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지나간 일이 여전히 괴로워서 다가올 일이 두렵다

슬픔을 대비하는 것은 슬픈 일이다.

by 겨울나무

과거는 잊고, 현재를 살려고 하지만 마음 한편에는 잊히지 않고 놓아지지 않은 기억이 있다. 슬프지만 고통스러운 기억은 평생 나와 동행할지도 모른다. 나에게 정말 소중한 순간이 찾아왔을 때 방해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영원히 나를 묶어둘까 봐 너무 두렵다.

또 그런 일이 올까 봐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부터 방패막을 세워 스스로를 가둔다. 꿈을 잃은 절망이 두려워서 꿈꾸지 않고, 아끼던 물건을 잃어버린 속상함이 싫어서 물건을 가지지 않고, 대인관계에서 상처받을까 봐 마음은 덜 주고 후회 하기는 싫어서 조금 더 잘해주려고 한다. 왜냐하면 이번에야 말로 잘 될 거라는 막연한 긍정은 언젠가 내 뒤통수를 칠 것만 같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을 지키는 방법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걱정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쳐 가능한 모든 불행한 상황을 대처하기 위한 준비를 한다. 걱정한 일은 상상도 못 한 일에 비하면 미리 준비한 부분이 있기에 훨씬 대처하기 쉽다. 두려운 상황이 와도 부딪칠 각오를 하고, 어떤 상황을 만나도 흔들리지 않는 멘털을 만들려고 한다. 이렇게 연습한 대로 상황에 맞게 척척 해냈을 때는 정말 뿌듯하다. 하지만 막상 주어지는 상황에는 걱정한 일보다 상상하지도 못한 일이 더 많았다. 그러니 당연히 곤란한 상황이 닥쳐오면 당황해서 허둥지둥하느라 부딪치기는커녕 부딪혀야만 했다.

순간을 어찌어찌 넘겼어도 그 기억에서 나오려면 나만의 해석이 필요하다. "그는 좋은 사람이었는가, 나쁜 사람이었는가?" 혹은 "나는 좋은 사람이었는가, 나쁜 사람이었는가?"처럼 누군가의 잘못인가를 따지면 경험으로부터 배울 수 없다. "괴로워 죽겠는데 배우긴 뭘 배워? 에라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부정적인 기억 자체를 자세히 뜯어봄으로써 감정의 방향을 틀어 본다. 그 안에는 상대방에 대한 원망과 억울함, 그리고 나를 향한 자책과 혐오 사이에서 그럴 수도 있었다는 중심이 잡힌다.

상자에 넣어놓고 닫아두다가 가끔 열어보고 문제집에서 문제를 고르듯, 지금 내 두뇌에서 도전해 볼 만한 문제를 골라서 풀어본다. 이 문제에는 해설지는 물론 답도 없다. 그래서 언제든 그만둘 수 있고, 다시 풀어볼 수 있다.

그래도 어떤 일은 정말 잘 해결하기도 한다. 어찌어찌 머리를 잘 굴려서 버텨냈고 그러다 보면 가끔 잘 풀릴 때도 있었다. 이렇듯 걱정했던 일이든, 상상도 못 한 일이든 다 잘 지나왔다는 것을 분명히 안다. 그런데 왜 그 상황이 올 때까지 두려운 걸까?

변수가 생겨 당황할까 봐?
내가 잘못해서 망칠까 봐?
머리를 열심히 굴려야 하는 그 순간이 괴로워서?
단순히 미래의 불확실함을 두려워하는 게 인간의 습성이라서?

아마 이 모든 게 이유가 될 수 있을 거 같다.
그렇다면 나는 왜 이렇게 움츠려 있는 걸까?

올해 2월 중순에 스키를 타다가 발목을 다쳤다. 지금은 이전보다 튼튼하고 유연해진 발목으로 신나게 한 발 서기를 한다. 그러다 문득 '내 멘털도 사실은 이렇게 강해진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발목이 낫는 과정과 비교하며 상상해 보았다.

뻔한 결말을 대비하고 있으면 보호구를 착용한 것처럼 두려움을 잠재울 수 있다. 매번 움츠리며 무언가 날아올까 봐 경계하면서 길거리를 걷는 듯한 느낌이다. 보호구를 365일 24시간 차고 있으면 그 부분은 퇴화한다. 보호구가 없던 때보다 더 약해진다.
물론 다친 직후는 빠른 치유와 재부상 방지를 위해 보호구가 필요하다. 하지만 어느 정도 낫고 나면, 그 부분이 무뎌지기 전에 재활을 해야 한다. 그리고 보호구 없이 다시 원래 생활로 돌아와야 한다. 너무 두렵다면 보호구를 챙겨 다녀도 되지만 내내 착용하지는 않아야 한다.

뼈가 부러진 이후 상황을 간략하게 나눈다면
응급처치 -> 붕대 -> 보호구 -> 재활 -> 운동으로 강화
가 될 거 같다.

뼈도 이렇게 긴 과정이 필요한데, 정신이 부러졌을 때
"힘내자, 정신 차려, 잊어버리자, 강해지자." 이런 말은 응급처치~재활 다 뛰어넘고 운동부터 할 생각인 거랑 똑같다. 다친 부분이 더 망가질 뿐이다. 마음먹는 것보다 시작해 보는 게 더 쉽다. 스스로 어느 단계에 있는지 잘 살펴보자.

자신의 회복 기간은 자신이 가장 잘 안다. 아직 낫지 않았는데 보호구를 푸는 것은 분명 위험한 일이다. 자신의 마음을 가둬놓고 있는 것에 자책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부정적인 기억에서 마주한다거나 잊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힘든 거 아닐까? 마주하라는 말이 부담스러울 때는 실눈만 떠도 좋다. 잊으라는 말이 어려울 때는 덜어낸다는 마음만 가져도 좋다. 남들이 이제 됐다고 한다고 나를 급하게 움직이지 않아도 되고 아직 조심하라고 한다고 너무 늘어져 있을 필요 없다.

내가 아는 대로 나를 움직이면 된다.

지나간 일이 끼친 영향은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아직 오지 않은 일 때문에 긴장하며 사는 것은 슬픈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걱정에 휘둘리고 상상에 휩쓸릴 바에 내가 조종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어떨까? 뻔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걱정하게 된다면 뻔하지 않은 과정을 만들면 의미가 있지 않을까? 이왕이면 다른 시도로 다른 결말을 보려고 하는 거다. 그럼 나의 주체성이 어느 정도 포함되었기 때문에 조금 당당해지는 기분이다.

괴롭겠지만 힘든 일은 분명 다시 찾아온다. 모습을 변장해 태연하게 내 앞에 나타난다. 어차피 또 실패할 거라는 확신이 나를 막는다면 나도 변장해 보는 거다. 이전과 전혀 다른 사람인 척, 사실은 약한데 강한 척하며 굳이 색다른 시도를 해보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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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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