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닥거리 별장에서 바람피우다 마누라에게 들켰다

by 노닥거리

어렸을 때, 아주 어렸을 때
우리 집 사랑방은 할아버지의 전용 공간이었다. 마당을 건너야 갈 수 있는 할아버지 사랑방은 할머니는 물론 아버지 어머니, 가족 누구도 함부로 드나들 수 없는 곳이었다. 그 사랑방을 아무 때나 함부로 들락거렸던 사람은 할아버지의 손자인 내가 유일했다.

할아버지는 사랑방에서
손과 발로 무언가를 만들거나, 책을 보시거나, 어떤 때는 바늘보다 더 큰 침으로 당신 무릎에 침을 놓고 계셨다.

이제 어느덧 내가
할아버지 나이가 되었고 문득 나만의 사랑방이 필요함을 느꼈다. 그래서 블로그를 만들고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정해 놓은 주제도 없고
구독자를 관리하기 위한 특별한 노력도 없다. 남이야 읽거나 말거나 쓰고 싶고 떠벌이고 싶은 글을 쓴다.

그래도 혹시나
누군가 우연히 나의 글을 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눈치 보며 글을 쓰다가 마누라에게 들키고 말았다.

"노인 냄새나는 구닥다리 글을 쓴다거나 쓸데없이 구질구질한 넋두리나 늘어놓으면, 노닥거리 별장이든 푸닥거리 별장이든 가만두지 않을 거야!"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
할아버지 사랑방은 동네 사람들이 아무 때나 함부로 드나드는 동네 사랑방이 되었다.
나의 블로그가
동네 사랑방은 아니더라도 가끔씩 우연히 들르는 과객이라도 있으면 잠시나마 함께 노닥거리면 좋겠다.

노닥거리 별장은
나의 여생의 시간을 갉아먹는 한풀이 공간이 아니라, 노년의 삶을 품으며 한껏 노닥거리는 바람난 별장으로 만들어 갈 것이다.

어차피 마누라에게 들킨 마당에 눈치 볼 것도 없지.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