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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dolee Sep 30. 2024

프롤로그_운명의 세남자

탐정 유강인 18편 <검은 자선전과 악의 비밀>

 비밀은 없다.

 어떻게든 감추고 싶은

 애처로운 욕망만 있을 뿐이다.

 

 탐정 유강인 18편

 검은 자서전_악의 비밀

  

 두 남자가 있었다.

 한 명은 무척 들떠 있었고

 다른 사람은 상심한 듯 낙담했다.

 둘은 서로 모르는 사이였다. 본 적이 없었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세상사’라는 말이 있듯이

 운명의 여신이 그들을 꽁꽁 묶어버렸다.

 눈에 보이지 않는 비밀의 끈을 꺼내서

 마치 굴비를 엮듯이 엮어버렸다.

 

 비밀의 열쇠는 노인이 쥐고 있었다.

 노인은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래서 어느 때보다 용맹했다.

 

 <첫 번째 남자, 행운을 잡은 박재영>

 

 박재영이 누군가와 통화하고 있었다.


 그는 50대 초반 남자였다. 키가 크고 마른 체격이었다. 181cm 키였다. 얼굴은 허옇고 이목구비는 선명했다. 꽃중년이라 부를만했다.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 정말입니까?” 

 

 핸드폰에서 상냥한 목소리가 들렸다. 젊은 여성 목소리였다.

 

 “네, 맞습니다. 내일 저랑 만나서 확인할 게 있습니다.”

 

 “확인이요?”

 

 “네, 그렇습니다.”

 

 박재영이 핸드폰을 귀에 바짝 갖다 댔다.

 

 잠시 시간이 흘렀다.

 

 “잘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박재영이 전화를 끊고 아주 길게 숨을 내쉬었다. 수십 년간 묵혔던 응어리를 아주 천천히 토해냈다.

 

 심장과 폐, 간 등 장기 곳곳에 박혀있던, 돌처럼 딱딱한 덩어리들이 지렁이처럼 꿈틀거리더니 순식간에 기화되면서 입 밖으로 쏟아졌다.

 

 그 모습을 한 여인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쳐다봤다. 그의 부인인 민주희였다.

 

 민주희는 40대 초반 여자였다. 중간 키에 통통한 몸매였다. 헤어스타일은 중년 여성이 선호하는 보브컷(상고머리)였다.

 

 얼굴은 평범 그 자체였다. 흐릿한 이목구비를 진한 화장으로 커버했지만, 그래도 눈에 띄는 얼굴은 아니었다.

 

 “여보, 내일 무슨 일이 있어요?”

 

 부인의 말에 남편이 고개를 돌렸다. 한 여인이 무척 궁금한 표정을 지으며 옆에 서 있었다. 20년간 남편만 바라보며 살아온 헌신적인 아내였다.

 

 아내는 남편의 벌어오는 적은 월급에도 군소리 하나 없었다. 누구보다도 살림을 잘 꾸렸다. 살림하다 시간이 나며 밖에서 파트타임 계산원을 했다. 그렇게 아이들 학비를 마련했다. 알뜰하고 성실한 아내였다.

 

 박재영이 빙그레 웃었다. 아내 민주희에게 말했다.

 

 “주희야, 내일 좋은 일이 있을 거야.”

 

 “좋은 일이라고요? 그게 뭐죠?”

 

 “지금 말하면 김이 새잖아. 내일 말해줄게.”

 

 “궁금해요. 어서 말해줘요.”

 

 박재영이 다시 빙그레 웃을 뿐 답을 하지 않았다.

 

 민주희는 남편의 낯선 모습이 무척 이상했다. 궁금함을 찾을 수 없는 듯 두 눈을 가늘게 뜨고 입술을 활처럼 구부렸다.

 

 1분의 시간이 흘렀다.

 

 박재영이 양 입술에 침을 잔뜩 묻히더니 입을 열었다.

 

 “사실은 그게, 말이야 ….”

 

 민주희가 귀를 쫑긋했다. 마치 커다란 비밀을 듣는 것처럼 ….

 


 <두 번째 남자, 분노에 치를 떠는 천지호>

 

 천지호가 재빨리 걸음을 옮겼다. 저 앞에 저택이 보였다. 바닷가에 자리 잡은 으리으리한 집이었다.

 

 이곳은 탁 트인 곳이다. 드넓은 서해안 바닷가가 운치를 더했다.

 

 위로는 갈매기들이 ‘끼룩끼룩’ 거리며 날아다녔고 아래로는 넘실거리는 바닷물이 백사장을 덮쳤다.

 

 백사장 뒤로 돌산이 있었다. 돌산 위에 중세 궁전 같은 저택이 그 자태를 뽐냈다.

 

 천지호는 50대 초반 남자였다. 180cm 키에 근육질 미남자였다. 그리스 석고상 같은 얼굴이 남달랐다.

 

 해가 지면서 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석양이었다.

 

 노을빛을 받자 천지호의 이목구비가 더욱 선명해졌다. 사슴처럼 큰 눈망울, 높은 코, 굳게 닫힌 입술이 빛과 어둠의 강렬한 대비 속에서 빛났다.

 

 그의 손에 핸드폰이 들려 있었다.

 

 삐리릭!

 

 전화벨이 울렸다. 발신자는 아버지였다.

 

 천지호가 이를 악물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곧 격렬한 음성이 핸드폰에서 터져 나왔다.

 

 “야이! 자식아! 이 죽일 놈의 XX야!”

 

 입에 담을 수 없는 수많은 욕설이 천지호를 향해 화살처럼 날아왔다.

 

 “으으으!”

 

 천지호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윽고 크게 외쳤다. 억울함과 야속함이 마구 뒤섞여 있는 처절한 울부짖음이었다.

 

 “아버지! 아버지!!”

 

 한 남자의 처절한 외침이 바닷가에 퍼졌다. 철썩철썩하며 크게 들리는 파도 소리마저 단칼에 꿰뚫어버리는 격렬한 음성이었다.

 

 성난 천지호가 저택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순간적으로 두 눈이 새빨갛게 충혈됐다.

 

 달리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그만큼 운명의 시간도 빨리 다가왔다.

 
 

 <세 번째 남자, 하늘이 무너진 백두성>

 

 이곳은 영안실이다.

 

 어두움과 냉기가 가득했다. 이승에 자리 잡은 저승 같았다. 생명이 사라진 커다란 굴 같기도 했다. 음침한 어둠이 가득해 불길함이 더할 나위 없었다.

 

 그때 팟! 하면 불이 켜졌다. 밝은 빛이 등장하자, 불길함이 사라지고 애통함이 깃들기 시작했다.

 

 뒤이어 끼익! 하며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세 사람이 안으로 들어왔다. 모두 남자였다.

 

 40대 남자 둘에 노인 하나였다. 노인은 아주 연로했지만, 허리가 꼿꼿했다. 그래서 걷는 데 전혀 지장이 없었다.

 

 저벅저벅 무거운 발소리가 들렸다. 중년 남자 중 하나가 시신 보관실 손잡이를 두 손으로 꽉 잡더니 천천히 잡아당겼다. 마치 커다란 서랍을 여는 거 같았다.

 

 쓰르륵! 소리가 들리고 시신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중년 여인이었다. 뒤이어 다른 보관실 두 개도 열렸다. 십 대 남녀 아이들이었다.

 

 총 세 구의 시신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시신은 물에 부은 듯 퉁퉁 불어 있었다.

 

 “형사님, 시신을 다 꺼냈습니다.”

 

 시신을 꺼낸 사람이 말했다. 그는 영안실 직원이었다.

 

 형사가 고개를 끄떡였다. 그가 애석한 표정을 지으며 노인에게 말했다.

 

 “가족 세 명이 물놀이 하다가 사고로 죽고 말았습니다. 여기 누워계신 분들이 … 따님과 손주가 맞습니까?”

 

 노인이 고개를 끄떡였다. 커다란 충격을 받은 듯 멍하니 서 있었다. 숨조차 쉬지 못했다. 눈에 초점을 잃었다.

 

 오늘 그에게 청천벽력같은 일이 벌어졌다. 유일한 피붙이인 딸과 손주가 일시에 죽고 말았다. 그는 부인과 사별한 지 오래였고 자식은 딸밖에 없었다. 형제와 누이도 차례대로 세상을 떠났다.

 

 하늘이 무너진 듯 노인이 아무런 말 없이 잠시 서 있었다. 마지막으로 딸과 손주의 모습을 두 눈에 담으려는 거 같았다.

 

 하지만 시간은 그의 바람과 달랐다. 스르륵! 하며 시신 보관대가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세 구의 시신이 깊은 어둠 속에 자리 잡았다. 자기 자리를 다시 찾은 듯했다.

 

 “백선생님, 이제 나가시죠.”

 

 형사의 말에 노인이 정신 차렸다. 그는 유명 영화배우 백두성이었다.

 

 백두성이 출입문을 찾았다. 저 앞에 출입문이 보였다. 그가 비틀거리며 걷기 시작했다.

 

 그러다 한평생 꽉 붙잡고 있던 삶의 의지가 일순간에 꺾인 듯 중심을 잃기 시작했다. 가는 나뭇가지가 툭 하며 부러지듯 양 무릎이 꺾였다.

 

 “선생님!”

 

 “선생님!!”

 

 형사와 영안실 직원이 백두성을 부축했다.

 

 그때 돌연 웃음소리가 들렸다.

 

 “하하하!”

 

 백두성이 실성한 듯 웃기 시작했다. 그 소리가 점점 커졌다. 사방이 꽉 막힌 영안실이라 메아리치는 듯했다.

 

 “하하하!”

 

 100살을 앞에 둔 백두성이 두 눈을 크게 떴다. 운명의 가혹한 소용돌이 속에서 더는 버틸 수 없는 거 같았다. 그래서 편안해 보였다.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해 보였다.

 

 영안실 문이 열리고 불이 꺼졌다. 그리고 문이 철컥하며 닫혔다.

 

 그렇게 영안실은 … 저승의 세계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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