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글라데시 재료로 김치를

by 지구지고

내가 주방의 총책임자다. 아니 가사의 총책임자라고 해야 할 것이다.

방글라데시에 머무는 시간이 지날수록 생각나는 것은 김치다. 한국인의 소울 푸드가 김치인 것은 나에게도 맞는 모양이다. 대부분의 외국 여행에서는 김치 없이도 잘 지냈는데 한 달이 지나니 김치가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7.jpg

태풍 소식으로 긴장했으나 아무 소식 없이 지나갔다. 천만다행이다. 감기 기운이 가시지 않아 오전 수업 후 나들이를 포기하고 일찍 들어왔다. 낮잠으로 피로를 풀고 밖에 나가 돌아다니다가 양배추 한 포기를 사 왔다. 양배추김치를 담그면 좋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양배추는 여기서 흔하게 구할 수 있는 재료다. 양배추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 소금에 절였다. 여기에 같이 넣을 수 있는 건 마늘과 양파, 액젓, 설탕, 생강가루, 소금이 전부다. 잘 버무려 밤새 내놓았다가 익으면 냉장고에 넣어두고 양배추 김치찌개를 해 먹을 요량으로 담근 김치니 약간 쉬어도 될 거로 생각했다. 내일 저녁은 양배추 김치찌개를 해야겠다.


양파 김치와 함께 양파 장아찌도 담았다. 양파는 골프공보다도 작아서 껍질 벗기는 것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인도산 양파는 방글라데시산 보다 조금 더 크다. 한 겹 한 겹이 한국의 양파처럼 두껍지 않아 수분이 별로 없다. 한국에서라면 몇 개만 벗겨도 충분할 텐데 방글라데시 양파는 열댓 개는 벗겨야 국 대접으로 한 그릇된다. 양파 껍질을 벗겨서 반 자르고 일일이 떼어냈다. 소금을 살짝 뿌려 절이고 양념을 만들었다. 양념이라야 있는 것이 별로 없다. 중국산 피시소스에 설탕 한 스푼, 다진 마늘 약간, 생강가루 조금, 고춧가루를 넣어 섞었다. 절인 양파에 양념을 넣고 버무려서 완성했다. 양파가 몸에 좋다니 계속 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양파장아찌도 간단하게 완성했다. 간장과 물을 2:1 비율로 하고 설탕, 식초를 넣어 한소끔 끓여서 식힌 다음 끓는 물로 소독한 유리병에 양파를 잘라 넣고 양념장을 부으면 그만이다. 더 들어갈 것도 없지만 더 넣고 싶어도 넣을 것도 없다. 대부분의 과정을 생략한 그야말로 초간편 작업이었다. 맛있게 익기를 바라면서 한 작업이지만 맛을 보장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것으로 한국의 반찬 맛이 조금이라도 난다면 그것으로 위안을 삼을 만 하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방식의 위안을 얻기란 쉽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도 그런 맛이 나기를 열망하는 내가 좀 한심스럽긴 했다.


마이멘싱엔 배추, 쪽파, 부추가 없다. 다카에 나갈 때면 으레 굴샨 2 서클에 있는 시장에 들러 마이멘싱에서 살 수 없는 것들을 산다. 굴샨 2 서클에 시장이 있다는 것을 알려 준 건 파브나의 김 샘이다. 김 샘이 어깨가 아파 병원 치료를 하면서 묵은 호텔에서 가까운 곳에 시장이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아 나선 곳이 굴샨 재래시장이었다고 했다. 한국 사람들도 많이 오는지 시장에 가면 한국어로 ‘양배추, 파, 싸요.’라고 말한다고 했다. 1년의 중반이 다 지난 시기에라도 한국의 채소들을 파는 시장을 발견했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 다카에 갈 때마다 들려서 채소를 샀다.

18.jpg

방글라데시엔 날씨가 추워야 하는 배추나 대파, 쪽파, 부추는 일반적으로 재배하지 않는다. 방글라데시에선 사용하지 않는 채소다. 한국인이 찾는 채소이기 때문에 이곳에서만 거래되고 있다. 한국인들이 찾는 상추나 두부, 콩나물도 여기에서만 판다. 어디에서 재배되고 생산되는지는 알 수 없다. 배추는 포기가 앉지는 않았다. 하얀 밑동에 무릎까지 오는 키가 큰 배추다. 초록의 잎은 사람의 얼굴을 다 가리고도 남을 만큼 넓다. 그 안에 든 잎은 많아야 10개 정도다. 그래도 배추가 있어 배추김치를 담을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에 사 오는 것이다. 배추를 살 때 같이 사는 것은 대파와 쪽파, 부추다. 대파는 새끼손가락처럼 가늘지만 한국인의 음식에 모두 들어가는 맛을 내는 데는 그만인 양념이다. 쪽파와 부추는 김치를 담으면 오랫동안 먹을 수 있어 좋다.

김치를 담을 땐 될 수 있는 대로 여러 가지의 김치를 한 번에 담는다. 배추김치는 아주 간단하다. 배추를 소금에 절인 후 깨끗이 닦아서 양념을 버무리면 그만이다. 양념이래야 고춧가루, 약간의 설탕, 대파, 다진 마늘, 양파에 중국산 액젓을 부어 섞어 버무리면 끝이다.


쪽파김치와 부추김치는 한 양념에 채소만 바꿔 넣으면 돼서 좋다. 수돗물에 씻어 흙을 없앤 뒤 정수기 물을 받아 다시 한번 씻었다. 그리고 가게에서 사 온 5리터짜리 물통에서 물을 따라 마지막으로 헹굼을 하고 물기를 제거하고 중국산 액젓으로 살짝 절였다. 고춧가루와 설탕, 다진 마늘, 양파를 약간 넣고 양념을 골고루 묻혀주면 끝이다. 더 넣을 것도 없지만 더 넣으려야 넣을 재료도 없다.


부추김치도 마찬가지다. 다만 가져간 생강가루가 있어서 양념에 생강가루를 조금 첨가해 버무리기만 하면 된다. 쪽파김치나 부추김치 모두 자르지 않고 원래 모양 그대로 담아서 하나씩 길게 빼먹는 재미가 있다.

11월이 되어서 파브나 김 샘에게서 연락이 왔다.


“최 샘, 파브나에 무가 나와요. 사갈까요?” 경상도 말투이지만 아주 상냥한 말씨다.

“파브나에 무가 나와요. 그럼, 몇 큰 놈으로 두어 개만 부탁해요. 무청도 갖다 주세요.”

“다섯 개는 있어야 깍두기 담을 수 있어요. 무가 어린아이 팔뚝만 하거든요. 무청은 없어요.”

“아! 그래요. 이제 갈 날이 얼마 안 남았으니 한 통거리만 사다 주세요.”


다카에서도 구경하지 못한 무가 파브나에 있다는 소식에 11월 모임에 사다 달라고 부탁했다. 무는 정말 갓난아이 팔뚝만 했다. 하나 잘라야 국그릇으로 한 그릇 정도다.


절인 무에 약간의 고춧가루를 먼저 묻혀서 무에 빨간색이 베게 하고 배추김치 양념에 밀가루로 풀을 쑤어 배추김치 양념과 섞은 후 버무렸다. 새우젓이나 매실청 같은 것이 있으면 좋으련만 없어서 더 편안하게 담는 깍두기가 됐다. 나는 어차피 익혀서 찌개에 넣어 먹을 거니까 아무렴 어떠냐 하는 생각을 했다.

12월 중순이 되니 마이멘싱에도 무청을 다 잘라낸 작은 무가 시장에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방글라데시에 갈 때 미역과 황태포, 오징어 실채, 멸치를 가져갔다. 간단하게 해 먹을 수 있는 한식이다. 미역은 손바닥만 한 봉지에 자른 미역이 든 것 10 봉지, 황태포 1 봉지, 오징어 실채 2 봉지, 멸치 1㎏이다. 모두 간단하게 조리할 수 있는 것들이다. 미역국은 소고기나 육수용 코인 1개만 있으면 끓일 수 있다. 그것이 없다면 참기름에 미역을 볶은 후 물만 붓고 끓여도 한 끼 국으로 간단하게 먹을 수 있다.

오징어 실채나 멸치는 약한 불에 수분을 날려 비린내를 없앤 후 양조간장을 넣어 볶으면 그만이다. 황태 채는 잘게 찢어 고추장 양념에 볶으면 밑반찬으로 먹을 수 있다. 방글라데시에는 없는 것들이다. 양조간장이나 참기름, 고추장은 다카의 유니마트나 코리아 마트에서 구입할 수 있다. 물론 코리아 마트에는 한국의 대형 마트 냉장 제품이나 건어물도 있다. 한국에서 흔히 사용하는 양념류도 모두 있지만 가격이 만만치 않다.

김치와 밑반찬, 그리고 그때그때 해 먹을 수 있는 계란 프라이나 계란찜, 공심채 같은 채소 반찬만 있다면 방글라데시도 한국이나 마찬가지다. 다만 돼지고기를 흔히 살 수 없는 것이 아쉽다. 유니마트에도 돼지고기는 팔지 않는다. 코리아 마트에 삼겹살이 있지만 오랫동안 냉동고 속에서 잠을 잔 탓인지 색깔이 허옇게 변해서 살 마음이 들지 않는다.


돼지고기를 파는 가게가 없지는 않다. 물어물어 찾아가면 후미진 곳에,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숨은 곳에 어둠침침한 불빛에서 냉장고에 차곡차곡 쌓아 놓은 돼지고기를 꺼내서 판다. 하지만 한국처럼 깨끗이 손질된 것이 아니라 큰 칼로 두드려서 잘라 뼛조각이 박힌 대로, 돼지비계가 고기의 반을 넘는 덩어리 고기로 판다. 돼지고기 1㎏을 사서 손질하면 먹을 만한 고기는 500g도 나오지 않는다.

【정보】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채소를 파는 곳은 다카의 굴산 2 서클에 접한 시장이다. 배추, 무, 파, 상추, 두부, 콩나물을 살 수 있으며, 한국의 라면이나 양념류도 일부 살 수 있다. 이곳 상인들은 한국인을 상대로 장사를 해서 한국어를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한국어를 하지는 못한다. 다만, 물건을 사고파는 데는 문제가 없다.

keyword
이전 22화엘로우와 핑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