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가에서 땀이 납니다. 날이 그리 덥지도 않은데 말입니다. 손으로 눈가를 훔쳤습니다. 저 말고 다른 친구들도 비슷한 증상이 나타나데요. 이것은 병인가요? 헤어질 때 눈물이 나는 병. ‘이별병’이라고 해두죠. (이별병: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에게서 나타난다. 별로 슬프지도 않은데 슬픈 것같이 느낀다. 눈물은 손으로 훔쳐낼 수 있을 만큼만 나온다. 우는 것같이 보이는 것은 이별병 증상이라 할 수 없다.)
만난 지 석 달이 됐습니다. 방글라데시에서 한국어 학급을 맡은 첫 학생들입니다. 석 달이 지나 이제 헤어짐을 맞았습니다. 서먹한 처음 만남이 생각납니다. 뭐라 말 못 하고 서로 눈만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던 그날 말입니다. 무슨 말이라도 해보려 짧은 영어, 뱅골어를 시도했지만, 언어로의 소통에는 실패하고 감성으로 소통했던 그날 말입니다. 첫 만남은 사진을 찍는 일이었습니다. 앞으로 많은 날을 같이 할 텐데도 첫 만남 기념사진을 많이도 찍었지요.
첫날인가요. 인사차 들렀던 교실에 한 학생이 다른 교실에서 족자 같은 것을 가져와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였습니다. 그리고 말했죠.
“이거 배우고 싶어요.”
제가 말했습니다. “앞으로 배울 거예요”
학생은 “지금 배우고 싶어요.”라고 말했습니다.
마이멘싱에서의 한국어 수업은 이렇게 얼떨결에 시작됐습니다. ‘ㅏ, ㅓ, ㅣ, ㅗ, ㅜ’를 따라 하는 학생들의 얼굴이 얼마나 예쁜지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그러던 친구들이 손으로 하나하나 짚어가며 읽던 글자가 눈에 들어오는지 더듬 더듬이라도 제법 읽기 시작하면서 말도 많아졌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인사도 하고 대화도 하게 됐죠.
“선생님, 아〰녕~ 하세요.”
그러면 제가 말했죠. “께〰모~ㄴ 아첸”
서로가 웃었습니다. 안 되는 걸 알면서도 바꾸지 못하는 거였죠. 하나씩 교정하고, 빨리빨리 하는 연습을 통해 입에 붙여나갔습니다.
다른 선생님들에게 배운 노래 수업도 썼습니다. 신체 부위를 배울 때 ‘머리, 어깨, 무릎, 발’을 부르며 율동으로 익혔습니다. 말로 하는 것보다 훨씬 빨랐습니다. 예전에 응원할 때 하던 ‘삼삼칠 박수’에 맞춰 스스로를 응원하기도 했습니다. ‘짝짝짝 – 짝짝짝- 짝짝짝짝짝짝짝’이 두 번 반복되고 손을 머리 위로 올리며 ‘와!’하고 소리치던 그 박수 말입니다. 또 곰 세 마리가 교실에 출현해 재미난 율동으로 웃기기도 했습니다. ‘곰 세 마리’ 하면 아빠 곰, 엄마 곰, 아기 곰이 자동으로 일어섰죠. 코끼리 코는 어땠는지 아세요. 코끼리가 나올 때마다 한 명씩 나와 코끼리 코 열 바퀴씩 돌았죠. 나중엔 시합도 했었습니다.
교실 밖에서도 차곡차곡 재미가 쌓였습니다. 서로 알아가는 위해 걷던 공원에선 이것저것 사다 놓고 즉석에서 ‘무리와 바나나 파티’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강가에서는 배를 타면서 한국어 연습을 했고, 붉은색 벽돌로 지은 유적지를 돌아보며 사진으로 남기기도 했습니다. 마이멘싱에서 갈 곳 1순위라는 방글라데시 농업대학교의 교정을 걷던 땀방울. 벽에 박혀 가지 못하는 자전거를 서로 타려고 밀고 당기던 웃음들, 경기장 스탠드에 모여 지그시 눈을 감고 방글라데시 노래를 열창하던 모습들, ‘오빤 강남 스타일’ 하면서 함께 춤추던 몸짓들, 나무들이 터널을 이룬 기찻길에서 철길 달리기를 하던 즐거움. 보타니컬 가든의 숲길에서 오징어 게임에 나오는 구슬치기를 하며 지르던 탄성들, 빨간색, 하얀색 꽃잎으로 가진 무궁화를 따서 두 손으로 건네주던 얼굴들, 숲 속 의자에 가만히 앉아 도란도란 나누던 이야기들, 모두가 서로를 하나하나 알아가는 과정이었고 추억이었습니다.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 한 구절이 생각나네요.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한국어 실력은 어떠냐고요.
소헬 씨는 학기 시작 전에 공부를 좀 한 것 같았어요. 처음부터 아는 척 나섰죠. 하지만 점차 말수가 줄어들고 수업에 빠졌습니다. 그러다가 수업 시간 질문에 눈치가 빠른 소헬 씨가 슬쩍 정답을 보고 발표했고 그것이 칭찬으로 이어진 후에는 가장 공부를 많이 하는 학생이 되었습니다. 한 번은 ‘-아서/어서’ 문법 시간이었는데 소헬 씨에게 설명을 맡겼습니다. 어찌나 잘하던지 ‘학생이 학생을 가르치는 방법도 좋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카셈 씨는 두 아이의 아버집니다, 그런데도 집에서 한국어 공부를 많이 하는 표가 납니다. 제일 먼저 교실에 와 기다리던 저에게 공부하면서 이해가 안 됐던 것을 묻곤 했어요. 말을 할 때는 손짓 몸짓을 하면서 말하는데 손짓이나 몸짓이 없으면 입이 안 열렸어요. 하지만 수업 후에도 계속 이야기하다 보니 그런 ‘짓’을 하지 않아도 말을 할 수 있게 됐죠. 말을 해보려고 자꾸 선생인 나에게 말을 붙이는 게 여간 예쁜 게 아니었습니다.
레두안 씨는 발음에 관심이 많습니다. 왜 그렇게 발음이 되는지 자주 물었습니다. ‘ㄱ, ㄷ, ㅂ’+‘ㄴ, ㅁ’=[ㅇ, ㄴ, ㅁ]+‘ㄴ, ㅁ’, 표준발음법을 계속 반복했습니다. 나중엔 칠판에 썼던 위치만 가리켜도 ‘알겠어요’하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사이울 씨는 정말 왜 학교에 오나 싶었습니다. 크는 왱이대만큼 큰데 공부는 눈곱만큼도 안 했으니까요. 그런데 앞자리에 앉기 시작하더니 콩나물시루에서 콩나물 크듯이 한국어가 늘었어요. 집에서 3시간 이상 한국어 공부를 한다고 하더라고요. 마지막 시험 볼 때 다른 학생들은 커닝하기에 바빴는데 사이울 씨는 다른 사람 것을 볼 생각 하지 않고 조용히 자기 문제만 풀 정도였으니까요.
물론 다 그렇게 공부를 열심히 한 것은 아닙니다. ‘오늘이 무슨 요일이에요’ 물어보면 ‘이건 뭔 소리지’하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건성으로 학교에 다닌 적이 있는 나는 그 기분 압니다. 안 갈 수는 없고 때는 놓쳐서 따라갈 수는 없고, 그냥 한국어 공부한다는 기분만 내는 겁니다. ‘3개월만 열심히 공부하면 여러분 인생이 바뀔 수 있어요. 열심히 하세요.’라고 말해도 그건 내 생각일 뿐이더라고요. 열심히 하는 건 내가 아니라 학생들이 해야 하는 것이기에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네요. ‘힘내’라고 말해 봐야 ‘힘을 내는 것’은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듣는 사람이 결정해야 할 문제니까요.
그래도 희망은 있습니다. 학생들이 한국어에 대한 끈을 놓고 있지는 않으니 저는 이드(Eid)의 달이 점점 차오르는 것처럼 학생들의 한국어 실력도 보름달같이 꽉 찰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물론 고쳐야 할 것도 분명히 있을 겁니다. 내가 잘 못 가르쳐서 그런 것도 있고요. 비가 많이 오면 학교에 오지 않습니다. 농사일이 바빠서 학교에 안 와요. 더워서 안 오고, 휴일 다음 날이라 안 오고. 집에 가야 해서 안 오고. 수업 시작이 9시인데 9시 전에 오는 학생은 없어요. 휴식 시간 10분을 주면 30분이 지나서야 와요. 시간을 지키는 것 자체를 모른다고나 할까요. 아! 시간을 말할 때 ‘2시 55분’이면 방글라데시에서는 ‘3시 거의 다 됐어(parY tinTa)’로 말한다고 하네요.
이별은 슬프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좋은 헤어짐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니까 헤어질 때는 웃으며 헤어져야 합니다. 그래야 웃으면서 만날 수 있으니까요. 우리는 약속했습니다. 한국에서 다시 만나서 마이멘싱에서 놀았던 것처럼 놀아 보기로 말입니다. 헤어짐이 그 사람과 같이했던 시간을 멈추게 하지는 않습니다. 누구에게는 시작이 되고, 누군가에겐 성장이 되고, 또 누구는 그저 만나기를 바랄 뿐이죠. 우리가 이별하는 것은 만나지 않아 헤어지지 않는 것보다는 백번 나은 것입니다. 다시 만날 수 있으니까요. 마침표 다음에는 무엇이나 다 올 수 있다고 합니다. 무엇이 올지 한국에서 기다릴 겁니다.
2023년 5월 30일, 처음 만남을 사진으로 시작했는데 오늘 사진으로 헤어졌습니다. 사진을 찍는 내내 나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포토 월이라고 해야 맞을 겁니다. 표정 짓기에 익숙하지 못한 나는 얼굴 근육에 경련이 일어날 지경이었고, 어떤 근육에 힘을 줘야 할지 몰라 얼굴을 실룩이기도 했습니다. 배경이 정말 배경으로의 역할을 제대로 못 했습니다. 그래도 찍고, 찍고 또 찍고, 헤어짐을 소중히 간직하려 여간 애를 쓰는 것이 아닙니다. 나도 살짝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못 내 아쉬워하는 학생은 내 가슴에 머리를 묻었습니다. 나는 손으로 그의 눈가를 훔쳤습니다. 그러고는 서로의 어깨를 토닥였습니다.
헤어짐이 슬픈 걸 알면서도 내가 말했습니다.
“우리 헤어지는 게 아니잖아요. 한국에서 꼭 만나요. 기다릴게요.”
학생들이 대답했습니다.
“네, 한국에서 꼭 만나요. 선생님”
맞습니다. 약속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헤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 말을 하면서 땀방울 솟듯 나온 눈물을 훔치다 학생들에게 들켰습니다.
“우리로 남아줘서 정말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