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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해인 Oct 19. 2024

16. 안녕하세요? 경찰이라고 합니다.

 #양태호 - 궁금증 해소 중

 “무슨 일 있어?”


 가게 안쪽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금고를 지키고 있던 양태호 사장이 약쟁이에 꼴초 특성까지 갖춘 이들의 호위를 받으며 자못 당당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아, 사장님. 별일 아닙니다.”


 황중근 이사가 먼저 나선다.


 “황 이사 넌 맨날 그렇게 말하잖아. 별일인데 별일 아니라고.”


 양 사장이 팔다리가 포박된 채 의자에 앉아있는 홍준영을 살핀다.


 불과 한 시간 전에 본인 집을 싹싹 털어갔던 인물이라는 생각은 당연히 하지 못한다.


 “누군데? 약쟁이야?”


 “아니요. 그게……, 경찰 측 사람인 것 같습니다.”


 안 그래도 심란한 양태호가 황 이사의 말에 경악한다.


 “경찰이면 경찰이지, 경찰 측 사람은 또 뭐야?”


 “저, 그러니까 ……경찰입니다.”


 “몇 번씩 질문하게 하지 말고 상황 설명을 한 번에 잘해봐. 경찰이 왜 내 가게에 왔는지. 아, 물론 경찰이라고 술 먹지 말란 법은 없지. 근데 내 눈에 술을 마시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단 말이지? 팔다리가 다 묶인 채로 술을 마실 수는 없으니까? 내 말이 맞지? 그리고 무엇보다 아직 영업시간도 아닌데.”


 “제, 제가 잡아왔습니다.”


 조직원4가 나선다.

 마치 부모님 허락도 없이 길고양이를 데려온 초등학생처럼 겁에 질린 표정이다.

 오늘따라 사장님이 유독 까칠한 것 같다.


 “설마 경찰일 거라고는……, 관상이 공무원 관상은 아니어서……. 죄송합니다!”


 비과학적인 관상학에 의존하는 조직원의 수준에 탄식을 금치 못한 양태호 사장은 한숨을 푹푹 내쉰다.


 이 커다란 조직에 정신이 제대로 박힌 사람이 본인밖에 없다는 개운치 못한 현실이 마냥 속상하다.


 홍준영 앞에 선 양 사장이 짐짓 온화한 표정으로 말한다.


 “……경찰이시라고? 이거 정말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평소에 공무원 분들 존경하거든요. 검찰, 경찰 따질 것 없이 모두 저한테는 귀하신 손님이죠. 그나저나, 이 총장님은 잘 계시죠?”


 “이 총장님이라 하시면……?”


 홍준영이 조심스레 묻는다.

 뒤통수긴 하지만 전에 한 번 봤다고 그래도 이쪽이 한결 더 편한 감이 있다.


 홍준영이 그렇게 묻자 오히려 양태호가 놀란 척을 한다.


 “아아, 이 총장님과는 교류가 없으신가요? 대한민국에서 예순두 번째로 중요하신 분인데.”


 “……예, 잘 모르겠네요.”


 자칭 경찰의 목소리를 가만히 듣던 양태호의 머릿속은 한 시간 전 기억으로 날아간다.


 신고가 접수됐다며 무턱대고 집으로 찾아온 그 경찰은 아니다.


 그럼 얘는 또 뭐야?


 직업 특성상 가끔 경찰과 접촉할 때가 있었지만, 오늘처럼 생뚱맞은 방식으로 조우한 건 처음 있는 일이다.


 양태호의 위기감지 센서가 더 날카로워진다.


 “잠깐만.”


 양태호는 급히 홍준영의 뒤로 돌아가 묶여있는 손바닥을 살핀다.

 그리곤 부하들에게 지시한다.


 “바지 벗겨봐.”


 “……예?”


 조직원4가 되묻는다.


 “사장님, 저 그건 좀…….”


 양태호의 인류애 넘치는 성적 취향을 익히 알고 있던 황중근 이사는 대놓고 눈살을 찌푸린다.


 “벗겨봐, 일단. 이상하게 생각할 거 없어. 얼굴부터 내 취향 아니니까.”


 의외로 확고한 취향을 가지고 있던 양태호 사장이 부하들을 안심시킨다.


 조직원4와 멀찍이 떨어져 있던 조직원6이 홍준영의 바지를 벗긴다.


 허연 맨다리가 드러나자 양태호가 가까이 다가가 종아리와 안쪽 허벅지 부분을 유심히 관찰한다.


 무언가에 쓸린 것처럼 빨갛게 달아오른 것이 꼭 두툼한 회초리에 맞은 것 같다.


 “이 새끼 맞네. 내 집 털어간 도둑놈.”


 양태호가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친다.


 “너 이 새끼, 여기에 나 있는 거 알고 온 거지? 이 새끼 이거 나 잡아먹으려고 계획적으로 접근했네? 이 가게가 내 가게인 건 또 어떻게 안 거야? 서류상으로는 다른 사람이 대표로 올라가 있는데.”


 그 '다른 사람'인 황중근 이사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묻는다.


 “……도둑놈이라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경찰이 아니고요?”


 “경찰인지 아닌지 그것까지는 모르지. 경찰이라고 도둑질하지 말란 법은 없으니까.”


 양태호의 표정이 점차 험악해진다.


 “이 새끼 옷 몽땅 벗겨서 소지품 확인해 봐. 공무원증 같은 거 있나 보게. 내가 봤을 때는 경찰 아니야.”


 예상치 못한 타의에 의한 전신탈의 위험에 깜짝 놀란 홍준영의 말이 빨라진다.


 “잠깐, 잠깐만요! 이렇게 무턱대고 잡아와서는 팔다리 다 묶어둔 것도 잘못인데, 억지로 옷까지 다 벗기면 진짜 일 커집니다. 신중히 행동하세요.”


 “억울하면 경찰이라도 불러.”


 양태호 사장은 언제 챙겨 왔는지 모를 7번 아이언을 위협적으로 휙휙 돌린다.


 “나야말로 경찰 불러야 돼. 가게에 도둑놈 들어왔다고.”


 “엄밀히 따지면 제가 들어오고 싶어서 들어온 건 아니죠. 저 두 분이 대뜸 기절시키더니 끌고 왔어요. 전 빈집 전문이지 개인 사업장은 한 번도 안 털어봤거든요. 가게는 워낙에 구조들이 다양해서 도둑 입장에서는 그리 구미가 당기는 선택지는 아니랍니다. 일단 기본적으로 난이도가 어려워요.”


 홍준영이 본인의 전문분야를 언급하며 억울함을 표출한다.


 “저기 근데 사장님? 제가 질문 하나 해도 될까요? 개인적인 호기심이 생겨서요.”


 “뭔데?”


 “혹시 가까운 지인 중에 도둑이 있으신가요?


 “무슨 질문이 그렇게 개인적이야? 없다면?”


 양태호가 어이없다는 듯 웃는다.


 “그러면 어떻게 제 다리랑 손바닥보고 제 직업을 유추하셨을까요? 그런 팁은 아무나 알 수 있는 게 아닌데.”


 시간이 아주 잘 간다.

 바지가 발목까지 내려가 있다는 게 흠이지만.

 홍준영은 비교적 만족스럽다.


 “예전에 책에서 봤어. 한때 유명했던 도둑이 쓴.”


 양태호가 선뜻 대답한다. 상대방의 호기심을 채워주기로 한 모양이다.


 “설마 「이수광의 이럴수광」?”


 그럴 리가 없다는 표정으로 홍준영은 오지에서 동향인을 만나기라도 한 듯 목소리와 눈이 한층 커진다.


 이쯤 되자 양태호 사장도 순수한 궁금증이 인다.


 “……어? 그 책을 알아? 아아, 따지고 보면 대선배님이구나.”


 “저, 사장님?”


 사장님의 분노가 예상보다 쉽게 가라앉는 것 같아 걱정이 된 황중근 이사가 땔감을 주입한다.


 “일단 신원부터 확인하시죠?”


 홍준영의 논리적인 항변과 남다른 독서 취향에 잠시 멈칫했지만 이미 기분이 상할 대로 상한 양태호는 강수를 둔다.


 황중근 이사 옆에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있는 조직원11에게 말한다.


 “아, 그래……. 야, 막내야! 경찰 불러라.”


 사실 조직원11은 막내가 아니다.

 막내에서 탈출한지는 대략 석 달 정도 지났다.


 막내는 아니지만 상급자의 발화 의도는 찰떡같이 알아먹은 조직원11이 외친다.


 “경차아아아알!!”


 “……목청 좋네.”


 양태호가 엄지를 내세운다.


 막내 아닌 막내 조직원의 간절한 부름이 지상에까지 닿았는지 때마침 한 남자가 터벅터벅 계단을 내려온다.


 원래 정해진 순서였던 양 적절한 타이밍이다.


 “안녕하세요? 경찰이라고 합니다.”


 진강석의 등장에 양태호가 가장 먼저 반응한다.


 “어? 아까 집에서…….”


 가게 사장의 반응 따위는 별 관심이 없는 진강석 경장은 술집에 들어서자마자 풍기는 지하매장 특유의 묵직한 공기를 온몸으로 받아들인다.


 이내 풍겨오는 불쾌한 냄새에 인상을 구긴다.


 땀에 푹 절인 티셔츠에서나 날 법한 악취와 오래도록 빨지 않은 걸레 곰팡내에 시큼한 쉰내, 니코틴 찌든 냄새까지 뒤섞여 어지간히도 지독하다.


 “여기 장사 잘 안 되죠?”


 진강석이 가게의 첫인상을 다소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꼭 술장사만을 위해 쓰이는 공간은 아니지만 대놓고 지적받는 게 마냥 유쾌하지 않은 양태호가 적대적으로 대답한다.


 “……그런데요? 장사 안 되는데 보태준 거 있습니까? 남의 장사 망하든 말든.”


 말은 그렇게 매정하게 했지만 사실 양태호는 이 술집에 진심이었다.


 그의 유일한 정상적인 취미는 다름 아닌 음악 감상이었는데―특히 재즈에 관심이 많았다.


 해서 처음 지하에 매장을 차릴 당시 맛있는 칵테일과 항시 기분 좋은 재즈 선율이 흐르는 바에 대한 매력적인 청사진을 갖고 있었다.


 마약범죄의 첨단에 있는 범죄자치고는 상당히 낭만적인 계획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한 계획의 일환으로 양태호는 가게 한가운데에 낮은 단을 세우고 최고급 그랜드피아노를 사들였다.


 거기까지는 좋았으나, 대부분의 자영업이 그러하듯 일할 사람이 문제였다.


 가게 청소를 담당할 청소부와 본인 식사를 책임질 요리사, 가게 입구를 지키고 서있을 가드, 경찰의 눈을 피해 제품을 배달할 마약운반책 고용에 자금을 우선적으로 사용한 탓에 피아니스트와 바텐더 자리는 아직 공석이었다.


 “보태긴요. 혼자서도 먹고살기 바쁜데.”


 진강석이 뚱하게 대답한다.


 “누구십니까? 아직 영업 준비 중입니다. 들어오시면 안 돼요.”


 큰소리로 경찰을 불렀던 조직원11이 신원을 요구한다.


 진강석이 자기소개를 시작한다.


 “전 방배3파출소 소속 진강석 경장입니다.”


 홍준영 때와는 달리 망설임 없이 소속을 대자 그 자리에 있던 황중근 이사와 조직원3~6은 ‘파출소’라는 단어에 얼굴을 찡그리고, 조직원11은 ‘진강석’이라는 말에 욕을 내뱉는다.


 학창 시절 심심할 때마다 얻어맞았던 학생주임 선생님 이름과 똑같기 때문이다.


 반면, 양태호 사장은 본인이 용돈을 찔러주곤 했던 경찰 명단에는 없는 이름이라 퍽 난처한 눈치다.


 짧은 자기소개를 마친 진강석은 가게를 두루 살핀다.


 온통 검은색으로 통일한 가구는 물론이고 바닥과 천장, 벽지까지 모조리 까맣게 칠해져있다.


 입구로 들어서자마자 기다란 테이블이 놓인 널찍한 공간이 있고, 저 안쪽으로는 룸으로 추정되는 방들이 여러 개 있다.


 구석에서는 몇몇 흡연자들이 한데 모여 허공에 대고 타르와 니코틴을 내뿜고 있다.


 “거기, 하나, 둘, 셋, 다섯 명. 실내흡연으로 과태료 10만 원씩.”


 진강석이 국민건강증진법에 의거해 선고한다.


 다짜고짜 돈 얘기가 나오자 발끈한 조직원들이 슬금슬금 앞으로 나선다.


 그럼에도 진강석은 관심 없다는 듯 꽁꽁 묶여있는 홍준영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용케 얼굴은 멀쩡하네? 아직 안 맞았어?”


 경찰이 가해자로 추정되는 황중근 이사 외 조직원들을 무심한 눈길로 쳐다본다.


 “아니면 막 때리려고 했는데 내가 방해한 건가? 뭐야? 바지도 벗겼네? 이야, 역시 많이 때려본 놈이라 그런지 다르긴 다르네. 허벅지 맞는 게 진짜 아프거든. 통증도 오래가고.” 


 경찰의 홀대에 은근히 열이 뻗친 양태호는 다시금 진강석의 관심을 산다.


 존대할 마음은 이미 사라진 상태다.


 “지금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이지? 아까 우리 집 털던 도둑이 이번엔 내 가게에 팔다리가 꽁꽁 묶인 채로 있고, 또 아까 집에서 봤던 경찰이 이번에는 신고도 안 했는데 제 발로 나타났네? 이거 참 신기하네? 나 혹시 감기고 있는 건가? 경찰과 도둑 놀이 하니 지금? 둘이 손잡고 뭐하는 거야?”


 연장자가 열심히 말을 늘어놓는 순간에도 진강석의 시선은 홍준영에게 고정되어있다.


 홍준영은 도청기가 가득한 방 안에서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소리를 내지 않고 벙긋벙긋 입모양으로 대화를 시도한다.


 그런 홍준영의 입술을 빤히 쳐다보며 진강석은 문장을 읽어내려 애쓴다.


 “어……, 애? 기? 들? 가? 어디를? ……뭐야? 그냥 말로 해.”


 겁을 잔뜩 집어먹은 사람들이 그렇듯, 홍준영도 마찬가지로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인다.


 그 덕택에 주위에 있던 모든 범죄자들이 그들에게 이목을 집중하게 된다.


 “저 새끼들 칼 있다고, 칼!”


 “아.”


 진강석은 별 대꾸 없이 재킷 안주머니에 손을 넣고 무언가를 꺼내 홍준영의 얼굴 앞에 대고 흔든다.


 “난 총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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