른다.


 스승님께 받은 은혜를 갚을 기회가 찾아왔다.   




  

 #이수광 - 점심 메뉴 고민 중

 이수광은 제자들과 헤어지자마자 점심을 걸렀다는 사실을 뒤늦게 떠올린다.


 "……흐음, 뭘 먹어야 잘 먹었다고 지구 반대편까지 소문이 나려나."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을 때일수록 속을 든든히 채워야한다는 불변의 진리를 차마 거스를 수도, 거스를 마음도 없던 그는 눈에 보이는 식당으로 냉큼 들어간다.


 식당에 들어서면서도 그는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미루어 봤을 때 본인을 향한 점원의 눈빛이 썩 호의적이지 않다고 느낀 이수광은 움츠린 자세로 자리에 앉는다.


 아무리 기준을 후하게 잡아도 이수광이 살면서 받아본 친근한 눈길은 몇 되지 않았다.


 기본값은 언제나 기인을 보는 눈길이었다.


 “오호, 이 식당은 아주 마음에 드는군.”


 사주경계를 마친 이수광은 키오스크가 없다는 점에 만족한다.


 손님의 칭찬에 메뉴판을 건네주던 점원이 방긋 웃는다.


 “감사합니다. 메뉴판 천천히 보시고 결정하시면 알려주세요.”


 제자들의 홀대에 익숙해진 탓일까, 이수광은 종업원의 그 단순한 제의에서 지나칠 정도로 거대한 감동과 인류애를 느낀다.


 잦은 교육과 내부평가로 매장 직원들을 피곤하게 만들던 고객대응방침이 빛을 보는 순간이다.


 이렇게 또 한 명의 고객이 친절한 서비스에 감격해 해당 매장을 넘어 브랜드 자체에 긍정적인 감정을 품는다.


 “메뉴판은 볼 것도 없지.”


 이수광은 처음 온 식당답지 않게 자신만만하게 군다.


 “이 집에서 가장 맛있는 걸로 가져다주면 되네. 그전에 목이 무척 마르니 목구멍이 얼어붙을 정도로 시원한 맥주를 먼저 가져다주면 아주 고맙겠구만.”


 “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점원들은 몹시 친절하고 무엇보다 유연한 일처리 능력을 가진 듯하다.


 자기네들 식당은 특이하게도 선불 매장이라며 계산을 먼저 요구하기에 주머니에서 현금을 척 내놨다.


 그랬더니만 이번에는 또 본 매장은 현금 없는 매장이라고 호언장담하면서 한사코 현금을 받지 않으려고 하는 게 아닌가?


 이에 이수광은 주머니를 뒤집어 까고 손수 신발까지 벗어 현금 말고는 음식과 술값을 지불할 결제수단이 없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었다.


 그 모습을 본 점원은 세차게 도리질을 치면서 알았으니 이번만큼은 특별히 현금을 받겠다고 매장의 특성을 한순간에 바꿔버리는 것으로 모자라, 음식이 너무 느끼할 것을 대비해 김치는 없느냐고 물으니 주방에서 열무김치를 가져다주는 게 아닌가?


 여기 종업원들이 식당이 아니라 교도소를 운영했다면 탈옥까지 갈 것도 없었을 거라며 이수광은 대단히 합리적인 생각을 해본다.


 이수광이 원한 건 마무리하지 못한 일들을 처리할 잠깐의 시간이지 완전한 자유가 아니었다.


 근데 또 막상 이렇게 오랜만에 자유를 만끽해보니 그 맛이 썩 달콤해서 조금 더 일찍 나올 걸, 하는 후회가 드는 것도 사실이다.


 잠시 후, 생맥주를 받아 든 이수광은 피곤한 하루일과를 마친 직장인이 된 것처럼 개운하게 목을 적신다.


 “푸하, 다음 주에 쌓일 근심걱정까지 사라지는 기분이구만.”


 “손님, 메뉴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예의 점원이 큼지막한 페페로니 피자를 능숙하게 한 손으로 받쳐든 채로 다가온다.


 “호오, 피자 좋지. 아침에는 햄버거, 점심으로 피자라니. 오늘 하루쯤은 미국인으로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저녁에는 치킨을 먹어야겠다고 다짐한 이수광이 만족의 미소를 지으며 맥주를 추가로 주문한다.  

   




 #진강석, 홍준영 - 이동 중

 홍준영은 차에 오른 뒤로 번번이 끊어지는 대화에 지칠 대로 지친 상태다.


 운전자는 우환이라도 있는 건지 굳은 표정으로 운전만 이어간다.


 얼핏 보면 속내를 알 수 없는 사춘기 청소년의 눈빛이 깃들어 있는 것도 같다.


 할로윈 축제라도 벌어진 것처럼 다방면으로 쓸데없어 보이는 물건과 생활쓰레기들이 난잡하게 산적해있는 뒷좌석을 흘긋 보던 홍준영은 농담 삼아 말을 꺼낸다.


 “차가 되게…….”


 “뭐.”


 진강석의 열렬한 반응에 몸이 싹 식은 홍준영이 말을 제대로 펼치지도 못하고 접는다.


 농담조차 얼어붙을 듯하다.

 스스로 던진 농담에 섣불리 웃음을 흘렸다가는 자칫 유혈사태까지 벌어질 가능성이 다분해보인다.


 물론 피를 흘릴 사람은 이미 정해져 있는 듯하다.


 “차가 뭐, 말을 해.”


 지하 밑바닥에서 끌어올린 듯한 경찰의 목소리는 웬만한 위협보다 훨씬 더 강한 압박으로 다가온다.


 굵직한 목소리가 귀를 통해 흘러들어올 때마다 진득한 냉기가 몸을 휘감는 것처럼 소름이 돋아난다.


 방금 헤어진 영감님이 벌써 보고 싶다.


 홍준영은 습관처럼 방어적으로 군다.


 “아, 별건 아니고, 차가 되게 잘 나가는 것 같아서……. 그냥 운전을 잘하는 건가? 하핫!”


 진강석이 속도를 줄인다.


 경찰씩이나 돼서 조수석에 도둑을 태운 것도 마음에 안 드는데 저승에까지 동행할 의향은 때려죽여도 없다.


 진강석은 조수석에 앉아 똥 마려운 강아지마냥 안절부절 꿈틀대는 전과자가 신경에 거슬린다.


 건방지고 불량해 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께름칙할 만큼 저자세를 고수하고 있는 게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런 맹한 놈과 같은 스승님을 두고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의욕이 바닥을 친다.


 진강석은 정면을 응시한 채로 묻는다.


 “그건 그렇고 팔광 선생, 평소랑 좀 다르지 않아?”


 “어? 그쪽도 그 별명 아시는구나.”


 “왜 그렇게 불리고 있는지는 몰라. 넌 알아?”


 “모르죠.”


 홍준영은 말한다.


 “사람들이 그렇게 부르니까 그냥 그런가 보다 하는 거지.”


 비록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기왕 대화가 시작된 김에 묻는다는 듯 진강석이 썩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질문을 이어간다.


 “아까 선생이 말한 이야기, 전에 따로 들은 적 있어? 꽤 오래된 얘기 같던데.”


 “아뇨? 저도 오늘 처음 들어요. 영감님한테 아들이 있다는 얘기도 물론 처음 들었고.”


 “도대체 알고 있는 게 뭐야?”


 진강석이 쏘아붙인다.


 “……글쎄요?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거?”


 “근데 왜 아까부터 계속 존댓말이야?”


 “그것도 모르겠는데……. 그냥 존댓말이 알아서 나와요.”


 홍준영이 민망함에 괜히 두리번거리며 창밖을 내다본다.


 “근데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거지?”


 “나도 몰라.”


 “아하, 그렇구나.”


 홍준영은 여러 가지 궁금한 점이 있었지만, 전과자 입장에서 경찰과 장시간 대화를 나눠서 좋을 게 없다는 생각에 입을 꼭 다문다.


 반면, 진강석 경장은 이수광이 전해준 기나긴 사연 속에서 결코 잊을 수 없는 이름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 소름 끼치도록 놀랍다.     





 #이수광 - 점심 식사 중

 이수광의 집중력이 맥주의 공격에 휘청거리고 있다.


 이수광은 오랜만에 맛보는 것만큼 온몸의 피가 맥주가 되도록 마셔대고 싶었지만 위가 허락하지 않는 것 같아 영 아쉬운 눈치다.


 배가 불러도 너무 부르다.


 거기에 방광마저 협조해주지 않으니 그만 자리에서 일어나는 수밖에.


 계산을 위해 종업원을 부른다.


 선불 요금제를 후불로 바꿔준 융통성에 고마워하며 그는 다가온 종업원에게 오만 원 권 한 장을 건네면서 말한다.


 더할 나위 없이 자애로운 어투로.


 “이걸로 계산해주고, 남은 돈으로는 자네 퇴근할 때 택시비에 보태시게. 맛있는 걸 사 먹어도 좋고. 칭찬은 거듭될수록 좋은 것이니 한 번 더 말하는데, 가게가 아주 마음에 들어.”


 커다란 핸드폰이 없어서 그렇다는 말은 굳이 꺼내지 않는다.


 정확한 계산은 해봐야 알겠지만, 일단 팁을 준다는 손님의 말에 기분이 좋아진 종업원은 활짝 웃으며 이수광을 배웅한다.


 “예!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그래그래, 잘 먹고 가네.”


 이수광이 가게를 나서고, 종업원은 경쾌한 손놀림으로 포스기기를 조작한다.


 생맥주 500cc, 총 4잔.


 생맥주 500cc는 4,900원.


 4,900 X 6 = 29,400원.


 페페로니 피자 R사이즈 한 판, 19,900원.


 29,400원 + 19,900원 = 49,300원.


 50,000 - 49,300 = 700 


 잔액(팁): 700원.


 “…….”


 정확한 계산을 마친 종업원은 퇴근 후 손님이 준 팁으로 집 근처 편의점에서 새콤달콤을 하나 사 먹고 200원을 편의점 종업원에게 팁으로 줘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퇴근시간이 아직 다섯 시간이나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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