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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해인 Oct 16. 2024

13. 누구에게나 가슴 아픈 사연은 있다.

배 아픈 것 보다는 낫지

 #양태호 - 복통에 시달리는 중

 양태호는 갑작스레 번지는 복부의 통증에 불편함을 넘어 당혹스러움을 느낀다.


 언제나 적절한 식이요법과 유산균 폭탄으로 건강한 위장을 유지해온 그로서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는 일이다.


 “……오오옥.”


 저도 모르게 괴상한 신음까지 나온다.


 텅 빈 뱃속에 독주를 때려 넣은 것처럼 연신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쿡쿡 찌르는 듯한 통증이 이어진다.


 양태호는 금은방 출입문에 ‘잠시 외출합니다’ 팻말을 내걸고 화장실로 달려간다.


 그곳에서 20년 만에 처음으로 설사를 지린다.

 맹렬한 기세에 똥구멍이 얼얼할 지경이다.


 내가 설사를 지리다니!

 이게 무슨 일이람?


 양태호는 건강상태에 대한 재평가가 시급하다고 중얼거리면서 어쩌면 그동안 스스로를 너무 맹신했는지도 모른다는 꽤 냉철한 결론에 이른다.


 양태호는 이게 다 바쁘다는 핑계로 올 여름에 받았어야 했던 건강검진을 생략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며 본인의 부주의를 탓하면서 주기적인 건강검진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볼일을 마치고 금은방으로 털레털레 걸어가는데, 어디선가 나타난 얼굴에 핏기라고는 남아있지 않은 젊은 남자가 양태호의 앙상한 팔을 꼭 쥐고 말한다.


 팔을 미세하게 떨고 있다.


 “저어, 여기 근처에 태양금은방이라고 아세요?” 


 태양금은방 사장, 양태호가 남자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사이즈를 딱 보아하니 예물을 보러온 예약손님은 아니다.


 양태호가 가게 출입문을 활짝 열어젖힌다.


 “들어오세요.”


 “……네?”


 젊은 남자는 반쯤 풀린 눈으로 헐떡인다. 몸에 활력이라고는 없다.


 “여기가 태양금은방이니까, 들어오시라고. 약 사러 온 거 아니에요?”


 이것이 양태호의 영업 전략이었다.


 클럽과 룸 술집, 안마 시술소, 하다못해 금은방을 찾는 손님들에게까지 다방면으로 약을 유통시켜 무차별적으로 고객을 유치하고 금단증상에 시달리는 극성 고객들을 금은방으로 끌어들였다.


 약을 구매하러왔다가 진열장 속 영롱한 자태에 혹해서 금반지까지 사들고 돌아가는 고객이 있는가하면, 반대로 집에 있는 금반지를 싸들고 와서는 약으로 바꿔달라는 고객도 적지 않았다.


 마약에 중독되어 정신이 절반가량 나간 고객들이 제대로 된 사리분별을 한다는 건, 알콜 중독자들에게 술을 하루에 딱 한잔씩만 마시라는 것과 똑같은 소리였다.


 세상에 그것만큼 불가능한 건 없었다.


 그들은 양태호가 요구하는 대로 금목걸이와 금반지를 척척 내놓았다.


 그런 식으로 헐값에 얻은 귀금속들을 제값에 일반 고객들에게 팔아가면서 양태호는 지난 25년간 남부럽지 않게 살아왔다.  


 양태호가 불법과 합법 사이에 그어진 선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면서 벌어들인 돈은 고스란히 시끄러운 엔진을 장착한 자동차와 번쩍번쩍한 시계와 구두로 흘러들어갔다.


 엔진소리가 크고 요란하게 생긴 자동차일수록 조수석에 젊고 예쁜 아가씨를 태울 수 있었고, 애정관에 있어서 지나치게 넓은 폭을 가지고 있던 양태호는 가끔 젊고 몸 좋은 남자들도 태우곤 했다.


 그들에게는 시계가 잘 먹혔다. 비싼 시계 선물이면 한두 달은 애인 행세를 해주었다.


 하지만 젊은 남녀들의 관심을 돈으로 사는 생활은 금세 지겨워졌다.


 50세를 기점으로 양태호는 자유분방한 여가생활을 청산하고 본격적으로 사업에만 집중하기 시작했다.


 차근차근 활동 영역을 넓혔고, 동종업계 사람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함과 동시에 뒤통수가 훤히 보이면 과감하게 후려쳤다.


 그렇게 양태호는 마약계의 거물이 됐고, 한강이남 지역에서 약 좀 한다는 사람들은 죄다 양태호가 이끄는 조직과 엮여있기 마련이었다.


 “행복하시죠?”


 금반지를 내놓고 약을 받아간 고객을 향해 양태호가 너그러운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한다.


 “……예? 예, 좋아요.”


 발갛게 충혈 된 눈동자와 메마른 입술을 한 채로 영혼 없는 웃음을 흘리고 서있는 남자가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아이처럼 해맑게 인사한다.


 “안녕히 계세요.”


 “예예, 안녕히 가시고 다음에 또 오세요. 사랑합니다, 고객님.”


 인간을 사랑하는 데서는 어쩌면 본인이 아시아 신기록정도는 가지고 있지 않을까, 양태호는 생각한다.


 여자와 남자 두 성별에게 공평하게 사랑을 베푸는 사람은 흔치 않으니까.





 #강신영 - 잡생각 중

 강신영 파출소장의 생각이 일주일 전 진행했던 상담시간으로 옮겨간다.


 “이곳에 오시면 주로 어떤 생각이 드세요?”


 오선아 박사의 물음에 강신영은 마치 목소리를 잃은 사람처럼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런 환자를 박사는 그저 묵묵히 기다려주었다.


 강신영이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내가 와도 되는 걸까, 상담치료를 받을 사람은 따로 있는 거 같은데……. 이런 생각이요.”


 오선아 박사는 한결 심각해진 표정으로 확인 차 질문을 던졌다.


 “첫째 따님을 말씀하시는 걸까요?”


 “……네, 저 대신 우리 신주가 이 자리에 있었어야했어요.”


 “지금도 그때 생각만 하면 후회가 되시나요?”


 “그날의 저를, ……죽이고 싶어요.”


 강신영의 불끈 쥔 두 주먹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선생님, 왜, ……왜 저는 이렇게 무력할까요. 경찰씩이나 돼서, 제 아이 하나 못 지켰어요.”


 “상담을 이어갈수록 반복적인 양상이 드러나네요. 자기혐오와 후회. 자기부정까지. ……요새도 술을 자주 드시나요?”


 “……어제 먹었습니다.”


 “안 드시는 날에는 잠을 잘 못 주무시는 것도 똑같고요?”


 “네, 잠이 안 와요. 계속 생각해요. 생각하고 상상해요. 그때 내가 이렇게 했으면 어땠을까, 이렇게 했으면 지금과는 다르지 않았을까?”


 “지난 번 상담 때도 말씀드렸다시피 그때 일은 소장님 잘못이 아니에요. 그건 그저―”


 딸을 잃은 경찰이 오선아 박사의 말을 자르고 끼어들었다. “자식이 죽었는데 어떻게 아버지라는 사람한테 잘못이 없을 수 있습니까.”


 “경찰이기 전에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범죄현장에서 딸아이를 잃었다는 죄책감이 어떨지, 저는 차마 상상할 수 없어요.”


 오선아 박사는 선포하듯 말했다.


 “내친김에 그때 일을 다시 떠올려보도록 하죠.”


 “……싫습니다. 또 신주를 그곳에 보낼 순 없어요.”


 “소장님. ……소장님?”


 부하직원의 부름에 강신영은 겨우 상념에서 벗어난다.


 “……어, 왜?”


 “밖에 나가있는 팀에서 연락이 왔는데요. 할로윈 데이라서 죄수복 입은 행인들이 꽤 있답니다. 그래서 다른 특징은 없냐고 물어보네요.”


 직원의 말에 강신영 소장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한다.


 “두세 명 정도는 서초동에 있는 마약중독재활센터로 가서 잠복하고 있으라고 전해. 거기에 이성길이라고 몇 년 동안 장기 입원해있는 사람이 있을 거야. 누구 찾아온 사람 없는지 확인해봐. 거기 직원한테 내 이름대면 협조해줄 거야.” 





 #양태호 - 접객 중

 “어서 오세요.”


 양태호 사장이 반갑게 손님을 맞이한다.


 “성함이 어떻게 되실까요?”


 “금덩이 좀 보러왔는데.”


 손님은 대뜸 방문 목적부터 밝힌다.


 “아, 네. 어르신, 여기에 금덩이 많이 있습니다. 성함을 좀 알려주시겠어요?”


 “어르신은 무슨, 나랑 비슷해 보이는데 뭘.”


 그 발언만큼은 용납할 수 없었던 양태호가 조금은 발끈한다.


 “저희 매장은 예약제로 운영되고 있어서요. 사전에 예약해주신 분들만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그 말은, 내가 당장 금덩이를 사고 싶어도 못 산다는 말이야?”


 ‘당장’이라는 마법의 단어에 양태호 사장의 마음이 동한다.


 “……금덩이라 하시면?”


 “돼지가 거북이 등에 올라타 있으면 좋겠는데. 그런 게 있으려나? 기왕이면 큼직한 걸로. 둘 다 열 돈은 되면 좋겠어.”


 이후, 양태호 사장의 극진한 제품 상담이 이어진다.

 그는 A4용지에 직접 그림까지 그려가며 열띤 설명을 이어간다.


 “당장 손님이 원하시는 제품을 보여드릴 순 없는데, 제가 이 그림이랑 똑같이 만들어드릴게요. 근처에 저랑 막역한 금 세공업자가 있는데 그 친구 솜씨가 아주 좋아요. 금으로 뭐든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언제까지 만들어 줄 수 있는데? 오래 걸리는 거 아니야? 기다리는 건 딱 질색인데.”


 “당연히 내일이죠.”


 양태호 사장이 자신만만하게 대답한다.


 “기껏 큰 돈 주고 물건 샀는데 한참 지나서 물건 받고 그러면 괜히 억울하잖아요. 그렇죠?”


 손님은 맞는 말이라며 목소리를 높인다.


 “당연히 그래야지! 근데 내일이면 몇 시? 나는 최대한 일찍 받았으면 하는데.”


 “일찍, 이라고 하시면…… 몇 시쯤?”


 “글쎄, 대충 일곱 시? 너무 이른가? 물론, 아침 일곱 시.”


 아침잠이라고는 없는지 손님은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아무래도…… 조금 그렇죠? 그때는 이 주변에 사람 한 명 없을 시간이에요. 요새는 해도 늦게 떠서 껌껌하기도 하고요. 아홉 시는 어떠세요? 제가 한 시간 일찍 와서 준비하고 있을게요.”


 “너무 늦는데.”


 “그럼 여덟 시 반?”


 “그건 조금 늦고.”


 “……여덟시로 하시죠.”


 “좋아.”


 손님은 아주 만족스러운 듯 그 자리에서 구매를 결정한다.


 구매가의 20%에 해당하는 돈―이수광이 진행비 명목으로 진강석에서 돈을 뜯어냈다―을 선금으로 받은 양태호 사장은 구매확인서를 꺼내들고는 거의 애걸복걸하듯 묻는다.


 “저, 선생님? 성함 좀 알려주시겠어요? 이젠 진짜 알려주셔야 해요.”


 “갑자기 이름은 왜? 난 이수광이라고 하네만.”


 “……네?”


 금은방 사장이 되묻는다.


 “마지막에 뭐라고 하셨죠?”


 “하네만.”


 “아뇨, 그 성함이…….”


 “이수광. 왜? 예전에 만났던 애인이랑 이름이 같아?”


 이수광과 같은 성별을 가진 것으로 모자라 제법 비슷한 이름을 가진 이가 몇 명 존재하기는 했지만, 그런 이유로 인해 찾아든 당혹스러움은 아니었던 양태호 사장이 손님의 얼굴을 보다 자세히 관찰한다.


 사진으로 받아본 얼굴과는 다소 괴리가 있지만 분명 팔광 선생, 이수광이 분명하다.


 금은방 사장의 뜨끈한 시선을 이수광이 관자놀이로 받아낸다. 


 “아니요. 아, 알겠습니다.”


 애매한 미소를 짓고는 양태호가 구매확인서를 이수광에게 건네준다.


 “네, 그럼 내일 아침에 뵙겠습니다, 손님.”


 “그렇게 하자고!”


 이수광이 가게를 나서고 시야에서 사라지자마자 양태호가 어딘가로 황급히 전화를 건다.


 “방금 우리 가게 나간 사람, 봤지? 이수광이야. 몰래 따라붙어.”


 금덩이가 이런 식으로 굴러올 줄은 꿈에도 몰랐던 양태호는 씰룩대는 입꼬리에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면서도 애써 침착함을 가장한다.


 그간의 경험으로 미루어봤을 때 일을 그르치는 건 언제나 설레발이었다.


 “침착하자, 침착해. 침착해라 태호야.”


 양태호의 얼굴에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이수광 - 걷는 중

 만족스럽게 금 쇼핑을 마친 이수광은 흐느적흐느적 걸음을 옮긴다.


 분노가 몸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당연히 어느 정도 예견하고 갔음에도 무의식적인 분노가 발끝부터 스멀스멀 전신으로 옮겨 붙으니 정신을 온전히 유지하고 있을 수가 없다.


 물론 양태호에게 찾아가기 직전까지 마셔댄 맥주의 영향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이수광은 밀고 들어오는 역겨움을 숨기려 기를 쓴다.


 머릿속에 단 한 사람만 떠올려야한다.


 여기까지 온 이상, 하나뿐인 아들도 잠시 잊어야한다.

 그래야 원하는 결말에 도달할 수 있다.


 “성길아…….”


 왕년에 잘나가도 8기통 엔진 자동차처럼 한없이 잘나갔던 전설의 도둑 이수광은 실로 오랜만에 옛날을 그리워한다.


 당당했고 혈기 넘쳤던 옛 모습을 떠올리는 것만큼이나 정신건강에 이로운 것도 없다.


 그렇게 쉼 없이 기억을 되감다가 가속도가 붙은 나머지 그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시절에까지 접근한다.


 사람 머릿속에 장착된 기억체계는 자동차의 동작원리와는 달라서 제때 멈추기 어려운 법이다. 브레이크가 없다.


 절도범으로서의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았던 그에게도 슬픈 과거쯤은 있다.


 그 과거는 친아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잔혹한 범죄스릴러였고, 조연으로는 당시 이수광의 아들과 교제 중이던 강신영 소장의 첫째 딸 강신주와 진강석의 아내 전미연이 되겠다.


 이들을 악의 구렁텅이로 빠트린 악역의 이름은 양태호다.


 1년 전 그날은 젊은이들에게 밤새 놀기 위한 명분으로 제격인 할로윈 데이였고, 결혼을 약속한 이성길, 강신주 예비부부에게는 예물을 맞추는 날이었다.


 두 사람은 금은방 주인이 내온 녹차를 마셨고, 정확히 세 시간 후 메스암페타민 급성 중독으로 강신주가 사망했고, 이성길은 다발성 장기기능부전과 사지마비 판정을 받았다.


 같은 날 오전, 동일한 금은방에 방문해 남편에게 줄 선물을 구입했던 전미연 또한 강신주와 같은 증세로 사망했다.


 “양태호…….”


 이수광이 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삭히며 걸음을 이어가던 때였다.


 대로변에 있는 편의점을 지나치자 때마친 주변을 얼쩡거리던 남자고등학생 무리가 힐끗힐끗 건너다본다.


 “저, 할아버지.”


 “…….”


 “할아버지!”


 “…….”


 일흔 살이 되기 전까지는 할아버지로 불릴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69세 이수광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위를 둘러본다.


 편의점 주위에 할아버지라고 불릴 만한 사람은 본인뿐이다.


 “저기, 할아버지!”


 고등학생 세 명이 부랴부랴 달려와 앞에 서서는 무작정 투덜댄다.


 “아까부터 계속 불렀는데.”


 “그랬니? 전혀 몰랐어.”


 이수광은 전부 알고 있었지만 그런 식으로 대꾸한다.


 “어쨌든. 저기 할아버지, 혹시 바쁘세요?”


 무리 중에 빼빼 마르고 키가 훌쩍 큰 학생3이 묻는다.

 성의와 예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태도다.


 “아무래도 바쁜 편이지?”


 어린 학생들을 상대하는 순간이니만큼 이수광은 나이에 맞지 않게 애교스러운 미소를 만들어내며 대답한다.


 뒤이어 그는 요상한 눈빛으로 옆에 서있는 학생2를 노골적으로 뚫어지게 쳐다본다.


 썩 청결해 보이는 인상의 노인은 아니라는 점 외에도 이수광이 지닌 여러 외양적 특징 때문에 그리 유쾌한 그림은 아니다.


 침을 질질 흘린다거나 입맛을 다시는 등 대놓고 불쾌감을 불러일으킬 만한 행동을 곁들인 것도 아니지만, 어찌됐든 학생 입장에서는 충분히 불쾌하게 비춰질 수 있을 듯하다.


 여드름에 잡아먹힌 얼굴을 한 왜소한 체격의 학생2는 짐짓 모른 척 이수광의 시선을 외면한다.


 “아.”


 이수광의 기억 더듬기가 끝난다.

 아까 지하철 옆옆옆옆 자리에 앉아있던 학생이다.


 콧잔등을 중심으로 사이좋게 모여 있는 눈과 입 때문에 균형미라고는 없는 못난 얼굴이 우연히 기억에 남아있다.


 “학생, 오랜만이네?”


 “……뭐야? 아는 사람이었어?”


 학생3이 원망의 눈초리를 쏘아댄다. 지름길을 두고 빙빙 돌아간 것이 억울해죽겠다는 표정이다.


 “누, 누구세요?”


 학생2는 혹시 자기가 모르고 있는 집안 어른인가 싶어 잔뜩 쫀다.


 “글쎄다!”


 이수광은 빽 소리를 지르면서 대답하고는 뭐가 좋은지 큭큭대며 웃는다.

 헛기침을 한 뒤엔 표정이 싹 바뀐다.


 “우리 귀여운 학생들, 그래서 용건이?”


 “아, 할아버지. 담배 좀 사다주세요. 저희가 돈은 드릴게요.”


 학생3이 꼬깃꼬깃한 지폐뭉치를 건넨다.


 “허허…….”


 이수광은 자신의 나이를 반으로 나누고 그것을 또 반으로 나눠야만 표현할 수 있는 나이를 가진 새싹들을 탓하고 혼낼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대가리에 든 피가 통돌이 세탁기 속 와류처럼 핑핑 잘 돌아갈 때 독이나 진배없는 담배를 주입할 계획을 세웠다는 사실―이미 과다복용 중이거나―이 통탄스러울 따름이다.


 “똑똑똑? 저기여, 할아버지? 혹시 귀를 먹으셨나여? 안 들리세요오오?”


 먹는 걸로 치면 교내에서 제일일 것처럼 생긴 초고도비만인 학생1이 건들거린다.


 웃음 버튼이 발바닥에 붙어있는지 지가 뱉는 말에 지가 낄낄낄 짜내듯 웃는다. 


 그래, 이유야 어떻든 웃는 건 좋은 거지.


 이수광은 삐쩍 마르고 키가 훌쩍 큰 학생3을 가리키더니 방긋 웃으며 말을 꺼낸다. 


 “학생한테서는 어떤 가능성이 보이네.”


 도를 믿지 않을뿐더러, 조상님의 가호에는 단 한 톨의 관심도 없는 학생3이 조소의 빛을 내비친다.


 “가능성? 천하의 개새끼가 될 가능성은 농후하죠.”


 친구의 농담이 재미있는지 학생1과 2가 배꼽을 부여잡는다.


 “아니, 장난치는 게 아니라 진짜야. 내가 젊을 때 이쪽 일을 했거든.”


 거짓말이 숨 쉬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럽게 터져 나온다.

 이수광은 몰래 꿍쳐둔 담배를 찾는 학생주임 선생처럼 골똘히 학생을 응시한다.


 “잠깐 뒤돌아볼래?”


 얼떨결에 뒤돌아 선 학생3의 몸을 이리저리 살피며 이수광은 은근슬쩍 외투 주머니 속에 들어있던 라이터를 훔쳐낸다.


 “음……, 마른 게 아쉽지만 그래도 제법 괜찮네.”


 “됐고여, 담배나 좀 사다주세여.”


 친구가 은근한 칭찬을 받는 것 같아 기분이 안 좋아진 학생1이 재촉한다.


 모처럼 만난 새파랗게 어린 학생들에게 다양한 이야기를 선사해주고 싶으나 뒤로 스케줄이 꽉 밀려있는 이수광이 아쉬운 마음을 애써 숨기고 순순히 편의점으로 들어간다.


 “개쉽네. 괜히 긴장했다.”


 자신의 공로를 인정해달라는 투로 학생1이 거만한 표정을 짓는다.


 “자, 여기. 담배.”


 이수광은 거스름돈과 학생들이 주문한 담배를, 개인사비로 구매한 새콤달콤 세 개를 각 학생들 외투 주머니에 쏙 넣어준다.


 “이건 내 선물. 담배 피우고 먹으면 더 맛있어.”


 “오, 이 할아버지 센스 보소?”


 학생1이 씩 웃으며 감탄한다.


 “아까 말했다시피, 내가 오늘 특히 좀 바빠서. 이만 가볼게.”


 담배에 정신이 팔린 이 나라의 새싹들은 제대로 인사도 받지 않고 부랴부랴 자리를 뜬다.


 그 아이들은 애석하게도 당장 담배를 피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들이 소지하고 있던 라이터는 전부 이수광의 주머니로 본거지를 옮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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