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장: 성(性)

GENDER

by DrLeeHC

제13장: 성 (性, GENDER)


“성(性)은 모든 것 안에 있다. 모든 것은 자신의 남성적 원리와 여성적 원리를 가진다. 성은 모든 차원에서 현현한다.” —키발리온.


위대한 일곱 번째 헤르메스 원리, 즉 성의 원리는, 모든 것 안에 성이 현현한다는 진리, 즉 남성적 원리와 여성적 원리가 생명의 각 모든 차원에서, 현상의 모든 국면에서 언제나 현존하며 활동한다는 진리를 구현한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헤르메스적 의미에서의 성(Gender)과,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용어로서의 성별(Sex)이 같지 않다는 사실에 당신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성(Gender)”이라는 단어는 “낳다, 번식하다, 생성하다, 창조하다, 생산하다”를 의미하는 라틴어 어근에서 파생되었다. 잠시만 생각해보면, 이 단어가 후자인 “성별(Sex)”이라는 용어보다 훨씬 더 넓고 일반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후자는 살아있는 것들의 남성과 여성 사이의 물리적 구별을 가리킨다. 성별은 단지 위대한 물리적 차원의 어떤 차원, 즉 유기적 생명의 차원 위에서의 성의 현현일 뿐이다. 우리가 이 구별을 당신의 마음에 각인시키고자 하는 이유는, 헤르메스 철학에 대해 겉핥기식 지식을 습득한 어떤 저자들이, 이 일곱 번째 헤르메스 원리를 성별에 관한, 거칠고 공상적이며 종종 비난받아 마땅한 이론 및 가르침들과 동일시하려 시도해왔기 때문이다.


성의 역할은 오로지 창조하고, 생산하며, 생성하는 것 등에 있으며, 그 현현은 현상의 모든 차원 위에서 가시적이다. 이것을 과학적인 선들을 따라 증명하는 것은 다소 어려운데, 그 이유는 과학이 아직 이 원리를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것으로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일부 증거들은 과학적 출처들로부터 나오고 있다. 우선, 우리는 과학이 지금 후자를 아는 대로의 물질의 기초를 구성하고, 어떤 조합들을 형성함으로써 원자를 형성하는, 미립자, 이온, 또는 전자들 사이에서 성의 원리의 뚜렷한 현현을 발견한다. 원자는 최근까지 최종적이고 불가분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과학의 최신 언어는, 원자가 서로 주위를 회전하고 높은 등급과 강도로 진동하는 수많은 미립자, 전자, 또는 이온(다른 권위자들에 의해 적용되는 다양한 이름들)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반되는 진술은, 원자의 형성이 실제로는 양성적인 것 주위에 음성적인 미립자들이 모여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양성적인 미립자들이 음성적인 미립자들에 어떤 영향을 미쳐, 후자로 하여금 어떤 조합들을 취하게 하고, 그리하여 원자를 “창조”하거나 “생성”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성의 남성적 원리를 “긍정적” 극과, 여성적 원리를 “부정적” 극(소위)의 전기와 항상 동일시해 온, 가장 고대적인 헤르메스 가르침들과 일치한다.


이제 이 동일시에 관해 한마디 하겠다. 대중의 마음은 전기화되거나 자화된 물질의 소위 “부정적” 극의 특질들에 관해 완전히 잘못된 인상을 형성해 왔다. 긍정적 및 부정적이라는 용어들은 과학에 의해 이 현상에 매우 잘못 적용되었다. 긍정적이라는 단어는 부정적인 비실재성이나 약함과 비교될 때, 실재하고 강한 어떤 것을 의미한다. 전기 현상의 실제 사실들과는 이보다 더 거리가 먼 것은 없다. 소위 전지의 부정적 극은, 실제로는 새로운 형태와 에너지들의 생성 또는 생산이 현현하는 바로 그 극이다. 그것에 대해 “부정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 최고의 과학 권위자들은 이제 “부정적” 대신에 “음극(Cathode)”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음극이라는 단어는 “하강, 생성의 길 등”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어근에서 온다. 음극으로부터 전자 또는 미립자들의 무리가 출현한다. 같은 극으로부터, 지난 십 년간 과학적 개념들을 혁명적으로 바꾼 그 경이로운 “광선들”이 출현한다. 음극은 옛 교과서들을 쓸모없게 만들고, 오랫동안 받아들여졌던 많은 이론들을 과학적 사변의 폐기물 더미로 밀어 넣은 모든 기이한 현상들의 어머니다. 음극, 또는 부정적 극은, 전기 현상과, 과학에 아직 알려진 가장 미묘한 형태의 물질들의 어머니 원리이다. 그러니 당신은 우리가 그 주제를 고찰함에 있어 “부정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를 거부하고, 오래된 용어 대신에 “여성적”이라는 단어를 대체할 것을 주장하는 데 정당하다는 것을 알 것이다. 이 사건의 사실들은, 헤르메스 가르침을 고려하지 않고서도, 이 점에서 우리를 지지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활동의 그 극을 말할 때 “부정적” 대신에 “여성적”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것이다.


최신 과학적 가르침들은, 창조적인 미립자들 또는 전자들이 여성적이라는 것이다 (과학은 “그것들은 부정적인 전기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그것들이 여성적 에너지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한다). 여성적 미립자는 남성적 미립자로부터 분리되거나, 혹은 오히려 떠나서, 새로운 경력을 시작한다. 그것은 물질이나 에너지의 새로운 형태들을 창조하려는 자연스러운 충동에 의해 촉구되어, 남성적 미립자와의 결합을 적극적으로 추구한다. 한 저자는 심지어 “그것은 즉시, 자신의 의지로, 결합을 추구한다”는 등의 용어를 사용하기까지 한다. 이 분리와 결합이 화학 세계의 활동들의 대부분의 기초를 형성한다. 여성적 미립자가 남성적 미립자와 결합할 때, 어떤 과정이 시작된다. 여성적 입자들은 남성적 에너지의 영향 아래 빠르게 진동하며, 후자 주위를 빠르게 돈다. 그 결과는 새로운 원자의 탄생이다. 이 새로운 원자는 실제로는 남성적 및 여성적 전자들, 또는 미립자들의 결합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 결합이 형성될 때 그 원자는 어떤 속성들을 가진 분리된 것이며, 더 이상 자유 전기의 속성을 현현하지 않는다. 여성적 전자들의 분리 또는 분리의 과정은 “이온화”라 불린다. 이 전자들, 또는 미립자들은 자연의 분야에서 가장 활동적인 일꾼들이다. 그들의 결합, 또는 조합들로부터, 빛, 열, 전기, 자기, 인력, 반발력, 화학적 친화력 및 그 반대, 그리고 유사한 현상들의 다양한 현상들이 현현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에너지의 차원 위에서의 성의 원리의 작용으로부터 비롯된다.


남성적 원리의 역할은 어떤 내재된 에너지를 여성적 원리를 향해 지시하고, 그리하여 창조적 과정들을 활동 속으로 시작시키는 것인 듯하다. 그러나 여성적 원리는 언제나 능동적인 창조 작업을 하는 쪽이며, 이는 모든 차원에서 그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원리는 다른 하나의 도움 없이는 작용하는 에너지를 가질 수 없다. 생명의 어떤 형태들에서는, 두 원리가 하나의 유기체 안에 결합되어 있다. 그 문제에 있어서, 유기적 세계의 모든 것은 두 성을 모두 현현한다. 여성적 형태 안에는 항상 남성적인 것이 현존하며, 여성적 형태 또한 그러하다. 헤르메스 가르침은 다양한 형태의 에너지 등의 생산과 현현에서의 두 성의 원리들의 작용에 관해 많은 것을 포함하고 있지만, 우리는 이 지점에서 그것에 관해 자세히 들어가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니, 우리가 과학적 증거로 그것을 뒷받침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과학이 아직 거기까지 진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당신에게 제시한 전자 또는 미립자들의 현상들의 예시는, 과학이 올바른 길 위에 있다는 것을 보여줄 것이며, 또한 당신에게 기저의 원리들에 대한 일반적인 개념을 줄 것이다.


일부 선도적인 과학 연구자들은, 결정의 형성에서 “성-활동”에 상응하는 어떤 것이 발견될 수 있다는 그들의 믿음을 발표했는데, 이는 과학의 바람이 부는 방향을 보여주는 또 다른 지푸라기이다. 그리고 매년 다른 사실들이 헤르메스의 성의 원리의 정확성을 확증하기 위해 나올 것이다. 성은 무기 물질의 분야와, 에너지 또는 힘의 분야에서 끊임없는 작용과 현현 속에 있음이 발견될 것이다. 전기는 이제 일반적으로 다른 모든 형태의 에너지가 녹아들거나 용해되는 것처럼 보이는 “어떤 것”으로 간주된다. “우주의 전기 이론”은 최신 과학 교리이며, 대중성과 일반적인 수용에 있어 급속히 성장하고 있다. 그리하여 만일 우리가 전기 현상에서, 심지어 그 현현의 바로 그 뿌리와 근원에서, 성과 그 활동들의 존재에 대한 명확하고 틀림없는 증거를 발견할 수 있다면, 우리는 과학이 마침내 그 위대한 헤르메스 원리, 즉 성의 원리의 모든 보편적 현상에서의 존재에 대한 증거를 제공했다고 믿어달라고 당신에게 요청하는 것이 정당하다.


원자들의 “인력과 반발력”, 화학적 친화력, 원자 입자들의 “사랑과 미움”, 물질의 분자들 사이의 인력 또는 응집력이라는 잘 알려진 현상들로 당신의 시간을 차지할 필요는 없다. 이러한 사실들은 우리로부터의 확장된 논평을 필요로 할 만큼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당신은 이 모든 것들이 성의 원리의 현현이라는 것을 고려해 본 적이 있는가? 당신은 그 현상이 미립자 또는 전자들의 그것과 “모든 면에서 일치한다”는 것을 볼 수 없는가? 그리고 이보다 더, 당신은 우주의 모든 입자와 물체의 몸이 서로를 향해 이끌리는 그 기이한 인력, 즉 중력의 바로 그 법칙이, 남성적인 것을 여성적 에너지로, 그리고 그 반대로 끌어당기는 방향으로 작동하는 성의 원리의 또 다른 현현일 뿐이라는 헤르메스 가르침의 합리성을 볼 수 없는가? 우리는 이 시점에서 당신에게 이것에 대한 과학적 증거를 제공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주제에 관한 헤르메스 가르침의 빛 속에서 그 현상을 검토하고, 당신이 물리 과학에 의해 제공된 어떤 것보다 더 나은 작업 가설을 가지고 있지 않은지 보라. 모든 물리적 현상을 그 시험에 제출하면, 당신은 언제나 명백한 성의 원리를 분별하게 될 것이다.


이제 정신적 차원 위에서의 그 원리의 작용에 대한 고찰로 넘어가자. 많은 흥미로운 특징들이 거기서 검토를 기다리고 있다.


해설 13-1. 지혜의 계보와 비교 철학


헤르메스 철학의 일곱 가지 원리, 그 마지막이자 가장 생명력 넘치는 원리는 바로 ‘성(Gender)의 원리’입니다. “성은 모든 것 안에 있다. 모든 것은 자신의 남성적 원리와 여성적 원리를 가진다. 성은 모든 차원에서 현현한다.” 이 선언은 우리에게, 창조가 결코 고독한 신의 독백이 아니라, 우주에 편재하는 두 가지 근원적인 힘, 즉 ‘남성성’과 ‘여성성’의 역동적인 상호작용과 사랑의 춤을 통해 이루어지는 영원한 드라마임을 가르쳐줍니다.


『키발리온』은 이 원리를 설명하기에 앞서, 우리가 저지를 수 있는 가장 큰 오해에 대해 먼저 경고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성(Gender)’은 결코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성별(Sex)’이라는 용어와 동일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성별이 생물학적인 차원, 즉 유기적 생명의 차원에서 나타나는 물리적 현상이라면, ‘성’은 그 모든 것을 포함하여, 물질적, 정신적, 그리고 영적 차원 전체를 관통하는 훨씬 더 근본적이고 보편적인 창조의 원리입니다. 라틴어 어원 ‘generare’가 “낳다, 생성하다, 창조하다”를 의미하듯이, 성의 원리는 본질적으로 ‘창조의 원리’입니다. 이 주해의 목표는, 이 헤르메스적 창조의 원리가 어떻게 인류의 다른 위대한 지혜 전통들, 특히 서양 연금술의 ‘신성한 결혼’과 동양 도가의 ‘음양 사상’ 속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는지를 비교 분석하며 그 보편적인 의미를 탐구하는 것입니다.


연금술의 신성한 결혼: 붉은 왕과 흰 여왕


‘성의 원리’가 어떻게 위대한 작업을 이끄는지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전통은 바로 헤르메스주의의 실천적 분파인 연금술입니다. 우리가 『헤르메스 비의』 주해에서 탐구했듯이, 연금술의 모든 과정은 두 주인공, 즉 ‘붉은 왕’과 ‘흰 여왕’의 신성한 결혼을 통해 현자의 돌을 탄생시키는 이야기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붉은 왕’은 『키발리온』이 말하는 ‘남성적 원리’의 완벽한 상징입니다. 그는 태양(Sol)이며, 뜨겁고 건조한 유황(Sulphur)입니다. 그는 자신의 의지를 외부로 투사하여, 수동적인 물질에 형태와 질서를 부여하는 능동적이고 창조적인 힘입니다. 그는 씨앗을 뿌리는 자이며, 그의 힘은 발산하고, 침투하며, 고정시킵니다.


‘흰 여왕’은 ‘여성적 원리’의 완벽한 화신입니다. 그녀는 달(Luna)이며, 차갑고 축축한 수은(Mercury)입니다. 그녀는 남성성의 불타는 씨앗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자궁 안에서 그것을 부드럽게 양육하여, 새로운 생명으로 잉태시키는 수용적이고 생성적인 힘입니다. 그녀는 모든 것을 녹이는 용매이며, 모든 가능성의 원천입니다.


위대한 작업은 이 두 원리가 서로를 파괴하는 전쟁이 아니라, 서로를 완성시키는 사랑의 과정입니다. 『키발리온』은 남성적 원리가 “여성적 원리를 향해 자신의 의지를 투사하며, 그 위에 후자는 실제적인 창조의 작업을 시작한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각 원리는 다른 하나의 도움 없이는 작용하는 에너지를 가질 수 없다”고 강조합니다. 왕은 여왕 없이는 자신의 씨앗을 심을 땅이 없고, 여왕은 왕 없이는 자신을 수정시킬 씨앗이 없습니다. 이 둘의 결합을 통해, 마침내 그들 각각의 한계를 넘어선 새로운 존재, 즉 신성한 양성구유인 ‘레비스(Rebis)’ 혹은 현자의 돌이 탄생합니다. 이는 『에메랄드 타블렛』의 네 번째 구절, “그것의 아버지는 태양이요, 그 어머니는 달이다”라는 선언의 구체적인 실천입니다.


도가 사상의 음양(陰陽): 영원한 춤


이제 우리의 시선을 동양으로 돌리면, 우리는 도가 사상의 음양 이론 속에서 이 창조적 이원성의 원리가 얼마나 보편적인지를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됩니다. 양(陽)은 하늘, 빛, 능동성, 남성성을 상징하며, 이는 헤르메스의 남성적 원리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음(陰)은 땅, 어둠, 수동성, 여성성을 상징하며, 이는 헤르메스의 여성적 원리와 상응합니다.


도가 사상의 위대함은, 이 두 힘이 단순히 병렬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며 순환하는, 역동적인 관계 속에 있음을 밝힌 데 있습니다. 태극(太極)의 상징이 보여주듯이, 양이 극에 달하면 그 안에서 음이 태동하고, 음이 극에 달하면 그 안에서 양이 싹틉니다. 그들은 서로를 낳고, 서로를 제약하며, 서로를 완성시키는 영원한 춤의 파트너입니다.


『도덕경』은 이러한 역설적인 상호작용의 지혜로 가득 차 있습니다. “가장 부드러운 것이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것을 이긴다.” 이는 수용적인 음의 힘이 어떻게 능동적인 양의 힘을 제어하는지를 보여줍니다. “계곡의 신은 죽지 않으니, 이를 일러 현묘한 암컷이라 한다. 현묘한 암컷의 문은, 이를 일러 하늘과 땅의 뿌리라 한다.” 이는 텅 비고 수용적인 여성성의 원리(계곡)가 어떻게 만물을 낳는 창조의 근원이 되는지를 설명합니다.


이러한 도가의 통찰은 『키발리온』이 전기 현상을 설명하는 방식과 놀라울 정도로 유사합니다. 저자들은 과학이 ‘부정적(Negative)’이라고 잘못 이름 붙인 음극(Cathode)이야말로, 사실은 “새로운 형태와 에너지들의 생성 또는 생산이 현현하는” 진정한 ‘어머니 원리(Mother Principle)’라고 주장합니다. 이처럼 헤르메스주의와 도가 사상은 모두, 겉으로 드러나는 능동적인 남성성의 힘 이면에,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더 근원적이고 수용적인 여성성의 힘이 존재함을 꿰뚫어 보고 있습니다.


힌두 철학의 쉬바-샥티: 의식과 에너지의 합일


인도의 탄트라(Tantra) 철학에서는, 우주의 창조와 유지가 ‘쉬바(Shiva)’와 ‘샥티(Shakti)’라는 두 신성한 원리의 영원한 교합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설명합니다.


쉬바는 순수한 ‘의식(consciousness)’ 그 자체이며, 변화하지 않고, 움직이지 않는 절대적인 관찰자입니다. 그는 헤르메스의 남성적 원리가 지닌 ‘안정성’과 ‘질서’의 측면을 상징합니다.


반면, 샥티는 우주의 모든 것을 움직이고, 변화시키며, 창조해내는 역동적인 ‘에너지(energy)’ 그 자체입니다. 그녀는 순수한 힘이며, 생명력이고, 끊임없이 새로운 형태를 빚어내는 창조의 춤꾼입니다. 그녀는 헤르메스의 여성적 원리가 지닌 ‘능동적인 창조 작업’의 측면을 상징합니다.


여기서 핵심적인 통찰은, 이 둘 중 어느 하나만으로는 아무것도 존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샥티라는 에너지가 없다면, 쉬바의 순수한 의식은 아무것도 인식할 대상이 없는 공허한 상태에 머물 것입니다. 반대로, 쉬바라는 의식의 빛이 없다면, 샥티의 에너지는 방향성 없는 맹목적이고 혼돈스러운 힘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우주는 바로 이 순수한 의식(쉬바) 위에서, 창조적인 에너지(샥티)가 영원한 춤을 추는 것입니다.


이 쉬바-샥티의 합일 사상은, 『키발리온』이 “남성적 원리는 여성적 원리를 향해 자신의 의지를 투사하며, 그 위에 후자는 실제적인 창조의 작업을 시작한다”고 설명하는 부분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의식(남성성)이 방향을 제시하고, 에너지(여성성)가 그 방향에 따라 실제적인 창조를 행하는 것입니다.


『키발리온』의 일곱 번째 원리인 ‘성의 원리’는 인류의 가장 위대한 지혜 전통들이 공통적으로 발견했던, 창조의 근본적인 이원성에 대한 헤르메스주의적 선언입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모든 창조적 행위가—그것이 우주의 탄생이든, 예술 작품의 창작이든, 혹은 우리 자신의 영적 재탄생이든—반드시 서로 다른 두 극성의 힘, 즉 의지를 투사하는 남성성의 힘과, 그 의지를 수용하여 새로운 형태로 빚어내는 여성성의 힘의 조화로운 결합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이 두 원리의 신성한 춤을 이해하고 자신의 삶 속에서 실천하는 자만이, 비로소 분열을 넘어, 창조의 기쁨으로 충만한 온전한 존재가 될 것입니다.



해설 13-2. 현대인을 위한 가르침


헤르메스 철학의 일곱 번째이자 마지막 원리인 ‘성의 원리’는, 우주적 창조의 가장 내밀한 비밀을 우리에게 드러내는 열쇠입니다. 『키발리온』은 “성은 모든 것 안에 존재한다”고 선언하며, 이 원리가 단지 생물학적 번식의 차원을 넘어, 우리의 생각과 감정, 예술과 과학, 그리고 모든 영적 성장의 과정에까지 스며있는 보편적인 법칙임을 가르칩니다. 현대인은 종종 ‘창조성’을 일부 천재적인 예술가나 발명가에게만 주어진 특별한 재능으로 여기곤 합니다. 그러나 성의 원리는 우리에게, 창조란 우리 모두의 내면에 잠재된 두 가지 근원적인 힘, 즉 ‘남성적 원리’와 ‘여성적 원리’의 조화로운 결합을 통해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과정임을 일깨워줍니다. 이 두 힘의 역동적인 춤을 이해하고, 자신의 삶 속에서 의식적으로 그 균형을 맞추는 법을 배울 때, 우리는 비로소 자신의 삶을 하나의 위대한 예술 작품으로 빚어내는 창조의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창조적 마음의 두 얼굴: 의지와 상상력


성의 원리를 현대인의 삶에 적용하기 위해, 우리는 먼저 이 두 가지 원리를 심리학적인 언어로 번역해야 합니다.


‘남성적 원리(Masculine Principle)’는 우리의 ‘의지(Will)’와 ‘행동(Action)’으로 나타납니다. 그것은 목표를 설정하고, 계획을 세우며, 장애물을 극복하고, 자신의 생각을 외부 세계에 관철시키는, 능동적이고, 집중적이며, 방출하는 에너지입니다. 그것은 연금술의 ‘유황(Sulphur)’처럼, 뜨겁고 건조하며, 자신의 형태를 각인시키려는 힘입니다. 이 남성적 원리가 없다면, 우리의 모든 원대한 꿈과 계획은 한낱 공상에 머무른 채 결코 현실화되지 못할 것입니다.


반면, ‘여성적 원리(Feminine Principle)’는 우리의 ‘상상력(Imagination)’과 ‘수용성(Receptivity)’으로 나타납니다. 그것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잉태하고, 다양한 가능성에 마음을 열며, 직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외부의 에너지를 받아들여 자신의 내면에서 양육하는 힘입니다. 그것은 연금술의 ‘수은(Mercury)’처럼, 유동적이고, 축축하며, 모든 것을 자신 안에 품어 새로운 형태로 빚어내는 자궁과도 같은 에너지입니다. 이 여성적 원리가 없다면, 우리의 삶은 새로운 영감이나 변화의 가능성이 없는, 낡고 경직된 틀 안에 갇혀 메마르게 될 것입니다.


『키발리온』은 “각 원리는 다른 하나의 도움 없이는 작용하는 에너지를 가질 수 없다”고 강조합니다. 의지만 있고 상상력이 없는 사람은, 방향 없이 질주하는 폭주 기관차처럼 자신의 에너지를 소진할 뿐입니다. 반대로, 상상력만 있고 의지가 없는 사람은, 끝없이 아름다운 꿈을 꾸지만 결코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는 몽상가에 머물 뿐입니다. 진정한 창조는, 이 두 원리가 서로를 존중하고 협력하는 ‘신성한 결혼’을 통해 비로소 가능해집니다.


예술가의 작업실: 영감과 기술의 결합


이 신성한 결혼의 과정은 ‘예술가의 창조 과정’이라는 구체적인 예를 통해 가장 명확하게 관찰될 수 있습니다. 모든 위대한 예술 작품은 성의 원리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결과물입니다.


작품의 첫 시작은 언제나 ‘여성적 원리’의 활동, 즉 ‘수용’에서 비롯됩니다. 화가는 텅 빈 캔버스 앞에서, 작가는 백지 앞에서, 작곡가는 침묵 속에서, 먼저 자신의 마음을 비우고 외부 혹은 내부로부터 오는 미묘한 영감의 목소리를 기다립니다. 그것은 꿈속에서 본 하나의 강렬한 이미지일 수도 있고, 길을 걷다 우연히 들은 멜로디의 한 소절일 수도 있으며, 마음 깊은 곳에서 울려오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의 파동일 수도 있습니다. 이 단계에서 예술가는 자신의 의지를 내세우지 않고, 마치 ‘어머니 달(Luna)’처럼, 이 미지의 씨앗을 자신의 내면 자궁 속에 온전히 받아들입니다.


씨앗이 잉태되면, 이제 그것을 양육하는 ‘여성적 원리’의 두 번째 활동, 즉 ‘상상력’이 시작됩니다. 예술가는 그 작은 영감의 씨앗을 자신의 내면세계 안에서 키워나갑니다. 그는 다양한 이미지와 아이디어를 결합해보고, 수많은 가능성을 탐색하며, 작품의 전체적인 구조와 형태를 마음속에서 그려봅니다. 이 ‘임신 기간’ 동안, 작품은 보이지 않는 정신의 차원에서 무르익어 갑니다.


마침내 내면의 이미지가 충분히 성숙했을 때, 이제 ‘남성적 원리’가 무대 위로 등장할 차례입니다. 그는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행동’을 시작합니다. 화가는 붓을 들고, 조각가는 망치를 쥐며, 작곡가는 오선지 위에 첫 음표를 그려나갑니다. 이것은 ‘의지’의 활동입니다. 그는 자신의 내면에서 본 그 비전을, 현실의 물질적 제약 속에서 구현하기 위해, 수많은 기술적 어려움과 싸우고, 수백, 수천 시간의 고된 노동을 감내합니다. 그는 자신의 불타는 ‘아버지 태양(Sol)’의 에너지로, 차갑고 형태 없던 재료에 생명과 질서를 불어넣습니다.


이처럼, 하나의 위대한 예술 작품은, 예술가의 수용적인 상상력(여성성)과 능동적인 의지(남성성)의 오랜 사랑의 결실로 태어나는 ‘신성한 아이’입니다. 이 두 원리 중 어느 하나라도 부족했다면, 그 아이는 결코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기업가의 여정: 비전과 실행력의 조화


이 창조의 원리는 예술의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가장 현실적인 영역인 비즈니스와 혁신의 세계에서도, 성의 원리는 성공의 가장 중요한 열쇠로 작용합니다.


모든 위대한 기업은 한 사람의 ‘비전(vision)’, 즉 ‘여성적 원리’에서 시작됩니다. 스티브 잡스는 사람들이 자신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기도 전에, 그들의 손안에 아름답고 직관적인 컴퓨터를 쥐여주는 미래를 ‘상상’했습니다. 그의 비전은 논리적 시장 분석의 결과가 아니라, 미래에 대한 예언적인 직관에 가까웠습니다. 이것이 바로 시대를 앞서가는 아이디어를 잉태하는, 수용적이고 창조적인 여성성의 힘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비전은, 그것을 현실로 만들겠다는 불굴의 ‘의지’와 치밀한 ‘실행력’이라는 ‘남성적 원리’와 결합되지 않았다면, 한낱 공상가의 몽상으로 끝났을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비전을 실현시키기 위해 최고의 엔지니어들을 모으고, 불가능해 보이는 디자인을 요구하며, 타협 없는 완벽주의로 전체 과정을 지휘했습니다. 이처럼, 창조적인 비전(여성성)과 강력한 추진력(남성성)의 결합이야말로, 세상을 바꾸는 혁신을 낳는 ‘신성한 결혼’입니다. 오늘날 많은 조직들이 실패하는 이유는, 이 두 원리의 균형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어떤 조직은 안정적인 운영(남성성)에만 치중한 나머지,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됩니다. 다른 조직은 끝없이 새로운 아이디어(여성성)만 쏟아낼 뿐, 그것을 체계적으로 실행에 옮기지 못해 혼란 속에서 자멸합니다.


삶이라는 예술: 내면의 통합


궁극적으로, 성의 원리는 우리 각자가 자신의 ‘삶’이라는 가장 위대한 예술 작품을 어떻게 창조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줍니다. 우리 대부분은 자신의 성별에 따른 한쪽 극성에 치우쳐 살아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온전함, 즉 ‘개성화(individuation)’는 우리 내면의 남성성과 여성성을 모두 인식하고, 그 둘을 의식적으로 통합하여 조화롭게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이성적인 분석(남성성)과 더불어 자신의 직관과 가슴의 소리(여성성)에 함께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의 목표를 향해 열정적으로 나아가면서도(남성성), 동시에 과정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예기치 않은 가능성에 열려 있는(여성성) 유연한 태도를 갖는 것입니다. 그것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명확하게 자신의 경계를 설정하고 주체적으로 행동하면서도(남성성), 동시에 상대방의 감정을 깊이 공감하고 수용하는(여성성) 능력입니다.


이상에서, 일곱 번째 헤르메스 원리는 우리에게 창조가 특정인의 전유물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내면에 잠재된 보편적인 능력임을 일깨워줍니다. 우리의 과업은, 우리 안의 ‘붉은 왕’과 ‘흰 여왕’을 모두 존중하고, 그들이 서로 사랑하고 협력할 수 있는 내면의 신성한 공간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이 내면의 결혼이 이루어질 때, 우리의 삶은 더 이상 의무와 갈등의 연속이 아니라, 매 순간 새로운 의미와 아름다움을 낳는, 기쁨과 창조의 춤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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