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윤진, 포도청 수사관 01편 참수 장군
앞장서서 걷던 김척 포교가 고개를 뒤로 돌렸다. 포졸 둘이 기다란 사다리를 들고 걸어가고 있었다. 이는 윤진의 지시였다.
김척 포교가 포졸 둘에게 말했다.
“사다리를 잘 들어라. 가다가 떨어트리면 안 돼!”
“나리, 알겠습니다. 조심하겠습니다!”
포졸 둘이 큰 소리로 답했다.
윤진이 조용히 하라는 듯 오른손 검지를 입술에 갖다 댔다.
그 모습을 보고 김척 포교가 고개를 끄떡였다. 포졸 둘에게 말했다.
“앞으로는 조용히 말해라. 우리는 비밀리에 움직이고 있다.”
“네, 알겠습니다.”
포졸 둘이 개미 목소리로 답했다.
“으싸!”
돌이가 봇짐을 다시 들쳐 맸다. 봇짐에는 중요한 물건이 있었다. 윤진이 아끼는 활과 화살이 들어있었다. 중요한 순간에 써먹어야 했다.
윤진 일행이 계속 걸음을 옮겼다.
시간이 점점 흘러갔다.
오늘따라 칠흑 같은 어둠이 한성을 뒤덮었다. 휘영청 밝은 달이 보이지 않았고 별빛도 아주 약했다. 거대한 구름 떼가 커다란 이불처럼 밤하늘을 뒤덮은 거 같았다.
이렇게 어두운 야간에 신출귀몰한 범인을 잡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좌포도청 포졸들이 활활 타오르는 횃불을 높이 쳐들고 순찰에 임했다. 임혁 종사관이 어느 때보다도 두 눈을 크게 뜨고 부하들을 통솔했다.
다른 포졸들과 달리 윤진 일행은 횃불이 없었다. 시력만으로 깊은 어둠을 헤치고 걸어가야 했다. 20보 이상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길을 찾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다.
김척 포교는 한성 일대를 다 꿰뚫고 있었다. 야간 사냥의 제왕 올빼미처럼 길을 안내했다.
윤진 일행이 깊은 어둠을 헤치며 계속 길을 걸어갔다.
돌이가 윤진에게 말했다.
“나리, 오늘따라 아주 어둡네요. 누가 사방에 먹물을 뿌린 거 같아요.”
“그래, 그렇구나. 오늘따라 아주 어두워.”
윤진이 답을 하고 두 눈을 더욱 크게 떴다. 여전히 어두웠지만, 눈이 어둠에 적응했다. 50보 이상이 희미하지만, 보였다.
“여기서부터 청계천이야.”
김척 포교가 왼손으로 왼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윤진이 김척 포교에게 말했다.
“나리, 지체하지 말고 돌다리로 곧장 가야 합니다.”
“알았어. 나를 따라와. 왼쪽으로는 가지 마. 잘못하면 청계천에 빠져.”
“알겠습니다.”
윤진 일행이 발소리를 줄이며 청계천을 따라 걸었다.
빠른 한 다경 후(5분 후)
김척 포교가 윤진에게 말했다. 작은 목소리였다.
“윤생원, 그 돌다리로 놈들이 올까?”
윤진이 고개를 끄떡이고 답했다.
“그곳은 한성부판윤 대감 집 길목입니다. 홍장군 일당이 그곳으로 올 겁니다.”
“윤생원, 왜 놈들이 그곳으로 오지? 난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아.”
윤진이 대답 대신 미소를 지었다.
김척 포교가 오른손으로 머리를 벅벅 긁었다. 현재 수사를 책임지는 윤진의 말을 따르고 있지만, 윤진의 속내를 도통 알 수 없었다.
그때 예인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발소리가 들려요.”
윤진이 급히 예인에게 물었다.
“발소리라고? 어떤 소리냐?”
예인이 걸음을 멈췄다. 나머지 사람도 걸음을 멈췄다.
사방은 고요했다. 무슨 소리가 들리는 거 같지 않았다.
예인이 두 눈을 꼭 감았다. 저 멀리서 들리는 발소리를 분간했다. 10초 후, 예인이 입을 열었다.
“여러 명이 보조를 맞춰서 걷는 소리예요. 포졸이나 군사들이 내는 발소리 같아요. 좌포도청에서 많이 듣던 소리예요. 청계천 건너편에서 소리가 나요.”
“그래?”
그 말을 듣고 윤진이 왼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청계천 건너편을 살폈다. 특별한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물이 흘러가는 소리만 희미하게 들렸다.
돌이가 고개를 갸우뚱하고 중얼거렸다.
“예인아, 대체 무슨 소리가 들린다는 거야? 난 하나도 들리지 않는데 ….”
김척 포교가 인상을 팍 쓰고 돌이에게 말했다.
“돌아, 예인이가 너랑 같냐?”
“그런 건가요?”
돌이가 무안한 표정으로 목을 긁었다.
그때, 윤진이 왼쪽 귀를 쫑긋했다. 예인의 말대로 무슨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가 그 소리를 가늠했다. 딱딱 떨어지는 발소리였다.
윤진이 미소를 지었다. 예인의 청력이 출중했다.
잠시 후, 청계천 건너편에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은 군사들이었다. 오늘 한성으로 들어온 장군 최설의 부하들이었다.
군사들이 활활 타오르는 횃불을 높이 쳐들고 보조를 맞추며 걷고 있었다.
돌이가 그 모습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그가 예인을 바라보고 신기한 표정으로 말했다.
“예인아, 너 정말 귀가 밝구나!”
“이 정도야 뭐.”
예인이 빙긋 웃으며 답했다.
윤진이 참 잘됐다는 표정을 지었다. 김척 포교의 말대로 예인의 귀가 아주 밝았다. 홍장군 일당을 잡는 데 큰 도움이 될 거 같았다. 그가 생각했다.
‘그래, 예인을 잘 데리고 왔어. 큰 도움이 될 거 같아. 일이 잘 풀리고 있어.’
김척 포교가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돌이에게 말했다.
“돌아, 예인은 귀가 아주 밝아. 임혁 종사관이 멀리서 오시면 바로 알아채더라고.”
그 말을 듣고 예인의 얼굴이 뻘게졌다. 예인이 고개를 푹 숙였다.
“하아, 그렇군요. 귀가 밝은 이유가 있었군요. 흐흐흐!”
돌이가 실실 웃으며 말했다.
“자. 어서 갑시다. 날이 충분히 어두워졌습니다. 홍장군 일당이 활개치기에 딱 좋은 시간입니다.”
윤진이 말을 마치고 급한 걸음을 옮겼다. 어서 빨리 돌다리로 가야 했다. 가서 홍장군 일당을 기다려야 했다.
잠시 후, 윤진 일행이 청계천 돌다리 앞에 도착했다. 근처에 아무도 없었다. 저 멀리에 보이는 민가도 어둠에 잠겼다.
“음~!”
윤진이 돌다리 앞에서 사방을 둘러봤다. 하천 근처라 찬 기운이 가득했다. 청계천을 따라서 찬 바람이 계속 불어왔다.
잠시 말없이 상황을 살피던 윤진이 동료들에게 말했다.
“이제 다리 아래로 내려가야 합니다. 사다리를 내리세요. 다리 밑에서 놈들을 기다리겠습니다.”
김척 포교가 그 말을 듣고 급히 말했다.
“윤생원, 사다리가 필요했던 게 다리 아래로 내려가려고 그랬던 거야?”
“네, 그렇습니다. 여기가 길목이지만, 눈에 잘 띄는 곳입니다. 여기에 있으면 놈들이 우리를 알아챌 수 있습니다.
다리 아래 숨어서 놈들을 기다려야 합니다.”
“오! 그렇군. 이건 완벽한 매복 작전이야. 윤생원, 딱 보니 손자병법을 읽은 거 같은데 ….”
윤진이 고개를 끄떡이고 답했다.
“손자병법과 오자병서를 구해서 읽기는 읽었습니다.”
김척 포교가 침을 꿀컥 삼켰다. 윤진이 적들의 움직임을 주도면밀하게 예측했다. 그 예측이 맞으면 오늘 홍장군 일당을 잡을 수 있었다. 그가 윤진에게 말했다.
“여기로 놈들이 오면 잡을 수 있어. 그런데 … 진짜 여기로 올까? 여기로 오지 않으면 모든 게 허사야. 윤생원, 확신할 수 있어?”
윤진이 한번 목을 다듬고 말했다.
“놈들이 이곳으로 반드시 온다고 확실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귀신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이곳으로 올 가능성이 아주 큽니다.
저는 그 가능성을 따르겠습니다. 세상일은 한 치 앞도 알 수 있지만, 일정한 흐름이라는 게 있습니다.
그 흐름을 살피면 대어를 낚을 수 있습니다.”
“오! 그래? 그렇다면 그 흐름이 여기로 흐른다는 말이군. 들어보니 무슨 기(氣)의 흐름 같군. … 좋았어. 윤생원 말을 따르지.
뭐, 천지신명이 도와주겠지. 어서 사다리를 아래로 내려라.”
“네, 나리. 알겠습니다.”
포졸 둘이 답을 하고 사다리를 아래로 내렸다.
“그럼, 먼저 내려간다.”
김척 포교가 말을 마치고 다리 아래로 내려갔다. 그가 바닥인 하천변을 힘껏 밟았다. 땅이 무르기는 했지만, 걷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김척 포교가 잘 됐다는 표정을 짓고 동료들에게 말했다.
“이제 내려와. 진흙이 아니라서 괜찮아.”
“알겠습니다.”
윤진이 답하고 돌이에게 말했다.
“돌아, 먼저 내려가라.”
“네, 알겠습니다. 나리.”
돌이가 사다리를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다음으로 예인이 내려갔다. 그다음으로 포졸 둘이 아래로 내려갔다.
마지막은 윤진의 차례였다. 윤진이 고개를 돌렸다. 깊은 어둠 속에서 사방을 살폈다.
사방은 아주 고요했다. 순찰을 도는 포졸과 군사뿐만 아니라 한성부판윤 대감의 집을 지키는 군사들도 보이지 않았다.
모든 것이 어둠에 잠겼고 고요하기만 했다. 새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풀벌레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간혹가다 세찬 바람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윤진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이제 시작이다. 어디 한번 해보자.”
윤진이 말을 마치고 사다리를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윤진이 하천변에 모여 있는 동료들에게 말했다.
“지금부터 소리를 죽이고 이곳에서 놈들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군사나 포졸들의 소리를 듣고 위로 올라가면 안 됩니다.
우리는 홍장군 일당 체포에만 신경 써야 합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김척 포교가 고개를 끄떡이고 답했다.
“응, 무슨 말인지 잘 알겠어. 윤생원 말대로 홍장군 일당이 이곳으로 오면 좋겠어. 그러면 누워서 떡 먹기 잖아.
내가 떡을 참 좋아하거든. 인절미라고 하면 사족을 못 써. 그나저나 그렇게 운이 좋을까?”
윤진이 빙그레 웃고 답했다.
“나리 말대로 천지신명이 도와줄 겁니다.”
“그래, 그래야지. 우리가 이렇게 고생하는데 보람이 있어야지. 천지신명이 우리를 굽어살피시겠지. 흐흐흐!”
김척 포교가 말을 마치고 씩 웃었다. 그가 입술에 침을 묻혔다. 그리고 허리춤에 찬 긴 칼을 꽉 잡았다.
그는 실전 무예의 고수였다. 그동안 한성 일대를 뛰어다니며 많은 도둑과 강도를 사로잡았다. 그때마다 빼어난 무술 솜씨를 뽐냈다.
윤진이 예인에게 말했다.
“예인아, 무슨 소리가 들리면 바로 나에게 말해야 한다.”
“네, 알겠습니다. 나리.”
예인이 고개를 끄떡이고 답했다.
그렇게 돌다리 아래 매복 작전이 시작됐다.
윤진은 한성부를 의심하고 있었다. 한성부가 비밀리에 홍장군 일당의 신출귀몰함을 도와준다고 여겼다. 한성부 책임자는 정2품 한성부판윤이었다.
정황상 한성부판윤이 매우 의심스러웠다. 이에 그의 집 근처 돌다리에 매복했다.
홍장군 일당이 한성을 돌아다니다 피신하려면 한성부 관아나 한성부판윤 대감 집으로 가야 했다. 한성부 관아는 관청이었다. 그곳에는 많은 사람이 있었다. 따라서 그곳보다 한성부판윤과 심복이 있는 대감 집이 유력했다.
시간이 점점 흘러갔다.
윤진 일행이 숨을 죽였다. 점점 무슨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저 멀리서 함성도 들렸다.
“하, 함성! 지금 함성이 들렸어.”
김척 포교가 함성을 듣고 급히 윤진에게 말했다.
윤진이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을 지었다. 홍장군 일당이 한성에 나타난 게 분명했다.
순간, 긴장감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윤진이 침을 꿀컥 삼키고 타오르는 긴장감에 이를 악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