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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dolee Nov 07. 2024

28_백두성의 마지막 말

탐정 유강인 18편 <검은 자서전과 악의 비밀>

“백두성 회장님!”


유강인이 다급하게 외쳤다. 쓰러진 백두성의 입에서 하얀 거품이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백회장님이 쓰러지셨어!”


“뭐라고요? 안돼!!”


순식간에 출간 기념회가 난리가 났다. 많은 사람이 어쩔 줄 몰라 했다. 그중에서 몇몇이 백두성 주변으로 몰려왔다.


“빨리 119를 불러야 해요.”


“어서 서둘러요!”


딱 봐도 백두성의 상태는 심상치 않았다. 그는 90살 고령이었다. 갑자기 쓰러지면 매우 위험할 수 있었다.


“119!”


“어서 119를 불러요!!”


“제가 살펴보겠습니다. 저는 의사입니다.”


한 남자가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백두성을 향해 달려갔다. 의사답게 백두성의 맥을 짚어보고 호흡을 살폈다. 잠시 환자의 안색을 살피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이는 절망의 표시였다.


유강인은 백두성 앞에 서 있었다. 매우 놀란 나머지 할 말을 잊었다. 멀쩡했던 백두성이 갑자기 쓰러지고 말았다.


그는 비밀을 공유하는 천일수가 죽은 만큼 백두성도 위험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람이 많은 출간 기념회에서 백두성이 쓰러질 줄을 상상하지 못했다.


그러다 백두성이 매실차를 마실 때 순간! 위험하다고 판단하고 달려갔지만, 잔은 이미 비워진 상태였다. 비극을 막을 수는 없었다.


유강인이 고개를 떨구었다.


그때 가느다란 신음이 들렸다.


“으으으~!”


백두성이 가까스로 정신 차리고 한 손을 아주 힘들게 들어 올렸다. 손이 마구 떨렸다. 약간 벌린 입술에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유, 유강인!”


그 소리를 듣고 유강인이 두 눈을 크게 떴다. 급히 몸을 굽혀서 백두성의 떨리는 손을 꽉 잡았다.


아직 온기가 느껴지는 손이었다.


백두성의 입술이 달싹거렸다. 뭔가를 말하려고 하는 거 같았다.


유강인이 급히 움직였다. 귀를 백두성의 입에 갖다 댔다.


곧 희미한 목소리가 들렸다.


“놈들이 움직였어. … 모, 모든 건 자서전에 있어. 만약 없다면 수수 … 윽!”


백두성이 순간 뻘건 피를 바닥에 토했다. 피가 튀기며 유강인의 재킷과 바지에 튀었다.


유강인은 검은색 바지와 아이보리색 재킷을 입고 있었다. 검은색 바지에 묻은 피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아이보리색 재킷에 묻은 붉은 피는 선명하게 잘 보였다.


이윽고 쿵! 소리가 들렸다. 90년간 지탱하던 고목이 바닥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엎어진 백두성의 몸에서 심한 경련이 일어났다. 마지막 몸부림 같았다.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몸이 흔들거렸다. 그러다 잠잠해졌다. 눈에서 생기가 점점 사라져갔다.


“백회장님!!”


유강인이 크게 외치고 백두성을 일으켰다. 백두성의 몸에 힘이 전혀 없었다. 무거운 쌀가마니를 들어 올리는 기분이었다.


“피비린내!”


유강인이 숨을 참았다. 피비린내가 날카로운 창살처럼 코를 찔렀다.


의사가 다시 백두성의 상태를 살폈다. 30초 후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숨이 멎었습니다.”


유강인이 급히 말했다.


“숨이 멎었다고요? 아주 위태로운 상태인 건가요?”


유강인의 말에 의사가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심정지 상태입니다. 고령이셔서 병원으로 가셔도 살릴 수 없을 겁니다. … 절명하셨습니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의사의 말에 사람들이 모두 깜짝 놀랐다.


오늘은 무척 기쁜 날이었다. 백두성이 두 번째 자서전을 발간해서 이를 축하하는 자리였다.


백두성은 고령이었지만, 여전히 건재했다. 최소한 10년 이상은 더 살 거 같았다. 그런데 그런 그가 오늘 허무하게 죽고 말았다.


“젠장!”


유강인이 이를 악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품에서 핸드폰을 꺼내서 전화 걸었다. 정찬우 형사가 전화 받았다.


“네, 선배님.”


유강인이 급히 말했다.


“백두성 회장님이 독살당한 거 같아. 지금 당장 근처에 있는 형사들을 프레스 센터로 보내. 범인을 잡아야 해!”


“도, 독살이라고요? 백회장님이 지금 죽었다는 말인가요?”


“그래! 죽었어. 그것도 내 앞에서 피를 토하고 죽고 말았어. 어서 빨리 움직여!”


“알겠습니다. 프레스 센터 근처에 형사들이 있습니다. 곧 도착할 겁니다.”


유강인이 전화를 끊고 사방을 둘러봤다. 안이 무척 소란스러웠다.


“이를 어째!”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


“너무 무서워!”


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우왕좌왕했다.


유강인이 크게 숨을 내쉬고 정신 차렸다. 그러다 뭔가가 떠오른 듯 크게 외쳤다.


“맞아! 잔이 있었지! 잔을 확보해야 해!”


유강인이 급히 백두성이 들었던 잔을 찾았다.


“아! 저기에!”


귀빈석 빈자리에 문제의 잔이 있었다. 바로 백두성의 자리였다.


유강인이 급히 고개를 돌려 조수 둘을 찾았다. 조수 둘은 유강인 뒤에 있었다. 둘 다 무척 놀란 얼굴이었다. 유강인이 외쳤다.


“저 잔을 확보해야 해! 어서 달려가!”


“잔이라고요?”


“무슨 잔을 말하는 거예요?”


조수 둘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유강인이 급히 오른손 검지로 귀빈석 잔을 가리켰다. 깨끗이 비어있는 잔이었다.


“저기 귀빈석 잔이야! 잔 안에 독이 있는 거 같아. 저 잔을 빨리 확보해. 정형사가 곧 올 거야.”


“아, 알겠습니다.”


황수지가 서둘러 답하고 급히 움직였다. 전직 형사답게 품에서 흰 장갑을 꺼냈다. 흰 장갑을 재빨리 끼고 귀빈석으로 달려갔다.


흰 장갑을 낀 황수지가 맨 앞자리, 귀빈석으로 달려가자, 자리에 앉았던 귀빈들이 하나둘씩 일어났다.


황수지의 눈에 백두성 이름 석 자가 보였다. 귀빈석 테이블에 있는 네임 카드였다. 그곳에 빈 잔이 있었다.


잔 밑에 먹다 남은 매실차가 조금 있었다. 적은 양이었지만, 성분 분석을 위해 반드시 확보해야 했다.


“이거군.”


황수지가 조심스럽게 잔을 들었다. 무척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유리잔을 살폈다.


중요한 증거물인 잔을 확보하자, 유강인이 출입문을 살폈다. 출입문은 두 개였다. 기자 회견장 앞과 뒤에 하나씩 있었다. 두 문 다 닫혀 있었다.


유강인이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크게 외쳤다.


“행사에 참여하신 분들은 다시 자리에 앉으세요. 밖으로 나가지 마세요. 지금 이곳에서 살인 사건이 벌어진 거 같습니다.

아직 단정할 수는 않지만, 백두성 회장님이 독을 마시고 돌아가신 거 같습니다.”


“독살이라고요?”


“누가 백회장님을 죽였다고요?”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였다. 그가 말을 이었다.


“독살이 사실이라면 이곳은 범죄 현장입니다. 여기에 계신 분들은 모두 조사받아야 합니다. 곧 경찰이 도착할 겁니다. 모두 조사에 협조해 주세요.”


유강인의 말에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살인 사건이라는 말에 다들 얼굴이 허옇게 변했다. 그중에서 한 명이 크게 외쳤다.


“그런데 당신은 누구죠?”


유강인이 당당한 목소리로 답했다.


“저는 탐정 유강인입니다.”


“아! 유강인 탐정님이군요.”


“유강인 탐정님이 여기에 계셨네. 그런데 여기 왜 오셨지?”


“그러게 말이야. 무슨 일이 있기는 있는 모양이네.”


유강인이 상황을 설명했다.


“최근에 살인 및 납치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사건을 수사하던 중 백두성 회장님 이름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오늘 백회장님 만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예기치 못한 참극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모두 자리에 앉아 주세요. 동요하지 마세요. 경찰 수사에 협조하면 어떤 해도 없습니다.”


“저 사람이 유강인 탐정이 맞기는 맞는 거예요?”


“맞아요. 얼굴이 유강인 탐정이에요.”


“그렇구나! 진짜 살인 사건인가 봐.”


“난 회장님이 고령이어서 쓰러지신 줄 알았는데 … 그게 아니었구나!”


사람들이 하나둘씩 자리에 앉기 시작했다.


그때 다급한 발소리가 들렸다. 프레스 센터 보안팀 직원이었다. 뒤이어 행사 지원팀 직원들도 모습을 보였다.



*



119 구급대가 프레스 센터에 도착했다. 20층으로 올라가 들것에 백두성을 실었다. 백두성의 상태를 살피던 구급 대원들이 고개를 흔들었다.


유강인이 구급 대원에게 걸어갔다. 그리고 말했다.


“백회장님 상태가 어떻습니까? 손을 쓸 수 없는 상태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병원에 가도 소용이 없습니다. 사망 선고는 의사가 해야 하지만, 이미 돌아가셨습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유강인이 무거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그 앞에서 거물이 죽고 말았다.


한국을 빛낸 인물, 백두성이 독이 든 음료를 마시고 비참하게 죽었다. 죽을 때 피를 많이 토해냈다. 그 피가 유강인의 재킷과 바지에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유강인 옆에서 초조한 표정으로 서 있던 황정수가 말했다.


“탐정님, 재킷을 벗으세요. 피가 많이 묻었어요.”


“응, 알았어.”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였다. 재킷과 바지에서 계속 피비린내가 풍겼다. 재킷을 벗고 앞에 있는 테이블에 올려놨다.


흰 천이 백두성의 얼굴을 가렸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영웅이 물거품처럼 갑자기 사라지고 말았다.


들것에 실린 백두성이 기자 회견장에서 빠져나갔다. 그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오열했다.


“회, 회장님!”


“아니, 이렇게 돌아가시다니!”


“세상에!!”


“흑!”


수많은 사람이 피 같은 눈물을 흘렸다. 행사장에 참석한 사람들은 대부분 백두성의 오랜 팬이었다. 그들은 부모 형제를 잃은 듯 슬픔을 참을 수 없었다.


유강인이 참담한 심정을 감추고 못 하고 있을 때


“선배님!”


정찬우 형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정형사와 백정현 형사가 기자 회견장 안으로 들어왔다. 둘이 유강인을 찾았다.


유강인이 서둘러 형사들을 향해 걸어갔다.


정찬우 형사가 유강인에게 말했다.


“현재 프레스 센터 건물을 통제하고 있습니다. 모든 출입문에 경찰을 배치했습니다. 출입하는 인원을 일일이 확인하고 있습니다.”


“잘했어.”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였다. 그리고 고개를 돌렸다. 기자 회견장 안에 많은 사람이 앉아 있었다.


안내데스크에서 확인한 결과, 초대한 손님은 95명이었다. 그중에서 88명이 참석했다. 초대장 없이 회견장을 찾은 사람은 15명이었다.


따라서 출간 기념회에 참석한 사람은 88명에 15명을 더해서 103명이었다.


유강인이 백정현 형사에게 말했다.


“백두성씨가 마신 잔에 독이 있는 거 같습니다. 잔은 수지가 확보했습니다.

여기 행사장에 있는 사람들의 신원을 다 확인하세요. 특히 잔이 중요합니다. 잔에 접근한 사람들은 빠짐없이 조사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백형사가 큰 목소리로 답했다.


유강인이 이번에는 정찬우 형사에게 말했다.


“정형사는 보안실로 가서 건물 CCTV를 다 확인해. 수상한 자가 있는지 확인해봐.”


“알겠습니다.”


정찬우 형사도 큰 소리로 답했다.


유강인이 왼손으로 턱을 매만졌다. 10초 후 귀빈석으로 걸어갔다.


귀빈석은 가운데 한 자리만 빼고 꽉 차 있었다. 빈자리는 백두성의 자리였다.


귀빈석을 확인한 유강인이 단 위로 올라갔다. 잠시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 백두성이 잔을 들었던 상황을 떠올렸다. 중요한 순간이었다.


그때 백두성은 단 위에 있었다. 문제의 잔은 귀빈석에 있었다. 한 사람이 귀빈석으로 가서 잔을 들었다. 그 잔을 들고 단 위로 올라가 백두성에게 권했다.


유강인이 입을 열었다.


“백회장님께 잔을 권한 분이 누구죠?”


그러자 한 사람이 단 앞으로 나왔다. 그는 백두성의 비서였다. 키가 크고 마른 40대 남자였다. 비서가 말했다.


“저는 백회장님 비서 성진수입니다.”


“비서시군요.”


유강인이 성진수 비서의 얼굴을 살폈다. 평범한 얼굴이었다. 가운데 가르마에 눈코입이 작았다. 유강인이 말을 이었다.


“회장님이 드신 음료가 뭐죠?”


“그건 매실차입니다.”


“매실차라!”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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