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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가자또 Sep 12. 2024

잘 달리고 싶었던 하루

나보다 빠른 사람은 왜 이렇게 많을까

제법 선선해진 아침에 이젠 땀 흘리며 깨지 않고 개운하게 잠에서 깰 수 있는 날씨가 되었다.

날씨가 선선해지니 몸도 마음도 한결 가벼워진 느낌이다.


어느새 가을이 되어버린 듯, 무덥던 여름은 벌써 저 멀리 가버려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분명 지난주까지만 해도 숨이 턱턱 막힐 것처럼 무더운 날씨였었는데..


왠지 오늘은 선선한 바람을 가르며 뛰고 싶은 날씨다.

도심지 한가운데 공원에서 이어폰으로 잔잔한 팝을 들으면서 뛰는 상상을 하다 보니 자아도취에 빠져든다.

뭔가 날씨도 마음가짐도 뛰어라고 보채는듯한 느낌이다.


일부러 아침과 점심을 소식하고, 커피를 내려 베이글을 구워 저녁을 가볍게 베이글 하나로 대체했다. 오늘 아침부터 지금까지 달리기를 위해 하루를 보내고 있는 느낌이다. 마치 게임 속에서 경기를 준비하는 캐릭터처럼 누군가 나를 조종하며 잘 뛸 수 있게 만드는 과전 같다.


이젠 해도 짧아 오후 일곱 시가 되니 노을빛이 지기 시작했다.

반바지와 러닝셔츠를 입고, 러닝화 끈을 고쳐 매 본다. 기록을 측정해 줄 워치까지 완충되어 있으니 비로소 뛸 준비를 모두 마쳤다.

밖으로 나오니 역시나 발걸음도 몸도 마음도 너무 가볍다. 한 발 한 발 내딛을 때마다 몸이 앞으로 쭉쭉 나가는 느낌이다.


'오늘 컨디션 괜찮은데?'


성격상 모든 것이 완벽할 때 한번 더 조심해 본다.

오버페이스는 하지 말아야지. 다치지 말아야지. 들뜨지 말아야지.


몇 분 페이스인지 중요하지 않다.

몇 킬로쯤 왔는지 알고 싶지 않다.


코로 들이쉬는 공기가 폐를 통해서 온몸으로 에너지를 전달해 준다. 한번 더 호흡을 가다듬어 들뜨는 마음을 차분하게 달래 본다.

왠지 느낌상 오늘이라면 최고 기록과 최고 거리가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집에서 5킬로 즈음 달려 나가 공원코스에 도착했다. 여기서부터는 사람들도 많고 달리는 사람들도 많아서 나의 페이스를 잘 맞추어 뛰어야 한다.


공원이다 보니 강아지들도 많고, 줄지어달리는 사람들, 한 줄로 길을 막고 걷는 사람들, 자전거를 쌩쌩 달리는 사람들, 너무도 신경 쓸게 많다.

신경 쓸게 많다 보니 내 페이스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나보다 빠른 사람들이 너무 많아 뭔가 쫓기는 느낌이다.


잠깐 달리기를 멈추고 걸으면서 심호흡을 해본다.

갑자기 몸이 너무 무겁다. 어지럽고 현기증이 나는 것 같다. 숨을 몰아쉬어도 지친 몸이 돌아오지 않는다. 땀이 눈에 들어가서 너무 따갑다. 옷이 땀에 젖어서 무겁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초반의 기세는 온데간데없이 지쳐버리고 말았다.


이제 겨우 7킬로 남짓 뛰었는데 겨우 오늘목표의 절반밖에 오지 못했다. 경기로 치면 이제 겨우 반이다. 반환점에 도착해서 다시 온 만큼 돌아가야 한다.

걸음을 멈추고 잠시 쉬었다. 다시 머리가 맑아지고 생각이 돌아오는 것 같다. 이제 돌아가기만 하면 된다. 다른 사람들은 신경 쓰지 말자. 내가 얼마를 뛰었는지, 얼마를 더 뛰어야 하는지는 나만 알고 있다. 내 체력도, 나의 가능성도 나만이 알고 있는 것이다.


잠시 멈추었던 발걸음을 다시 옮겨본다.

조금은 무거워진 다리가 움직이면서 다시 뛰어진다. 호흡을 천천히 다듬어본다.

팔을 앞 뒤로 박자감 있게 흔들며 앞으로 나아가 본다. 이제야 비로소 주변이 보이지 않고 나에게 집중이 되기 시작했다.

나의 속도와 나의 페이스를 다시 찾아왔던 길을 되돌아가 본다.


항상 그렇지만 돌아가는 길은 한번 가본길이라 그런지 왠지 모르게 쉬운 느낌이다. 저 멀리 출발했던 지점이 보이기 시작한다. 발걸음을 천천히 하며 측정된 기록을 확인해 본다.

이게 나의 속도구나.

이게 내가 달린 거리구나.

나는 이만큼 할 수 있구나.


지난번 달리기보다는 많이 뛰었다.


남들보다 좀 느리면 어떤가,

누군가는 나보다 빠를 테고,

누군가는 나보다 느릴 테지만,


각자의 속도에 맞추어 각자가 정한 목표를 달리면 되는 것 아닌가.

괜스레 다른 사람의 속도에 맞춰 달리다 보면 나의 페이스가 깨져서 오히려 달리기를 망칠 수 있으니.


분명 내 뒤에도 나보다 느린 사람이 있지만, 내가 그 스람들을 보며 뛰지 않듯, 나의 앞사람들은 나를 보고 뛰지 않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본인의 속도에 맞춰 달려가고 있을 테니 조금 늦더라도, 조금 뒤처지더라도 조급해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스스로 정한 골인지점이 있다면 누군가를 제쳐서 앞지르는 것보다는 본인의 속도에 맞추어 완주하는 것이 가장 성공하는 것일지니

나도 나의 속도에 맞춰 내가 정한 골인지점까지 오늘도 잘 달려 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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