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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해인 Oct 17. 2024

14. 경찰과 도둑이 한패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이수광 - 작전 수행 중

 약속장소에 도착한 이수광이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딱 봐도 거동이 수상해 보이는 남자를 단박에 발견하고 그쪽으로 다가간다.


 “혹시 당근?”


 이수광이 웃음 띤 얼굴로 묻는다.


 “……그런 것도 아십니까? 그나저나 조용히 하세요. 괜히 웃지 마시고.”


 상대방이 먼저 꾸벅하기에 거기에 맞춰 이수광도 꾸벅 인사한다.


 웃지 말라기에 웃음도 지운다.


 이수광은 자체 제작한 체내 수납장에 수납해 온 물건을 남자에게 건넨다.


 그러자 남자는 정성껏 포장한 사람 마음은 생각지도 않고 뒷주머니에서 커터 칼을 꺼내 물건을 푹 찌르더니 칼끝에 묻어난 흔적을 혀로 핥는 게 아닌가?


 “칼로 찍어먹으면 더 맛있어?”


 “…….” 


 싸가지를 밥 말아먹고 소화까지 시키고 나온 남자는 대꾸도 없이 들고 온 쇼핑백을 불쑥 내민다.


 그 길로 휙 뒤돌아 왔던 길을 돌아간다.


 더 많은 얘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두둑한 현금만큼이나 두둑하지만 이수광은 아쉬운 대로 손을 흔든다.


 “잘 가!”   





 #조직원1 - 업무 보고 중    

 조팝나무 뒤에 숨겨지지도 않은 몸을 최대한 열심히 숨겨가며 좆밥처럼 뱁새눈으로 곁눈질해가면서 이수광의 행동을 빠짐없이 관찰하던 조직원1이 양태호 사장에게 급히 전화를 건다.


 ―어, 왜, 뭐, 뭐가 좀 나왔어?


 양태호 사장이 입사 합격 전화를 기다리는 지원자처럼 호들갑스럽게 전화를 받는다.


 사장님의 목소리가 인근 공사장 소음 때문에 잘 들리지 않는다.


 조직원1이 반대편 귀를 검지로 틀어막는다.

 잘 안 들리는 건 똑같다.


 그는 공압식 해머 드릴에 지지 않게끔 큰소리로 말한다.


 “예, 사장님이 말씀하신대로 미행하고 있는데요. 이수광 이 양반, 약을 파는 거 같은데요? 고등학생들 담배 심부름도 하는 것 같고.”


 ―뭔 소리야……. 평생 털이로 밥 먹던 양반이 웬 약을 팔아.


 “진짜에요. 제가 직접 봤어요. 돈 받고 가루 파는 거.”


 ―개살구(가짜) 아니야?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되는데.


 조직원1은 잠시 멈칫한다.


 “……물론 그럴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사가는 사람이 칼로 찍어 먹어보고 가져가던데요?”


 ―됐고! 일단 내 앞에 데려와. 어차피 그 양반 잡아다가 물어볼 것도 많았는데, 잘 됐다.


 고민을 이어가던 양태호 사장이 결단을 내린다.


 “죽입니까?”


 ―……그 양반한테 물어볼 거 많다니까 죽이긴 뭘 죽여. 그리고 언제 우리가 직접 사람 죽인 적 있어?


 양태호는 부하의 덜 떨어지는 업무능력이 마냥 아쉽다.


 “아……. 죽고 싶게 만든 적은 있어도 직접 죽인 적은 없죠.”


 ―조심히 잘 데려와. 사람들 눈에 띄면 안 된다.


 어린아이에게 심부름을 맡기는 심정으로 양태호 사장이 뒤늦게 덧붙인다.


 ―아아, 그 이수광한테 약 사간 애한테도 따라붙어서……. 아니다. 그냥 걔도 잡아와.


 “예, 알겠습니다.”


 조직원1이 자신만만하게 대답한다.


 ―애들 더 보내줘?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지금 광식이랑 같이 있어요.”


 광식이라 불리는 조직원2가 멀찍이 서서 반갑다는 듯 소리친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잘 쫓아가. 둘 다 허튼짓하지 말고.


 이수광이 부하직원들의 사기를 바닥으로 내리꽂는다.


 허튼짓할 생각은 한 톨도 없었던 조직원1과 2가 풀이 다 죽은 목소리로 대답한다.


 “……예에.” 


 ―그래, 이따 보자.


 부하직원들의 복지에 인색한 양태호는 통화를 마치기 직전, 자율식사 원칙을 거론하며 알아서 끼니를 해결할 것을 권하는데 그마저도 주어진 일을 모두 무사히 끝냈을 때에만 한정한단다.


 식사비 지원은 당연히 없다.  




 

 #이수광 - 여전히 작전 수행 중  

 한편, 이수광은 어린아이처럼 붉은색의 포석만을 골라 밟아가며 깡충깡충 나아간다.


 나이에 맞지 않은 발랄하고 과격한 동작 때문에 무릎 연골의 수명이 2주 정도 줄어든 건 무척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


 바닥을 보며 걷던 이수광이 발아래로 홀연히 그림자가 나타나자 자연스럽게 고개를 든다.


 오늘따라 찾아오는 손님이 많다.


 “저, 영감님.”


 “누구?”


 조직원1의 위압적인 생김새에 이수광은 저도 모르게 현금이 들어있는 쇼핑백을 등 뒤로 감춘다.


 “통성명은 차차 하기로 하고. 아까 보니까 약을 팔던데.”


 한껏 몸을 부풀린 조직원1이 성대를 꽉 눌러 말한다.


 “누구 허락받고 여기서 이러는 거지?”


 “누구한테 허락받고 뭘 해본 적이 없어서. 허락을 받아야 되나?”


 이수광이 천진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이 일대에서 병원 놀이하려면 우리 사장님한테 허락받아야지. 엄연히 이 바닥 룰이 있는데. 안 그렇습니까, 영감님?”


 “그래?”


 이수광이 뒷목을 긁적인다.


 “그럼 허락받아야지. 그 사장님이라는 분은 어디로 가야 만날 수 있으려나?”


 비굴한 기색은 털끝만큼도 느껴지지 않는다. 


 예상외의 협조적인 태도에 외려 당황한 조직원1은 일단 본인을 따라오라고 손짓한다.


 “근데 아예 이참에 나랑 비즈니스 파트너가 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지 않아? 내가 최근에 종목을 바꾸고 싶어서 말이야. 이쪽 판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일까 하는데. 나이가 나이인지라 몸으로 때워가면서 돈 버는 것도 슬슬 힘들어가지고.”


 이수광의 말에 조직원1은 사업과 관련해서는 자기한테 말해봐야 소용이 없다고 대답을 회피한다.


 머리 담당은 따로 있고 자기는 얼굴 담당이니 이따 사장님을 직접 만나 얘기하란다.


 “총각이 얼굴 담당이야?”


 농담도 잘 친다며 이수광이 폭소하자, 조직원1은 표정을 싹 바꾸며 자기는 생전 농담이라고는 뱉어본 적 없는 사람이라며 진지하게 반박한다.


 농담을 잘 치는지는 모르겠지만, 주먹은 좀 치는 것 같단다.


 “……음, 그렇게 진지한 얼굴로 대답하면 내가 할 말이 없어지는데. 일단 가자고!”


 이수광은 조직 내에서 얼굴을 담당하고 있는 총각의 기분이 얼른 누그러지길 바라며 걸음을 선선히 옮긴다.





 #양태호 - 흥분하는 중

 이수광을 무사히 잡았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양태호 사장은 곧바로 황중근 이사에게 전화해 뒤에 잡혀있는 금은방 손님들의 예약 방문 일정을 전부 취소해달라고 지시한다.


 접점이라고는 없는 업종이지만, 워낙에 입지전적인 인물이라 다른 사람 입을 통해 알음알음 전해 듣던 전설적인 대도를 영접할 생각에 가슴이 마구 뛴다.


 팬심과 욕심이 오십 대 오십으로 공존한다.


 그때, 핸드폰에서 요란한 알람이 울린다.


 엥? 이게 뭐람?


 집 안방에 설치되어 있는 금고의 잠금이 해제되었다는 뜨끈뜨끈한 소식이다.


 너무나도 뜨거운 소식에 양태호 사장은 의자에서 폴짝 일어나 집으로 달려간다.


 급히 가는 와중에도 타고난 수전노답게 금은방 문단속을 잊지 않는 꼼꼼함을 보인다.





 #조직원1 - 답답해하는 중

 “여보세요. 여보세요? 야, 야!”


 조직원1은 답답해 돌아버릴 지경이다.


 이수광에게 약을 사간 구매자를 잡아오기로 했던 조직원2(광식이)와 연락이 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통화는 연결이 되는데 말이 없다.


 “연락 안 되면 그냥 두자고. 일단 갈 사람은 먼저 가야지. 이래 봬도 내가 제법 바빠서 말이야. 얼른 허락받고 얼른 약 팔아서 얼른 부자가 되고 싶은데? 지금 순간에도 부자로 가는 열차는 저 멀리 떠나가고 있다고!”


 이수광은 조직원1의 에스코트를 받아 무사히 태양금은방에 도착한다.


 조직원1과 이수광은 가게 앞에서 의외의 인물을 만나는데, 바로 경찰이다.


 이름은 진강석, 계급은 경장이란다.


 게다가 이수광과 친분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옆에는 두 볼이 벌겋게 달아오른 조직원2(광식이)가 세상과의 연결을 끊어진 상태로 수갑에 묶여있다.


 잠깐 기절한 것으로 조금 있으면 다시 무사히 연결될 것이다.


 진강석이 약간의 물리적 충격을 가해 와이파이를 끊어놓았다.


 “……뭐야? 당신 누구야!”


 얼굴 담당 조직원1의 얼굴이 더욱 못생겨진다.


 “궁금한 점은 여기 영감님이 설명해 줄 거야. 그러니까 일단 지금은 조용히 하고 수갑부터 찰까?”


 진강석은 미안한 기색 하나 없이 이수광에게 떠맡긴다.


 진강석이 수갑과 케이블타이를 이용해 조직원1과 2를 금은방 출입문 손잡이에 엮어 하나의 살아있는 미술작품으로 만든 뒤 황급히 말한다.


 “일단 나는 바로 가야되니까, 경찰 오면 대충 이것들 넘겨주면 돼요. 아아아, 맞아, 직접 경찰 마주치는 건 위험하니까 근처에 숨어서 지켜보세요. 경찰이 잘 주워가는지.”


 “오케이! 나만 믿어.”


 이수광이 전혀 믿음직스럽지 않게 대답한다.





 #강신영 - 부랴부랴 달려오는 중

 진강석의 연락을 받고 황급히 금은방 골목에 도착한 강신영 소장은 두 명의 인간과 출입문이 하나가 된 현대미술 작품을 보고 긴 한숨을 내쉰다.


 “……얘는 집에서 잠이나 잘 것이지 뭘 하고 돌아다니는 거야.”


 구원의 손길이 되어줄 행인의 등장에 잔뜩 흥분한 조직원1은 얼간이 같은 미소를 지으며 큰소리로 애원한다.


 “저 선생님? 안녕하세요? 제가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이 꼴이 됐는데,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그러자, 어느새 잃은 정신을 되찾은 양쪽 평균 시력이 1.5에 달하는 조직원2(광식이)가 동료를 만류한다.


 “야야, 됐어. ……경찰이야.”  

   




 #양태호 - 부랴부랴 귀가 중

 집에 도착하자마자 양태호는 안방 금고부터 살핀다.

 금고는 말 그대로 활짝 열려있다.


 “씨발, 뭐야!”


 욕이 절로 나온다.

 금고 내용물을 살핀다.

 다행히 사라진 물건은 없다.


 '단순히 오작동인가?'


 미쳐 날뛰던 심장이 잠잠해진다.


 “얼마를 주고 맞춘 건데 고장이 나고 그러냐. 아, 씨발 좆같네.”


 양태호는 어떤 상황에서도, 급기야 혼자 있는 공간에서도 예의를 놓지 않는 사람이다.


 그랬던 그가 이렇게 욕설이 난무한 문장을 지껄이고 있다는 건 기분이 저 밑바닥으로 치닫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 그의 기분은 전혀 고려하지 않겠다는 듯 핸드폰 알람과 동시에 현관문 초인종이 울린다.


 “또 뭐야.”


 대궐 같은 집에서 살기 시작한 이래로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은 일들이 세 가지나 연달아 일어난 것이다.


 스마트폰 어플로 연동시켜 놓은 금은방 경보시스템이 해제되었다는 메시지가 도착하고, 출근시간이 아닌 한낮에 초인종이 울리는 것으로 모자라, 지난주에 만났던 소개팅녀에게서 식사 제안이 담긴 채팅이 도착한다.


 처음 겪는 세 가지 일을 목도한 사람답게 양태호는 화들짝 놀랐고, 너무 격하게 놀란 나머지 몸을 일으킬 때 정강이로 금고 옆에 얌전히 있는 원목테이블을 가격한다.


 “왁!!”


 양태호의 성대를 타고 공기로 발산된 괴성이 집안을 메우고, 테이블 위에 있던 와인과 유리잔이 엎어진다.


 다행히도 유리잔은 깨지지 않았고, 불행히도 와인병의 내용물이 콸콸콸 쏟아져 나와 테이블을 적시고 안방 문간을 넘어 거실까지 흘러들어간다.


 붉은색 액체가 슬금슬금 거실 바닥을 물들인다.


 “아무도 안 계십니까?”


 집주인과 집이 혼란한 와중에도 초인종은 쉼 없이 울린다.


 양태호는 통증이 밀려오는 정강이를 부여잡으며 욕을 중얼거린다.


 대놓고 얼굴을 찡그리며 현관문에 대고 묻는다.


 “누구세요?”


 그러자, “아랫집입니다!” 하고 굵직한 목소리가 대답해온다.


 자연스럽게 양태호는 머릿속으로 아랫집에 사는 구성원을 떠올린다.


 노부부와 다 큰 삼십 대 아들이 살고 있다.


 가끔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칠 때나 고갯짓으로 대충 인사를 주고받던 사이다.


 의아해하면서도 양태호는 순순히 현관문을 연다.


 문 앞에는 처음 보는 남자가 서있다.


 “……? 누구―”


 양태호의 질문이 채 완성되기도 전에 처음 보는 남자는 그의 주둥아리를 손으로 틀어막는다.


 입술은커녕 턱도 꿈쩍할 수 없을 만큼 무시무시한 악력이다.


 양태호의 호흡이 단숨에 뒤엉키고 만다.


 남자는 그대로 턱을 짓누르며 집 현관으로 진입한다.


 현관문이 닫히고 졸지에 초대하지 않은 손님을 집안에 들인 양태호는 두려움을 느낌과 동시에 어안이 벙벙하다.


 왠지 억울하다.


 여태 범법의 세계 최전선에서 지내오지 않았던가.


 일생을 가해자로 지내왔건만, 피해자가 된 건 처음이다.


 잠시 후 무슨 봉변을 당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얼굴만은 무사했으면 좋겠다고 양태호는 내심 바란다.


 아무리 생각해도 소개팅녀가 자신의 얼굴에 빠진 것 같다.


 양태호의 집에 들어선 진강석은 집안에 들어서자마자 풍기는 홀아비 냄새에 절로 인상을 찡그리려고 했지만, 웬걸, 기분 좋은 향기가 반긴다.

 이렇게 편견이 무섭다.


 “일단 진정하세요. 경찰입니다.”


 진강석이 남은 손으로 익숙하게 공무원증을 꺼내든다.


 '경찰?'


 경찰이라는 짧은 단어 하나에 오금이 저릴 만큼 수많은 범죄를 저지르며 지내온 양태호는 차라리 금고를 털기 위해 들어온 강도였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한다. 


 “아, 손. 죄송합니다.”


 진강석이 손을 놓자 양태호는 괜스레 턱을 위아래로 벌려본다.


 동시에 깨끗이 씻고 얼굴에 손을 댄 것인지 무척 신경이 쓰인다.


 얼굴을 안 만지는 게 피부 건강에 있어서 제일가는 팁이다.


 양태호 사장이 불만 섞인 표정으로 묻는다.


 “뭡니까? 경찰이 왜……?” 


 “도난신고가 접수돼서 왔습니다.”


 “도난신고요? 그 신고를 누가 했답니까? 전 한 적 없습니다.”


 양태호의 시선은 끈기 있게 진강석에게 달라붙는다.


 상대방을 탐색하려는 듯 은밀하고도 꼼꼼한 눈빛이다.


 “신고자가 누군지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일단 신고 내용을 알려드리면, 거실 베란다 쪽에서 먼지를 털어내다가 아파트 외벽을 타고 있는 사람을 봤다, 라는 내용으로 접수됐습니다. 아마 도둑인 줄 알고 신고하지 않았나 싶네요.”


 “신고를 받고 오셨다는 건 잘 알겠는데, 왜 현관문을 비집고 들어온 겁니까? 대뜸 입부터 틀어막은 건 또 뭐고.”


 양태호의 어투가 날카로워진다.


 “……일단 나가서 얘기하시죠.”


 진강석은 양태호의 얼굴을 봤을 때 치밀어 오른 분노를 잠재우지 못한 본인의 부주의에 스스로를 책망한다.


 그 순간, 진강석의 시야에 붉은 액체가 들어온다.


 신발을 그대로 신은 채로 진강석이 안방으로 달려간다.


 “어딜 함부로 들어가는 거야! 아무리 경찰이라도―”


 뒤따라 들어간 양태호는 말문을 잃는다.


 “아, 죄송합니다. 와인이었군요. 제 눈에는 꼭 피처럼 보여서.”


 “…….”


 양태호는 정신이 팔린 사람처럼 동작을 멈춘다.


 그의 시선이 금고에 고정되어있다.


 분명 5분 전까지만 해도 온갖 종류의 금과 보석, 현금과 수표로 가득하던 금고가 지금은 텅 비어있다.


 그 말인즉슨, 가장 중요한 거래장부도 사라졌다는 뜻이다.

 스스로의 기억을 의심해 볼 수밖에 없는 상황에 기가 찬다.


 “……씨발, 이건 또 뭐야? 진짜 나 어디 아픈가?”


 아까는 설사에 시달리더니 장 건강에 이어 이제는 금고까지 도둑맞다니.


 양태호는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다채로운 욕을 지껄이기 시작한다.


 어휘 선택이 하도 추잡스러워 듣는 이로 하여금 절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수준이다.


 양태호가 내뱉는 욕을 가만히 듣고 있던 진강석은 ‘저런 식으로도 단어를 조합할 수 있구나.’ 하며 이내 진심으로 감탄한다.


 “저, 선생님? 제가 보기에, 금고……에 문제가 생긴 것 같네요?”


 “……정확히 보셨네요.”


 양태호는 머릿속으로 금은방에서부터 집까지의 동선에 이어 집에 도착한 직후 상황까지 복기한다.


 “집에 도둑이 들었다는 건 언제부터 알고 계셨어요?”


 진강석이 드디어 경찰다운 질문을 던진다.


 “얼마 안 됐어요.”


 “정확히 언젠지 말씀해주세요.”


 경찰이 피해자의 정확한 답변을 요구한다.


 피해자가 더할 나위 없이 정확하게 답한다.


 “지금이요.”


 “아……, 가만 보면 일반 가정집에 두기에는 조금 과한 금고인 것 같은데, 혹시 이곳 말고 다른 곳에도 금고를 설치하셨을까요?”


 "……아. ……아!!!"


 진강석의 말에 양태호는 다시 한 번 펄쩍 뛰며 절망에 가까운 표정을 짓는다.


 그는 허둥지둥 다급히 집을 나선다. 금은방 금고에는 훨씬 더 많은 돈과 금이 들어있다.

 거래장부도 있다.





 #홍준영 - 남의 집 터는 중

 “…….”


 집이 다시 고요해지자, 안방 화장실에 숨어있던 홍준영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모습을 드러낸다.


 정돈되지 않은 덥수룩한 머리스타일의 가발과 알이 두꺼운 검은색 뿔테안경, 멋없는 콧수염까지.


 나름 변장한 모습이다.


 그는 텅 빈 집을 편안한 마음으로 활보하며 한 곳으로 잠시 치워둔 금고에 있던 물건들을 준비한 가방에 차곡차곡 넣는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장롱 서랍, 부엌 찬장까지 꼼꼼히 뒤져가며 돈이 될 만한 것들은 모조리 챙긴다.


 시선은 항상 왼쪽에서 오른쪽, 위에서 아래로.


 그래야 놓치는 것 없이 말끔히 털 수 있다.


 악질적인 방법으로 재산을 축적한 사람답게 온갖 장소에 값비싼 물건들을 숨겨놓은 듯하다.


 잭팟은 양태호의 성욕 처리를 위한 다양한 성인용품을 모아둔 서랍에서 터진다.


 누군가의 엉덩이를 모방해 만든 것으로 보이는 오나홀 안에는 다이아목걸이가, 온열기능이 있는 원통형 오나홀 속에는 다이아반지들이 잠들어있다.


 살뜰하게 수색을 마친 홍준영은 진강석의 부탁에 따라 스카치테이프를 이용해 유리컵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집주인의 지문을 본뜬 다음,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부엌 커피머신 ‘원두 추출’ 버튼에 있는 지문도 채취한다.


 앙증맞고 동그란 모양의 버튼이 지문을 채취하기에 안성맞춤이다.


 할 일을 마친 홍준영은 베란다로 나가 능숙하게 창문을 열고 침입했던 방법 그대로 다시 탈출한다.


 왕년에 아주 잘 나갔던 털이의 제자답게 창문을 통해 윗집 베란다로 들어간다.


 몸놀림이 어찌나 날래고 가벼운지 원숭이가 따로 없다.


 베란다를 통한 침투 방법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이수광의 이럴수광」 2부 실전 편, 3장에 수록되어 있는 ‘아파트 편’을 참고하길 바란다.


 물론, 이 방법은 타깃으로 한 아파트의 윗집의 협조가 있어야만 실행할 수 있는 계획이다.


 이번의 경우, 집주인과의 원활한 합의가 있어 가능했던 것이다.


 집주인은 다름 아닌 내년에 일흔을 바라보고 있는 한 노인으로, 부득이한 사정교도소 수감, 현재는 탈옥했다이 있어 집을 비운 상태다.


 예전에 이곳에서 살던 이전 집주인은 반년 전, 시세 2배에 육박하는 가격으로 집을 구입하겠다고 나선 현 집주인 덕분에 지방으로 내려가 호화 별장을 짓고 여유로운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작업을 마친 이수광은 금은방 골목을 유유히 빠져나와 목을 축인다.


 오랜만에 진지하게 일하려니 힘들어 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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