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유강인 20_52_60년 전 처참한 진실

탐정 유강인 20편 <검은 피, 저주의 서릿발>

by woodolee

꽃무늬 할머니 옆에 앉은 할아버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강인이 손을 흔들며 말했다.


“술은 됐습니다.”


꽃무늬 할머니가 씩 웃었다. 그녀가 말했다.


“내가 목이 칼칼해서 그래. 나랑 우리 동생들이 먹을 거야. 탐정님은 일해야지. 대낮에 무슨 술이야.”


“아! 그렇군요. 죄송합니다.”


유강인이 무안한 듯 고개를 숙였다.


“어서 자리에 앉아. 방석 여기 있어.”


꽃무늬 할머니가 방석을 들고 바닥에다 쓱 밀었다.


밀려온 방석이 유강인 앞에 딱 멈췄다. 정확한 솜씨였다. 유강인이 방석을 깔고 앉았다.


할아버지가 냉장고에서 막걸리 두 병과 잔 네 개를 들고 왔다. 병뚜껑을 돌리고 잔에 술 따르는 소리가 들렸다.


조용한 마을회관이라 그 소리가 크게 들렸다.


유강인은 콸콸 술 따르는 소리를 들으며 가만히 있었다.


잔에 술이 가득 차자, 꽃무늬 할머니가 배시시 웃었다. 18살 소녀의 웃음 같았다.


꽃무늬 할머니가 잔을 들고 막걸리를 꿀꺽꿀꺽 마셨다.


그러자 할아버지들도 막걸리를 마셨다. 그 모습이 무척 흥겨워 보였다.


유강인은 잠자코 있었다. 어르신들이 막걸리를 다 마시기만을 기다렸다.


어르신들이 목을 축이고 입을 닦았다.


유강인이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어르신들, 안주는 없나요?”


꽃무늬 할머니가 씽긋 웃고 답했다.


“왜 안주 먹고 싶어서?”


“그건 아닙니다.”


꽃무늬 할머니가 잔을 들고 행복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안주 없이 막걸리를 즐겨. 그것만으로 충분해. 오래 살다 보니 이젠 안주가 필요 없어. 나이가 90살이 넘어가니 술맛이 뭔지 알겠어.”


“맞습니다, 누님. 술맛은 80살이 넘어야 제대로 느낍니다. 그전까지는 취하려고 마시는 거죠.”


“맞아요. 인생은 80부터죠. 80살이 됐을 때 술맛이 달라졌어요. 참 달았어요. 그러다 90살이 되자, 단 정도가 아니라 꿀맛이었어요.

100살이 되면 무슨 맛일까요? 천상의 맛일까요? 세상을 하직하고 하늘나라로 올라가는 맛이겠죠.”


할아버지들이 맞장구쳤다.


유강인이 잘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넷은 그 오랜 세월, 인생의 세파를 견디며 살아온 게 분명했다. 그래서 술맛을 남달리 느끼는 거 같았다.


유강인이 한번 헛기침하고 질문을 시작했다.


“지씨 집안이 청기와집 주인이라고 들었습니다. 언제부터 그렇게 됐죠?”


꽃무늬 할머니가 답했다.


“원래 청기와집 주인은 이씨 집안이었어. 그러다 지인광 그 양반이 청기와집을 사들였어. 예전에는 청기와집 머슴이었어. 그러다 주인이 된 거지.

한마디로 인생 역전이야. 그런 일은 아주 귀한데 지인광 그 양반이 해냈어.”


유강인이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그가 말했다.


“네에? 지인광씨가 청기와집 머슴이었다고요?”


“응. 지인광 그 양반이 젊은 시절, 청기와집 머슴이었어. 그러다가 그 집에서 쫓겨났어.

도둑질하다가 걸렸다고 들었어. 주인집 패물을 훔쳤다가 딱 걸려서 모진 매를 맞고 쫓겨났어.

그렇게 빌빌거렸는데 큰 난리가 났을 때 큰돈을 벌었다고 들었어.”


“큰 난리라고요? 그게 뭐죠?”


“6.25.”


“아! 그렇군요. 6.25 전쟁 때 큰돈을 벌었다는 말인가요?”


“확실한 건 아니야. 그런 소문이 돌았어. 가난뱅이가 전쟁이 끝난 후 갑자기 큰 부자가 됐어. 그러니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지.”


“맞아요. 누님. 저도 그렇게 들었습니다. 지인광 아저씨가 전쟁 후에 큰 부자가 됐다고 들었습니다. 무슨 수를 쓴 거 같아요. 아는 아저씨가 그랬어요. 난리 통이 돈 벌기가 더 쉽다고.”


할아버지들이 거들었다.


유강인이 잠시 생각했다.


‘지인광은 지남철 박사 아버지인데 … 그 집안이 예전에 머슴 집안이었다는 말이잖아. 지금은 대단한 가문이 됐고. 인생이 180도로 바뀌었군.’


유강인이 심상치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질문을 이었다.


“혹 지남철 박사라는 사람을 아시나요?”


꽃무늬 할머니가 고개를 끄떡이고 답했다.


“그럼, 우리 마을 자랑인데. 천재잖아. 한국 최고의 천재라고 소문이 자자했어. 지남철 박사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어.”


“지인광씨는 자식이 일곱 명이었습니다. 지남철 박사는 다섯 번째 아들입니다.

일곱 자식 중 여섯이 요절했고 한 명은 실종됐습니다. 이 사정을 아시나요?”


“잘 알지. 지인광 그 양반은, 돈은 참 많이 벌었는데 박복했어. 자식들이 모두 그렇게 됐어. 지남철도 실종됐다고 들었는데 그새 죽은 거야?”


“네, 지남철 박사는 29년 전에 죽었습니다.”


“아이고! 그 사람도 결국 죽었구나. 머리가 좋아서 큰일을 할 거라고 했는데 정말 지씨 집안에 저주가 서렸어.”


저주라는 말에 유강인이 급히 말했다.


“지씨 집안에 저주가 깃들었다는 말인가요? 자세히 말해주세요.”


꽃무늬 할머니가 고개를 끄떡였다. 그녀가 다시 막걸리로 목을 축이고 말했다.


“응. 아주 지독한 저주지. 그때 끔찍한 소문이 마을에 돌았어.”


“소문이라고요? 그때가 언제죠?”


“아주 오래전 일인데 … 지씨 집안 막내딸을 살리려고 그 집 하인과 딸을 죽였다는 소문이 돌았어.”


유강인이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그가 급히 말했다.


“네에? 그게 진짜인가요?”


“그 소문이 돌자, 지인광 그 양반이 펄쩍 뛰었어. 헛소문이라며 소문을 퍼트린 자들을 싹 다 잡아갔어. 경찰서에 가기도 전에 몽둥이 찜찔부터 했지.

그래서 그 소문이 쑥 들어갔어. 끌려간 사람들은 반은 죽었고.”


유강인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지인광씨가 사적으로 사람을 마구 때렸다는 말인가요? 경찰이 버젓이 있는데 ….”


“아이고! 탐정 양반. 어려서 잘 모르네. 그때는 그런 시절이었어. 무법천지였지.

힘 있는 게 최고였어.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때는 대놓고 했지.

지인광 그 양반은 경찰과 아주 친했어. 아니 경찰을 수하로 부렸어. 면장이랑 호형호제했고 그래서 그 위세가 대단했어.

헛소문을 퍼트렸다고 끌려가서 얻어맞은 사람들이 찍소리도 못했어. 병원비만 받고 입을 다물었지. 나중에 돈을 더 주기는 했대. 위로비로.”


유강인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인광의 짓은 명백한 범죄였다.


‘지인광은 보통 사람이 아니야. 무지막지한 사람이야! 그래서 그 아들 지남철도 그런 건가?’


유강인이 기억을 더듬었다. 막내딸의 사망 연도를 떠올렸다.


‘막내딸이 죽었을 때가 1960년대 중반인 거 같은데 … 60년 전이라 그런 일이 가능했던 건가? 그렇군, 지역 유지가 왕처럼 군림했던 시절이야.’


유강인이 생각을 이었다.


‘주인집 패물을 훔치다 쫓겨난 머슴이 전쟁 통에 큰돈을 벌었어. 그 돈으로 청기와집을 사들였어.

지인광이 큰돈을 번 게 무척 의심스러워. 무슨 짓을 한 거 같아. 아마도 불법적인 일인 거 같아.’


유강인이 지인광의 정체를 의심했다.


지인광의 출세는 시기상 6.25 전쟁과 관련됐다. 전쟁은 혼란 그 자체였다. 아비규환 속에서 마음대로 불의하고 불법적인 일을 저지를 수 있었다.


유강인이 질문을 이었다.


“지씨 가문에 퍼진 소문을 자세히 말해주세요.”


꽃무늬 할머니가 크게 숨을 내쉬었다. 그녀가 잠시 과거를 회상했다. 그때는 한창 젊었을 때였다. 그녀가 입을 열었다.


“청기와집 하인하고 딸이 죽었을 때 그걸 목격한 사람이 있었어. 그 사람이 소문을 퍼트린 거 같아. 소문이 삽시간에 마을에 퍼졌어.

그때 청기와집에서 중병에 걸린 막내딸을 살리려고 굿을 했었어.

소문에 따르면 무당이 하인 딸을 죽였어. 아버지인 하인이 분을 참지 못하고 주인인 지인광에게 대들었다가 죽었고.

하인이 죽기 전, 숨이 끊어진 딸을 부여안고 저주를 퍼부었어. 지씨 가문은 검은 피를 토하고 모두 죽을 거라고 말했어.

그런데 그 저주가 진짜 이루어졌어. 지인광 그 양반 자식들이 하나둘씩 죽어 나갔어. 그래서 막내아들이 미쳐서 집을 나갔어.”


검은 피가 다시 등장했다. 유강인이 급히 말했다.


“저주에 분명 검은 피가 등장하나요?”


“응, 그렇게 들었어. 검은 피를 쏟으며 죽는다는 저주였어. 너무나도 끔찍한 저주였지.

실제로 지인광 그 양반 자식들이 검은 피를 토하고 죽었어.

나도 그걸 목격했어. 둘째 아들이 길을 걷다가 피를 마구 토했어. 그건 검은 피였어.

그래서 그 소문이 진짜였어. 하인이 내린 저주도 진짜가 맞을 거야. 지금 생각해도 소름이 돋아!”


할아버지들이 고개를 끄떡이며 하나둘씩 말했다.


“그건 소문이 아니라 진짜 있었던 일이에요. 저도 봤어요. 검은 피를!”


“하인과 딸이 억울하게 죽자, 그 집 안사람이 도망쳤잖아요. 지인광 그 양반이 또 해코지할까 봐 남은 딸을 데리고 도망쳤다고 들었어요.”


“응!”


유강인의 두 눈이 커졌다. 할아버지의 말은 남편과 딸을 잃은 한 여자가 남은 딸을 데리고 마을에서 도망쳤다는 말이었다.


도망친 부녀는 커다란 원한을 품을 게 분명했다. 부인은 남편과 딸을 잃었고 남은 딸은 아버지와 자매를 잃었다.


‘그렇군. 이건 사무친 원한이야! 원한이 복수를 낳은 거야!’


유강인이 깨달았다. 기적, 저주, 복수 중 누가 복수하는지 알 거 같았다.


60년 전 한 집안이 풍비박산 났다. 주인집 딸을 살리기 위해 하인집 딸이 희생됐다. 이에 항의하던 하인은 주인에게 죽었다.


이후 하인의 아내는 남은 딸을 데리고 허겁지겁 도망쳤다.


당시 지인광은 진향리의 왕과 같았다. 경찰에 신고해도 소용없었다. 아내의 말을 들어줄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휴우~!”


유강인이 크게 숨을 내쉬었다. 중병에 걸린 딸을 살리기 위해 지인광이 오판한 게 분명했다.


무당은 주인집 딸을 살리기 위해 다른 이의 생명을 요구했다. 그래서 하인집 딸이 희생됐다.


그 굿은 용궁 보살이 벌인 게 분명했다.


장동숙이 분명 말했었다. 용궁 보살이 오래전 청기와집에서 검은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소녀를 살리기 위해 굿을 했었다고.


사건이 점점 명쾌해지기 시작했다.


유강인의 눈빛이 어느 때보다 빛났다. 두꺼운 장막에 가렸던 처참한 진실이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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