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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해인 Oct 18. 2024

15. 소, 소속이요? 일단 국적은 한국인데요……

 #강신영 - 통화 중

 조직원1과 2를 경찰서 유치장까지 직접 데리고 간 강신영 소장이 부하직원으로부터 온 전화를 받는다.


 “어, 도착했어?”


 ―네, 소장님.


 부하직원의 말에 강신영 소장은 잠시 기다린다.


 핸드폰 너머로 여러 사람이 소란스레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 네. 소장님 말씀대로 관계자 협조 구했는데, 면회객이 그동안 소장님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네요? 이성길 환자 증상이 워낙에……


 강신영이 말을 자르고 끼어든다.


 “설명은 됐고, 그럼 일단 최소 인원만 남겨두고 나와. 내 생각에 분명 한 번은 그쪽으로 갈 거 같거든? 잘 지켜보라고 해.”


 ―네, 알겠습니다. ……네? 아, 잠시만요.


 부하직원의 목소리가 잠시 멀어지더니 이내 커진다.


 ―소장님! 여기 직원 분이 이성길 환자 침상에서 발견했다는 쪽지를 전해주셨어요.


 “쪽지?”


 ―네! 이렇게 적혀있습니다. ‘곧 끝나니 기다려주세요. 항상 고맙습니다.’ ……뭐가 곧 끝난다는 거죠?

     




 #진강석 - 운전하면서 통화 중

 진강석이 발과 입을 부지런히 놀린다.


 “나 지금 가고 있으니까 기다려. 괜히 무리해서 혼자 들어가지 말고. 아까 양태호 집에서처럼만 하면 돼.”


 ―무리해서 들어가라고 해도 안 들어갈 거야.


 홍준영이 말한다.


 ―나 사람 많은 거 싫어하잖아.


 “많은 사람들도 너 싫어할걸?”


 진강석은 반복적으로 액셀을 밟는다.

 엔진에 녹이라도 슬었는지 차 출력이 시원찮다.


 ―엥? 오오! 뭐야? 양태호 왔다. 얼굴에서 빡친 게 느껴지는데? 근데 왜 금은방으로 안 가고 여기로 바로 왔지? 이만 끊는다. 얼른 와, 얼른!


 통화를 끝내고 진강석이 중얼거린다.


 “얘는 왜 갑자기 반말이야…….”





 #조직원3, 5 - 잡담 중

 “우리 주말에 클럽에서 같이 놀던 여자애들 있잖아. 걔네 중에 좀 통통한 애 기억하지? 어제 갑자기 걔한테 연락이 왔어.”


 조직원3이 전자담배를 꼬나문 채로 가죽소파에 드러눕는다.


 옆에서 병맥주를 홀짝이던 조직원5는 별 관심 없다는 투로 무신경하게 대답한다.


 “응, 기억하지. 얼굴은 걔가 더 예뻤어.”


 “전화해서는 대뜸 지 이어폰 봤냐고 묻더라?”


 “웬 이어폰?”


 조직원5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든다.


 “자기가 기억하기로는 우리랑 놀기 전까지는 있었는데 갑자기 안 보인대. 그러더니 그 말투 알지? 의심은 가는데 대놓고 의심 간다고 티는 못 내는 그 기분 더러운 말투.” 

  

 “우리가 훔쳐갔다고? 그게 뭔 개소리야?”


 조직원5는 있는 대로 얼굴을 찡그린다.


 “내가 걔한테 정확히 그렇게 말했어. 염병하지 말라고.”


 “그랬더니?”


 조직원3이 숨을 뱉자 연기가 길게 늘어진다.

 블루베리향이 확 번진다.


 “일단 알았다고 하던데? 더 찾아보고 연락 주겠다고.”


 “미친년이네. 훔칠 거면 지갑을 훔쳤지. 지갑 비싼 거 쓰던데.”


 그렇게 두 조직원은 서로 다른 종류의 담배를 꼬나물고 소파에 몸을 기댄다.


 “……아, 맞다. 나 아까 출근할 때 공원 잔디밭에서 개똥 밟았잖아.”


 조직원3이 투덜댄다.


 “그래서 슬리퍼 신은 거였어?”


 이번에도 흥미가 안 생긴다는 듯 조직원5는 시큰둥한 반응이다.


 “맞다, 나도 아까 출근할 때 오면서 공원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들은 거 하나 있어. 그 공원 잔디밭 있잖아. 노숙자들이 화장실로 쓰고 있대.”


 “…….”


 “그나마 건강한 노숙자가 싼 똥이길 빌게.”


 조직원3의 근황 토크는 끝나지 않는다.


 “나 아까 점심 먹고 치과 갔다 왔는데, 왼쪽 어금니 신경치료 해야 된대. 또 돈 나가게 생겼어. 치과에다가 돈 쓰는 게 제일 억울한 거 알지?” 


 “그래? 신경 쓰이겠다.”


 “그러게 말이야. 한두 푼도 아니고. 이번 달 수당은 전부 치료비로 나가게 생겼어. 앞으로 서너 번은 더 가야 된대.”


 조직원3이 아까워 죽겠다는 듯이 한숨을 푹푹 내쉰다.

 그러자 담배연기가 입에서 안개처럼 밀려 나온다.


 “그러게 평소에 신경 써서 미리미리 검사 좀 받지.”


 그렇게 말하면서도 내심 뜨끔한 조직원5가 자가 진료 일환으로 혀를 이용해 이 곳곳을 훑고 일일이 눌러본다.

 다행히 시리거나 별다른 통증이 느껴지는 곳은 없다.


 “어디 그게 쉽나. 당장 불편한 곳이 없으니까 안 갔지. 우리 일이 좀 바빠?”


 “무신경했네.”


 그때 구석에서 야구경기 중계를 시청하고 있던 조직원6이 버럭 소리친다.


 “아니, 그걸 놓치면서 무슨 야구를 하겠다는 거야. 븅신 새끼, 아오! 신경질 나!”


 “쟤는 오늘도 신경질적이네.”


 조직원5가 중얼거린다.


 “내가 봤을 때 저 야구를 끊어야 돼. 쟤는 그래야 오래 살 거야.”


 조직원3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조직원5를 향해 말한다.


 “이참에 너도 치과 가서 검진 한번 받아. 내가 가는 치과 친절하고 좋아.”


 “그래야겠다. 신경 써줘서 고마워.”


 “아가리.”


 바 테이블에 팔을 기댄 채 서있던 황중근 이사가 부하들의 대화에 눈치도 없이 불쑥 끼어든다.


 "……."

 "……."


 그의 말 한마디에 조직원들의 열띤 대화는 막을 내린다.


 단번에 침묵을 만들어 낸 그는 경제적인 단어 사용에 내심 뿌듯해한다.  

   




 #강신영 - 다시 통화 중

 고혈압 약을 챙기지 않아 잠깐 집에 들른 강신영 소장이 전화를 받는다.


 ―소장님, 진강석입니다.


 “어, 강석이 왜? 아직 서에서 연락 안 왔는데? ……아, 맞다. 그리고 아까 종로에서 걔네들은 뭐야? 어디 식구 애들인데?”


 강신영은 이수광 탈옥 소식이 전해지지 않았길 바라면서 컵에 물을 한가득 따라 알약과 함께 꿀꺽 삼킨다.


 탈옥 소식을 누구보다 일찍 듣고 누구보다 탈옥수와 가까이에 있을뿐더러, 내친김에 일도 하나 같이 하고 있는 진강석 경장은 그 나름대로 강신영 소장이 이번 계획에 대해 몰랐으면 한다.


 해서 고민 끝에 대충 둘러댄다.


 ―어……, 그건 제가 직접 얼굴 보고 말씀드릴게요. 아무튼 그것보다 그, 예전에 말씀하신 사모님 선물 말입니다. 지금 제 앞에 있거든요?


 “뭐!? ……진짜야? 진대한이를 찾았다고?”


 귀찮은 듯 늘어지던 강신영의 목소리가 한껏 진지해진다.


 진대한은 강신영이 강력계 형사로 근무할 당시에 놓쳤던 흉악범이다.


 ―예, 직접 확인했습니다. 정보원 통해서 따로 듣기도 했고요.


 홍준영은 졸지에 진강석의 정보원 신세가 되고, 마약사범은 살인범이 된다. 


 “강석이 너 지금 누구랑 같이 있는데?”


 진강석이 일부러 뜸을 들여 세어보는 척한다.


 ―음, 지금 저까지 포함해서 한 명인 것 같은데요?


 “……혼자서 잘 포장해 올 수 있겠어? 이거 예전처럼 포장 대충 하면 내가 마누라한테 할 말이 없어. 강석아, 마누라가 내 고등학교 1년 선배인 거 알지? 마누라나 나나 내일모레 퇴직이야. 이번 기회에 마누라한테 칭찬 좀 받아―”


 “당신 이게 지금 무슨 소리야?” 


 항시 스피커폰 모드로 통화하는 습관 때문에 의도치 않게 통화 내용을 모조리 청취하고 있던 강신영의 아내가 화들짝 놀란다.


 자기 말고 숨겨놓은 아내가 따로 있나 싶다.


 “……어?”


 강신영이 아내의 등장에 변명하듯 말을 더듬는다.


 “어어, 아니, 다,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장르는 아니고, 잠깐만.”


 강신영이 돌연 목을 가다듬고는 핸드폰을 향해 큰소리로 외친다.


 “야, 강석아! 잡아! ……너 살살해라! 총 없지? 총 없는 거 확인하고 들어가! 총 쏘다가 엄한 사람 다칠라.”


 ―예, 총은 있는데 안 쏠게요. 그럼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태연한 목소리로 통화를 마친 진강석 경장은 경쾌한 발걸음으로 선물이 가득 들어있을 지하 술집으로 성큼성큼 걸어간다.     





 #홍준영 - 심문받는 중

 “아니, 왜 말이 없어? 어디서 오셨냐고?”


 “…….”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퍽 난처한 위치에 놓인 홍준영은 과감히 선제공격을 날려볼까 고민한다.


 눈앞의 남자는 고작 100킬로그램이 약간 넘을 것으로 보이고 신장은 180센티미터가 조금 안 될 것 같다.


 상대방이 반격을 해온들 기껏해야 입술이 터지고 코뼈가 부러지거나 이 두어 개가 잇몸과 분리될 것이다.


 이는 무려 28개나 있지 않은가.


 그중 몇 개가 없어진다고 죽는 것도 아니다.


 객관적으로 판단했을 때 저질러봄직하다는 생각이 든다.


 조직원4는 스스로를 칭찬하는 듯한 어조로 으스댄다.


 “이거 웃긴 양반이네. 누가 보면 내가 엄한 사람 잡아다 놓은 줄 알겠어? 내가 아까부터 딱 당신 보고 있었어, 알아? 저 나무 뒤에 숨어서 우리 가게 사진 찍고 막 그랬잖아! 아니야? 뒷문이라고 내가 모를 줄 알았어? 당신 딱 들켰어.”


 “정신 사납게 뭘 밖에서 이러고 있어. 그냥 안에 데려가서 족쳐.”


 홍준영은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휙 돌렸지만, 상대방의 움직임이 더 빠르고 전문적이다.


 손수건으로 입과 코가 가려지고 약품 냄새가 확 느껴진다.


 홍준영은 영화에서 보던 장면이 실제로 가능한 일이었다는 것에 큰 감명을 받는다.


 이윽고 시야가 어두워지고 머릿속 전원이 뚝 끊긴다.





 #진강석 - 상황 파악 중 

 “…….”


 홍준영이 전화를 받지 않는다.


 진강석은 계획에 첫 번째 차질이 생겼다는 걸 직감한다.


 그는 바로 이수광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전한다.


 “차질이 좀 생겼어요. 가게 앞에 왔는데요. 양태호가 여기 있다네요? 그리고 아무래도 홍준영이가 잡힌 것 같아요. 전화도 안 받고, 아무리 찾아도 안 보여요.”


 태양금은방에 숨어 있다가 양태호를 깜짝 놀라게 할 계획이었던 이수광은 실망을 금치 못한다.


 ―그 정도면 ‘좀’이 아닌데? ……흠, 똥 싸러 갔나?


 이수광이 아무 일 아니라는 듯 덧붙인다.

 연극 무대 위의 배우가 할 법한 말투다.


 ―이 늙은이가 한탕 더 뛰지 뭐. 준영이가 할 일, 내가 할게. 아무렴 기술은 아직 내가 더 낫지 않겠나? 민중이 지팡이께서는 지팡이나 열심히 휘두르고.





 #양태호 - 의심 중   

 금은방 경보시스템 알람이 울렸으니 금은방으로 달려가야 맞지만, 중간에 생각을 고쳐먹은 양태호 사장은 또 다른 금고가 있는 곳으로 왔다.


 아무래도 뭔가가 수상하다.


 다분히 의도성을 띠고 있다고 할까?


 과하다 싶을 정도로 타이밍이 딱딱 들어맞는다.


 금고 알람을 미끼 삼아 똥개 훈련을 시키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아주 강하게 든다.


 이건 아주 뒤가 구리다는 것이다.

 뒤가 구려도 한참 구리다.

 너무 구려 냄새가 폴폴 풍긴다는 뜻이다.     





 #홍준영 - 기절했다가 깨어나는 중

 정신을 차리자 눈앞이 껌껌하다.

 시꺼먼 게 아무것도 안 보인다.


 눈을 떴다고 착각했나 싶어 재차 눈을 떠보지만 그대로다.

 눈을 뜬 상태로 또 뜰 수는 없다.


 얼굴 전체에 이물감이 느껴지는 것으로 봐서 두건 같은 것에 가려져있는 듯하다.


 숨이 원활히 쉬어지지 않는다.


 공기를 찾아 수차례 헐떡였지만 공기 자체가 사라진 듯 고통스럽다.


 “이 새끼가 누군데 그래?”


 새로운 목소리에 홍준영은 잔뜩 긴장한다.


 “그건 저도 잘……. 이제 알아봐야죠?”


 조직원4는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는 타입이다.


 “열심히 안 알아보기만 해 봐. 안 그래도 할 일 많다니까, 도대체 왜 일을 만들어서 하는 거야?”


 새로운 목소리는 길길이 날뛴다.


 “형님, 그게 아니고요. 이 놈이 가게 앞에서 계속 얼쩡대고 사진까지 찍는 것 같아서……. 이 새끼 이거, 딱 봐도 수상한 새끼에요! 순 나쁜 새끼라니까요!”


 진짜 나쁜 새끼한테 나쁜 새끼라는 말을 들으니 기분이 상당히 나빠진 홍준영이 입술을 앙 다문다.


 부하의 말에 잠시 멈칫하더니 새로운 목소리가 홍준영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을 건다.


 “숨 쉬기 불편하지?”


 홍준영이 고개를 세차게 끄덕인다.

 이대로 있다가는 산소 부족으로 또다시 기절할 것 같다.


 “머리에 쓰고 있는 거 벗겨줄 테니까, 우리 말 잘 듣는 거야? 알았지?”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두건이 벗겨진다.


 홍준영은 산소와 함께 두 눈으로 눈이 아릴 정도로 밝은 조명을 받아들인다.


 홍준영은 눈앞에 서있는 얼굴과 몇 시간 전에 이수광이 보여줬던 사진 속 인물의 모습과 대조해본다.


 황중근이다. 직함은 이사.

 하는 일은 양태호 따까리. 


 “소속이 어디야? 어디서 왔어? 왜 우리 가게 앞에 얼쩡거리고 있었어? 누가 보냈는데?”


 “…….”


 한꺼번에 너무 많은 질문이 날아오자 홍준영은 입술을 움찔대고 아무 말도 못 한다.


 어디서부터 대답해야 할지 도통 모르겠다.


 소속?


 굳이 답변을 하자면 어떤 조직에도 몸담고 있지 않은 무소속 소속이었지만, 이건 상대방이 원하는 대답이 아닐 것 같다.


 번뜩이는 사시미 칼 앞에서 장난스런 대답을 늘어놓기란 쉽지 않다.


 “오호, 나 이거 뭔지 알아. 묵비권 행사 중?”


 칼을 들이밀고 있는 황중근 이사가 피식 웃는다.

 요새 통 웃을 일이 없었는지 이런 사소한 일에도 미소가 지어지는 모양이다.


 “어차피 죽으면 말도 못 하는데, 지금이라도 실컷 말해. 그게 조금이라도 덜 억울하지 않겠어?”


 “첫 번째 질문이 뭐였죠?”


 홍준영은 생각할 시간을 벌 겸 되묻는다.


 “소속! 소속! 소속이 어디냐고!”


 조직원4가 버럭 고함을 내지른다.


 흉기를 소지한 상대를 만족시킬만한 대답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을 이어가던 홍준영은 그냥 솔직하게 대답하기로 한다.


 숭고한 단어를 입에 담는 김에 목소리도 한껏 두껍게 깔아본다.


 “전 대한민국 소속입니다. 아까 또 누가 보냈는지 물었죠? 저를 보낸 사람은 다름 아닌 국가입니다. 국가가 없었다면 저는 결코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했을 겁니다.”


 국가와 약속한 기간 동안의 수감생활을 마치고 사회로 복귀한 전과자의 입장에서는 더 나은 대답은 없을 것 같다.


 “……국가? 그게 뭔 소리야? 국가에서 너를 왜…….”


 황중근 이사는 자체적인 해석이 끝났는지 서서히 안색이 굳어간다.

 그가 한 발자국 물러서며 덧붙인다.


 “……너 이 새끼, 설마 경찰이야?”


 전혀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지만 홍준영은 “아뇨, 전 도둑인데요.” 하는 자충수에 가까운 대답은 꿀꺽 삼키고 재빠르게 긍정의 대답을 내뱉는다.


 “예예, 뭐…….”


 방금까지 남의 집에서 도둑질을 하고 온 홍준영은 눈앞에서 칼이 어른거리고 있는 상황에서 경찰 사칭쯤이야 얼마든지 해주겠다는 당당한 얼굴이다.


 그리고 따지고 보면, 경찰과 함께 수사 비슷한 걸 하고 있으니 나름 경찰 비스무리한 무언가라고 할 수 있지 않나?    

 




 #진강석 - 목적지 도착

 “아직 영업 준비 중입니다.”


 가게 입구를 지키고 있던 문지기가 짐짓 근엄한 표정과 말투로 손바닥을 내보이며 제지한다.


 “예예, 영업 준비, 마저 하세요.”


 진강석은 꾸벅 인사하고 가게로 들어서는 계단으로 향하지만 문지기가 날렵하게 막아선다.


 문지기가 힘주어 말한다.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아, 그런 뜻이었구나. 처음부터 말씀을 하시지.”


 진강석의 심드렁한 태도에 문지기는 성질이 났지만, 이사님의 경고가 생각나 얌전히 있기로 한다.


 “……가던 길 가시라고요.”


 입구 앞에서 계속 어슬렁대는 진강석이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저도 그러고 싶은데, 이미 목적지에 와버려서 애매하네요.”


 진강석이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는 결단을 내렸는지 문지기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본다.


 “그나저나,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갑자기 이름은 왜요?”


 문지기가 경계한다. 당연한 반응이다.


 “뭐, 사실 그쪽 이름이 궁금했던 건 아니고요. 무턱대고 제 소개부터 하면 조금 민망할 거 같아서 해본 말이에요.”


 “그쪽은 누구신데요?”


 “진강석이요.”


 문지기가 눈살을 찌푸린다.


 “……양 사장님 지인이세요? 처음 듣는 이름인데.”


 “그럼 이건 살면서 많이 들어보셨죠?”


 진강석이 뒷주머니에서 공무원증을 내보인다.


 “경찰입니다.”


 “…….”


 문지기는 이런 상황에 직면할 거라는 말은 따로 전달받지 못했다는 얼굴이다.


 그러니 당연히 대처하는 법에 대해 교육받은 적이 있을 리 만무하다.


 때 아닌 경찰의 등장에 그의 사고는 그대로 정지되고 만다.


 “야, 안에 몇 명이나 있어?”


 총알 개수를 떠올리며 진강석이 묻는다.

 물론, 사용할 일은 없겠지만.


 “…….”


 문지기가 좋아하는 여자애를 앞에 두고 고백을 머뭇거리는 것처럼 망설이자 진강석은 속이 터진다.


 기왕이면 신속하게 대답해줬으면 한다.


 사실 자동차를 불법주정차지역에 주차시켜 놓은 바람에 몹시 불안하다.


 경찰도 과태료에는 손쓸 방도가 없다.


 “지금 말 안 하면 교도소에서 콩밥 먹을 때 코로 먹게 될 거야.”


 “어, 어떻게요?”


 순수한 궁금증이 생겨난 문지기가 묻는다.


 “네 입을 찢어버리면 되지 않을까?”


 그렇게 대답한 경찰은 날붙이라도 찾는지 아스팔트바닥을 살핀다.


 총으로는 무언가를 찢을 수 없다. 구멍을 뚫는다면 또 모를까.  


 자신이 콩밥을 선호하지도 않거니와, 코를 본래 용도로 사용하고 싶은 욕구가 육군훈련소에서 영접한 초코파이에 대한 애정만큼이나 막강했던 문지기는 냉큼 대답한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략 대여섯 명쯤 될 겁니다.”


 “그래?”


 진강석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나름의 계획을 세운다.

 그렇게 수립된 계획은 다음과 같다.



 1. 문지기에게 오너 리스크로 곧 일자리가 공중분해 될 테니 다른 일을 알아보라고 한다. 덤으로 방금 하늘이 도왔으니 나에 대한 기억은 잊고 새 삶을 찾아 떠나라고 권유한다.


 2. 계단을 통해 지하로 내려간다.


 3.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 범죄자들을 찾는다.


 4. 기회는 얼마든지 열려있으니 자수할 사람은 얼마든지 자수해도 좋다고 범죄자들에게 전한다.


 5. 자수한 범죄자들은 한 곳에 몰아 두 손과 발을 케이블타이로 묶어둔다. 혹여나 말을 듣지 않는 범죄자들에게는 옛 선조 때부터 내려오는 ‘매가 약이다.’라는 격언을 일깨워준다.


 6. 말을 안 듣는 범죄자들을 신나게 패고 한 번씩 더 팬다.


 7. 경찰서에 지원요청을 하고 범죄자들을 인계한다.


 8. 귀가 후 새로 산 와인을 들이켠다.   


  

 군더더기 하나 없이 깔끔한 계획에 진강석은 만족의 웃음을 짓는다.


 잠시 후, 1번 계획을 무사히 수행한 그는 2번 계획 수행을 위해 발걸음을 옮긴다.


 이윽고, 모든 계획이 그렇듯 변수가 생긴다.


 문지기가 점차 사그라지는 자신감을 가까스로 추스르며 경찰공무원증을 든 사내에게 묻는다.


 “저어, 그럼 저는 그냥 가도 될까요?”


 “그래그래. 그리고 가는 길에 시간 남으면 경찰에 신고 좀 해줘. 전화해서 경찰이 경찰 불러달라고 했다고 말하면 더 빨리 올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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