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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_간도에서 온 사나이 1_36_마석 상회와 촌장

간도에서 온 사나이_피빛 운석과 복수의 화신

by woodolee

신우가 서둘러 아침밥을 준비했다. 급하게 밥술을 떴다.


명호는 아침부터 유별나게 서두르는 신우를 보고 어제와 너무 달라서 짜증이 났다. 그가 신우에게 한소리 했다.


“아니, 어제는 나 몰라라 그냥 가더니. 오늘은 왜 이리 서두르냐?”


“그러니까 오늘은 더 서둘러야지.”


신우가 숟가락으로 밥그릇을 싹싹 긁으며 답했다. 숭늉으로 입가심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



신우와 명호가 약속 장소로 가서 소매치기 소년을 만났다. 소년이 일찍 와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가요, 간도에서 온 아저씨들.”


“그래, 그래. 어서 가자.”


“오늘 예감이 좋아! 촌장을 만날 거 같아.”


셋이 의기투합해서 먼저 남대문으로 향했다. 열 군데 정도 쌀가게를 돌아다녔지만, 촌장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럼, 명동에 있겠지.”


신우가 희망을 잃지 않고 말했다.


시간이 흘러 점심때가 되었다. 이에 점심을 먹기로 했다. 구수한 냄새를 풍기는 설렁탕집으로 들어갔다.


“명동이 마지막인데 … 오늘 찾을 수 있을까?”


명호가 근심 어린 표정으로 입을 뗐다. 아침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남대문에서 소득이 없자, 불안감이 들었다.


“에이! 아저씨. 명동이 제일 유력해요. 돈깨나 만지는 사람들은 모두 명동에서 장사해요. 찾는 사람이 잘 나가는 사람이라면 분명 명동에 있을 거예요.”


소년이 설렁탕 국물을 후루룩 삼키며 말을 받았다.


명호가 소년의 말을 듣고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야! 이놈아! 그러면 처음부터 명동에 가자고 하지. 왜 마지막으로 명동에 가냐?”


소년이 큰 깍두기를 덥석 입에 넣고 아작아작 씹으며 답했다.


“그야, 아저씨가 동대문부터 가자고 했잖아요. 우리는 동대문부터 돌면 항상 종로 남대문, 명동 순으로 움직여요.”


“아이고, 이놈 자식이! 뚫린 입이라고!”


명호가 이를 갈았다. 소년을 한 대 쥐어박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현재 촌장 찾기는 전적으로 소년에게 의존하고 있었다. 소년의 심기를 건드릴 수 없었다. 이에 소년을 매섭게 째려보다가 국물을 퍼먹었다.


“자! 자! 그만하고 빨리 밥 먹고 명동으로 가자.”


신우가 티격태격하는 둘을 달래고 급히 뚝배기 들고 국물을 들이켰다.


셋이 명동에 도착했다. 소년의 안내에 따라서 쌀가게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두 가게를 둘러봤지만, 모두 촌장이 아니었다.


소년이 번화한 큰길을 따라가다가 한 쌀가게 앞에 멈췄다. 대로변에 있는 큰 가게였다. ‘마석 상회’라는 간판이 달려 있었다.


“마, 마석 상회!”


“마석 상회라고?”


신우와 명호가 ‘마석’이라는 두 글자를 보고 정신이 멍해졌다. 22여 년 동안 부른 적이 없는 이름이었지만, 분명히 기억하는 이름이었다. 어릴 적, 그들과 앙숙이었던 아이의 이름이었다.


신우와 명호의 얼굴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마석이라는 이름에 불길함을 감출 수 없었다. 마석은 촌장의 아들이었다. 하필, 촌장 아들 이름이 가게 이름이라니. 우연도 이런 우연이 없었다.


명호가 이를 악물었다. 그가 잘 알겠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촌장이 … 아들 이름으로 가게 이름을 지은 건가?”


“그런 거 같기는 한데, 아닐 수도 있어. 마석이라는 이름만으로 단정할 순 없어. 가서 확인해 보자.”


신우의 말에 명호가 고개를 끄떡였다.


신우가 소년에게 눈짓했다. 그러자 소년이 마석 상회로 달려갔다. 주인을 밖으로 불러내야 했다.


둘은 물건을 사는 손님처럼 옆 가게에 서 있었다. 옆집은 과일 가게였다. 과일을 고르는 척하며 쌀가게를 살폈다.


소년이 신이 난 표정을 지었다. 아저씨들의 표정을 보고 ‘이번에 맞겠구나!’ 손바닥을 짝 치며 가게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신우와 명호가 긴장감에 숨을 죽였다. 과일 가게 안쪽으로 들어가 몸을 숨겼다. 소년이 주인장을 데리고 나오기만 기다렸다.


30초가 지났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들에겐 숨 막히는 시간이었다.


“만약, 주인이 안에 없으면 어떻게 하지?”


명호의 말에 신우가 단호한 표정으로 답했다.


“그럼, 올 때까지 기다려야지.”


그때, 소년이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다른 사람도 나왔다. 예순 살 정도로 보이는 노인이었다.


“나왔다!”


명호의 말에 신우가 두 눈을 크게 떴다. 눈동자가 두 배로 커졌다.


소년이 둘을 쳐다봤다. 둘이 주인을 확인하자, 아하! 소리치고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어? 뭐야?”


소년을 따라 나온 주인이 도망치는 소년을 보고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소년한테 역정을 냈다.


“저, 저놈의 자식이! 지금 어른을 놀리는 거냐? 물건을 보러 온 손님이 있다며 … 그런데 아무도 없잖아. 어린놈의 자식이 이런 장난을 쳐! 괘씸한 놈 같으니. 아주 못된 놈일세!”


노인이 화를 버럭 내며 허공에다 분풀이했다.


노인은 큰 키에 호리호리한 체격이었다. 뾰족한 턱에 눈이 작았다. 무엇보다도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귀에 잘 들어왔다.


“아!”


명호가 그 목소리를 듣고 직감했다. 그가 촌장이라는 걸 바로 알아챘다.


“신우야!”


명호가 신우의 얼굴을 쳐다봤다. 신우는 노인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의 눈에는 22년간 쌓이고 쌓인 원망이 서려 있었다.


명호가 신우를 끌고 몸을 숨겼다. 가게 옆 벽에서 급한 숨을 내쉬고 사방을 살폈다. 그가 신우에게 말했다.


“맞지? 저자가 촌장이 맞지?”


“······”


신우가 답을 하지 않았다. 묵묵부답이었다.


“왜 대답을 안 해? 내 눈에는 맞는 것 같은데.”


명호가 답답한 마음에 신우를 다그쳤다.


“······”


신우가 대답 대신 두 눈을 꼭 감았다.


그때, 소년이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그들에게 돌아왔다. 그가 말했다.


“아저씨들 표정을 보니 맞는 것 같네요. 자. 그러면 약속한 돈 주세요.”


소년이 신우를 향해 손바닥을 쫙 벌리며 웃었다.


신우가 고개를 끄떡였다. 말없이 품에서 돈을 꺼내더니 소년에게 건네주었다.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여기에 있지 말고, 멀리 가 있어라.”


“네, 헤헤!”


소년이 잘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떡이며 깔깔 웃었다. 돈을 세며 길을 나서다 급히 말했다.


“어! 아저씨. 돈을 너무 많이 주셨는데요!”


받기로 한 액수보다 훨씬 큰돈이 들어오자, 소년이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돈을 흔들며 외쳤다.


신우가 씩 웃었다. 소년에게 멀리 가라고 손짓만 할 뿐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이에 소년이 함박웃음을 지었다. ‘이게 웬 횡재냐!’ 하며 부리나케 뛰기 시작했다.


잠시 후 굳게 닫혔던 신우의 입이 열렸다. 그가 말했다.


“맞아. 명호야. 촌장이 맞아!”


“그렇지! 내가 촌장을 못 알아볼 리가 없지. 일본군을 끌고 오던 그 목소리가 아직도 귀가에 생생해.”


명호가 말을 마치고 숨을 길게 내쉬었다. 22년간의 기다림이 종지부를 찍는 날이었다.


둘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


신우와 명호가 말없이 서로를 쳐다봤다.


이제 진실을 밝혀야 했다. 진실은 결코, 아름답지 않았다. 있는 그대로의 날것이었다. 날것이지만, 통째로 삼켜야 하는 게 진실이었다.


아무리 그것이 거칠고 날카롭더라도 삼켜야 했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라면 ….


“가자!”


신우가 말을 마치고 발을 뗐다. 명호가 뒤를 따랐다.


그렇게 둘이 22년간의 빚을 갚기 위해 천천히 마석 상회로 향했다. 가게 근처에 다다랐을 때


차 한 대가 나타났다. 둘을 지나치더니 마석 상회 앞에 멈췄다.


차에서 신사 하나가 내렸다. 말끔하게 양복을 차려입어 귀티가 났다. 중절모를 멋지게 눌러 섰고 반짝이는 구두를 신었다.


신사가 차에서 내리자 가게 안에 있던 점원이 가게 밖으로 나왔다. 신사를 보더니 뒤를 돌아서 크게 소리쳤다.


“주인어른, 도련님이 오셨어요!”


그러자 가게 주인과 안주인이 가게 밖으로 뛰어나왔다.


“아이고! 의사 선생님. 일하느라고 힘들었지.”


안주인이 신사를 반갑게 맞이했다.


“어머니! 오늘 정말 중요한 수술을 무사히 잘 마쳤습니다. 원장님한테 큰 칭찬도 받았습니다. 하하하!”


신사가 기분이 좋은지 크게 웃어댔다.


“아들, 빨리 안으로 들어가자. 오늘은 경사스러운 날이니 소갈비를 먹자 구나!”


가게 주인이 신사가 자랑스러운지 어깨를 토닥였다. 그렇게 화목한 가족이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마석!”


신우가 자기도 모르게 크게 소리쳤다. 어릴 적 사사건건 다투던 소년이 앞에 있었다.


명호가 신우의 말에 깜짝 놀라서 신사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맞다! 마석이다! 그 녀석이다.”


명호도 마석을 알아봤다. 머릿속에서 한 사건이 떠올랐다. 22년 전 마석과 한 판 붙었던 날이었다.


“저놈은 그동안 잘 먹고 잘살았던 모양이네. 아주 잘 난 부모를 만나서!”


명호가 이를 갈았다. 그는 촌장 부부와 아들이 경성에서 이렇게나 큰 쌀가게를 운영한다는 사실에 분노를 금할 수 없었다.


특히, 마석은 귀공자와 다름이 없었다. 서민은 한 번도 입기 힘든 고급 양복을 쫙 빼입고 중절모에 반짝이는 구두 등 온갖 멋이란 멋은 다 내고 있었다.


신우와 명호는 그날 이후 온갖 고생을 하며 살아왔고, 억울하게 죽은 이들의 혼도 달래지 못했다.


그러나 촌장 가족은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며 호사스럽게 살고 있었다. 그들은 도저히 이 상황을 참을 수 없었다. 이에 누구라 할 것 없이 성큼 가게를 향해 걸어갔다.


“명호야! 여기에서 기다려라!”


가게 앞에서 신우가 명호에게 말했다.


“아니! 왜?”


명호가 야속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도 촌장에게 따져야 했다. 일본군한테 죽은 사람들이 왜 하나같이 촌장한테 돈을 빌려준 사람인지 그리고 신우의 오두막으로 일본군을 왜 끌고 왔는지 따져 물어야 했다.


“저 안에 누가 있는지 알 수가 없잖아, 넌 여기에서 망을 보는 것이 좋겠다.”


신우의 말에 명호가 잠시 생각했다. 그가 고개를 끄떡이고 답했다.


“좋은 생각이네. 그러면 일단 먼저 안으로 들어가서 상황을 살펴. 그리고 날 불러, 알았지.”


“알았어.”


신우가 말을 마치고 동상처럼 굳은 표정으로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명호가 초조한 표정으로 가게 앞에서 사방을 살피기 시작했다.


가게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신우가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기요, 누구 있나요?”


가게에 낯선 목소리가 들리자, 한 점원이 나타났다. 그가 말했다.


“물건 보러 오셨어요?”


점원이 친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주인장을 뵙고 싶습니다.”


신우의 말에 점원이 귀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답했다.


“그냥, 저한테 말씀하시죠. 지금 주인어른은 바쁘세요.”


“주인어른을 … 반드시 만나야 합니다!”


신우가 말을 마치고 무서운 표정으로 점원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섬뜩한 냉기가 철철 흘러내렸다.


“어?”


점원이 주춤했다. 본능적으로 등골이 오싹함을 느끼고 두 눈을 급하게 내리깔았다. 그가 급히 답했다.


“아, 알겠습니다. 주인어른을 불러올게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점원이 황급하게 자리를 떴다. 안쪽으로 들어가 방문으로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20초의 시간이 흘렀다.


방문이 다시 열리고 주인이 나타났다.


20초의 시간 동안 신우의 머릿속에는 22년간 겪었던 파란만장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흘러갔다.


“여보시오. 내가 주인인데 무슨 일이요? 찾는 물건이 있소?”


주인이 무슨 일인가 하는 눈빛으로 앞에 있는 남자를 쳐다봤다.


신우가 주인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봤다. 세월이 흘러 나이를 먹었지만, 어린 시절 그를 귀여워 해주던 촌장이 맞았다.


촌장이 건네주던 달콤한 사이다 맛을 그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난생처음 먹었던 달콤하고 짜릿한 사이다에 감탄해서 촌장한테 연신 고개를 숙이며 감사했던 때가 떠올랐다.


“…….”


신우가 입을 꾹 다문 채 촌장의 얼굴을 바라봤다. 무척이나 슬픈 표정이었다.


“아니! 사람을 불렀으면 말을 해야지, 지금 뭐 하는 게요? 아까는 별 거지 같은 놈이 장난을 치더니, 이제는 다 큰 어른이 장난을 치네! 나 참, 어이가 없어서.”


주인이 성질을 부리고 뒤를 돌아섰다. 그가 점원에게 말했다.


“얘야! 이 사람 내보내라. 손님이 아닌 것 같다.”


주인이 바쁜 걸음으로 걸어갔다. 방문을 열려고 손잡이를 잡았다.


그때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영하 50도 차디찬 목소리였다.


“아저씨. 제가 누구인지 … 모르겠어요?”


신우가 긴 침묵을 깨고 말을 내뱉었다. 진실을 훤히 밝히려는 첫걸음이었다.


“뭐라고? 누구신데 이러오?”


주인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왠지 소름이 끼친 듯했다. 고개를 돌려서 신우를 유심히 살폈다.


“아무리 봐도 당신이 누구인지 모르겠소.”


주인의 말에 신우가 이를 악물었다. 단전에 힘을 모으더니 있는 힘껏 크게 외쳤다.


“나는 … 이신우다! 억울하게 죽은 이덕수와 박홍순의 아들 …… 이신우다!!”


마치 호랑이가 울부짖은 거 같았다. 고요한 산천의 적막을 깨는 호랑이의 포효였다.


“아이고!”


갑자기 들리는 천둥 같은 소리에 주인이 깜짝 놀랐다. 놀란 나머지 잠시 허둥대다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신우에게 외쳤다. 성질이 난 듯했다.


“뭐, 뭐라고? 이게 어디에서 큰 소리야! 버르장머리 없이!!”


그러다 뭔가가 이상한 듯 주춤했다. 눈동자에 커다란 당혹감이 서리기 시작했다. 고개를 이리저리 움직이더니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까 이덕수, 박홍순, 이신우라고 한 거 같은데 … 시, 신우라면! …… 덕수 아들 신우라면!! ……… 으악!!!”


주인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두 눈이 터질 듯이 커졌다.


자기를 찾아온 사람이 죽마고우였던 덕수의 아들, 신우라는 사실에 너무나도 놀란 나머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그가 벌벌 떠는 손으로 신우를 가리켰다. 20여 년 전, 아들처럼 귀여워했던 한 아이가 떠올렸다.


벌써 20년이 훌쩍 지난 일이었다.


앞에 있는 남자는 신우였다. 신우가 맞았다.


촌장이 자기 눈을 의심했다. 신우는 그때 오두막에서 죽었다. 그런 신우가 돌아올 리 없었다. 이에 다시 한번 앞에 있는 남자를 유심히 살폈다.


그는 죽마고우였던 덕수의 아들 신우가 맞았다.


마치 죽은 이덕수가 서 있는 거 같았다.


“너, 넌 … 그때 죽었잖아. 그때! …… 억!!”


촌장이 외마디 비명을 질러댔다. 그러다 하늘이 노래졌고 그 자리에서 혼절하고 말았다.


그는 신우가 사지에서 돌아왔을 때도 혼절하더니 오늘 또 혼절하고 말았다.



진실은 언제나 같았다.


양심에 걸리는 자는 감당할 수 없었다.


그게 인생의 이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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