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유강인 20편 <검은 피, 저주의 서릿발>
유강인이 단호한 목소리로 답했다.
“아닙니다. 비밀 연구실에 들어갔을 때 지남철 박사님은 바닥에 쓰러져 있었습니다. 바닥에 검은 피가 흥건했습니다.
많은 피를 흘렸고 의식도 없어 보였습니다. 이미 돌아가신 거 같았습니다. 저는 당신 아버지 죽음에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사실입니까?”
“사실입니다.”
“하늘에 양심을 걸고 맹세할 수 있나요?”
“맹세할 수 있습니다. 단연코!!”
“그렇군요. 그런데 다른 사람 증언은 그렇지 않더군요.”
“다른 사람이라고요?”
지단길 박사가 고개를 끄떡였다.
유강인이 그자가 누군지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유강인을 모함할 사람은 병아리 2밖에 없었다.
29년 전 사건 당시, 지남철 박사의 죽음을 목격한 사람은 총 다섯이었다. 유강인과 윤호, 진호, 병아리 2, 지박사 조수였다.
절친한 친구인 윤호와 진호가 거짓말을 할 리 없었다. 조수도 거짓말할 거 같지 않았다.
유강인이 급히 말했다.
“당시에 제 친구들이 옆에 있었습니다. 그 친구들에게 물어보세요.”
지단길 박사가 고개를 흔들며 답했다.
“두 분 다 지금 행방불명 상태입니다. 그래서 물어보지 못했습니다.”
“네에? 뭐라고요? 윤호, 진호 둘 다 행방불명 상태라고요?”
“그렇습니다. 그래서 두 분께 물어보지 못했습니다.”
“헉!”
유강인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초등학교 친구 둘이 행방불명됐다. 이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지단길 박사가 말했다.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다고 들었습니다.”
“이게 대체!”
유강인이 급히 생각했다.
‘실종이라면 … 납치인가? 병아리 2 그놈이 내 친구들을 납치한 건가? 병아리 2는 나를 사건에 끌어들였어. 나랑 대결을 벌이고 있어.
이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야! … 이젠 친구들까지 위험에 빠졌어.’
유강인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기 시작했다. 이마에서 식은땀이 쭉 흘러내렸다.
병아리 2가 저 앞에서 크게 웃는 거 같았다. 거북이 보고 빨리 오라고 손짓하는 거 같았다.
병아리 2 옆에 친구 둘이 꽁꽁 묶여 있었다. 친구들이 살려달라고 소리를 질렀지만, 입에 재갈이 물려 소용이 없었다.
병아리 2는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자였다. 셋을 처참하게 죽였고 다섯을 납치했다. 둘을 납치하는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사태를 파악한 유강인이 급히 정신을 가다듬었다. 다급할수록 침착해야 했다. 그가 황수지에게 귓속말했다.
황수지가 고개를 끄떡였다. 품에서 핸드폰을 꺼내서 서울청 정찬우 형사에게 긴급 문자를 보냈다.
‘정신 차려야 해!’
유강인이 고개를 마구 흔들었다. 상황이 점점 극을 향해 치닫기 시작했다.
병아리 2가 친구인 윤호, 진호까지 납치했다면 이는 전면전과 같았다. 결코, 피할 수 없는 대결이었다.
병아리 2와 목숨을 건 한판 대결을 벌일 수밖에 없었다.
지단길 박사가 말했다.
“다른 목격자가 분명히 말했습니다. 유강인 탐정님이 죽어가는 아버지 옆에 있었지만, 이를 보고도 구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죽어가는 아버지가 약을 달라고 간청했지만, 유강인 탐정님은 이를 거부했고 그래서 아버지가 죽었다고 말했습니다.
약을 주기는커녕 약병을 발로 차버렸다는 말도 했습니다.”
유강인이 절대 아니라는 표정으로 답했다.
“아닙니다! 그건 모함입니다. 그자가 자기가 한 짓을 저에게 뒤집어씌우는 겁니다. 당시 연구실에 아이가 하나 더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납치된 아이였습니다. 그래서 앙심을 품고 당신 아버지를 구하지 않은 겁니다.”
“그걸 보셨나요?”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이건 확인할 수가 없군요. 둘의 말이 완전히 다르니 ….”
“그때 다른 사람이 연구실에 들어왔습니다. 조수로 보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람한테 물어보세요.”
“물어봤습니다. 그분은 연구실에 아이들만 있었다고 답했습니다.”
“그렇다면, 이건 진실 공방이군요. 이 자리에서 진위를 가릴 수 없는 ….”
지단길 박사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가 생각을 정리하고 입을 열었다.
“잘 알겠습니다. 유강인 탐정님 말씀을 믿겠습니다. 유탐정님이 그러실 분이 아니죠.
하늘에 양심을 걸고 맹세했으니 거짓일 리 없죠. 유탐정님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거짓말한 겁니다.”
“맞습니다. 그자는 자신을 병아리 2라고 소개했습니다. 병아리 2가 거짓말한 겁니다.”
지단길 박사가 담담히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유강인이 그 모습을 보고 급히 생각했다.
‘병아리 2가 자기 정체를 지단길에 밝혔군. 그렇다면 이번 사건은 지단길하고도 관련이 있어.
병아리 2는 모든 걸 뒤에서 조종하고 있어. 지단길도 그자가 짠 판에 뛰어든 게 분명해.
아주 잘 찾아왔어. 그건 그렇고 병아리 2 이놈은 아주 악질이야. 자기가 한 짓을 뻔뻔하게도 나한테 뒤집어씌웠어.
이 나쁜 놈! 병아리 2! 네놈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사람들을 막 죽이더니 이젠 나까지 모함해.
내 친구들까지 납치했다면, 지옥이라도 쫓아가서 단칼에 요절내겠다!’
유강인이 끓어오르는 분을 참지 못하고 이를 악물었다. 몸에서 분노가 팔팔 끓어올랐다. 100도를 넘어서 200도로 향했다.
둘의 말을 잠자코 듣던 지정혜가 오빠에게 귓속말했다.
“거봐요. 병아리 2는 믿을 자가 못돼요.”
지단길 박사가 미소를 지으며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괜찮아. 우리 거래는 잘 끝났어. 디스켓 5개만 받으면 된 거야.”
“응?”
디스켓 5개라는 말이 유강인의 귓가에 울렸다. 이는 심상치 않은 말이었다.
유강인의 눈빛이 번쩍였다. 그가 급히 생각했다.
‘지금 지단길이 디스켓 5개를 받았다고 말했어. 디스켓은 옛날에 사용하던 물건이야. 명덕산 사건은 1996년이야. 연도가 딱 맞아.
맞아, 비밀 연구소에 노트북이 있었어. 노트북 옆에 디스켓이 있을 수 있어. 그 디스켓을 말하는 건가?
디스켓 5개를 누구한테 받았다는 말 같은데 … 뒤에 들어온 조수는 책상에서 서류만 챙겨서 나갔어. 디스켓을 다른 사람이 챙긴 건가?
그렇다면 … 병아리 2가 디스켓 5개를 챙겨서 나간 거구나. 이게 사실이라면 병아리 2가 지남철 박사의 연구 자료를 갖고 있었다는 말이야.
그 자료를 그 아들에게 넘긴 거 같아. … 왜 이런 짓을 한 거지? 돈 때문인가? 거래가 끝났다고 말했어.
그렇구나! 병아리 2가 인광 연구소와 거래를 했구나.’
유강인이 생각을 정리했다. 병아리 2가 인광 연구소와 관련이 깊은 게 드러났다. 디스켓 5개로 모종의 거래를 한 게 분명했다.
동생 지수미가 유강인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봤다. 그녀가 입을 열었다.
“유강인 탐정님, 우리 연구소에서 탐정님 유전자에 관심이 많습니다. 정중히 부탁하겠습니다. 유전자를 연구할 기회를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네에?”
유강인이 깜짝 놀랐다. 그가 급히 지단길 박사를 쳐다봤다. 지박사가 씩 웃었다.
이 말은 지박사가 바이오 클린 축하 파티에서 했던 말이었다. 농담이라고 생각했는데 허언이 아니었다.
언니 지정혜가 간곡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유전자 연구 책임자, 지정혜입니다. 현재 천재들의 유전자를 심층 연구 중입니다. 유강인 탐정님의 유전자를 연구하고 싶습니다. 간곡히 부탁합니다.”
유강인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단길 박사 동생들이 약속장소에 나온 이유를 알 거 같았다. 그들의 목적은 유강인 유전자였다.
황수지가 이건 아니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유강인에게 말했다. 작은 목소리였다.
“응하지 마세요, 탐정님.”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였다. 굳이 조사에 응할 필요가 없었다.
그때! 지수미의 두 눈이 탁구공처럼 커졌다. 그녀가 숨을 가쁘게 내쉬기 시작했다. 그렇게 안절부절못했다.
유강인이 그 모습을 보고 이게 무슨 일인가 하며 두 눈을 크게 떴다. 바로 그때!
“윽!”
지수미가 신음을 내뱉었다. 급히 오른손을 들더니 입을 틀어막았다. 기침이 나오는 거 같았다.
“큭!”
기침 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기침 소리와 함께 손가락 사이로 뭔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건 흘러내리는 걸쭉한 액체였다. 검은 피였다.
“거, 검은 피!”
유강인이 검은 피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지수미가 황급히 손수건을 꺼냈다. 손과 입에 묻은 검은 피를 재빨리 닦았다. 다행히 피의 양은 많지 않았다.
지단길 박사가 그 모습을 보고 서둘러 말했다.
“약을 먹었는데도 그런 거야?”
지수미가 몸을 바들바들 떨며 고개를 끄떡였다.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아! 그렇구나!’
유강인이 지남철 박사를 떠올렸다. 아버지가 앓던 병이 29년이 지난 후 자식인 지수미에게 발병한 게 틀림없었다.
‘… 유전병이구나! 그 병이 대를 잇고 있어.’
유강인이 이제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단길 박사가 바이오클린 연구에 왜 사활을 거는지 알 거 같았다. 그런 바로 가문의 유전병을 고치기 위해서였다.
“이런!”
지단길 박사가 크게 상심한 듯 숨을 내쉬었다. 지정혜도 마찬가지였다. 동생의 상태가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둘이 서로 쳐다보더니 소리 없이 웃기 시작했다. 그건 공포심이 가득한 웃음이었다.
아늑했던 커피숍이 섬뜩해졌다. 죽음의 저주가 느닷없이 커피숍을 덮쳤다. 지수미 뒤에 저승사자가 말없이 서 있는 거 같았다.
“으으으~!”
유강인이 지단길 남매를 보면서 서늘함을 느꼈다. 지남철 박사의 자식들이 아버지처럼 저주의 늪에 빠진 거 같았다.
지단길 박사가 고개를 푹 숙였다. 그가 고개를 들고 유강인에게 말했다. 낙담한 목소리였다.
“유탐정님, 검은 피를 두 눈으로 직접 보셨으니 … 숨길 필요가 없군요. 우리 집안에는 대대로 내려오는 저주가 있습니다.
갑자기 중병에 걸리는 저주입니다. 몇 대를 거르다 아버지 대에 이르러 저주가 기승을 부렸습니다.
그래서 아버지, 고모, 삼촌이 연달아 돌아가셨습니다.
그 병이 멈추지 않고 우리 대까지 내려왔습니다. 우리 모두 아버지 대에서 저주가 끝나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그것 헛된 희망이었습니다.
얼마 전, 막냇동생한테 병이 발병했습니다. 곧 저도 저렇게 될 거 같습니다.”
유강인이 급히 남매의 안색을 살폈다. 셋의 안색이 창백했다. 지단길 박사의 말대로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가 그들을 덮치고 있었다.
지정혜가 몸을 떨며 말했다.
“다행히 억제제를 개발했지만, 그 효능이 제한적입니다. 악화를 막아줄 뿐입니다. 그 약은 돌아가신 아버지가 개발했습니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 그 약을 드시려 했지만, 결국, 드시지 못하고 돌아가셨습니다.”
“그렇군요. 그 알약이 억제제였군요.”
유강인이 잘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29년 전 지남철 박사 옆에 떨어져 있던 알약의 정체가 드러났다. 그건 지박사가 개발한 증상 억제제였다.
황수지가 무척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검은 피를 토한 지수미에게 말했다.
“지금 괜찮으세요?”
지수미가 고개를 끄떡이며 답했다.
“아직 초기 단계라 괜찮습니다. 오늘 컨디션이 별로였나 봐요. 억제제가 있어서 최소 몇 년은 버틸 수 있어요”
“그렇군요.”
유강인이 참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남매를 바라봤다. 그들은 언제 발병할지 모르는 병을 몸에 안고 살고 있었다.
그 병은 잠복해있다가 갑자기 발병했고 발병하면 오래 살 수 없는 거 같았다.
억제제만 있다는 말은 아직 치료제가 없다는 말과 같았다.
유강인이 측은한 표정으로 남매를 잠시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유전자 연구에 참여하겠습니다.”
“아! 그래요.”
지정혜가 기뻐했다. 그녀가 말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연구는 제 인생입니다. 죽을병에 걸려 아파 죽더라도 연구는 포기할 수 없습니다. 호랑이가 가죽을 남기듯, 죽더라도 논문은 남겨야죠. 죽는 순간까지 연구할 겁니다.”
지정혜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그 눈빛에서 연구의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연구에 진심인 과학자가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