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우리는 늘 함께였다

by 플레이런너

술래 형이 돌아서는 순간 아이들은 동시에 멈췄다.

남자아이는 한쪽 발을 든 채로 굳었고,

여자아이는 웃음을 참지 못해 입을 틀어막았다.

맥주집 의자 다리를 붙잡고 아슬아슬하게 버티던 아이의 뒷모습을 보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움직였어!”

남자아이 넷, 여자 아이 둘, 여섯 아이가 땀방울을 흩뿌리며 뛰어논다. 그중 가장 키 큰 녀석이 친구 큰애다. 그 녀석이 술래다. 녀석들이 이 널따란 마당을 놀이터 삼아 휘젓고 있었다.

사실, 이곳은 생맥주가 아주 맛있는 잠실 운동장 근처의 맥주 집이었다.

홀도 넓지만, 앞쪽에는 한옥 마당처럼 널따란 공간이 있는 호프집이다.

애들에게 이곳이 놀이터였다.

어른들에게는

네다섯 시간을 달린 뒤

비로소 숨을 고를 수 있는 마당이었다.

혹 무슨 일 없는지 가끔씩 나가 본다.

“아빠 마실 것 있어? 과자가 있으면 더 좋겠다”

바로 옆에 있는 편의점에서 해결해 주었다.


어른들을 귀찮게 하거나 집에 가자고 보채는 법도 없다.

봄이 오면 달리고,

가을이 오면 또 달렸다.

그리고 우리는 늘 이 호프집 마당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어른들의 테이블 위에는 생맥주잔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그렇게 생맥주잔이 쌓이는 동안, 계절은 열 번쯤 바뀌었을까?


40km 지점에서 숨이 턱에 걸릴 때마다

골인 뒤 호프집 마당이 떠올랐다.

살얼음 낀 생맥주 한 잔과 아이들 웃음소리.

그 상상이 나를 한 걸음 더 밀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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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은 혼자 달린다.

출발선도 혼자 서고

결승선도 혼자 통과한다.

하지만 그 순간부터 비로소 혼자가 아니다.

결승선을 넘는 순간,

진짜 축제가 시작된다.

기다리던 가족들과 뒤섞여 웃는 시간이다.

늘 함께 달린 두 가족도 그랬다.

아내와 아이들이 아빠를 기다렸다.


지금도 만나면 결국 마라톤 이야기다.

그때면 우리는 다시 그 시절로 달려간다.

사실 이때 뛰어놀던 아이들 마음과 상관없이 어른들은 사돈 맺기를 꿈꾸었다.

서로의 아이가 자라는 과정을 지켜본 우리에게 ‘사돈’이라는 농담은 어쩌면 당연한 욕심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럴 만도 했고 그래도 좋았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에서 웃음을 참지 못하던 아이들이 각각의 짝을 찾아

이제는 청첩장 속 주인공의 이름이 되어 돌아왔다.

마라톤은 혼자 뛰었지만,

우리는 늘 함께였다.

오늘 우리는 또 한 번의 출발선에 선다.

기쁜 마음으로,

그들의 결혼식으로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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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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