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닝하다 자존심 상한 일

by 김현


러닝복을 갖춘 남자들이 나를 추월한다. 상관없다. 여리여리한 여성분들도 나를 추월한다. 오케이, 인정한다. 자존심 상하지만 받아들인다. 엄마 뻘인 아주머니들도 나를 추월한다. 난 얼굴을 가리고 싶었다. 부끄러웠다. 금껏 내 체력이 저질이라는 사실을 의심만 했는데, 여지없이 확실해지는 순간이었다.







처음 러닝을 시작할 땐 걷는 수준으로 뛰어야 한다. 난 처음에 빠른 속력으로 뛰었다. 몇 년 동안 운동도 안 했으면서 그랬다. 아직도 20대인 줄 알았나? 하루 이틀 뛰고 나서 알았다. 몸이 갔구나.



러닝 일주일차. 난 천천히 달렸는데 몸은 여전히 말썽이었다. 종아리는 뭉치고 허리는 아프고 발목도 쑤셨다. 고작 3km 뛰는데도 그랬다. (걷고 뛰고 걷고 뛰고 해서 실제로는 한 2km 뛰었나...) 이때 난 느꼈다. 생각보다 더 심각하구나.




난 이제 걷는 수준으로 뛴다. 자세만 뛰었지 걷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이렇게 뛰니 몸은 안 아팠지만 솔직히 부끄러웠다. 너무 느렸으니까. 난 오른쪽 라인에 박혀 땅만 보고 달렸다. 수많은 러너들이 내 옆을 앞찔렀다. 난 자존심이 상했다. 나름 어릴 때 학교 대표로 육상 대회도 나갔는데 지금 이 꼴이라니. 추월당하지 않으려면 더 빨리 달려야 하는데 그럴 수 없었다. 빨리 달리면 몇 분 못 달린다. 체력이 저질이기 때문이다.









30대 중반이 되니까 체력이 급격하게 떨어진다. 솔직히 32~33살까지는 20대랑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담배도 끊었을 때라 더 건강했다. 근데 35살이 딱 되니까 무슨 예약이라도 한 듯이 체력이 순식간에 전됐다. 어이가 없을 정도로. 체력만 떨어졌을까? 살도 쪘다. 살이 찌기만 하면 다행일 텐데 잘 빠지지도 않는다. 예전에는 안 먹으면 빠졌는데 이젠 운동을 해도 안 빠진다. 내가 러닝을 시작한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러닝을 하면서 더 분명해졌다. 내 체력은 저질이다. 심각하다! 하지만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제일 빠른 법이다. 그래도 아직 30대다. 지금부터라도 관리하면 겠지. 그렇지? 아직 안 늦은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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