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oodolee Nov 08. 2024

29_김정태 배우와 독이 든 잔

탐정 유강인 18편 <검은 자서전과 악의 비밀>

잠시 생각에 잠겼던 유강인이 순간 멈칫했다. 갑자기 뭔가가 생각이 난 듯했다. 그가 서둘러 황수지를 찾았다.


“수지.”


“네, 탐정님.”


황수지가 낭랑한 목소리로 대답하고 단 위로 올라왔다.


황수지가 근처에 오자, 유강인이 입을 열었다.


“백회장님이 나한테 유언을 남겼어. 녹음기를 켜. 내 말을 녹음해.”


“알겠습니다.”


황수지가 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녹음 앱을 실행했다.


유강인이 기억이 더듬었다. 백두성의 마지막 말을 떠올렸다. 그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놈들이 움직였어. 모든 건 자서전에 있어. 만약 없다면 수수 ….”



유강인이 말을 멈추었다.


황수지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더는 없나요? 말이 중간에 끊긴 거 같은데 …. 수수 다음에 뭐죠?”


“이게 다야. 녹음기를 스톱하고 저장해. 백회장님이 죽기 전에 간신히 남긴 유언이야. 이후에 피를 토하고 절명하셨어.”


“그렇군요. 그런데 마지막에 말한 수수가 뭘까요? 뭘 말하려고 했던 걸까요?”


“글쎄, 그건 두고 보면 알겠지.”


황수지가 녹음 파일을 만들자, 유강인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자서전 출간 기념회와 매실차, 독이 든 잔, 그리고 심상치 않은 유언 … 이 모든 일이 여기에서 벌어졌어.

분명 누군가가 매실차에 독을 넣었어. 어디에서 독을 넣었을까? 집에서 넣었나? 아니면 사무실? 그것도 아니면 … 여기인가?’


유강인이 윗니로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가 잠시 자리에 앉은 사람들을 내려다봤다.


많은 사람이 두 눈을 멀뚱멀뚱 뜨고 유강인을 쳐다봤다.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행사에 총 103명이 참석했다. 이는 유강인과 조수 둘까지 포함한 숫자였다. 탐정단을 빼면 딱 100명이었다.


‘범인이 여기에 있다면 그자를 반드시 잡아야 해!’


생각을 마친 유강인이 입을 열었다.


“여러분, 옆에 앉은 분을 확인해주세요. 옆에 앉은 분이 맞나요?”


“옆 사람이요?”


사람들이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옆자리 사람을 확인했다.


“맞네, 당신이네.”


“여보, 우리 손 꼭 잡아요.”


그렇게 사람들이 부산을 떨 때


“엉? 이, 이게 뭐야?”


“이 사람은 누구죠?”


갑자기 놀란 목소리가 들렸다.


순간! 유강인의 눈빛이 섬광처럼 반짝거렸다.


귀빈석에 앉은 둘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둘러 입을 열었다.


“이 사람은 처음 보는 사람이에요!”


“맞아요. 제 옆에는 김정태 배우님이 앉았어요. 그런데 지금 다른 사람이 앉았어요.”


“뭐라고요?”


유강인이 서둘러 문제의 인물을 찾았다. 백두성 우측 자리에 앉은 인물이었다.


유강인이 그 사람을 주시했을 때


귀빈석 끝자리에서 한 사람이 벌떡 일어났다. 축하사를 했던 여배우 전나숙이었다. 그녀가 외쳤다.


“맞아요! 저 자리는 김정태 배우님 자리였어요. 저 사람은 김정태 배우님이 아니에요!”


사람들이 시선이 한 사람한테 쏠렸다. 문제의 인물은 30대 남자였다. 젊은이였다.


“그, 그게 ….”


젊은 남자가 말을 더듬거렸다.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유강인이 심상치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단에서 내려가 문제의 남자 앞에 섰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선생님이 앉은 자리는 … 김정태 배우님 자리라고 다른 사람들이 증언했습니다. 선생님은 누구죠?”


“저, 저는 ….”


유강인이 강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어서 신분을 밝히세요.”


젊은 남자가 떠는 목소리로 답했다.


“저는 빈자리에 앉은 거뿐입니다. 유강인 탐정님이 모두 자리에 앉으라고 해서 제 자리를 찾아갔는데 다른 사람이 앉아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빈자리를 찾아서 여기에 앉은 거뿐입니다.”


“아, 그래요? 원래 어느 자리였죠?”


“52번 자리입니다.”


“그렇군요.”


유강인이 서둘러 좌석을 살폈다. 좌석에 번호표가 있었다. 그가 고개를 끄떡이고 크게 외쳤다.


“52번 자리에 앉으신 분 일어나세요.”


사람들이 52번 좌석을 찾았다. 중간쯤에 있는 자리였다.


53번과 51번에 앉은 사람이 옆자리 사람을 의심쩍은 눈초리로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52번에 앉은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60대 여성이었다. 그녀가 무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게, 제 자리에 다른 사람이 앉아서 … 이 자리에 앉았어요. 죄송합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였다.


자리에 모두 앉으라는 말에 몇몇 사람이 서두르다가 실수한 거 같았다. 다른 사람 자리에 앉고 말았다.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저도 다른 사람 자리에 앉았어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스무 명이 넘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 자리에 앉았다고 실토했다. 몇몇이 아니었다. 많은 사람이 실수를 범했다.


유강인이 잘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뭔가를 깨달은 듯 급히 말했다.


“그러면 김정태 배우님은 어디에 계시죠?”


유강인의 말에 귀빈석 사람들이 서로 쳐다봤다. 모두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김정태는 80대 중반의 원로 배우였다. 한때 백두성의 라이벌로 불렸던 청춘스타였다. 유강인도 그 이름을 알고 있었다.


키가 큰 미남 스타였다. 당시에 아주 큰 키인 185cm 신장을 자랑하는 학다리 배우였다.


유강인이 전나숙에게 말했다.


“김정태 배우님은 … 키가 아주 크신 원로 배우님을 말하는 건가요?”


전나숙이 고개를 끄떡이며 답했다.


“맞아요. 학다리 배우님이에요.”


“학다리! 누구신지 잘 알겠습니다.”


유강인이 급히 백정현 형사를 불렀다. 백형사가 달려오자, 서둘러 말했다.


“백형사님, 지금 당장 김정태 배우님을 찾아야 합니다. 어서 서두르세요. 학다리 배우님으로 유명하신 분입니다.”


“아, 누구신지 잘 알겠습니다.”


백정현 형사가 단 위로 올라갔다. 그가 행사에 참석한 사람을 쭉 둘러보다가 입을 열었다. 큰 목소리였다.


“저는 서해안 경찰서 강력반 백정현 형사입니다.

백두성 회장님이 오늘 이 자리에서 음료를 마시고 사망했습니다. 독살로 보입니다.

백회장님 옆자리에 앉았던 김정태 배우님이 지금 자리에 없습니다. 여러분들 옆자리를 확인해보세요.

김정태 배우님이 있는지 살펴주세요. 김정태 배우님은 유명 영화배우입니다. 별명이 학다리입니다.”


백형사의 말에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그들이 고개를 돌리며 김정태를 찾았다.


“탤런트가 아니라 영화배우 김정태를 말하는 거지?”


“맞아요. 김정태는 한때 유명한 영화배우였어요. 액션 스타였죠. 롱다리 치킨 CF도 찍었고요.”


“학다리 배우님이라면 그분이네,”


잠시 시간이 지났다.


김정태를 찾았다는 말이 없었다.


유강인이 말했다.


“김정태 배우님은 연로하신 분입니다. 80살이 넘으셨을 겁니다. 옆에 연로하신 분이 계시면 손을 들어주세요.”


유강인의 말에 사람들이 너도나도 손을 들었다. 20명이 넘는 사람이 손을 번쩍 들었다.


유강인이 전나숙에게 말했다.


“전나숙 배우님, 저분들 사이에 김정태 배우님이 있는지 확인해주세요.”


“알겠어요.”


전나숙이 귀빈석에서 일어나 걸음을 옮겼다. 손을 든 사람한테 걸어가 옆에 있는 노인들을 일일이 확인했다.


“아닌데.”


전나숙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게 연로한 사람들을 모두 확인했다.


경찰 하나가 조사가 끝났다고 한 손을 들었다. 이에 유강인이 말했다.


“전나숙 배우님, 김정태 배우님이 있나요?”


전나숙이 힘없는 목소리로 답했다.


“없어요. 김정태 배우님이 없어요.”


“그렇군요.”


유강인이 두 눈을 가늘게 떴다. 김정태가 분명 의심스러운 상황이었다. 의심스러운 점은 두 가지였다.


첫째, 김정태는 백두성 옆자리에 앉았다. 그 자리는 백두성의 잔에 독을 넣기 쉬웠다.


둘째, 김정태는 자리에 모두 앉으라는 지시에 따르지 않았다. 밖으로 나가 버린 거 같았다.


경찰들이 큰 목소리로 김정태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김정태 배우님! 여기 계시면 말씀해주세요!”


“김정태 배우님!”


1분간 김정태의 이름을 크게 불렀지만, 답하는 이가 없었다.


참가자 얼굴을 일일이 확인한 백정현 형사가 유강인을 향해 달려왔다. 그가 결과를 보고했다.


“유탐정님, 행사 참석자를 일일이 확인한 결과, 여기에 김정태 배우님은 없습니다.”


“그렇군요.”


유강인이 이를 악물었다. 드디어 수상한 자가 등장했다. 원로 배우 김정태가 백두성 살인 사건 용의자로 떠올랐다.


유강인이 백형사에게 말했다.


“백형사님, 지금 당장 김정태 배우님을 찾아야 합니다. 어서 서두르세요. 행사장에서 나간 게 분명합니다. 복도 CCTV를 확인하세요.”


“알겠습니다.”


백정현 형사가 말을 마치고 밖으로 나갔다.


“휴우~!”


유강인이 크게 숨을 내쉬었다. 상황이 시시각각 변하고 있었다. 백두성이 죽고 옆자리에 앉았던 김정태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백형사가 밖으로 나가자, 행사장 문이 활짝 열렸다. 경찰 10명이 안으로 들어왔다.


경찰들이 사람들의 신원을 일일이 확인하기 시작했다. 방명록을 살피고 신분증, 핸드폰 번호를 확인했다.


“경찰입니다. 선생님, 협조 부탁합니다. 신분증을 제시해주세요.”


“여기에 있습니다. 이게 참 무슨 일이야!”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축하 파티가 졸지에 살인 사건 수사 현장이 되고 말았다.


단 밑에 서 있던 조수 둘이 몸을 바르르 떨었다.


한국을 빛낸 거목이 죽고 수많은 사람이 조사 대상에 올랐다. 둘이 서로 얼굴을 쳐다봤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냐는 표정이었다.


조수들이 떨리는 가슴을 뒤로하고 유강인을 향해 달려갔다.


황정수가 떨리는 목소리로 유강인에게 말했다.


“탐정님, 정황상 김정태 배우님이 백두성 회장님을 죽인 거 같은데 … 그런 거죠?”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였다.


황정수가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김정태 배우님은 최근 드라마에도 나왔어요. 막내 손자와 이웃집 할아버지였어요.

주인공인 막내 손자의 할아버지 역할이었는데 … 그런 분이 백회장님을 죽였다고요? 둘 다 배우인데 … 사이가 나빴던 걸까요?”


“그건, 알 수 없지. 일단 김정태 배우님을 찾아야 해. 그래야 진상을 알 수 있어.”


황수지가 좀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말했다.


“김정태 배우님은 백두성 회장님 옆자리에 앉았잖아요. 백회장님을 죽이면 이건 너무 티 나는 일인데 … 진짜로 죽였다면, 이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에요.”


황수지의 말에 유강인이 왼손으로 턱을 매만졌다. 그가 잠시 생각하다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답했다.


“김정태 배우님이 범인이라면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지.”


“그럴 수밖에 없다고요?”


“응,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 거야. 이런 식으로 사람을 죽이며 자기가 사람을 죽였다고 광고하는 것과 같아. 이런 일을 했다면 분명 이유가 있을 거야.”


“그렇겠네요. 혹 김정태 배우님이 무슨 약점을 잡혀서 시키는 대로 움직인 걸까요?”


“그럴 가능성도 있어. 아니면 … 백두성 회장님을 죽도록 미워해서 죽일 수도 있어. 미움이 지나치면 극단적인 행동으로 번지기도 해.”


“그렇군요.”


유강인이 조수 둘과 말을 나누고 있을 때



삐리릭!



유강인의 핸드폰이 급히 울렸다. 행사장 밖으로 나갔던 백정현 형사의 전화였다. 백형사가 급히 말했다.


“유탐정님! 보안실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CCTV 확인 결과, 행사장에 소란이 일어났을 때 한 사람이 밖으로 급히 나갔습니다.”


“그래요? 그 사람이 누구죠?”


“키가 크고 연로하신 분입니다. 보안실 직원 말로는 얼굴이 김정태 배우님 같다고 합니다. TV에서 봐서 익숙한 얼굴이랍니다.”


행사자 밖으로 나간 사람이 김정태 배우라는 말에 유강인이 이를 악물었다. 그의 예상대로였다. 유강인이 말을 이었다.


“이후 김정태 배우님은 … 어디로 가셨죠?”


“복도를 빠른 걸음으로 걸어서 남자 화장실로 들어갔습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아직도 화장실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네에?”


유강인이 깜짝 놀랐다. 백두성이 죽고 시간이 꽤 흘렀다. 30분이 넘게 지났다. 그런데 그때 화장실에 들어간 김정태가 아직도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거 같았다.



혹 변고가 있는 거 같았다.

이전 29화 28_백두성의 마지막 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