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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dolee Oct 01. 2024

01_나는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다!

탐정 유강인 18편 <검은 자선전과 악의 비밀>

 어제 별똥이 떨어졌다. 한 생명이 불타서 사그라들었다.

 한 영혼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강 앞에서 회한에 가득 찬 눈빛으로 뒤를 돌아다봤다.

 모든 것이 부질없었다. 욕망, 미움, 시기, 사랑, 재물이 연기처럼 흩어지며 그의 품에서 떠났다.

 

 2025년 11월 12일 저녁 7시 20분

 서해안 경찰서 조사실

 

 “내가 죽이지 않았어요. 난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어요! 제발 믿어주세요!!”

 

 한 남자가 울부짖었다. 억울함이 뼈에 사무친 소리였다. 그가 말을 이었다.

 

 “범인은 따로 있습니다. 그놈이 아버지를 죽인 겁니다. 제가 나간 뒤 그놈이 들어와서 아버지를 죽인 거예요!”

 

 남자가 말을 마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마음속에 대형 태풍이 불어오는 듯 눈동자가 마구 흔들거렸다.

 

 조사실에 두 남자가 있었다.

 

 억울함을 호소하는 남자와 백정현 형사였다.

 

 백형사가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말없이 앞에 있는 남자를 쳐다봤다.

 

 남자는 기막힌 현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부릅떴다. 눈 이곳저곳에 실핏줄이 터져 있었다. 빨간 눈이 마치 붉은 보름달 같았다.

 

 그는 천지호였다. 나이는 52세였다. 180cm 키에 근육질이었고 미남이었다. 시원하게 쭉 뻗은 눈썹, 초롱초롱한 눈망울, 직각 삼각형 같은 코, 얇은 입술, 살아있는 턱선이 참 매력적이었다. 석고상 쥴리앙을 닮았다.

 

 담당 수사관인 백정현 형사가 앞에 있는 서류를 뒤적였다. 그러다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동상처럼 서 있는 천지호를 다시 쳐다봤다.

 

 천지호는 살인 사건 용의자였다. 고령의 아버지를 죽이고 자택에서 체포됐다. 체포 당시 한가롭게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노을 진 서해안 풍경을 유화로 그렸다. 보라색 하늘빛이 참 아름다운 그림이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백형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류를 들고 출입문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형사님!”

 

 천지호가 담당 수사관을 불렀다.

 

 “형사님! 제발 제 억울함을 풀어주세요!”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백정현 형사가 문 앞에서 고개를 뒤로 돌렸다. 두 눈에 사로잡힌 동물처럼 벌벌 떠는 남자가 서 있었다. 남자는 자기 아버지를 죽인 용의자였다.

  

 이게 사실이라면 절대 용서할 수 없는 자였다. 인륜을 거스른 중범죄자였다.

 

 백형사가 고개를 끄떡이고 입을 열었다.

 

 “만약 억울함이 있다면 … 풀어야겠지요.”

 

 백정현 형사가 말을 마치고 조사실에서 나갔다.  

 


 *


 

 백형사가 직속상관인 차수호 반장에게 천지호 조사 결과를 보고했다.

 

 묵묵히 보고를 듣던 차반장이 백정현 형사에게 말했다.

 

 “용의자가 …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는 말이지?”

 

 “네, 그렇습니다. 용의자가 무척 억울해하고 있습니다. 제가 볼 때 … 연기하는 거 같지는 않습니다.”

 

 “백형사, 사이코패스는 연기를 잘해. 그런 거에 속아 넘어가면 안 돼!”

 

 백정현 형사가 정색하고 답했다.

 

 “반장님, 천지호는 여태까지 아주 깨끗하게 살아온 사람입니다. 전과가 전혀 없습니다. 벌금조차 낸 적이 없습니다.”

 

 차수호 반장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가 말했다.

 

 “평상시 올바르게 삶아온 사람도 욱하는 심정에 사고를 칠 수 있어. 오히려 그동안 쌓아온 게 많아서 사고를 칠 때 크게 친단 말이야.”

 

 “그럴 수도 있지만 ….”

 

 백형사가 말을 멈추었다. 그러다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제가 볼 때 천지호는 거짓말하는 거 같지 않습니다. 친아버지를 죽일 정도면 … 제정신일 리 없습니다. 술이나 다른 약물을 먹어야 하는데 검사 결과 다 음성이었습니다. 술을 한 방울도 마시지 않았습니다.”

 

 “본인이 아버지와 싸운 건 인정했잖아.”

 

 “네, 그건 인정했습니다. 예전부터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진술했습니다.”

 

 “그러면 실수할 가능성이 크잖아. 백형사, 증언이 새로 들어왔어. 옆집 사람이야.

 아버지가 아들을 극도로 미워했고 아들이 이에 따졌다고 진술했어. 그 소리가 하도 커서 나중에 따지려고 녹음까지 했대.”

 

 “이웃 사람이 그렇게 말했다고요?”

 

 “응, 그렇게 말했어.”

 

 “아, 그렇군요.”

 

 차수호 반장이 말을 이었다.

 

 “CCTV 상 사망 시간에 집에 출입한 사람은 단 두 명이야. 천지호와 어머니야.

 천지호가 먼저 집에 들어갔다가 10분 후 나왔고 5분 후, 어머니가 집에 들어갔어. 남편이 위독하다고 신고한 건 어머니였어.

 정황상 천지호가 범인일 확률이 … 매우 크잖아. 연로하고 왜소한 여인이 남편을 죽이기는 매우 힘들어.”

 

 “그렇기는 하지만 ….”

 

 백정현 형사가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가 말했다.

 

 “저도 처음에는 천지호가 범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조사를 해보니 … 그게 아닌 거 같다는 생각이 계속 듭니다.”

 

 “천지호가 범인이 아니라는 증거가 없잖아?”

 

 “천지호가 반드시 범인이라는 증거도 없습니다.”

 

 “정황상 천지호가 범인이잖아.”

 

 “정황만으로 범인을 단정할 수 없다고 유강인 탐정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유탐정이라고?”

 

 “네! 유탐정님과 함께 펜션에 갔을 때 들은 말이 있습니다.

 용의자의 첫인상을 무시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정황 증거는 어디까지나 정황일 뿐이고 물증을 반드시 잡아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첫인상이라고?”

 

 “네. 첫인상에서 느껴지는 직관이 수사의 첫걸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 수사의 방향을 말하는 거지?”


 “네. 직관을 통해 수사의 방향이 결정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차수호 반장이 고개를 끄떡이고 말했다.

 

 “그게 유탐정의 지론이긴 하지. 수사의 시작은 직관이고 이를 통해 방향이 잡히면 작은 단서로 전체를 유추하는 통찰을 해야 한다고 늘 말했어.

 마지막은 물증을 잡아서 범인을 꼼짝달싹 못 하게 하는 거고.”  

 

 “맞습니다. 지금 수사의 방향을 정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입니다. 자칫하면 억울한 사람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래, 그래. 알았어. 열 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억울한 사람이 있으면 안 되지.”

 

 차수호 반장이 말을 마치고 오랜 동료이자 친구인 유강인을 떠올렸다.

  

 유강인은 냉철한 이성과 함께 직관을 중요시했다. 둘이 조화를 이루어야 사건을 제대로 풀 수 있다고 항상 강조했다.

 

 “음!”

 

 차반장이 한번 헛기침하고 생각에 잠겼다.

 

 ‘존속 살해는 일반 살인 사건과 결이 달라. 인륜을 거스르는 중범죄야. 더군다나 건장한 아들이 노쇠하고 병약한 아버지를 죽였다면 이는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야.

 천지호가 범인이라면 이자를 반드시 단죄해야 하지만 … 만약 아니라면 이것도 큰 문제야.

 아무런 죄가 없는 아들이 아버지를 죽였다는 누명을 쓴 거잖아. 이건 어떤 누명보다도 가혹한 일이야.

 백형사 말처럼 신중해야 해. 백형사도 이제 베테랑이니 그 느낌을 무시할 수 없어.

 강인이가 말했어. 첫인상이 방향을 좌우한다고! 첫인상이, 첫인상이 ….’

 

 잠시 시간이 흘렀다.

 

 차수호 반장이 생각을 정리한 듯 고개를 끄떡였다. 그가 백정현 형사에게 말했다.

 

 “알았어. 신중해서 나쁠 건 없지. 이번에는 내가 들어갈 테니 여기에서 기다려. 천지호가 어떤 사람인지는 만나보면 알겠지.

 아버지를 죽인 인면수심 살인마인지 아니면 억울한 일을 당한 건지 그 느낌을 느껴보자고 ….

 만약 억울한 사정이 있다면 이를 반드시 밝혀야 해.

 아버지가 비참하게 죽었는데 … 그 아들이 아버지를 죽였다는 누명을 쓴다면 이것만큼 억울한 일은 세상에 없어.”

 

 “지당한 말씀입니다, 반장님.”

 

 백정현 형사가 참 잘 됐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보기에 천지호는 범인 같지 않았다. 진상을 밝히려면 긴밀한 조사가 필요했다. 상관인 차반장이 신중한 모습을 보여서 참 다행이라고 여겼다.

 

 차반장이 걸음을 옮겼다. 그가 조사실로 향했다.

 

 문이 활짝 열렸다. 차반장이 자리에 앉아 있는 한 남자를 내려다봤다.

 

 천지호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간절한 표정으로 문 앞에 서 있는 남자를 쳐다봤다.

 

 차수호 반장과 천지호 사이 거리는 채 3m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첫인상을 느끼기에는 부족하지 않은 거리였다.

 

 두 남자가 말없이 서로를 쳐다봤다.

 

 그렇게 1분의 시간이 지나갔다.

 

 “천지호씨.”

 

 차반장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천지호의 이름 석 자를 불렀다. 천지호가 급히 답했다.

 

 “네, 제가 천지호입니다.”

 

 “천일수씨 아들이 맞습니까?”

 

 “맞습니다.”

 

 “아버지를 죽였나요?”

 

 “죽이지 않았습니다.”

 

 “확실합니까?”

 

 “저는 아버지에게 손 하나 까닥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억울합니까?”

 

 “억울합니다.”

 

 “어느 정도 억울하죠?”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질 만큼 억울합니다.”

 

 “CCTV 확인 결과, 부친이신 천일수씨 사망 시간에 집에 들어간 사람은 천지호씨와 어머니밖에 없습니다.

 천지호씨가 범인이 아니라면 어머니가 범인일 수밖에 없습니다. 어머니가 범인이라고 생각하나요?”

 

 “아, 아닙니다. 절대로! 어머니는 그럴 분이 아닙니다.”

 

 “그러면 제삼자가 집에 들어왔다는 말이군요. 그렇죠?”

 

 “그렇죠. 그게 맞습니다. 누군가가 저를 함정에 빠트린 겁니다. 그자를 잡아야 합니다. 형사님! 형사가 해야 할 일은 범인을 잡는 거잖아요. 죄 없는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는 게 아니라!”

 

 “형사는 죄 없는 사람을 잡지 않습니다.”

 

 “지금 저를 잡고 있잖아요!”

 

 “현재 참고인 조사 중입니다. 피의자로 전환하지 않았습니다. 현재 천지호씨는 범인이 아닙니다. …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차수호 반장이 씩 웃으며 답했다. 그렇게 첫인상이 결정됐다. 이제 수사의 방향이 정해졌다.

 


 진실에 다가가는 첫걸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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