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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진 Oct 15. 2024

세쌍둥이 육아의 시작

오후 4시 20분, 드폰의 알람이 울린다. 소리에 깜짝 놀라 잠에서 깨지만 정신 아직도 꿈속을 헤맨다. 현실 파악이 되지 않는 나는 지금이 무슨 상황인지를 생각해 본다. 여기는 이고 옆에는 남편이 자고 있다. 거실에는 아이 셋과 산후도우미 이모님 두 분이 계신다. 곧 그분들이 가실 시간이라 일어나 밖으로 나가야 한다. 벌써 그 시간이 돌아왔구나. 괴로운 마음이 가장 먼저 나를 찾아온다. 더 자고 싶다. 잠에서 깨어나는 것이 쉽지 않다. 어디로든 그저 도망가고 싶다. 현실을 부정하고 싶다.


눈을 뜬 채로 잠시 누워 있는다. 암막커튼을 단단히 쳐 놓은 방은 칠흑같이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내 미래 같다. 그대로 어둠에 녹아 침전하고 싶다. 커튼과 바닥사이, 약간의 틈 사이로 들어오는 가시 같은 빛이 그럴 수는 없다고 현실을 알려주듯 날카롭게 내 눈으로 파고든다. 어둠에 적응한 눈에 방안의 모든 풍경들이 명하게 어오기 시작한다.

'그래, 일어나야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며 침대에서 무거운 몸을 일으킨다.


딱딱하게 뭉쳐 아픈 가슴을 움켜쥐며 거실로 나간다. 세 아이들은 고요하게 자고 있고 이모들은 담소를 나누고 계신다. 집은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고, 모든 것이 고요하다. 왜 너희들은 나와 있을 때는 이리 조용히 있지 않는 거니. 내가 뭘 잘못하고 있는 거니.


주방으로 들어가 깔때기와 젖병을 들고 다시 방으로 들어온다. 화장대에 앉아 30분 동안 유축을 한다. 돌멩이처럼 굳어버린 가슴이 이제야 조금 풀린다. 하지만 유축기로는 부족하다. 매번 직수를 하면 좀 낫겠지만, 그것도 쉽지는 않다. 가슴은 둘, 애는 셋. 돌아가면서 하려면 할 수는 있겠지만, 셋이 먹는 시간이 제각각이라 가슴은 더 심하게 뭉쳐왔다. 그래서 유축해야 할 시간에 근접해 배가 고픈 아이에게는 되도록 직수를 한다. 그 외에는 유축해 놓은 모유를 데워 주고, 동시에 울어 급할 때는 분유를 타서 준다.

유축한 모유를 팩에 담아 냉장고에 넣어 시간별로 정리를 한다. 이모님들이 체크해 놓은 아이들의 수유 노트를 확인한다. 다음 수유시간을 체크하고 이모님들과 간단하게 대화를 나누면 5시가 된다. 지금부터 내일 아침 9시, 다시 이모님들이 오실 때까지 아이들을 남편과 함께 돌봐야 한다.


아이들은 이모님들과 있을 때는 잘 울지도 않다가, 거짓말같이 저녁만 되면 울어대기 시작한다. 뭐가 다른 걸까. 안는 방법이 다른가. 수유하는 자세가 다른가.

아무렴, 10년 넘게 아이들을 돌봐오신 분들의 손길과 이제 막 아이를 처음 다뤄보는 나의 손길은 차원이 다르겠지. 그게 뭔지 내가 모를 뿐.


멋모르고 시작한 세쌍둥이 육아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들을 배에 품고 있는 동안 나에게 아이들을 낳고 난 후의 일을 계획하여 어떻게 키울 것인지 고민할 여유는 없었다. 같이 키워줄 사람도, 나를 도와줄 사람도 하나 없이 세쌍둥이를 키워내야 하는 상황 앞에서 내가 바꿀 수 있는 현실은 없었다. 그보다는 이 아이들을 무사히 35주를 채워 낳는 일이 더 시급했다. 답도 안 나오는 일에 스트레스를 받기에는 나는 너무 위험한 ‘고위험 산모’였다. 아이들을 낳고 나서의 일 같은 건 임신기간 동안 내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기로 했다. 저 건강하게 낳자. 35주를 다 채우자. 셋 다 2kg만 넘어다오. 아프지만 말아다오. 뒷일은 뒤에 엄마가 다 알아서 할게.

것이 세쌍둥이 임신기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력이 방법이었다.


그저 뒤로만 넘기던 그 시간들이 지금 당장 내가 처한 상황이 된 지금, 나는 정말 어떡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세쌍둥이 육아를 너무 쉽게 생각했던 걸까?

그건 아니다. 단 한 번도 세쌍둥이를 키우는 일이 쉬울 것이라 생각한 적은 없다. 정말 많이 힘들 것이라 예상하고 있던 일이다.


너무 아는 게 없었나?

그렇다. 아는 건 너무 없었다. 힘들 것이라는 건 알았지만, 뭐가 어떻게 힘들지, 아이는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도무지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아이를 키워본 적도, 주변에 아이를 키우는 사람을 본 적도 많이 없었다. 친구들의 아이들은 잠시 잠깐 예쁜 모습을 봤을 뿐이고, 조카들도 멀리 살아 일 년에 몇 번씩 본 게 다이다. 이런 내가 육아의 육도 모르는 당연한 일이다. 아이 한 명 키우는 것도 힘들다는데 난 한 번에 둘도 아닌 셋이다. 안 힘들면 그게 더 이상하겠지.


낮에는 이모님들이 계시고, 남편 휴직 중이라 밤에 같이 봐도 이런데, 당장 다음 달부터는 나 혼자 이 아이 셋을 다 봐야 한다.

어떡하지. 이제야 내가 처한 현실이 내 피부에 와닿아 소름이 돋 머리끝이 쭈뼛쭈뼛 선다.


이 아이들을 어떡하지. 나는 어떡하지. 이 일을 어떡하지.

번데기같이 자는 아이들 (잘 때가 제일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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